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서, 귀주, 중경, 무한 여행기 5 서강, 개리 (西江, 凯里: 시장, 카이리)
검동남 묘족 동족 자치주(黔东南苗族侗族自治州:치엔동난 미아오쭈 동쭈 쯔즈조우)란? 귀주성 고원과 호남성 서부 구릉지역, 광서성 산간 지역이 만나는 곳으로 위 지도에서 표시된 지역이 중심부이고 이 지역 외곽 지역도 검동남 지역이다. 인구는 약 440만명, 한족이 20% 소수 민족이 80%를 차지한다. 소수 민족 중 묘족과 동족이 절대 다수이다. 해발 고도 약 1600미터, 연 강수량 약 170mm, 겨울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다. 자치주의 성도는 카이리이다. (인터넷에서 인용)
2012년 11월 19일 롱장 시내를 한 바퀴 돈 후, 8시 반에 서강에 있는 동족 묘족 자치주로 출발했다. 날씨는 약간 춥고 단풍이 막 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노면은 역시 엉망이었다. 움푹 패인 곳이 있는가 하면 공사를 하느라 길을 반만 통행시키는 길 위로, 우리의 버스는 안개 낀 산을 빙빙 돌고 좁은 들판을 지나 차량 통행이 거의 없는 길을 달리고 있었다. 무슨 특별한 구경거리가 있는 지역이 아니었다. 그저 아무 것도 없는 산 길을 휘파람 불고 가는 느낌이었다. 우리의 목적지인 서강에 도착한 것은 출발한지 약 5 시간이 지난 뒤였다.
<서강 입구 대문 안쪽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도착하면 여러 채로 구성된 대문이 나타나는데, 서강천호묘채(西江千户苗寨)라는 간판이 첫눈에 들어온다. 이것을 읽을 때 좀 헷갈리는데, 서강/천호/묘채로 끊어 읽으면 이해하기 편하다. '서강'은 한국의 금산이나 무주와 같은 지명이고, '천호'는 집이 천 채라는 뜻이고, '묘채'는 묘족의 마을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것을 합치면 "서강에 있는 천호의 집이 있는 묘족 마을" 정도가 될 것이다. 세계가 현대화 되어가는 마당에 지금도 옛날식 주택에서 옛날 방식으로 천 가구가 산다는 것은 보기 힘든 일이다.
입구에서 입장료(100위엔=18,000원, 60세 이상 50% 할인)를 지불하고 입장을 하면 거기에서 또 다시 버스를 타고 한 참을 가야한다. 그곳에서 내려 또 한 참을 걸어가야 우리가 묵을 산장이 나온다.
<우리가 묵은 객잔>
오늘 우리가 묵을 산장은 천호 묘족 가족원이라는 객잔이다. 1층은 식당과 수퍼 그리고 기념품 판매점이 있고, 2~3층이 숙소로 우리 나라의 허름한 여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KC의 말에 따르면 작년만 하더라도 2층이 숙소가 아니었는데, 그 사이에 모두 침실로 바꿔 놓았다고 한다. 한 번 명성이 나면 사람이 몰려들게 되어 있고, 사람이 몰려들면 돈을 쓰게 되어있으니, 이들에게 돈이 저절로 굴러 들어온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면, 마을 여기저기 호텔 건물이 계속 늘어가거나, 개축 작업이 한창이고, 골목은 상업화한 곳이 많다.
우리가 묵은 산장은 이 마을의 중심부에 있는 광장 겸 공연장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는데, 그 앞에는 조그만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다리 위에 지어진 기와집과 더불어 이 강은 대단히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고 있었고, 개울 양쪽으로 관광객이 몰려들어 사진을 찍거나 물장난을 치고 있었다. 가끔 가다 , 낚시꾼이 와서 낚시 바늘을 담갔다가 소득없이 돌아가기도 하고, 아이들이 장난으로 돌을 던져 물 수제비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개울은 사람들이 뭐라 하건 한가롭게 세월처럼 흘러가고 있을 뿐이었다.
