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여행기 1
"도그베아짓: 사람은 믿고 싶어서 믿는다"
2013년 10월 9일 오전 11시다. 터키 여행의 첫 단추가 꿰어지는 날이다. 이란과 터키의 국경선에서, 전용버스로 터키의 국경 도시 도그베아짓으로 출발했다. 도그베아짓까지의 거리는 약 35키로, 쭉 뻗은 길은 아스팔트가 잘 깔려있었고 버스는 힘차게 달렸다. 오른 쪽으로는 흰눈에 덮인 아라랏 산이 계속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들판에는 양떼와 염소 떼가 풀을 뜯고 있고, 그 옆 밭에는 농작물을 수확했던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초록으로 덮인 평원이었을 것이다. 버스를 달린지 30분 만에 도그베아짓에 들어왔다. |
이스파한 호텔에 배낭을 내려놓고 근처에 있는 케밥 음식점으로 갔다. 주인은 케밥 만드느라 정신이 없고, 식당의 아들인지 종업원인지 알 수 없는 소년은, 갑자기 들이닥친 외국인 10명을 어떻게 대접해야 할지 우왕좌왕 진땀을 빼고 있었다. 식당은 깔끔했고, 흰 종이에 돌돌 말아 접시에 담아온 케밥은 이란의 케밥과는 다른 풍미를 자랑하고 있었다. |
점심을 먹고 밖으로 나와 서 있는데, 구호를 외치며 데모대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들의 앞잡이는 천으로 둘러싸인 관을 들고 갔는데, 죽은 사람이 뭔가 억울한 일을 당하다가 죽은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얼마 뒤에 우리가 버스를 타고 이삭파샤 궁전에 갈 때 건물 앞에서 계속 구호를 외쳐대는 이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구호를 외쳐댔고, 그 주위에 경찰이 쫙깔려서 사방을 주시하는 것으로 보아 무엇인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
도그베아짓 시내에서 동남쪽으로 약 6키로 떨어진 이샥파샤 궁은 천일야화에 나오는 바로 그 집과 같았다. 바로 옆에 가파른 절벽의 산이 있고, 멀리 도그베아짓 시내가 보이며, 또 더 멀리는 아라랏 산이 내려다 보인다. 1685년에 시작하여 1784년에 완성되었다고 하는 이 궁전은, 쿠르드 족의 족장인 이샥을 따라서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이 건축물은 셀죽, 오토만, 조지아, 페르시아 그리고 아르메니아 양식을 섞어 만들어진 최고의 걸작이라고 한다.
이런 건축물을 글자 그대로 "그림같다"라고 말할 수 있다. 짓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솟은 건축물이 이렇게 아름울 수가 있을까? 위압적이기도 하고 정겹기도 하다. 이렇게 멋진 터에, 이렇게 훌륭한 궁전을 지은 쿠루드족의 예리함과 섬세함이 피부로 느껴진다. |
안으로 들어가면 손님을 맞는 방이며, 시녀들의 방이며, 요리실, 곡식 창고, 등등 갖가지 방이 있는데, 그 방이 무려 366개라고 한다. 방과 방을 돌아다닐 때 어떤 때는 허리를 굽혀야지 그렇지 않으면 머리를 부딪치기 쉽고, 어떤 곳은 어둡고 컴컴하여 전등이 필요한 곳도 있다. 벽은 아름 다운 꽃 무늬로 장식되어 있기도 하고, 장식이 없기도 하다. 중앙 난방장치와 하수도 그리고 상수도의 시설도 구경할 수 있다. 구경하는 사람들 입에서 "야, 대단하다"는 말 소리가 계속해서 나온다. |
북쪽에 위치한 베란다에서 보면 눈이 아찔할 정도로 까마득하게 지상이 보인다. 반대편 절벽의 산은 숨이 막힐 정도로 오묘하다. 산 중턱에 부서진 옛 도그베아짓 마을 터가 있는데, Lonely Planet에 따르면 BC 800년 전에 이미 기초가 완성된 것이라고 한다. 사실 현대의 도그베아짓은 1937년에야 비로소 저 아래 평원에 건설되었다고 한다. 현재 도그베아짓의 인구는 약 36000명이라고 Lonely Planet은 쓰고 있다. |
다음 목적지를 향해 버스는 아름다운 길을 따라 한참을 달린다. 거기서 내려보면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큰 구덩이를 보게 된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운석이 떨어져 생긴 구멍이라고 하는데, 발밑으로부터 무시무시하게 깊게 패였다. 근처에 조금만 서 있으면 간이 올망졸망거리고 아랫도리가 떨려서 차마 서 있을 수가 없다.
