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인도 여행기 5 "함피"
고아에서 호스펫으로 가는 길은 좁은 도로이어서, 내가 탄 침대버스가 빨리 달릴 수가 없었다. 어림잡아 시속 40-50키로로 달리지 않았나 싶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버스 가운데 통로가 있고, 통로 양쪽으로 침대가 하나씩 2층으로 놓여 있는데, 각 침대에 두 명씩 눕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일행이 부부라면 별 문제가 없겠으나, 서로 모르는 사람이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한 사람이 뚱뚱한 사람이라면 날씬한 다른 한 사람은 끼어 죽을 판이고, 더더군다나 두 사람이 비만이라면 두 사람 모두 서로를 바라보고 허리를 구부리고 앉아서 갈 도리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처음에 빤짐에서 출발할 때는 빈자리가 많아서 한 침대에 한 사람씩 앉아가는 호사를 누렸다. 그러자 차장이 나와 자기 자리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빈자리를 이용하면 뭐가 잘못이냐는 승객들의 항의가 있었는데, 그 항의의 선봉에는 우리의 복만씨가 있었다. 수십분을 싸우다가 결국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게 되었지만, 내가 부러워하는 것은 복만씨의 힌두어 실력이었다. 다른 나라말로 의견을 진술하는 것은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르면 가능하나, 외국어로 본토인과 말싸움을 한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아마 복만씨는 힌두어를 배울 때 싸움부터 배웠는가 보다.
한참을 가다가 버스가 쉬었다. 어떤 사람이 내 가방을 뒤지고 있었다. "누구여?" 나도 모르게 나온 말에, 그는 "Don't you have alcohol in the bag?"이라고 말했다. 자세히 보니 경찰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은 함피로는 술을 가지고 갈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기왕에 술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 마디 덧붙이면, 나는 그날까지도 술 한 방울도 마시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한국에서 술먹고 넘어져 무릎에 난 상처가 곪았기 때문이다. 매일 상처에 연고를 발랐으나, 날이 덥고 땀이 나서 상황이 악화되고 있었다. 고아에 있을 때, 약방에 가서 소독약과 항생제를 사서 매일 바르고 먹고, 샤워를 할 때는 그곳을 비닐로 몇 번씩 싸매서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어떤 방에서는 저녁마다 맥주가 돌아간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애간장이 녹아 내렸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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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펫에 내려 호텔에 여장을 풀고 함피로 향했다. 호스펫은 인구 약 16만의 도시로 함피로 가기 위한 전진 기지에 불과하다. 우리가 묵은 호스펫 인터내셔날 호텔은 인터내셔널 호텔답게 넓고 깔끔하고 깨끗한 호텔이었다. 함피는 이 호텔에서 3륜차로 약 30분 거리에 있었다.
그날 호스펫에서 함피로 가는 중 어떤 강가에 차가 멈췄다. 마침 작은 마을에서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는데, 축제일이어서 염소를 제물로 바치는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마도 젊은 처녀 한 사람이 염소를 제물로 바치는 것으로 보였다. 먼저 사람들은 염소를 씻겼다. 그리고 바로 그 처녀에게 강물을 퍼부어, 처녀도 깨끗이 씻겼다. 잠시 후 사람들은 염소를 끌고, 바로 처녀를 앞세우고 길을 따라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아마 힌두교 사원으로 향하고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 어떤 의식이 치러진 뒤에 염소를 잡아 신에게 바치는 의식이 벌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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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륜차를 타고 함피에서 내리니 퉁가브하드라 강가였다. 사람들이 몸을 씻고 빨래를 해서 말리고 있었다. 그 옆에는 여학생들이 단체로 와서 손과 발을 씻고 말리고 있었다. 흰 교복을 입은 그들이 참으로 정갈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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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루팍샤 사원의 거대한 탑('고뿌람'이라고 한다)은 약 50미터 높이인데, 사원의 입구에 떡 버티고 서 있다. 안에는 원숭이가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길을 잃었는지 본래 거기에 사는지 알 수 없지만, 검은 소가 사람들을 따라서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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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 경내에 사람들이 모인 곳을 찾아가 보았더니 움푹 패인 곳 천장에 구멍이 나 있고 그 구멍으로 햇빛이 들어 오고 있었다. 그 구멍을 통해서 밖에 있는 50미터 탑이 보인다고, 한 노인 할머니가 나에게 알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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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기 빛이 들어온다. 그 구멍으로 50미터 탑이 보인다.>