<1000호의 마을이 가장 잘 보이는 언덕에서 찍은 사진이다.>
돼지를 잡아 요리를 하는 사람들이 득시글거리는 마당을 지나고, 아이들이 활보하는 좁은 골목을 지나 계속 올라가면, 천호의 옛날식 집을 관찰할 수 있는 전망대가 나타난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이 마을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산 언덕을 깎아 기와집을 지은 것처럼 보인다. 올만졸망한 집들이 빼꼭히 들어서 있어서 집들이 마치 성냥갑처럼 보인다. 마을 중심부에 광장이 있는데, 하루에 두 차례 전통 공연이 벌어진다.
<공연전 연습을 한다>
공연은 젊은 남녀가 출연하여 고유의 전통 춤을 추는데, 그 춤은 힘차고 활기차서 이 민족의 용맹스러움을 나타내는 듯 하다. 중간에 마을 노인들이 나와서 노래를 하는데, 무용을 보던 구경꾼들은 노인들이 부르는 느린 템포의 노래에 금방 싫증을 낸다. 공연이 끝나갈 무렵 두 명의 지원자를 뽑아 앞으로 나오게 하여, 어깨에 거는 막대기에 물건을 매단 상태로 각종 이상한 짓을 하도록 요구한다. 앞으로 끌려나온 관광객은 허리를 실룩거리며 엉덩이를 요리조리 빼면서 걷는데, 그 몸동작이 얼마나 이상한지 이 대목에서 관광객의 웃음소리에 마을이 들썩거리는 듯 하다. 공연이 끝날 때는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관중들이 함께 참여하여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사진을 찍은 후 해산한다.
<광동에서 온 관광객들>
내가 앉은 곳 옆에는 광동에서 온 처녀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우리가 한국에서 온 것을 알고서는 자기들이 배운 한국말을 연습하기도 하고, 자기의 한국어 발음이 어쩐지 묻기도 했다. 그들은 한국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는데, 아마도 최근에 유행한 싸이의 강남 스타일의 덕택도 큰 것으로 생각되었다.
<공연장에 있는 호박들. 광장에 왜 호박이 진열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밤이 되면 강과 다리 위의 누각이 불빛을 밝히고, 앞산에서 불꽃놀이가 시작된다. 관광객이라는 사람들이 단지 낮에 구경하러 어떤 곳에 가지는 않는다. 그들 앞에는 술과 무용과 이방인과의 어울림이 있는 저녁의 흥취가 기다리고 있다. 이미 상업화 되어 있는 골목골목, 강변 옆 길을 따라 놓여 있는 유흥가에서는 흥얼거리는 음악과 더불어 붉은 등불이 관광객의 관심을 끈다. 밤하늘의 별처럼 먼 곳에 은하수처럼 펼쳐진 전등불을 보면서 사람들은 서서히 밤의 향락에 빠지게 된다. 아마 모르면 몰라도 이날도 우리 대부분은 먹을 만큼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술을 마셨을 것이다. 정신을 잃고 다른 사람 등에 엎여 방으로 운반되는 사람이 보인 듯하다. 수 많은 경험이야기와 "그래서는 안 되네, 그래야 되네"라는 말이 꼬리를 물고 능청거린다.
<현지 녹음: "내비둬, 술이나 먹어". 여기를 클릭하세요.>
다음 날 아침 일찍 동네를 휘집고 들어가 마을 꼭대기로 향했다. 한 여인이 뚝배기를 끓이는데 보글보글 끓는 모습이 얼마나 맛있게 보이는지 그냥 지나치기 힘들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미 아침 식사를 했으므로 지나칠 도리밖에 없었다. 좁은 골목 양쪽으로 수 없이 집이 들어 차 있었다. 나무로 된 벽에는 고추와 옥수수가 매달려 있었고, 동네 개들이 골목을 활보하거나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짖어댔고, 거리에 뿌려진 곡식을 닭이 쪼아 먹고 있었다. 가끔 풀을 베어서 나무 막대기에 매어 어깨에 걸치고 오는 주민이 목격되었고, 할 일 없는 노인들이 삼삼오오 떼를 지어 담배를 태우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집안에는 사람들이 있는지 없는지 인기척이 없었으며, 사진기를 든 관광객만이 썰물이 지난 뒤 조개를 줍는 아이들처럼 피사체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광동에서 왔다는 아가씨들>
<방아를 찧는 아저씨>
하루를 더 서강에서 머물 사람들을 뒤로 하고, 6명은 개리(카이리)로 향했다.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아 검동남자치주의 수도인 개리에 도착했다. 이 도시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규모가 큰 도시였다. 검동남 지역을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도시를 통과해야 한다고 한다. 우리 6 명은 이곳에서 하루 머물다가 다음 날 다른 사람들이 이곳에 오면 합류하여, 귀양으로 갈 예정이었다.
