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Beautiful the Nature is! - Albatross

China

광서, 귀주, 중경, 무한 4 "조흥, 종강, 용강"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3. 1. 1. 22:13

 

 

 

 

 

 

광서, 귀주, 중경, 무한 여행기 4

조흥 종강 용강(肇兴 从江 榕江: 짜오싱 총장 롱장)

 

 

 

 

<여행지: 조흥, 종강, 용강>

 

 

 

 

<우리가 숙박한 호텔: 조흥 반점>

 

 

2012년 11월 17일 늦은 오후, 조흥의 조흥반점에 도착하였다. 조흥 반점이라는 간판을 보니 한국의 조흥 은행 옆에 있는 중국 집에 온 듯한 생각이 들었다. 순간 자장면을 먹어야지 하다가, 아, 참, 붕어 빵에는 붕어가 없는 것처럼 중국에는 자장면이 없지, 라고 생각하고 시내 구경을 나섰다.  

 

 

 

 

<조흥의 전통 건축물>

 

 

조흥은 한국의 읍보다는 작고, 면보다는 좀 큰 그런 큰 마을이었다. 포장되지 않은 길 위에 사람들이 한가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떼지어 몰려다니며 사진기를 들이대는 우리에게, 그들은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여야 할 터인데, 지나가는 닭 보듯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니, 내가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만 했다.

 

 

 

 

<조흥의 고루>

 

 

처음 눈에 뜨인 것은 누각이다. 높고 낮은 누각이 좁은 마을에 여기 저기 삐죽삐죽 보인다. 하지만 정교하지 않고 좀 삐딱하고 대충 지은 듯한 느낌이 든다. 아무리 똑바로 사진을 찍으려 해도 찍어 놓고 보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무슨 이유가 있어서 좀 허술하게 지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어찌보면 또 그것이 멋이라면 멋일 수도 있다. 모든 것이 똑바르고 번듯하기만 하면 멋이 없을 수도 있다.  

 

 

 

<다리 위에 세워진 고루>

 

 

 

 

<조흥 시내>

 

 

조흥 반점 앞 좁은 길 한쪽으로 가게가 늘어서 있었는데, 아주 옛날 시골의 장같은 느낌이었다. 허름한 옷과 신발이 듬성 듬성 진열되어 있었고, 그 사이에 조그만 수퍼나 식당이 간간히 끼어 있었다. 한쪽 길에는 아주머니들이 생고기를 팔고 있었는데, 장사가 잘 되지 않는지, 잡담을 나누거나 허공을 바라보거나 이빨을 쑤시고 있었다.  주위에는 땅에 떨어진 고기점이라도 주워 먹으려고 동네 개가 땅에 코를 박고 흥흥 거리고 있었다. 조금만 고개를 들면 먹을 만한 고기가 즐비한데도 얼마나 철저히 교육을 받았는지, 개들은 전혀 고개를 들어 리어커 위에 있는 고기는 넘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조흥 시내 노점>

 

 

 

 

<광주리를 만들고 있다.>

 

 

 

 

<고추 방아를 찧고 있다.>

 

 

조흥을 조흥답게 보이게 하는 것은 바로 좁은 골목으로 들어갔을 때부터 시작이 된다. 땅 바닥에 쪼개진 대나무 쪽을 엮어가는 사람부터, 디딜방아로 고추를 빻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따뜻한 양지 쪽에 앉아 구멍 난 양말을 꿰매는 할머니, 그리고 그 옆에 무릎을 가지런히 맞대고 앉아 침침한 눈으로 가재 도구를 고치는 할머니가 보인다.