사원에서 나오면 바로 뒤에 산이 있는데, 그 산이 Hemakuta 언덕이다. 그 언덕에서 보면, 50미터의 탑이 더욱 위엄있게 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수 많은 조각상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탑의 벽에 붙어 있는 수 많은 조각상을 좀더 현미경을 통해 보듯이 살펴보면 좀 낯뜨거운 장면들도 볼 수 있다. 남녀가 성기를 내 놓고 웃고 있거나, 성기에 손이 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남녀의 성적 결합이, 정신과 육체가 합일이 되는 성스러운 일로 간주되는 종파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이것도 그 중의 일부인지 모르겠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바로 그 조각 위에 작은 구멍이 나있는데, 그 구멍에 비둘기가 '낼롬'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것이다. 비둘기가 "날찾아 봐라"하는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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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의 일 부분>
헤마쿠타 언덕에도 몇 개의 조각물이 있다. 여기서 조금 더 올라가면 정상에 도달하는데, 이 산 정상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그저 돌 무더기뿐이다. 내 발 밑에 있는 이 산도 전체가 하나의 돌이요, 눈에 보이는 동서남북이 모두 돌이다. 하늘만 빼꼼히 뚫렸는데, 그날 따라 하늘도 돌을 닮은 듯, 삐뚤빼뚤 하게 보였다. 옆에 있던 J님이 한 마디 한다. "세상에, 함피에 와보지 않았다면 이 세상에 돌이 이렇게 많은 곳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겠어요. 저기 보세요. 산에도 강에도 모두 돌뿐이네요. 돌산, 돌부처, 돌탑, 돌다리, 돌무덤, 내 이 돌대가리까지 돌이 아닌 것이 없네요." 그러자 옆에 있던 Y님이 돌직구를 날렸다. "저 돌씽인데요! 돌아온 씽글이란 뜻이죠!" 이러다가 내가 돌 것 같아서 빨리 장소를 옮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디 "ㄹ"을 "ㄴ"으로 바꿔주는 데 없나? 저 돌돌돌이 돈돈돈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돈이라는 글자에 받침하나 바꾸면
돌이 되어 버린 인생사
정을 주던 사람도 그 마음이 변해서
멍을 주고 가는 장난같은 인생사
가슴 아픈 사연에 울고 웃는 사람도
복에 겨워 웃는 사람도
정 때문에 울고 웃는다
멍 때문에 울고 웃는다.
아~~~~ 인생
<김명애의 '도로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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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식사를 하고 난 후에 찾아간 곳도 계속되는 돌의 향연이었다. 지하 템플이나, 무슨 벼락 맞은 바위를 지나 넓은 평원에 돌만 남은 끝없는 들판이 이어진다.
그런데 지하 템플 앞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가방을 밖에 두고, 지하 템플 구경을 하고 나온 사이에 원숭이가 가방 속에 있는 기념품을 가지고 나무 위로 올라가 버린 것이다. 900루피(약 17000원)주고 산 기념품인데, 꿈에도 없던 일을 당하고 보니 K님은 기가 막혔을 것이다. "누구든지 기념품을 찾아주는 사람에게 500루피(9000원)를 주겠다"고 선포해 버리고 말았다. 야,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우리의 3륜차 운전수는 원숭이보다도 더 빨리 원숭이가 있는 나무로 기어 올라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원숭이보다도 더욱 원숭이답게 나무를 흔들어 대고 돌을 던지고 괴성을 질렀다. 생전에 없었던 일을 당하고 보니 원숭이도 기가 질렸는지, 아니면 먹을 것이 아니어서 포기했는지, 기념품이 나무에서 "뚝"하고 땅으로 떨어졌다. 밑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의 박수 소리와 함성으로 더욱 기가 죽은 원숭이는 원숭이의 본분을 망각하고 풍비박산하여 도망치고 말았다. 가장 놀라운 일: 인도인에게 9000원은 엄청난 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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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돌다가 결국 해질 무렵이 되어서 일몰을 볼 수 있는 지점으로 사람들이 모여들더라. 