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Beautiful the Nature is! - Albatross

China

광서, 귀주, 중경, 무한 여행기 7 "황과수 폭포"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3. 1. 22. 21:36

 

 

 

 

 

광서, 귀주, 중경, 무한 여행기 7

황과수 풍경구 그리고 작별(黄果树瀑布和告别:황궈슈푸뿌와 까오삐에)

 

 

 

 

 

 

 

 

 

<황과수 풍경구 위치>

 

 

황과수 풍경구에 가려면 우선 귀양에서 안순시까지 고속버스를 타고 간다. 거기에서 일반 도로로 진입하여 약 42키로 정도 가면 나온다. 귀양에서 황과수까지는 약 140키로가 된다.

 

 

 

 

<황과수 풍경구로 향한다.>

 

 

2012년 11월 23일 아침 6시에 귀양에서 황과수로 출발했다. 날씨는 쌀쌀했고 안개가 걷혔다 끼다를 반복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창에 머리를 대거나 앞 의자에 머리를 대고 졸거나 잠을 자고 있었다. 날이 서서히 밝아짐과 더불어 사람들도 잠에서 깨어 밖을 내다보기 시작했다.

 

 

 

 

<황과수 풍경구>

 

 

처음에 도착한 것이 천성교(天星桥:티엔싱치아오) 폭포 구역이다. 이곳은 웅장한 곳이 아니라 모든 것이 작고 아담하고 예쁘다고 할 수 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물위에 365개의 돌다리를 만들어 놓은 것이었는데, 돌 위에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날짜가 새겨져 있어서 자기의 생일과 정확히 들어맞는 돌을 누구나 발견할 수 있다. 그 돌 위에서 서서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니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모두들 자기 생일 돌에 앉아 사진을 찍는다.  

 

 

 

 

 

 

 

 

 

 

 

 

 

 

 

 

 

 

그 뒤 좁은 길 양쪽으로 펼쳐진 비경을 구경하면서 한 참을 지나면 조그만 호수가 나타난다. 어김없이 장사꾼이 나타나는데, 이상한 돌을 파는 젊은이다. 신기한 돌이어서 값이 얼마냐고 물으니 200위엔(36000원)이라고 한다. 그냥 지나치니 값이 반값으로, 그리고 또 반의 반값으로 떨어진다. 내가 돌을 사러 중국에 온 것이 아니기에 미련없이 그곳을 떠난다.

 

 

 

 

 

 

 

 

 

 

 

 

 

 

얼마를 더 가면 동굴이 나타나는데, 일정이 빡빡해서 인지, 앞에 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빠르다. 중국의 다른 동굴에 비해 아름답다고는 할 수 없겠으나, 나름으로 독특한 맛이 있었다. 문제는 내가 후미에서 사진을 찍다가 일행을 놓쳐 버렸던 것이다. 앞 사람은 보이지 않고 바깥으로 나가는 통로가 있어서 나는 밖으로 나와 계속 가던 길을 갔다. 나는 앞서 간 사람을 따라 잡는다고 전속력으로 걸었다. 그러나 아무리 빨리 걸어도 앞 사람들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아, 이 사람들이 계속 동굴에 머물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든 것이 바로 그때였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일, 나는 물이 바위를 휘돌아 감아 돌아가는 폭포 근처에서 사람들을 기다렸다.

 

 

한참이 지난 뒤 선발대가 그제서야 도착했다. "어, 벌써 와 계시네요." 그들이 한 말이다. 아내는 내가 동굴에서 실종되었다고 생각하고 "곽영을, 곽영을"이라고 애타게 내 이름을 불렀다고 했다. 동굴 속이라 온도는 높지, 사람은 없지, 허겁지겁 돌아다니느라고 온몸에 땀이 비오듯 했다고 한다. 그 시각에 나는 내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냈으나, 아내와 안내자는 동굴에 있었기에 문자가 동굴까지 갈 수가 없었다. 결국은 시간이 흐른 뒤 동굴 밖으로 나와서야 비로소 내가 보낸 문자를 보고 내가 이미 앞서 갔음을 알았다고 했다. 아내는 앞으로는 제발 딴 짓 좀 하지 말고 앞 사람을 잘 따라다니라고 신신당부하는 것으로 이 사건은 일단락 되었다.

 

 

 

 

 

 

 

 

 

 

 

 

 

 

 

 

 

 

 

 

 

 

 

 

 

 

천성교 폭포는 내가 여태 본 폭포 중 가장 멋있는 폭포 중의 하나다. 시퍼런 강물이 흘러내려 오다가 볼록볼록 솟아 있는 팽이 모양의 바위를 싸감고 아래로 떨어진다. 사방에서 떨어지는 흰 포말을 만들며 떨어지는 천둥같은 물소리는 마치 자동차 경주 대회장에서의 자동차의 소음처럼 우렁차다.  바로 옆 사람의 말도 들리지 않는 이 장소에 어디서 새 한 마리 날아와 이 와중에 먹을 것을 찾아 분주히 바위틈 휘젓고 다닌다. 아, 여기가 천당인지 지옥인지 모르겠다. 현세인지 내세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내가 물이고 물이 나다. 쏟아지는 물을 보고 있으면 내 영혼이 그 물속에 함께 쏟아져 내려가는 듯 하다. 그 물속에 내가 있고, 그 물이 내 마음 속에 있다.

 

 

 

 

 

 


 

 

 

 

 

다음으로 간 곳이 도파당 폭포다. 아무런 배경도 없이 덜렁 혼자 놓여있는 멋대가리 없는 폭포다. 강 양옆의 경치도 보잘 것이 없고, 물의 양도 많지도 않다.  폭포의 이름도 이상하다. 도파당이라. 무슨 도둑놈들이 만든 떼거지같기도 하고 운동선수들이 몰래 맞는다는 약물같기도 하고, 음악의 음계같기도 하다.

