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서, 귀주, 중경, 무한 여행기 2 이강 유람과 양삭(漓江游览和阳朔: 리장요우란• 양숴) “우리 모두는 다른 우주로 여행을 하고 있었다."
<계림에서 양삭까지>
<배로 유람한 구간>
사람들은 계수나무만을 보기 위해 계림에 오지는 않는다. 리강 유람을 하려고 사람들은 계림에 온다. 리강을 따라 배를 타고 가면서 보는 풍경이 그만큼 아름답다는 뜻이다. 안내 책자에 따르면 리강 유람 코스는 약 170키로다. 그 중에서 계림과 양삭 구간이 가장 유명하다. 그러나 계림에서 양삭까지 5 시간이 걸린다. 우리는 안내책자에 적혀있는대로 풍경이 가장 좋다는 양디에서 싱핑까지 약 2시간만 유람을 하기로 했다.
<양디(杨堤)에서 리강 유람은 시작된다.>
<리강 유람>
양디에 도착하면 우선 할머니들이 머리에 꽂을 사라고 달려드는데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그들의 말을 따르는 것이 신상에 좋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끈질긴 추격전을 피하려다가 리강에 몸을 날려야하는 불운의 여행자가 될지도 모른다. 할머니들은 "태평양을 건너, 대서양을 건너, 인도양을 건너서라도, 당신이 최고야"하면서 지구 끝까지 쫓아올 것이다.
4인승 배에는 선장이 한 명 타는데 그는 배 뒤에 달려있는 조그만 발동기를 가동시켜 능숙하게 배를 운전한다. 발동기는 작지만 내려가는 물과 힘을 합쳐 배는 생각보다는 빠른 속도로 강을 따라 내려간다.
일단 배가 출발하면 양쪽에 있는 산이 그야말로 그림처럼 펼쳐진다. 팽이처럼 생긴 산도 있고, 손가락처럼 생긴 산도 있다. 주먹으로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산도 있고, 하늘을 찌를 듯한 산도 있다. 하여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올망졸망한 산들이 가까이 멀리 산재해 있고, 그 산들이 물에 비쳐서 물이 출렁거릴 때마다 기기묘묘한 모양을 만들어 낸다. 어떤 곳에서는 초록색 부평초가 강 전체를 덮고 있기도 한데, 이런 초록의 평원은 바로 옆의 초록의 산과 잘 어울려 한 폭의 산수화를 이룬다.
우리가 타고 간 배는 초라하게 보이는 배다. 하지만 우리 배 옆에 가끔 가다 거대한 유람선이 굉음을 내면서 돌상어처럼 지나가기도 한다. 거대한 유람선을 타고 가는 사람들은 갑판에서 구경할 수도 있고, 실내에 앉아서 잡담을 하거나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더욱 부러운 것은 배의 후면에 식당이 있어서 근사한 식사를 하면서 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기왕이면 저것을 탈 걸,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아무리 좋아도 같은 경치를 5시간 본다는 것도 만만치 않게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내 배가 최고야"라고 스스로 위로해본다.