붉은 해가 점점 기울기 시작함에 따라 돌에 비친 태양의 색이 변하기 시작하더라. 흰 햇빛은 노란 빛으로 바뀌더니 이제 점점 붉은 빛으로 바뀌기 시작하더라. 저 아래 사탕수수 밭에 마지막 햇빛이 다다르자 사탕수수 밭의 흰 꽃이 환상적인 황금빛으로 변하더라. 이것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실성한 듯, "내 이를 어쩌지!" 헛 소리를 하더라. 이 그림같은 장면을 지켜보던 어떤 사람은 조용히 기도하기 시작하고, 어떤 사람은 마른 침을 꼴깍 삼키고, 또 어떤 사람은 신들린 듯 헛소리를 하기 시작하더라. 한 여인은 바위 위에서 하늘로 치솟아 허공을 가르더니 한참 후에 나타나 전에 못 보던 곳인데, 여기가 혹시 별유천지비인간이요?라고 묻는 듯 하더라. 마침내 태양은 검은 대지 속으로 빨려들어가 한조각 붉은 돌로 변하더니 검은 돌 바다 속에 묻히더라. 침묵의 바다에 몸을 던지면서 마지막 태양이 한 마디 하더라. "내 이제 모든 것을 이루었도다. 내 다시는 이런 노을을 인간에게 보여주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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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스 마할>
다음 날(1월 8일) 찾아간 곳은 로터스 마할이다. 연꽃처럼 단아하게 지어 놓은 건물이 참 예쁘게도 생겼다. Lonely Planet에 따르면 여왕의 놀이터로 보인다고 언급되어 있는데, 아마 이런 곳에서 덩실 덩실 춤이나 추며 살면, 세상의 근심이 묵은 체증 내려가듯 사라질 것이다.
그 옆에 코끼리 집이 있었는데, 코끼리 집을 이 정도로 으리으리하게 지어 놓은 것을 보면 정말 코끼리를 숭배의 동물로 여겼음이 틀림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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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우리>
<고고학 박물관 정원>
<길 가다가 만난 소 떼. 사탕 수수를 수레에 싣고 있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이 빗딸라 사원이었다. 함피를 오는 주 목적이 빗딸라 사원을 보는 것이라고 한다. 로운리 플래닛에 따르면 16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이 사원은 그 정교함이 추종을 불허하다고 한다. 이 사원이 유명한 이유는, 다른 유적물보다 덜 파손되었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광장에 놓여있는 돌로된 전차를 보는 것이 두 번째 이유이다. 전차 바퀴는 전에는 실제로 돌았다고 하나 지금은 움직이지 않고 있다. 전차 속을 보면, 그 안에 있는 돌에 사람이나 신의 상이 새겨진 것을 볼 수 있는데, 어떻게 돌 속에 조각을 새겨 넣었는지 기적 같은 일이다. 또 한가지, 기둥을 때리면 "도-레-미" 소리가 난다고 되어 있는데, 이미 이곳은 사람의 출입을 막아서 유감스럽게도 노래 소리는 들어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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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전차>
<돌 전차 안에 깊숙히 새겨진 모습>
<사원의 기둥>
날이 저물 무렵 곱게 차려입은 인도 여인이 빨간색 노란색 동이를 이고 걸어오고 있었다. 그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몰라도, 유서 깊은 유적에 비치는 저녁 노을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안 보는 척 하면서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맵시가 예사롭지 않게 빛나고 있었다. 그들이 사라지는 모습을 한 동안 보노라니, 해는 더욱 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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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거의 다 져 갈 때 헤마쿠타 언덕에 올랐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태양이 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 멀리 붉은 태양 아래, 바위 산이 무뚝뚝하게 서 있었다. 그 앞 검은 바위에 원숭이 두 마리가 아까부터 까딱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조금만 발을 헛디디면 바로 자신의 제삿날이 될텐데, 아무런 근심없이 세상 이야기를 하는 부부처럼 다정했다. 어디 사람만이 지는 태양을 아쉬워하랴. 만물이 지는 태양에 미련을 둔다. 저 태양이 지면 나는 이제 이곳을 떠나게 되어 있다. 잘 있거라 함피. 아마 다시는 오지 못할 이 땅에 붉은 해가 지고 있다.
*우리는 이날 밤 함피를 떠나 기차를 타고 다음 목적지 "코치"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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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5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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