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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홍도야 울지마라 (Don't cry, Hongdo)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2. 8. 5. 08:51

<2009년 2월 19일 홍콩>

 

 

홍도야 울지마라  

 

사랑을 팔고 사는 꽃바람 속에
너 혼자 지키려는 순정의 등불
홍도야 울지 마라 오빠가 있다
    아내의 나아갈 길을 너는 지켜라



구름에 싸인 달을 너는 보았지
세상은 구름이요 홍도는 달빛
하늘이 믿으시는 내 사랑에는
구름을 걷어 주는 바람이 분다

 

 


"홍도야 울지마라"라는 노래가 있다. 어느 날 갑자기 홍도가 왜 우는지, 그리고 오빠는 왜 울지 말라고 하는지 궁금했다.

 

 

첫 행에 보면 홍도는 "사랑을 팔고 사는 꽃 바람 속에" 있으므로 기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비록 기생이지만 자신만은 꺼지지 않는 등불처럼 순정을 지키고 있다. 홍도는 기생으로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 오빠를 위해 학비를 대고 있었다. 드디어 오빠는 출세를 하게 되고, 홍도가 자신을 위해 기생집에서 일했다는 것을 오빠는 후에 알게 된다. 이런 이야기는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초기에 나온 "홍도는 울지마라" 레코드를 들어보면 알 수 있다.

 

 

오빠를 본 순간 홍도는 눈물이 앞선다. 오빠를 위해서 일을 했지만, 오빠가 자기를 어떻게 볼지 몰랐기 때문이다. "오빠, 저는 비록 기생으로 일했지만 몸과 마음은 깨끗하답니다." 이 말에 오빠는 말한다. "내가 안다. 그 동안 고생 많았다. 여기 출세한 오빠가 있지 않느냐? 이제 시집 가서 잘 살고 아내의 길을 지켜가길 바란다."

 

 

2절에서도 홍도는 검은 구름으로 싸여있는 달이다. 그녀 주위에 들끓었던 남자들은 구름이고, 홍도는 달(月)이다. 다른 기생은 몰라도 홍도만은 몸과 마음이 순결한 그런 처녀다. 이것은 하늘이 믿어주는 일이다. 홍도야 이제 울지 마라. 여기 오빠가 있지 않느냐?

 

 

<2009년 6월 21일 관악산>

 

 

대학교 다닐 때 창신동에서 용두동으로 버스를 타고 다녔다. 그런데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가는데 한 처녀가 내 옆에 앉게 되었다. 지금도 기억에 선한 것이 그녀의 손에는 그림 그리는 도구 상자가 들려져 있었고, 옷은 좀 헐렁한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머리는 약한 파마를 해서 어깨로 넘쳐 흘렀고, 얼굴은 둥글었으며, 빨간 립스틱이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고려대학교에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말하면서 나에게 이런 저런 질문을 했다. 나도 그럭저럭 대답을 했는데, 뜻밖에도 그녀는 나를 언제 한 번 만나자고 했다. 여자가 먼저 만나자고 한 것이 좀 이상했지만, 그러자고 말하고 헤어졌다.  

 

 

어느 날 신설동 어떤 다방에서 그 여자를 만났는데, 좀 나이 먹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다방인 듯, 거기서 들은 노래가 바로 "홍도야 울지 마라"였다. 그녀는 자기에게 별명을 붙여 달라고 해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서 "홍도"가 어떻겠냐고 주책없이 말해 버렸다. 그녀는 좀 촌스러우니 홍을 빼고 "도"라고 하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도"라고 불렀고, 그녀는 나를 "영"이라고 불렀다.

 

 

그 뒤 몇 번 만나서 저녁도 먹고 술도 먹고, 극장에도 갔다. 한 번은 자기 집에 시간 있으면 오라고 했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러겠다고 했다. 그녀는 부천에 방을 얻어 여동생과 둘이 자취를 하고 있었다. 저녁을 얻어 먹고 오면서 뿌듯한 감정과 "이래서는 안 되는데"라는 감정이 병립하고 있었다.

 

 

남녀는 만나면 가까워지는 법이다. 아주 짧은 시간에 서로 보고 싶고, 떨어지기 싫은 날이 닥쳐왔다. 나는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억누르며, 곰곰이 생각했다. 만약 이 여자와 결혼을 하든지,아니면 지금 헤어져야 했다. 만약 지금 더 만나고도 나중에 헤어지게 되면 피차간에 너무나 큰 정신적 상처를 입을 것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말하자면 저울이 균형을 이루는 바로 그 시점이었다. 바늘 하나라도 한 쪽에 옮겨지면 바로 균형이 깨질 판이었다.

 

 

나는 그녀와 나의 모든 조건을 나열해 보았고, 사랑의 깊이와 지금까지의 추억 등 모든 것을 머리 속으로 상상해 보았다. 그녀의 생각은 어떠했는지 몰라도, 결국 이 여자와 결혼까지는 갈 수 없을 것이라는 잠정적인 그리고 희미한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그리고 대단히 간접적으로, 나의 마음을 알리는 듯 마는 듯하게, 편지를 써서 부쳤다. 그러면서, 그녀가 그 편지의 내용을 몰라서 무슨 뜻인지 묻는 편지가 오기를 바랬다.

 

 

하지만 그녀로부터 답장은 오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은 조그만 인기척도 알 수 있듯이 그녀는 기가막히게 나의 의중을 꿰뚫고 있었다. 나는 그런 편지를 보내 놓고 왜 답장이 없는지 물어볼 수도 없었다. 이래 저래 냉가슴을 알았지만, "놓친 열차는 아름답다"고 그녀에 대한 감정은 나를 미치게 했다. 그러면서 후회도 많이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순박한 사랑이었지만, 하여튼 그때는 그랬다. 내가 다시 연락을 왜 하지 않았는지 지금 생각해도 모르겠다.

 

 

나는 어쩌면 그렇게도 독한 여자가 있나 하고 혀를 내둘렀다. 그렇게도 순박하고 착하게 보였던 그녀가 그런 독한 여자였다니,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결국 그녀는 그 뒤로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그녀는 나에게 이런 저런 선물을 주었었다. 그 중의 하나가 책이었는데, Love Story와 펄벅의 The Good Earth였다. 나는 그녀가 책에 써 놓은 이런 저런 글을 읽어 보며 많은 한숨을 쉬었고 눈물을 흘렸다.

 

 

가장 확실하고 잔인한 복수는 "철저히 무시하는 것"이라는 것을 그녀는 터득했던 것 같았다. 아마 그녀가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만나자든지, 내가 왜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는지 물었더라면 양상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응답을 하지 않음으로써 나를 미치게 했던 것이다.  

 

 

많은 여자를 사귀지는 않았지만, 지금도 기억에 남는, 그리고 궁금한 여인을 꼽으라면 바로 이 "도"를 첫 손가락으로 꼽고 싶다. 지금 어디 살고 있는지 모르지만, 가능하다면 꼭 한번 보고 싶다. 그리고 분명히 잘 살고 있을 그녀와 그때 일을 이야기 해 보고 싶다. 이미 머리가 나처럼 반백이나 되었을 "도", 그녀가 가끔 생각이 나고 그리운 것은 아마도 아무런 손 쓸 여유도 없이 속절없이 멀어져간 그녀만의 "오기와 독기," "분노와 좌절", 그리고 "사랑과 복수심"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금도 죄를 지은 듯한 심정을 어쩔 수 없다.

 

 

  


(2009년 6월 25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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