<깊은 곳으로 달리는 대형 유람선>
<중간에 정박한 지점. 각종 음식을 판다>
우리를 태운 통통배는 이미 계약이 되어 있는지, 중간에 몇 군데에서 정박을 하는데, 거기에는 서민의 음식이라고 여겨지는 몇 가지 음식이 있게 마련이다. 그중의 으뜸은 바로 그 강에서 잡았다는 물고기 튀김인데, 나는 도저히 먹어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전날 하도 술을 많이 마셔서 오장육부가 엉망진창인 나는, 민물고기 튀김을 맛있다고 먹는 사람들을 존경과 부러움과 시기심으로 바라보며 어젯밤의 술독에 빠진 일을 마음 속으로 곱씹으며 신음했다. 속이 좋지 않아 갤갤거리던 나는, 그나마 아름다운 경치에 마음을 조금은 달랠 수 있었고, 흘러가는 물이 내 몸과 영혼을 치유해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이강에서 잡았다는 물고기를 튀겨서 판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봄날은 간다" 중에서>
<싱핑>
<싱핑>
싱핑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고 사람들은 높이가 약 300미터 된다는 라오짜이샨(老寨山)에 올라간다고 모두들 시야에서 사라졌다. 늙고 병든데다 허리까지 꼬부라진 나는, 간밤의 과음을 후회하며 싱핑꾸전 입구에 앉아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며 신세타령을 하다가 얼핏 잠이 들었다. 비몽사몽간에 눈을 떠보니 물 속에 산이 앉아 있는데, 그 모양이 선녀들이 사는 하늘 나라라. 멀리 아낙네들 몇 명이 다리 아래 빨래를 하고 있고, 이름 모를 새들이 하늘을 날고 있었다. 어디서 고운 여자 목소리가 있어 고개를 들어보니, 군밤장수 아가씨라. 군밤을 사서 껍질을 벗겨 입에 넣으니 목이 메여 먹을 수가 없었다. 그저 몽롱하게 앉아 있는데, 갑자기 성경 한 구절이 생각이 났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 신자도 아닌 내가 이런 말이 왜 입에서 튀어나왔는지 나도 모르게 깜짝 놀랐다. 사람이 죽으려면 못할 짓이 없고 못할 말이 없다더니 이판사판이 되다보니 제 정신이 아닌 모양이다.
<싱핑 구전= 옛 싱핑 마을>
<호텔에 붙어 있는 양삭 여행 안내 지도: 위 지도에 표시된 지점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양삭의 밤>
양삭에 처음 내렸을 때, 나는 이곳이 운남성의 여강(丽江:리지앙)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작고 아담하고 깔끔하다는 점에서였다. 또 한 가지, 서양인들이 많다는 점에서였다. 어디를 가나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유럽인들을 볼 수 있었다.
밤이 되면 이곳은 환락가로 변한다. 아마도 계림보다도 더 밤문화가 발달한 듯 했다. 거리를 가득 메운 젊은이들이 휘청거리며 활보한다. 각종 음식점과 술집과 디스코바가 손님을 유혹한다. 다른 쪽으로 발을 옮기면 각종 전통 물건을 파는 가계에서부터 가방, 옷, 신발을 파는 가게가 즐비하게 서 있다. 한 가게에서 종업원이 능숙한 영어로 손님을 상대하다가 내가 다가가니 직감적으로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고서는 또 능숙한 한국말로 "안에 가방 많이 있어요. 들어가 보세요"라고 말을 한다. 나는 시험삼아 "와따시와 니혼까라 기마시다(나는 일본에서 왔습니다)"라고 말을 했더니 또 그 아가씨는 능숙한 일본말로 응답을 한다. 나는 더 이상 말을 못 하고 그녀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양삭의 밤거리는 손님으로 넘친다.>
<거리는 붉을 등을 달아 놓아 중국 전통의 일면을 보여준다.>
<곳곳에 두부처럼 생긴 음식을 팔고 있었는데, 먹어봐야지 먹어봐야지 하다가 결국 먹어보지 못한 음식이다.>
새벽에 이강으로 나갔다. 양삭 시내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이강과 합쳐지는 지점이었다. 몇 사람이 산책을 하고 있었고, 몇 사람은 춤 같기도 하고 체조 같기도 한 동작을 하고 있었다. 또 한 쪽에서는 먼 강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겨있는 사람들도 보였다. 시간은 이강 강물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흐린 하늘에 밝은 부분을 찾아 해가 고개를 내밀기도 했다. 그러나 그 해는 여름이 되면 납량특집으로 흔히 TV에서 보았던 구미호의 꼬리처럼 을씨년스럽게 나타났다가 소리없는 회오리 바람 속으로 사라졌다.
