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서, 귀주, 중경, 무한 여행기 3 용승제전과 삼강(龙胜梯田和三江)
<용승 제전과 삼강>
2012년 11월 15일 정오에 양슈어를 출발하여 롱셩으로 향했다. 날씨는 흐렸지만 길은 잘 뚫려 있어서 비교적 기분 좋은 출발이었다. 중간에 쌀국수를 먹겠다고 어떤 마을에서 정차했다. 좀 지저분한 식당이었는데,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그런지 국수를 파는 주인은 싱글벙글 했다.
문제는 개였다. 식당 주위를 걸어 다니는 개가 그리 많았다. 임신한 개에서부터, 축 쳐진 젖 무덤을 땅에 닿을 듯이 늘어뜨리고 다니는 개까지 있었다. 태어난 이래 한번도 목욕을 해보지 못한 개는 흰 개나 검은 개나 그게 그거였다. 바로 옆이 큰 길이어서 자동차 사고를 당했는지, 다리를 절거나 이상하게 뒤틀린 다리를 "게"처럼 끌고 다니는 "개"도 있었다.
<아주머니들이 우리의 짐을 지고 올라오고 있다.>
우리의 목적지인 용성의 평안촌 주차장에 도착하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수 많은 여자들이 우리의 배낭을 받아들어 운반하려고 비온 뒤 물고기 몰려들 듯 모여들었다. 그 중에 남자는 딱 한 명이었고, 나머지 모두가 여자였다. 왜 그런지 이쪽으로 오면 눈에 띄는 것은 여자요, 일을 하는 것도 여자요, 세상을 뒤흔드는 것도 여자인 듯 했다. 운반인들 중에는 나이가 좀 많아서 짐을 맡기는 것이 좀 미안한 노인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그렇게 일을 시키고 돈을 주는 것이 결국 그들에게 유익하다고 하니 그 관습을 따르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약 30분 동안 일을 하고 30위엔(5400원)을 주었으니, 아마 노력의 그런대로 돈벌이는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평안촌(平安村) 마을로 걸어 올라가고 있다.>
해발 약 1000미터에 위치한 우리 숙소 "란위에거"라는 산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는 서산에 지고 있었다. 날씨는 흐렸고 바람은 세찼다. 전에 왔던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안개가 끼고 비가 와서 제대로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우선 대충 사진을 찍어 두기 위해 산장을 나섰다.
산장 앞 계단식 논 앞에 팻말이 붙어있었다. "농민의 노동을 존중하고, 농작물을 애석하게 여겨라"라는 내용이었다. "애석(愛惜)하다"는 말은 여기에서는 "소중히 여기고 아끼다"라는 뜻으로 쓰였으나(사실 한국에서도 이런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지금 한국에서 일상적으로 쓰이는 것은 "서운하고 아깝다"라는 뜻으로 많이 쓰이는 듯 하다.
<산장 바로 앞에 세워진 팻말: "농민의 노동을 존중하고, 농작물을 중히 여겨라">
<비슷한 두 사진: 위의 사진은 돈을 주고 구입한 엽서에 있는 사진. 아래 사진은 필자가 찍은 사진. 날씨가 좋지 않고 어두워서 약간의 포토샵 처리를 했다. 위의 사진은 필자가 찍은 장소와 거의 비슷한 장소에서 찍은 것으로 보인다. 엽서의 사진은 봄에 찍은 것 같고, 아래 사진은 2012년 11월 15일 흐린 날 해가 진 후에 필자가 찍었다.>
평안촌의 계단식 밭은 울퉁불퉁, 오물오물 휘감아 돌고 있었다. 저 멀리 한 무리의 농부들이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 너머에는 보일 듯 말 듯, 다랭이 논이 꿈틀거리며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순간 저 아래서 부는 바람에 안개가 밀려와 순식간에 마을을 덮더니, 같은 속도로 안개는 산 위로 바람에 날려갔다.