 

 

 

 

<할머니가 뭔가를 꿰매고 있다.>

 

 

 

 

<머리에 상투를 튼 할머니가 뭔가를 만들고 있다.>

 

 

 

 

<나뭇잎을 뜯어다가 숙성시켜 물감의 원료를 얻고 있다.>

 

 

이곳에서 가장 특이한 것 중의 하나는 옷감에 물들일 염료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딘가에서 썩은 냄새가 나서 발원지를 찾아 가보니, 아주머니가 큰 통에서 상당히 부패한 것으로 보이는 풀을 건져내고 있었다. 썩은 냄새는 천지를 진동하는데 아주머니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치 끓인 국 속에 뭉클거리는 아욱을 건져 내듯 조심조심 퍼런 풀(草)을 꺼내서 광주리에 담고 있었다. 다른 곳에서도 역시 남색  염료를 정제하고 있었는데, 이런 작업을 하는 아주머니의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배 있고, 숨소리가 먼 곳까지 들리는 듯 하였다. 사실 이런 곳에 가면 이런 물감으로 염색한 옷도 사서 한국에 가져와, 옷을 볼 때마다 그때의 기분을 느껴봐야 한다. 하여튼 화학물감이 아닌 천연 물감  만드는 것을  보니, 신기하기도 하지만 그 일은 정말 피눈물 나듯 힘든 일임을 알 수 있다.  

 

 

 

 

<역시 물감을 얻는 작업>

 

 

 

 

<할머니가 감자를 씻고 있다.>

 

 

 

 

<나무를 쪼개고 있다.>

 

 

 

 

 

 

 

 

< 버려진 시멘트 더미에서 그 속에 있는 철사를 빼내어 어딘가로 가고 있는 아이들>

 

 

거리를 좀더 걷다 보면 풀을 뜯어 말에 싣고 가는 원주민이 있고, 채소를 뽑아서 장대에 매어 어깨에 얹어가는 처녀도 보인다. 울면서 도망가는 딸의 손목을 잡고 끌고 와서 더운 물과 찬물을 섞어 머리를 감기는 어머니가 있고, 일하러 나간 어머니를 기다리는지 하염없이 해바라기 씨를 까먹으면서 먼 산을 바라보는 아이가 있다. 카메라를 들이대는 나에게 V자를 그려 보이는 아이, 동네에 버려진 시멘트 벽돌에서 뜯어낸 철사를 들고 거리를 활보하는 아이들이 보인다. 아마 이 고철을 팔아 사탕을 사먹을지, 학용품을 살지 모르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금광석에서 금을 캔 것보다도 더욱 자랑스러워 보이는 자만심이 보인다. 

 

 

 

 

<길 옆에서 머리를 감긴다>

 

 

 

 

<집 앞에 앉아 있는 아이>

 

 

 

 

<포즈를 취해주는 아이>

 

 

 

 

<창문에 매달아 놓은 무우>

 

 

 

 

<대나무를 쪼개고 있다.>

 

 

 

 

<전통 민가>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찬탄을 금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주민들의 거주지와 그 앞에 흐르는 시냇물이다. 중국에서 고진(古鎭: 꾸전=옛날 마을)으로 유명한 곳은 한두 군데가 아니다. 내가 가본 곳 중 아마 가장 유명한 곳이, 리장, 따리, 양삭이리라. 하지만 내 마음을 끄는 곳이 바로 여기 조흥에 있는 고진이었다. 앞에서 말한 리장, 따리, 양삭은 이미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관광지, 장사꾼이 득시글 거리는 장터로 변해 있다. 길에 넘쳐나서 어깨에 걸리고 발뿌리에 치이는 것이 관광객이다. 그러나 바로 여기 조흥에서는 문명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 듯, 고스란히 수백년 전의 흔적과 옛스러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매일 흐리다가 마침 그날은 석양의 파편들이 전통 가옥 낡은 송판 벽 위에 눈송이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어디 갔는지 텅빈 길에는 사람은 커녕 그 많은 개도 보이지 않았다. 가랑이가 터진 바지를 입고 아장 아장 걷던 아이도, 마지막 남은 늦은 햇볕을 즐기는 할머니도, 그날만은 무슨 일인지 모두 종적을 감추고 있었다. 단지 흘러가는 물소리와 가끔 가다 울어대는 낮 닭의 울음 소리만이 텅 빈 하늘로 달려가고 있었다.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떠보니, 생풀로 염색해 빨래 줄에 널어 놓은 남색 옷감이, 내 어릴 적 금산 장날 국수 집 앞에서 보았던 축축한 국수처럼 장대에 축 늘어져 있었다.  