또 한쪽에서는 학생들이 모두 책을 꺼내놓고 공부를 하고 있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들이 무엇인가를 낭독하고 있음을 알았다. 왜냐하면 중국에 아침에 돌아다니면 큰 소리로 책을 읽는 사람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그들이 읽는 책을 곁눈으로 보니 영어책이었다. 나는 호기심이 발동하여 영어로 말을 걸어 보았다. 그들은 아주 간단한 말조차 더듬거렸다. 그들은 다른 도시에서 영어 연수하러 이곳에 왔다고 했다. 매일 학원에서 공부를 하는데, 아침만 되면 이곳에 나와서 낭독을 한다고 했다. 책의 내용은 중국의 문화재에 대한 것이었는데, 영어 공부에는 별로 도움이 될성싶지 않은 그런 책이었다. 외국어는 교재도 중요하고, 방법도 중요하고, 가르치는 선생님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재라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결국 써먹지 못할 말만을 배운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양삭에는 이강 이외에도 우룡하(遇龙河:위롱허)라는 강이 있다. 강(江)과 하(河)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지만, 조그맣고 조용히 흐르는 이강을 위롱허라고 부른다. 여기에 있는 뗏목은 대나무를 엮어서 만들었고 뒤에 뱃사공이 큰 장대로 땅을 밀면서 유람은 시작이 된다. 큰 대나무 장대인 노는, 한쪽을 강 바닥에 대고 밀고 그것을 다시 미는 것이 아니라, 땅에 닿은 부분을 하늘에 들어올렸다가 돌려서, 이번에는 반대쪽 장대 끝이 강바닥에 닿게 하여 다시 밀고가는 형식이다. 그러니까 계속 장대를 돌리면서 노를 저어 앞으로 간다. 왜 그렇게 번갈아가면서 배를 미는지는 알 수 없지만, 수백년 아니 수천년 동안 그렇게 해보니 효율적이라는 것이 판명났을 것이다. 이 사공들은 자신이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손님에게 노래를 시키기도 하는데, 역시 강 중간 중간에 있는 사진 촬영지점에 멈추어서, 찍은 사진을 찾기도 하고 음식을 사 먹기도 하고,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팔자 좋게 강을 따라 내려간다.
조용히 강물을 따라 내려가면서 사람들은 그야말로 화랑에 온듯한 착각에 빠진다. 거기가 바로 "십리화랑"이라는 곳이다. 살며시 눈을 뜨고 신묘하게 솟아있는 강옆에 전시된 자연 화랑을 지나다 보면 과연 인간 세상의 천당은 바로 여기구나라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순간 어디서 오리가 지나가며 시선을 잡는가 했더니, 난데 없이 "꽃을 사시오, 꽃을 사"라는 한국 민요가 들려오기도 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모두 헛되다"라는 생각에서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온 것이 정말 장하다"는 생각까지, 이 생각 저 생각이 활동사진처럼 눈앞에 펼쳐졌다가 기억 속 저 너머로 사라진다.
<위롱허에서 1800원에 찍은 사진을 스캔한 것: "사람은 물 표면에서 떠내려가고, 물고기는 물속에서 수영을 한다(필자 해석)".>
중간 중간에 폭포가 있어서 예고도 없이 아래로 떨어지는데, 얼마나 무서운지, 간 떨어지는 소리가 벼락치는 소리만큼 크게 들리고, 바로 아래에 있는 강물은 염라대왕이 쇠창살로 죽일 듯이 달려드는 듯하다. 신발을 비닐 봉지로 싸 두었으나 아무 소용이 없고 바지까지 젖게 되고, 애주중지 아끼던 카메라에 물들어가지, 무서워서 벌린 입으로 또 물 들어가지 심지어는 귓구멍 콧구멍까지 물이 들어가니, 그야말로 물빠진 생쥐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 정신을 다시 차리면 또 지상 낙원이 전개되니 위롱허라는 곳은 웃겼다 울렸다 완전히 사람을 가지고 노는 강이렸다.