위에서 어떤 물체가 떨어졌다면 브이 곡선을 그리며 파여야 할 텐데, 벽면이 직선 또는 항아리처럼 가운데가 좀 들어가 있는 것으로 보아, 태초부터 있었던 구멍이 세월이 가면서 묻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
어떻든 가슴 벅차오르는 것은 현재 우리가 서 있는 지점이 바로 아라랏 설산 앞에 있는 대 평원이라는 것이다. 일년 내내 흰눈으로 덮인 아라랏 설산을 배경으로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고 웃고 떠들며 한가한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동심으로 돌아가 누가 높이 뛰나 내기를 하기도 했고, 어떤 사람들은 양손을 나비처럼 흔들며 콧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기도 했다. 아, 신령스런 아라랏산의 상쾌한 바람이 저 멀리 한국에서 온 여행자들의 심장을 뛰게 하고 가슴을 설레게 한다. 아, 저 푸른 하늘이 눈물 섞인 두 눈에 수정처럼 영롱하게 빛나 내 마음을 끌어당겼다가 터뜨리고 그 속에 내가 부서지고 모여 산화우(散花雨)되어 하늘에 떠간다. |
다음으로 또 한참을 가다가 버스는 산길로 접어든다. 점점 높이 올라갈수록 아라랏산의 위엄이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내리시오"라는 말을 듣고 차에서 내리면 평범한 언덕에 하얀 건물이 나타난다. 거기가 바로 노아의 방주의 흔적이라고 불리는 지점을 관찰하는 곳이다.
실제 우리는 노아의 방주터를 찾아가 그 땅을 밟아보고 만져보는 것이 아니라, 약 200미터 떨어진 곳에서 한 노인의 설명을 들으며 맞은편에 있는 노아의 방주터를 바라본다. 배 모양을 한 돌이 둥글게 이어져 있었는데, 그것이 자연적인 현상인지 인공물이 변화하여 그렇게 되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
<노아의 방주가 아라랏 산에서 발견되었다고 주장하는 곳의 사진: 각자가 판단해볼 일이다.>
건물 안으로 우리를 안내한 이 노인은 자기가 다른 탐험대와 함께 이곳을 찾아냈다고 말한다. 터키 정부에서 인정한 유일한 노아의 방주라고 힘주어 말하는 그는, 벽에 있는 무수한 사진과 그림, 신문 스크랩을 가리키며 자기와 사진을 찍을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돈을 요구한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가짜라는 내용이 많다. 또 사실이라고 말하는 기사도 있다. "1978년에 지진이 발생하면서 약 10m 길이의 유적 벽 표피가 떨어져 나가 유적의 내부가 드러났었다. 드러난 부분은, 일정하게 들어가고 나오고 하여 흡사 부식된 목선의 선측 늑골과 같았다. 이런 모양은 거의 이물에서 고물까지가 가로로 된 갑판을 지지하는 목재 형상이어서 배 구조물이라고 볼 수 있다."