 

 

<현장 녹음 15초: 물소리와 닭 울음 소리: 여기를 클릭하세요>

 

 

 

 

<물들인 천을 말리고 있다.>

 

 

 

 

<석양을 받고 있는 전통 가옥>

 

 

 

 

 

 

 

 

<빨래를 하고 있는 소녀>

 

 

조금 상류로 올라가면 들판이 있고 그 들판을 가로 질로 시냇물이 흐른다. 그 시냇물을 따라서 나 있는 좁은 논둑길로 사람들은 어깨에 장대 짐을 지고 걸어가고 있었다. 해는 서산에 자석처럼 빨려가고 있었고, 해가 지면 찾아올 추위를 생각하는지 그들의 발길은 빨랐다.

 

 

한 소녀가 그 개울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다. 소녀의 주위에는 이미 잘 세탁된, 젖은 옷이 빨래 줄에 걸려 있었다. 소녀가 무슨 노래를 불렀으나 재잘대는 시냇물 소리에 묻혀 노래인지 혼자만의 넋두리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소녀의 그림자가 물에 비쳐 잔잔하게 여울졌다.

 

 

황순원의 소나기가 생각났다. 소년의 등에 업히어 개울을 건널 때 소녀의 옷에 풀물이 들었었다. 무슨 일인지 그 후 그들은 만나지 못하게 되고, 소녀의 집에 다녀오는 아버지를 통해 그 소녀가 죽었음을, 소년은 알게 된다. 그리고 소녀가 죽을 때 한 말은 바로 "내가 입던 그 풀물이 든 옷을 그대로 입혀 묻어달라"는 것이었다는 것도 알게 된다. 호두를 만지작거리며 아버지의 말을 듣던 소년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아마 저 소녀가 다시 태어난 황순원의 그 소녀가 아닐까?

 

 

 

 

 

 

 

 

<산 위에서 바라본 조흥의 논>

 

 

 

 

<산 위에서 바라 본 조흥의 전통 가옥>

 

 

 

 

<결혼 잔치가 벌어졌다.>

 

 

우리가 묵은 호텔 바로 옆에 있는 누각에서 동네 주민들이 잔치를 벌리고 있었다. 잔치라고 해서 징이나 꽹과리를 치며 시끌벅적한 것이 아니라, 그저 동네 주민이 모여 음식을 만들고 같이 먹는 것이었다. 큰 솥에서 올라오는 구수한 냄새가 우리가 있는 곳까지 뻗쳐왔다.   

 

 

 

 

<결혼 식장의 요리 장면>

 

 

 

 

<결혼식장의 요리>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길에 화약을 터뜨린다.>

 

 

마침내 땅 바닥에 늘어 놓았던 줄에 매단 폭약이 "따따따따"하며 연달아 터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벽을 향하거나 귀를 막거나 도망쳐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 누구도 감히 곁에 있을 수가 없었다. 돌이 사방으로 튀더니 내 입술에도 튀어서 한 대 된통 맞았다.

 

 

밤이 되자 이번에는 결혼 축하 폭죽이 터졌다. 하늘에  파란 불 빨간 불이 사방에 터져 밤하늘을 수 놓았다. 그 소리가 바로 영화에서 보는 따발총 소리였으며, 사방에서 이를 바라보는 주민들의 동공 속에 불꽃의 파편이 눈꽃처럼 휘날리고 있었다. 