 

 

 

 

<도파당 폭포>

 

 

 

 

 

 

 

 

 


 

 

 

 

<최후의 여행지 황과수 폭포로 향한다.>

 

 

 

 

 

 

황과수 폭포로 가려면 과수원 비슷한 정원을 지나야 한다. 정원에는 흔히 볼 수 있는 정원석과 분재가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었고, 누구인지 모르지만 유명하리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의 조각상이 놓여있었다. 그 사이로 사람들이 분주히 돌아다니고, 바로 그 옆에 황과수 폭포를 보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곳이 있다. 가는 사람과 오는 사람으로 이곳은 항상 붐비는 듯 했다.

 

 

 

 

 

 

 

 

 

 

입구에서 약 10분 정도 가면 멀리 황과수 폭포가 보이고, 그곳에서 약 20분 정도 가야 바로 황과수 폭포에 다다르게 된다. 황과수(黄果树)라! 노란 과일이 열리는 나무라는 뜻이다. 나는 정말 이런 나무가 있는지 모르겠다. 이 글의 앞쪽에 있는 황과수 폭포 지도를 보면 맨위 오른쪽에 황과수라고 표기되어 있고 나무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구글지도를 복사해 온 것인데, 그곳에 가면 과연 황과수가 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이 황과수 폭포가 태양이 비추어서 노란 나무로 보이는지도 모를 일이고, 이 동네에 황과수라는 마을이 있어서 그 마을의 이름을 따서 황과수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에 의하면 황과수 폭포는 높이 71미터, 폭 81미로도 중국은 물론 세계 3대 폭포라고 한다. 그러나 내가 인터넷에서 찾아본 바에 의하면 세계의 3대 폭포는 이과수 폭포, 나이애가라 폭포, 빅토리아 폭포다. 물론 황과수 풍경구에 있는 모든 폭포를 다 긁어 모아 하나로 만든다면 그럴듯한 이야기이지만, 저기 보이는 저 폭포만으로 세계 3대 폭포는 3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생각해도 어림 반푼 없는 일일 것이다.

 

 

 

 

 

 

물론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도 대단하기는 대단하다. 이것은 폭포에 가까이 갈수록 쏟아져 내리는 물과 그 소리에 압도당함으로써 비로소 알 수 있는 일이다. 폭포와 폭포의 절벽 사이에 나 있는 공간을 수렴동(水帘洞)이라고 하는데, 실제 왼쪽으로 들어가서 오른쪽으로 나오게 된다. 중간 정도 들어가 보면 과연 물로된 발(발: 가늘고 긴 대를 줄로 엮거나, 줄 따위를 여러개 나란히 늘어뜨려 만든 물건. 금산에서는 인삼 밭에 발을 쳐서 햇빛을 차단한다)은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물 소리는 천둥소리보다 더 크고, 물이 떨어지는 속도는 벼락치는 속도보다 더 빠른 듯 하다. 천장에서 물이 줄줄 쏟아지고 잘못하면 움푹패인 바닥에 신발이 빠진다. 여기가 지옥인지 생사람 잡는 곳인지 눈코를 뜨지 못하겠고, 굳게 닫힌 입이 벌어지며, 자연스럽게 오만상을 찌뿌리게 된다. 손을 내밀어 물에 닿았다가는 손목아지 뿌러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아, 이것은 장관이라기 보다는 지옥의 모습이요, 돈주고 이런 곳에 올 것이 아니라, 죄수들을 이런 곳에 보내야 할 것 같다. 아마 내 평생 두 번 다시 이런 구경은 못하고 죽을 듯 하다.

 

 

 

 

<수렴동 안에서>

 

 

 

 

 

 

 

 

 

 

 

 

 

 

 

 

 

 

 

 

 

 

수렴동굴을 빠져 나와 폭포 아래에서 사람들은 이제야 정신이 들었다는 듯, 아니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듯, 만세를 부르기도 하고, 포옹도 하면서 환희를 맛본다. 돈받고 사진찍어 주는 아가씨에게 필요이상이 팁을 주기도 하고,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고개를 흔들거리며 땅을 살피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 감명을 영원히 간직하려는 듯 끝 없이 셔터를 눌러대고, 이제는 집에 가야한다는 안내 아가씨의 말을 무시하고 폭포에서 눈을 떼지 못 한다.  

 

 

 

 

 

 

 

 

 

 

저녁을 먹고 다시 한정쾌첩(汉庭快捷: 한팅콰이지에) 호텔로 돌아왔다.  그날 밤 우리는 헤어져야 했다. 일행 중 나를 포함한 4 명은 중경으로 가야했고, 나머지는 귀양에서 하루 더 머물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 동안 정이 들어서일까? 모두들 섭섭해 하는 모습이 얼굴에 잘 나타나 있었다. 잘 가세요, 다음에 또 만납시다, 마음으로 작별을 고했다. 60리터 배낭이 600키로는 되는 듯 무거웠다. 서로를 보내기 아쉬워하는 모습, 담배를 피워대는 모습, 내가 사진을 찍는 모습이 또 다른 사진기에 찍히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아무 말도 못하고 "헤어지기 섭섭하여 망설이는 나에게 굳바이 하며 내미는 손"을 멀리서 응시한 채 각자의 길을 떠났다. 그때가 2012년 11월 23일 밤 9시였다.

 

 

 

 

 

 

(2013년 1월 22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