<인터넷 인용> |
나는 구경을 마치고 내려오면서 P님께 금방 본 것이 진짜 노아의 방주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는 대답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어떻게 알겠어요. 어디 사람이 사실만 믿습니까? 아니 또 사실이면 어떻고 사실이 아니면 어떻습니까? 사람들은 그냥 믿고 싶어서 믿는 겁니다. 예수가 죽었다 살아난 것, 부처님이 조화를 부린 것 등등, 사실과는 관계없이 믿고 싶은 사람은 믿고, 믿기지 않는 사람은 안 믿지요. 또 믿건 말건 삶에 아무런 지장이 없어요. 문제는 소설 '진주 목걸이'에 나오는 것처럼, 잘 못 믿어서 평생을 망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의 뇌는 자기가 대단히 똑똑한 줄 알지만, 사실은 건망증이 심하고 믿음의 소굴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바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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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아라랏 산 바로 아래에 있는 쿠르드 족 마을이었다. 멀리 총을 멘 목동이 왔다갔다하고 그 앞에 양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한 곳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 주위에는 여러 마리의 개가 무리를 이탈하는 양을 쫓고 있었다. 사진을 찍으러 가까이 가자, 가이드는 개가 야성이 있어 언제 달려들지 모르니 가까이 가지 말라고 충고한다. |
다시 도그베아짓으로 왔다. 나는 시내를 보기 위해 혼자 중심지 방향으로 걸었다. 좁은 길에 사람들이 분주히 걷고 있었다. 어떤 여인은 길거리에 아이를 껴안고 웅크리고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떼를 지어서 노래를 부르며 걷기도 했다. 어떤 아이들은 나에게 묘한 표정을 보내기도 하고, 청과물 집하장에는 과일이 가득 쟁여져 있었다. |
한 골목으로 접어드니 한 소년이 부서진 의자를 열심히 수리하고 있었다. 너무나 열심히 하고 있어서 한동안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름이 뭐냐고 물으니 "모하메드"라고 했다. 자기는 무엇이든지 만드는 것을 좋아해서, 자주 톱과 망치를 가지고 이런 물건들을 만들고 수리한다고 했다. 이미 해는 지기 시작하고 날은 추워가는데, 반팔 티셔츠를 입고 열심인 모하메드를 크게 칭찬해 주었다. |
한 이발소에서 핑크 셔츠를 입은 소년이 나를 들어오라고 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영어는 Yes뿐이었다. 그는 내가 말 만하면 Yes를 연발했다. 마땅히 할 말이 없어서 소년에게 사진을 찍어 한 장 뽑아주었다. 신기하게 바라보더니 허리를 굽혀서 연신 고맙다는 시늉을 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다음 날의 일이었다. 새벽 촬영을 나가는데, 바로 그 소년이 호텔 앞에 서 있었다. 처음에는 머리 모양이 달라 어제 그 소년인줄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그의 잠바 안에 있는 티셔츠가 어제 본 소년의 것과 같았다. 그는 새 옷을 입었으니 사진을 다시 찍어달라는 표정이었다. 그가 어떻게 내가 머무는 호텔을 알아냈을까? 손가락을 세어가며 날이 새기를 기다린 것은 아닐까? 내가 언제 호텔 밖으로 나오는 줄도 몰랐을텐데, 도대체 내가 안 나오면 몇 시간이라도 기다릴 셈이었던가?
나는 그를 벽에 세우기도 하고, 구부리게도 시키고, 하늘을 가리키는 제스쳐를 취하라고 하면서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 또 한 장을 뽑아 주었다. 만면의 미소를 지으면서 멀리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은 어떤 일이 있어도 한다. 사람은 사실과 관계없이 믿고 싶어서 믿는다"라는 두 문장을 안개 낀 하늘에 썼다가 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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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우리는 길에서 구운 닭다리와 가게에 가서 맥주를 사가지고 한 방에 모였다. 이란에서 마셔보지 못한 맥주를 맛보기 위해서였다. 따르는 맥주를 바라보니 침이 꼴깍꼴깍 넘어갔다. 사람들에게 한잔찍 맥주가 돌아갔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이 피와 같은 술이, 혀를 동그르 굴러서 가슴을 타고 시원하게 내려가 온몸에 전율을 가져다주리라,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웬일일까? 맥주맛이 내가 이전에 알던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나는 너무나 이상해서 다시 한 잔을 마셔보았다. 그래도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로 내 기억의 창고에 있던, 혀와 목을 적시며 부드럽게 넘어가는 술이 아니었다. 단지 14일 동안 술을 마시지 못해서 모든 감각이 다 마비가 되었단 말인가?
그날 저녁, 나는 본래의 나의 참 모습으로 돌아온 것인지, 아니면 술맛을 모를 정도로 내가 변했는지 곰곰히 생각하면서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아, 이 무슨 하늘이 무너지는 일인가? 술맛을 모르는 내가 되었다니! 내가 "도그베야짓(dog-bear-짓)"에서 완전히 "개-곰-짓"을 하는 괴물이 되어버렸구만! |
<2013년 11월 14일 작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