<평안촌에 어두움과 함께 밤안개가 몰려오고 있다.>
그날 밤 그 산장에서는 막걸리와 맥주가, 쌈에 싸여진 고기와 함께 쓰나미처럼 목을 타고 들어가고 있었다. 그날의 대화 주제는 세상에 여행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는 것이었다. 국외의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부터 지리산 둘레길까지 각자의 경험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그러더니 행복이란 무엇이며 인생이란 무엇인가로 대화의 주제는 옮겨졌고, 나중에는 술에 치이고 술에 먹혀 아무런 생각 없이 콧노래를 부르며 나의 방으로 향한 것이 마지막 기억이었다.
사실 여행중 술 때문에 몸을 망치기도 하고 술이 있어서 여행이 즐겁기도 하다. 여행은 필연적으로 술과 함께 동행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술은 세상에 많은 "필요 악" 중 으뜸이며, 이런 꽃밭에 놓여진 악의 덫을 피할 수 있는 자 많지 않을 것이다. 여행을 다녀온 후 지방간과 콜레스트롤이 있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현재는 금주하고 있지만, 좀 나아지기만 하면 다시 술을 마실 수 있다는 희망에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술이 없는 세상은 하루하루가 그날이 그날이다. 비슷한 날이 반복되는 흐리 멍텅한 나날이다. 술이 있어 기복이 있고, 시작과 끝이 있고, 만남과 헤어짐이 있고, 너와 내가 있고, 삶과 죽음이 있다. (사실 나는 대단한 애주가는 못된다.)
<평안촌의 밤이 깊어 간다.>
<트레킹 코스>
<계단식 밭 트레킹을 시작했다.>
11월 16일 아침 10시에 트레킹은 시작되었다. 그러나 어제 농담으로 한 말이 진담이 되었을까? 트레킹을 시작하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안개가 시야를 가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널직한 길이 나오더니 길은 논두렁 길로 변했다. 안개는 더욱 짙어지고, 비는 부는 바람과 함게 나의 볼때기를 때렸다. 정말 애석한 일이지만, 몇 시간 동안 전혀 다랭이 논을 볼 수 없었다. 우리를 안내하는 KC는 안개 속을 가리키며 "여기에서 보면 다랭이 논이 가장 멋지게 보입니다."라고 말해준다. 그런 말 하나마나이고, 그런 말 들으나 마나이다. 비록 비가 오더라도 안개만 없으면 좋으련만 세상에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어디 있으랴.
<산길을 걷는다>
다랭이 논을 볼 수 없는 지점에 왔을 때, 안개가 걷혔다. 그러나 다랭이 논을 볼 수 없다면 안개가 있건 말건 무슨 상관이랴. "내가 살아 있을 때 돈이 있는 것이 중요하지, 내 죽은 뒤 보험금 나오들 무슨 소용있나"와 비슷한 논법인지 모르겠다. 내 앞에 펼쳐진 장면은 그저 한국의 시골 어디를 가도 있을 법한 아주 평범한 그런 풍경이었다. 비에 젖은 풀잎이 바지 가랭이에 걸려 이미 바지는 반 이상이 젖어 있었다. 산길 바닥은 누군가가 매끈한 돌을 깔아 놓았으나, 얼마나 미끄러운지 조금만 방심해도 눈길처럼 넘어지기 일수였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위안을 주는 것이 있다면, 길가에 널부러진 산딸기였다. 이미 앞서 간 사람들이 사냥을 하고 지나갔음에도, 남겨진 산딸기만으로도 충분히 배를 불릴 수 있었다. 내 앞에 간 사람들은 그저 앞만 보고 가는지 뒤 꼬리가 보이지 않는다. 엎어진 김에 쉬었다 간다고, 나는 기왕 늦은 김에 사진도 찍고, 딸기도 따먹고, 또 영화 "산딸기 4"도 생각해보면서 느긋한 마음으로 걸어갔다.