 

 

 

 

<결혼을 축하하는 불꽃 놀이>

 

 

 

 

<불꽃 놀이>

 

 

안 되겠다, 우리도 빡 세게 먹어봐야지. 우리의 자리가 둥그렇게 대충 정리되었다. 헌 타이어를 가져 오더니 그 안에 화덕을 갖다 놓았다. 불판 대신 선풍기 보호망이 불 위에 놓여졌다. 선풍기 보호망으로 불판을 하는 것을 두고, 중국 사람들 머리 좋다는 말이 여기저기 들린다. 강력한 참나무 숯불 위에 노릇노릇하게 돼지 고기가 구워진다. 다른 사람이 먼저 먹을까봐 침을 흘리며 젖가락을 들고 달려드는 사람들의 눈동자도 숯불만큼이나 불꽃이 튄다. 쌈과 마늘, 고추장에다가 어디서 가져왔는지 된장까지 그야말로 완벽하게 술 먹을 준비가 다 되었다. 돌아가는 술잔 속에 싹트는 우정, 채워진 술잔 속에 흥겨운 미소, 비운 술잔 속에 인생의 의미가 담긴다. 주고, 받고, 돌리고, 따르고, 마시는 술잔 속에 너와 나는 하나 되어 조흥의 밤공기를 타고 별을 향해 달려간다.    

 

 

 

 

<우리의 저녁 식사>

 

 


 

 

 

 

<종강의 파사(从江 岜沙: 총장  빠샤)>

 

 

다음 날, 조흥에서 종강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종강(중국식 이름 총장)은 도시의 이름이고, 여기에 온 목적은 또 다른 전통 마을인 빠샤라는 마을을 구경하기 위해서다. 총장이라는 도시에서 약 8키로 떨어진 이 마을에서는 최후의 사수(射手)가 살았다고 한다. 내가 이 빠샤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안개 때문에 몇 미터를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두 차로 나누어서 도착을 했으나 서로 연락이 잘 되지 않아 서로 만나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그런지 공연하는 시간을 놓치고 말았으니 특별히 할 일이 없었다. 빠샤족의 춤을 구경하고, 낫으로 머리를 깎는 것이 구경거리라고 하는데, 이런 공연을 보지 못하니 안타깝기 그지 없다  

 

 

 

 

<빠샤 마을>

 

 

 

 

<빠샤 마을>

 

 

내가 할 일은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는 일뿐이었다. 여기는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별로 추위를 타지 않는 듯 했다. 추우나 더우나 모두 맨발로 다니는 것이 관습이라고 한다. 아주 오래 전 시골에 살 때 "다베"라고 불렀던 국방생 운동화를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신고 있었고, 양말은 신지 않고 스타킹 비슷한 것을 걸치고 있었다. 사람들은 장대에 짐을 걸어 건성건성 메고 다녔다. 아이들은 땅에 앉아서 옷이야 흙이 묻건 말건, 진흙 투성이가 된채 장난을 치고 있었다.

 

 

 

 

<빠샤 마을 주민>

 

 

 

 

<빠샤 마을 아이들>

 

 

 

 

<빠샤 마을 할머니>

 

 

 

 

<빠샤의 닭>

 

 

 

 

<빠샤의 거미줄>

 

 

 

 

<혼쭐나는 필자>

 

 

갑자기 한기가 찾아왔다. 더 이상 추위를 견딜 수 없던 나는, 나도 모르게 울타리를 뛰어넘어 옷 하나를 몰래 가져오는 해괴망칙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랴? 바로 그 옆에 바사족 아주머니가 숨어서 내가 옷 훔쳐가는 것을 보고 있을 줄을. 나는 딱 벌어진 어깨와 근육질의 장단지를 가진 아주머니에게 현장에서 붙잡히고 말았다. 무시무시한 얼굴의 여인은 내가 한 짓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었다.  나는 너무 추워서 나도 모르게 한 짓이니 용서해 달라고 두손 모아 싹싹 빌었다. 그녀는 마른 짚을 마당에 갖다 놓고 성냥불을 붙였다. 그리고서는 회초리를 들고 나를 향해 쏘아붙였다. "얼굴은 멀쩡한 양반이 그러면 쓰나. 춥다고 말하면 이처럼 불을 피워주지 않소. 어디 한 번 맞아 보겠수까?" 힐끗 바라보니 염라대왕같은 그녀의 표정과 굿거리 장단에 춤추는 회초리가 허공을 떠다니고 있었다. "아니 죽을 죄를 지었어요." "내 외국인이니까 한 번만 용서해 주리다." 그녀는 머리를 위아래로 흔들며 가소롭다는 듯, 삿대질을 하면서 고양이 쥐잡듯이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힐끔힐끔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그녀의 처분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아, 이국 땅에서 이 무슨 챙피며, 이 무슨 날벼락인가? 아 나같은 놈은 차라리 죽는게 났습니다. 죽여 주세요." 흐르는 눈물이 얼굴을 타고 내려와 땅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아, 비참하다, 내 인생. 어머니 왜 저를 낳으셨어요?"  "여보 일어나 밥먹어." 해는 떠서 이미 산 중턱에 걸려있었고 아내는 웬 잠꼬대가 그리 심하냐고 한 마디 던졌다. <사진을 보니 문득 생각이 떠올라 써본 글임>