이곳에 있는 물건들은 그 값이 얼마나 싼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근사한 여자 털모자가 1500원, 아내는 덥석 2개를 샀다. 나는 시끄럽게 떠드는 집에 들어가 1000원 주고 중국 영화 DVD 2 장을 샀다.
자동차 없는 거리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었다. 사람들은 온갖 희안한 물건들을 팔고 사고 있었다. 어떤 곳에서는 장기를 두고 카드 놀이를 하면서 많지 않은 돈이 오가는 것이 보였다. 재미있는 것 중의 하나는 큰 길에 약 10명 - 20 명이 1인용 의자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 앞에 있는 작은 책상에는 핸드폰 그림이 붙여져있다. 처음에 나는 중고 핸드폰을 팔고 사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알고보니, 핸드폰에 비닐 보호막을 붙여주는 사람들이었다. 나도 아이패드나 갤럭시 패드에 비밀막을 붙여보아서 아는데, 잘못하면 삐딱하게 붙여지거나, 중간에 공기 방물이 들어가기 쉽다. 그들은 얼마나 수련했는지 몰라도, 정확하고 깔끔하고 빈틈 없었다.
<이미 목이 반은 쉰 소녀가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며 고객을 유인하고 있다.>
우리가 묵은 호텔 주변에는 꼬치집이 많았는데, 포장마차 속에 젊은이들이 가득 들어 앉아서 큰 그릇에서 꼬치를 꺼내먹고 있었다. 꼬치의 종류가 다양하고 냉동 제품이 아닌 바로 잡아 온 것이어서 구수한 냄새가 코끝을 스치고, 찰삭 달라붙는 맛이 혀를 농락하고 있었다. 우리 옆에 앉아 있던 아저씨는 종이 위에 한자를 써가면서 어떤 음식인지 우리에게 알려주었고, 식당의 종업원들은 이국인에 대해 호기심을 두지 않는 듯 하면서 힐끌힐끗 우리를 쳐다 보았다. 우리가 그들에게 호기심을 갖는 것도 기분 좋은 체험이지만, 그들이 우리에게 보내는 호기심어린 눈초리도 우리에게는 즐거운 경험이었다.
<개리 시외버스 터미널>
다음 날은 우리의 마지막 목적지인 귀양으로 가는 날이다. 아침 일찍 개리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여 승차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근처에 과일 장수를 비롯한 몇몇 장사꾼들이 있었는데, 가끔가다 단속반원이 와서 무슨 소리를 하면 옆으로 피했다가 다시 나타나고, 그들이 사라지면 장사꾼이 다시 나타나는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 중에 한 아주머니가 대나무 망태기에 오리를 메고 왔고, 비닐 봉다리에 오리 알을 들고 왔다. 저 오리를 과연 사가지고 가는 사람이 있을지 나는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잠시 뒤에 20살 정도 되어 보이는 젊은이가 나타나더니 아주머니에게 오리를 한 마리 달라고 했다. 그 젊은이는 오리를 받아들더니 털속을 이리 살피고 저리 살피고, 오리 머리와 엉덩이를 요리조리 살폈다. 자기 몸을 뒤척거리는 젊은이가 궁금했는지, 오리도 젊은이를 요리조리 살피고 있었다. 나는 젊은이에게 오리를 먹으려고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먹지 않으려면 왜 사겠냐고 응답했다. 나는 오리를 어떻게 죽이냐고 물었다. 그는 칼로 목을 쳐서 피를 뺀 후, 더운 물을 부어 털을 뽑는다고 했다. 그는 시골에서 이곳으로 와 자취를 하는데, 일 주일에 한 번 정도 닭이나 오리를 사서 몸보신을 한다고 했다. 그가 휘파람을 불며서 오리를 들고 자취방에 들어가 죽이고 요리한 후 먹는 모습을 상상하며 귀양해 버스에 올랐다.
(2013년 1월 20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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