<풀이 길을 막는 곳도 있다.>
<딸기밭>
<논두렁 길을 걷는다>
<비가 많이 와서 한 농가에 들러 젖은 옷을 말리고 차를 한 잔씩 마셨다.>
비가 너무 와서 더 이상 걷기 힘든 지점에 도달했다. 한 집에 들어가 장작불 앞에 앉아 옷과 신발을 말리고 주인이 끓여주는 차를 마셨다. 좀 혈색이 돌기 시작했다.
주인 아주머니는 자기의 긴 머리를 늘어뜨려 보여줄테니 돈을 좀 달라고 했다. 그 당시 생각으로는 "참, 아주머니도 별 것 가지고 돈을 벌려고 하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돈을 주고서라도 그것을 봤었어야 했다. 비용이 얼마인지 모르지만, 그것 좀 아끼자고 좋은 기회를 놓친 것이 마냥 아쉽기만 하다.
사실 여행을 다니면서 단지 몇푼 아끼려고 볼 것을 못 보고, 먹을 것을 못 먹고, 놀 것을 제대로 놀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지나고 보면 모두 바보 같은 짓이다. 인생도 마찬가지인 듯 하다. 내가 적은 돈이나마 있을 때, 건강할 때,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 돈을 쓰고 돌아다니고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 다음에 하지, 다음에 하지, 하다가 결국 못하고 어느 날 갑자기 고꾸라지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비는 이제 폭우로 변해 지붕에서 줄줄 흘러 내린다.>
<잠시 쉰 집의 벽에 아이들이 학교에서 받아 온 상장이 붙여져 있다.흔히 있는 일이지만 글자의 순서가 우리말과 반대인 말이 많다. "상장"이 아니라 "장상"이다.>
잘 보이는 몇 개를 해석해 보면 (A) 2009-2010년 1학기 중 "좋은 아이"로 평가받아 특별히 이 증서를 주어 격려한다. (B) 2010년 추계 학기에 1 학년 전 마을 백일장 대회에서 1등을 획득하여 이 증서를 주어 격려한다. (C) 2010-2011년도 2학기 전 마을 1학년반 백일장 대회에서 3등을 획득하여 이 증서를 주어 격려한다.
<비는 오지, 바람은 불지, 뒤에 처졌지, 사진은 찍어야겠지------->
<대채촌에 거의 도착해서 처음으로 만난 중국인>
<대채촌>
<대채촌>
대채촌에 도착한 것은 오후 4시가 조금 안 돼서있다. 날씨는 흐렸지만 안개는 이미 걷혀서 대충 사진은 찍을 수 있었다. 하지만 햇빛이 없어서 인상적인 작품은 나오지 않았다. 사실 제아무리 용뺄 재주가 있는 사진사라 하더라도 태양의 도움이 없으면 좋은 사진 찍기는 불가능하다. 본래 사진이라는 말은 영어로 photography라고 하는데, 어근 "photo-"라는 말은 그 어원이 "빛"이라는 뜻이다. photography는 "빛을 묘사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전문 사진사들은 피사체의 모양보다는 피사체에 비치는 햇빛을 중시한다. 그들은 피사체에 비친 빛을 찾아서, 빛을 묘사하기 위해서, 마치 하이에나가 먹이를 찾아나서듯, 빛이 좋은 아침 저녁에 들판을 어슬렁거래는 것이다.
<대채촌>
<밤에 도착한 삼강의 산장에서>
비에 젖은 몸은 순식간에 썰렁해졌다. 여기저기서 콜록콜록 거리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순식간에 날이 어두워졌다. 우리가 탄 버스는 어둠을 뚫고 삼강으로 달렸다. 얼마쯤 달렸을까, 삼강 시내에 도착한 듯 창 밖에 도시가 보였다. 하지만 차는 계속 밤길을 달렸다. 자동차는 몇 번을 잘못 길을 들어섰다가 다시 나왔다. 이정표가 없으니 대충 들어갔다가 아니면 말고 하는 식으로 다시 나오는 것 같았다. 옛날 남일해가 불렀던 "이정표"가 아쉽다. "길잃은 나그네의 나침반이냐. 항구잃은 연락선의 고동이드냐. 해지는 영마루 홀로 섰는 이정표. 고향길 타향 길을 손짓해 주네."