 

 

 

 

<이거 뭐, 개야, 여우야, 늑대야? 아니면 눈먼 산신령이야?>

 


 

총장의 바시에서 볼 것을 거의 못보고, 점심을 먹고 바로 롱장으로 출발했다. 총장에서 롱장으로 가는 길은 엄청난 비포장이었다. 비포장이어도 "너~~~~~~무" 비포장지었다. 진흙 구덩이에 물이 고여 그야말로 완전히 진흙탕 물이었다. 움푹움푹 들어간 곳에 바퀴가 빠질 때마다 사람들은 신음 소리를 냈다. 머리가 아프고 창자가 뒤틀리는 듯 했다. 우리는 차 속에서 간다고 쳐도, 지나가는 행인들은 차가 지나갈 때 어떻게 길을 피해야 할지 우왕좌왕했다. 그들은 공포에 휩사여 적군을 피해 도망치는 피난민 같았다.   

 

 

얼마를 지났을까? 고속도로에 와서야 비로소 한숨을 돌리고 잠을 청할 수 있었다. 한 동안 차는 달렸다. 얼마 동안 잠을 잤는지 알 수 없었다. 롱장 시내에 도착하자 우리 버스 기사는 더 이상 갈 생각을 안 했다. 팁을 더 달라고 그러는지 알 수 없지만, 하여튼 우리가 가야할 호텔의 위치를 몰라 갈 수 없다고 버텼다. 하는 수 없이, KC가 버스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앞서가고, 우리 버스 운전수가 그 뒤를 따라가 호텔에 도착했다.

 

 

KC의 말에 따르면 롱장에서는 볼 것이 딱 한 가지뿐이 없는데 그것이 바로 산바오짜이(三宝寨)에 있는 높은 누각이라고 했다. 이 마을은 세 개의 마을이 나란히 붙어 있어서 세 개의 보물이란 뜻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롱장시내에서 약 5키로 떨어진 곳으로 택시나 오토바이 자동차를 타고 가야한다고 했다.

 

 

 

 

<롱장의 누각>

 

 

우리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 과연 듣던대로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고루(高樓)는 떡 버티고 서 있었다. 2001년에 세워진 이 건물은 21층에 높이 38.6미터로 세계에서 가장 크고 높으며 기네스북에 올라있다고 한다. 이 건물도 다른 고루와 마찬가지로 정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현지인들이 자신의 기술로 21층 건물을 세웠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롱장의 아이들>

 

 

이 누각 옆에 비교적 큰 강이 있다. 강가에서 빨래를 하거나 그릇을 씻는 사람을 더러 볼 수 있다. 가끔은 너무 심심한지 지나가는 개가 강물 속으로 들어가다가 하늘을 바라보고 고개를 한 바퀴 돌린 뒤 다시 물 속을 걷는다. 동네 아줌마들이 뜨개질을 하거나 소규모 가정 부업을 하는 것이 보이며, 어디가나 그렇듯 골목마다 동네 아이들이 놀이를 하거나 괜히 떼를 지어 다니면서 관광객을 쭉 훑어보고 지나간다. 어떤 조그만 아이는 돌을 들어 나에게 던지려고 겁을 주기도 했는데, 나는 죄진 것도 없이 도망칠 도리밖에 없었다.