<역시 위롱허에서 1800원에 찍은 사진:우룡하 십리화랑 "산 무리의 그림자가 거꾸로 물 속에 있으니, 산과 물이 있어 넋을 잃도다"(필자 해석)>
<목적지에 거의 도착한 지점. 대나무가 강으로 휘어져 멀리 보이는 다리 모양을 하고 있다.>
<강가에서 신부 사진 촬영을 한다.>
<멀리 보이는 월량산(月亮山:위에량샨): 위롱허에서 가까운 곳에 반달처럼 생긴 산이 있다.>
<역시 위롱허 근처에 있는 대용수(大榕树: 따롱슈). 나무의 나이는 1400세, 키는 17미터, 둘레 7미터에 달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나무 줄기에서 땅으로 줄기가 내려와 땅에 뿌리를 박고 있다는 것이다. 내 평생 이렇게 희안한 나무는 처음 보았다.>
양삭의 풍경도 아름답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역시 "이강산수극장"에서 벌어지는 공연이다. 물위에서 벌어지는 이 공연의 제목은 인상 유삼제(印象 刘三姐: 인샹 리우산지에)라고 불린다. 유삼제는 전설속 인물로 광시족의 노래신선이라고 한다. 바로 대용수 근처에서 연인과 사랑을 나누었다고 한다.
밤이 되면 사방에서 구경꾼들이 공연이 펼쳐지는 공연장으로 모여든다. 순식간에 그 넓은 공연장은 발디딜 틈조차 없이 가득 차게 된다. 그 순간 백지영의 "총맞은 것처럼"이라는 음악이 흐르게 되고, 이 음악이 끝나면 본격적인 "인상" 공연이 시작된다.
출연진은 대부분 근처에 사는 주민이라고 하는데, 장족의 풍습 등을 조합하여 노래와 춤으로 꾸몄다고 한다. 이것은 바로 중국의 유명한 장이모 감독 작품이다. 출연진은 대부분 근처에 사는 여학생들이라고 하는데 무려 600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 공연은 도입부에 손님에 고마움을 표시하는 말 이외에는 대부분 대사가 없는 춤과 노래이다. 강에서 펼쳐지기 때문에 배를 타고 공연은 펼쳐진다.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북소리를 겯들인 음악과 함께 수 많은 사람들이 배를 타고 등장한다. 붉은색 긴 천을 들었다 놓았다, 당겼다 밀었다 하면서 일사분란하게 추는 춤은 이 연극의 최대의 압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후 환상적인 조명과 가슴을 두드리는 음악으로 바뀌면서 그들이 꿈을 꾸는지 내가 꿈을 꾸는지 모르는 무아지경에 빠지게 된다.
갑자기 물 위에 궁전이 나타나고 초생달이 모습을 드러내면 바로 그 초생달 위에서 선녀가 내려와 춤을 춘다. 초생달 위에서 이리 훨, 저리 훨 춤을 추는 것이 바로 유삼제이리라. 사람들의 탄성과 함성이 강물을 박차고 하늘로 올라가자 이번에는 또 번개처럼 물 위에 무대가 만들어져 수 백명의 무희들이 춤을 추는데 한쪽에서 천을 올리면 다른 쪽에서 내린다.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하다가 순간적으로 또 조명과 음악이 바뀌면 물위에 Z 자를 그리며 한 점으로 변한다. 도대체 눈을 어디에 두어야할지 정신이 없이 "어, 어, 어" 하면서 시간 속으로 또 공간 속으로 빠져들고 만다. 아, 대자연이라는 무대에 인간이 꾸며낸 가슴 뭉클한 대서사시이다.
공연에 대한 소중한 추억을 가슴에 안고 공연장을 나왔다. 공연장 앞에 초록색 나무가 있었다. 우거진 잎 사이에 수많은 등불이 보였다. 그 등불은 우주의 행성이 돌 듯 빙빙 돌고 있었다. 그 속에 방금 보았던 "인상"의 모습이 겹쳐서 돌아가고 있었다. 붉은색 천을 톱질하듯 당기고 밀었던 배우로부터, 달 위에서 춤을 추었던 소녀에 이르기까지, 모두 파란 불이 되어 머리 위에서 돌아가고 있었다. 하늘이 돌고 땅이 돌고 나도 그 속에서 어린 아이처럼 빙빙 돌고 있었다. 나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거대한 우주 속으로 함께 사라져 가고 있었다.
<공연장 밖에 있는 나무와 등불>
(2012년 12월 25일 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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