칠흑같은 어둠 속에 산장에 도착한 것이 밤 8시쯤 되었을 것이다. 여전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칭다오 맥주와 땅콩 그리고 버섯 요리였다. 술잔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오늘도 밤은 어두움을 뚫고 달리고 있었다. 앞에 앉아 있는 동료들의 얼굴이 점점 희미해지고 멀어져가고 있었다. 그날의 기억도 추억도 안개 속으로 빨려 가고 있었다.
<산강의 동족 마을 안내판>
<동족 마을로 들어가는 다리>
다음 날 아침 일찍, 근처에 있는 삼강 동족 마을을 찾았다. 여기 사람들은 다리 위에 기와 집을 지어서 멋있게 보이게 하는데 재주가 있는 듯 했다. 산장 바로 옆에 있는 다리 위에도 멋들어진 기와집이 있었지만, 정말 멋있는 것은 바로 그 옆에 있는 동족마을로 건너가는 다리 위의 기와집이었다. 다리 안은 널직해서 사람들이 다니기도 하고, 장사꾼들이 앉아 있어서 마치 조그만 시장을 방불케 했다. 그곳에서 어떤 꼬마가, 옥수수와 초록색 잎으로 싸서 묶어 놓은 찰밥을 팔고 있었는데, 정말 냄새와 맛이 대단했다.
<다리 위에 있는 건물 안 모습>
<학교 전경>
갑자기 근처 학교에서 체조 음악 소리가 들렸다. 옛날 초등학교 다닐 때, 아침 점심 때에 체조를 했던 생각이 나서, 여기 아이들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다. 학교에 들어가 보니, 아이들은 하나도 없고, 확성기에서 음악 소리만 나왔다. 아마 아이들이 체조를 끝내고 교실로 들어갔나보다 하고 밖으로 나왔다. 나오다 보니 정문 옆에 "교무 공개란"이 있어서 학교 교장이 누구이며, 1학년 반 주임이 누구인지 등이 적혀 있었다. 또 그 옆에는 아이들이 지켜야 할 수칙이 있었다. 이것을 읽어 보면 중국의 초등학교에서 교육의 목표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학교 교문 옆 벽에 붙어 있는 게시판: 교장 이름과 학년 반 주임 등의 이름이 적혀있다.>
<학교 벽에 쓰여져 있는 수칙>
해석해 보면, 1. 열렬히 조국, 인민, 중국 공산당을 사랑하라.
<아이들>
한 무리의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도 않고 장난을 치고 있었다. "이놈들이 학교는 땡땡이 치고 놀고만 있구나. 그래서 학교가 텅빈 채로 체조 음악만 나왔구나." 나는 이 아이들에 대해 좀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한 아이의 팔을 잡고 물었다. "你为什么不去学校?(너 왜 학교 안가냐?)“ 아이들은 말이 없이 한 동안 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도 한 동안 그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한 아이가 냅다 도망치면서 말했다. "星期六(토요일입니다.)". 나는 몽둥이로 한 대 얻어 맞은 듯 멍했다. 그러다가 또 하나의 의문이 생겼다. 그렇다면 학교도 오지 않는 날에 왜 그렇게 큰 소리로 체조 음악을 틀어 놓았을까? 아이들이 집에서 제조하기를 바랬을까? 아니면 스피커가 고장이 나서 수리 중이었을까? 아니면 우리의 방문을 환영하는 노래였을까? 아니면 숙직 교사가 너무 심심해서 일까?
<전봇대로 된 다리를 건너고 있다.?