 

 

 

 

<롱장의 다리>

 

 

 

 

<강물 속의 개>

 

 

 

 

<원주민들>

 

 

 

 

 

 

 

 

 

 

 

 

<공부하는 아이>

 

 

 

 

<롱장의 시장>

 

 

롱장의 시내는 농산물이 많았는데, 좀 컴컴하고 땅은 질어서 무슨 도둑놈의 소굴에 온듯한 느낌이었다. 갖가지 과일이나 채소가 있는 것은 다른 지방과 별 차이가 없었다. 단지, 큰 붕어를 잡아서 칼로 목을 베었는데, 몸둥이는 피를 흘리면서 도마 위에 놓여있고, 머리 부분은 양동이 안에서 입을 벌렸다 오무렸다하며 최후의 숨을 쉬는 것이 섬뜩했다. 그 옆에는 닭이며, 오리며, 거위 등이 죽음을 기다리며 꽥꽥 거리고 있었다. 자기 코 앞에 닥친 죽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거위의 맑은 눈망울이 귀워울 뿐이었다. 

 

 

 

 

<속이 흰 것이 아마 동과일 것이다.>

 

 

 

 

<길옆 풍경>

 

 

 

 

<자기 앞에 닥친 죽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저녁에는 채소와 버섯이 무한정으로 제공되는 훠궈(샤브샤브 형식으로 매운탕 비슷한 음식) 집에 들렀다. 맥주 한 병에 5위엔(900원)이니 부담감을 갖지 말고 마음껏 마시라는 말이 들린다. 나는 부담이 없으나 말못하는 나의 간은 부담을 느낄 것이다. 참으로 사람은 생명력이 강한 동물이다. 그렇게 먹어도 다음날이면 멀쩡하니 말이다. 지구상 어떤 동물에게 매일 저녁 그렇게 많은 술을 먹여 살아남을 동물이 있을까? 하기야 그렇게 생명력이 강하니까 혹독한 환경하에서도 만물의 영장으로 살아남았는지도 모른다. 사실 매일 술 이야기가 주를 이루니 이것은 여행기가 아니라 명정 방탕기(酩酊 防蕩記)라고 하든지 일장취 주유기(一場醉 周遊記)라고 하는 것이 더 타당할지도 모른다.

 

 

다음 날 버스에서 들은 이야기. 우리 팀 중 한 여자분(H)이 밤에 바람 쐬러 나갔다가 길을 잃었다고 한다. 호텔 카드를 가져갔어야 하는데, 깜빡 잊고 무심결에 나갔다고 했다.  돌아오는데, 이리 와봐도 호텔이 나오지 않고 저리 가봐도 호텔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밤은  깊어가지, 집은 찾지 못하지, H는 눈앞이 캄캄했다고 했다. 물론 밤이니까 앞이 캄캄한 면도있겠지만. 하는 수 없이 H는 지나가는 아가씨의 손을 잡고, 손짓 발짓으로 사정이야기를 했으나, 호텔 주소를 알아야 도와 주든지 말든지 하지 않겠는가? 한참 동안 온몸을 뒤져보니 호텔 열쇠에 호텔 이름은 없지만, 호텔 전화 번호가 깨알보다도 작게 적혀 있었다고 했다. 그 중국 여인은 자신의 핸드폰으로 호텔에 전화를 걸어 길을 물은 뒤 호텔의 위치를 알아낸 후, H의 손을 꼭 잡고 호텔까지 직접 데려다 주고 갔다고 했다.

 

 

중국 사람들 불친절하니 시끄러우니 뭐니 해도 어디 가나 좋은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 세상에는 죽을 때까지 다른 사람의 등만 쳐먹다 죽는 인간도 있지만, 남에게 선행만 베풀다 가는 사람도 있다. 이런 선한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은 제 궤도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세상 더러워서 못 살겠다고 불평하면 "아니아니, 아니 되오!"

 

(2013년 1월 1일)
*2013년 이라고 쓰려하니 좀 망설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