<KC왈: "조금만 더 와보셔. 엉덩이로 확 밀어 버릴 테니. 정말? 이거 어떻하지? 고민되네.">
<동네 큰 건물 안에 마을 노인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동네 공연장으로 가는 길>
<동네 골목의 한 장면>
<중국은 어디 가나 생고기 천지다. 냉동 고기는 없는 듯 하다. 그래서 고기가 맛있느지도 모른다.>
<공연장에서 할머니들이 물건을 팔고 있다.>
<공연>
<멋들어지게 추는 춤>
공연장에서 공연이 벌어진다. 젊은 남녀들이 나와서 음악에 맞추어 율동을 시작한다. 음악과 율동이 너무 빨라 정신이 없다. 남자들도 춤을 추기는 하나 그래도 멋들어진 것은 역시 여자들이다. 검은색 바탕의 상의에 화려한 치장을 둘렀는데, 이 치장을 나플거리며 공연장을 나비처럼 날고 다닐 때는 이몽룡이 춘향의 그네에 끌리듯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발등을 살풋이 감싼 자주색 신발끈이 마음을 끈다. 어디 그 뿐이랴. 한 손에는 붉은 우산이 돌아가고, 다른 손으로는 비단 머플러를 하늘에 뿌린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치마는 하늘 높으줄 모르고 올라가고, 종아리를 감싼 검은 스타킹은 칠흑의 매력을 뽐낸다.
<현장 녹음 약 30초: "다음"에서 MP3를 올릴 수 없도록 만들어 놓아 하는 수 없이 좀 복잡한 링크를 겁니다. 여기를 클릭하세요.>
<남자가 춤 동작을 하고 있다.>
<공연이 끝난 후, 술을 마시고 돈을 낼 사람을 찾아 나선다.>
공연이 끝나면 구경꾼들에게 술잔을 돌리는데, 한 잔 얻어먹어보자고 너도 나도 달려든다. "여기가 그 유명한 술 얻어 먹는 곳이란다." 어떤 한국 사람이 소리를 지르자, 십년 굶은 이리처럼 사방에서 한국 사람들이 달려든다. 술을 먹는데 돈이 아까울게 무엇이냐? 아가씨의 쟁반에는 돈이 쌓여가고, 돈의 높이만큼 아가씨의 입이 크게 벌어진다. 나비야 어데가나, 이쪽에도 날아와라. 소리치는 손님 속에 하루 해가 너무 짧다.
<구경꾼에게 술을 권한다.>
<강에 있는 물을 위에 있는 논으로 퍼 올리는 장치: 1)물살에 의해 물레 방아가 돈다. 2)물레방아에 있는 작은 바가지는 물을 담아 위로 올라간다. 3)정상에서 바가지의 물이 널직한 홈에 쏟아진다. 4)그 물은 홈을 타고 논으로 흘러간다.>
<농부들이 밭에서 일을 하고 있다.>
날씨는 쌀쌀했지만, 들에는 농부들이 배추를 심고 있었다. 겨울이 다가 오고는 있지만 위도가 낮아서 한 동안 배추를 기르기 좋은 계절일 것이다. 바로 그 논 앞에 조그만 개울이 있었다. 간밤에 비가 왔는지 흑탕물이 흘러 내렸갔다. 그 흑탕물에 들어가 한 할머니가 고기를 잡고 있었다. 오늘 저녁에 할머니 밥상에 붕어나 피라미가 올라갈 것이다. 그 요리에는 간장과 고추와 갖은 양념이 들어 있어서 반찬으로 딱 좋을 것이다.
그 할머니의 얼굴이 이미 돌아가신 나의 할머니의 얼굴과 비슷했다. 오래 전에 시골 연못에서 낚시로 몇 마리 붕어를 잡아가면 우리 할머니는 그렇게 요리를 했었다. 이빨이 모두 빠졌던 우리 할머니는, 붕어의 머리와 꼬리까지도 도마위에 난도질 해서 한 점 남김없이 드시곤 했었다. 할머니는 영원히 할머니인가 보다. 내가 이미 할머니의 나이가 되었건만, 나는 할머니를 생각하면 늘 소년처럼 여겨진다. 할머니는 늘 고향처럼 그립다.
<농부들>
<할머니가 개울에서 잡은 물고기를 바라보고 있다.>
(2012년 12월 30일 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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