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성 여행기 3 "관음교와 써다"
"만족함을 느끼는 자에게 신은 또 다른 목마름을 선사한다"
<사천성의 위치>
<사천성의 지형도>
<사천성 여행도>
2019년 5월 14일 오후, 관음교로 출발한다. 관음교로 가는 길은 왕복 2차선으로, 마주오는 차를 피해서, 앞차를 추월하기는 어려워 보였으나, 운전수는 간담이 서늘할 정도로 날쌔게 앞차를 앞지른다. 위 사진을 보니 생각나는 게, 운전수는 노상 입을 벌리고 운전을 하였다(실제 위 사진의 운전수는 백 미러에서 입을 벌리고 있다.) 그래서 그에게 헤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선천성 입벌림 환자, 다시 말하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운전을 하건, 말을 하건, 무슨 일을 하건, 그의 입은 항상 벌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다시 한번 깨달은 것이지만, 입이 벌어진 사람을 보면 그대로 인정하고, 잔말 말고 대화를 끝내야 한다. 반대로 입을 항상 다물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대로 인정하고 입을 벌려 미소를 보이도록 요구할 필요가 없다. 이런 사람 중에 이빨이 모두 빠져 입벌리는 것이 너무 부끄러운 사람을 여러 명 보아왔기 때문이다.
인터넷으로 읽은 바에 의하면, 이 지역은 타르초(깃발을 줄에 매달아 걸어 놓은 것)를 언덕이 아니라 강의 양쪽 뚝에 걸어 놓은 것이 특징이라고 하는 데, 과연 듬성듬성 강변에 펄럭이는 타르초가 나타났다. 이런 광경은 다음 날 써다로 가는 차에서도 자주 볼 수 있었다.
<갑자기 소나기가 오고 강물이 불어 무서운 속도로 내려간다.>
<관음교 약도: "관음교"라는 읍에, "관음교 다리"가 있고, 바로 옆에 있는 산 중턱에 "관음사"라는 절이 있다. >
관음교(觀音橋: 观音桥: 관인치아오)로 간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관음교를 다리로 생각하고, 관음교 다리에서 잠시 쉬었다가 다음 목적지로 가는 줄 알았다. 그러나 막상 가보니, "관음교"라는 실제 다리가 있고, 그 다리가 있는 읍 정도의 지역이 "관음교"라는 도시이고, 관음교 도시에 있는 절 이름이 "관음사"(또는 관음묘: 관인미아오: 观音寺/观音庙)였다.
<관음사로 올라가는 가파른 길: 자동차로 올라간다.>
<관음사 앞에 있는 안내판>
관음사 안내판에 여러 나라 말로 관광객이 지켜야 할 문구가 적혀있다. 그 중에는 한국말도 있었는데, "문명하게 관광하고 예절있게 관광하시기 바랍니다" 라고 적혀있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만, 아마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현대 한국인 중에는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다. 문법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실제로 쓰이는 말과 쓰이지 않는 말이 있으니, 현지 경험 없이는 잘못된 외국어를 배우기 쉽다. 전에 어딘가에 갔었는데, 어떤 마부가 "말타시오! 말타시오!"라고 내게 말했다. 내가 "말 타세요!"라고 고쳐주니, 그는 주머니에서 책을 꺼내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분명히 "骑马: 말 타시오"라고 적혀있었다!
<관음사>
<다른 각도에서 본 관음사>
<관음사 앞>
<뒷편에 건설중인 부처상>
<높은 탑 위에 새겨진 동물: 이런 동물은 처음 본다.>
<관음사 전망대>
<관음사에서 내려다 본 관음교 마을: 좁은 계곡을 따라 형성되어 있다.>
<발톱을 보면 호랑이로 보이나, 얼굴을 보면 붕어같기도 하다.>
<절의 중간 부분의 난간에서 개가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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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박 호텔: 명주 호텔: 주인은 한국인이 처음 숙박한 듯, 우리를 보고 놀라는 기색이 뚜렷했다.>
관음교는 다른 목적지를 가기 위한 중간 도시의 성격인 듯 했다. 다수의 숙박시설과 몇 개의 슈퍼마켓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시설이 없었다. 어딘가 길 옆에 신장 양꼬치를 파는 젊은이가 있었다. 그날 저녁 꼬치 안주에 맥주 깨나 마셨다. 그러나 중국 맥주의 기본 도수는 2.5%다. 많이 마셔도 별로 취하지 않고, 값도 싸서, 술 먹기 좋은 곳이 바로 중국이다.
<관음교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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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우리는 오명불학원을 가려고 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외국인 출입을 금지시켰다고 했다. 그런데 알아본 바에 의하면, 정식 출입구를 통하지 않고, 뒤로 멀리 돌아서 가는 방법이 하나 있다고 했다. 우리는 흑교(黑桥)라는 곳에서 전진하지 않고 양탕을 거쳐 뒤로 돌아가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쉬운 길을 두고, 돌아가려고 하니, 길도 멀 뿐만 아니라, 중간에 막히는 부분도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몇 개의 사찰을 지나고 강을 지나서 마침내 도착한 곳이 바로, 오명불 학원의 후문에 해당되는 부분이었다. 말이 후문이지, 실제로는 이곳에서 수십키로를 더 가야 오명불학원이 나오는 지점이다.
<후문 검문소 근처 가게에 한 어린이의 모습이다.>
중국 경찰이 지키고 있는지, 우리의 운전수가 걸어서 동태를 살피러 갔다. 한 참 뒤에 돌아온 운전수는 역시 중국 정부가 길목을 지키고 있다고 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나를 포함한, 이곳 동티벳을 여행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이곳 오명불 학원을 보는 것이 이번 여행의 핵심이었다. 그것을 보고자 먼길을 돌아왔건만 못 간다니!
잠시 후, 우리의 리더 케이씨는 한번 감행해보겠다고 했다. 아니, 중국 공안에 걸려서 총 맞아 죽을 일이 있나, 아니면 여권 빼앗기고 중국에서 팔자에 없는 난민으로 살아갈 일이 있나? "망설이는 나에게 굳바이 하며 내미는 손, 검은 장갑 낀 손"을 흔드는 듯, 케이씨는 벌써 저만큼 앞장 서서 걷고 있었다. 감행은 무슨 감행? 감을 먹고 행동이 감행?
<왼쪽에 보이는 나무 뒤쪽에 있는 샛길로 가는 "길 없는 길"이 있다. >
짐은 차의 트렁크에 실어 둔 채 보조 가방만 메고,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털레 털레 케이씨를 따라 나섰다. 시골물이 쏜다고, 물살은 빠르고 그 소리 또한 시끄러웠다. 다리를 건너니 오르막 길이 나타났다. 서울 같았으면 일도 아닐 언덕이었지만, 이미 3000미터 이상의 고산지대라 움직이는 것이 힘들었다. 바닥에는 잔 풀과 가시 덤불이 듬성듬성 앞길을 가로 막았다.
<오명불 가는 침입 탈출로>
알고보니 여기가 바로 목장이었다. 야크 몇 마리가 기역자(ㄱ)와 니은자(ㄴ)의 뿔을 머리에 이고, 호시탐탐 나를 지켜보고 있다. 야크라는 동물이 공격적인지 어떤지를 모르는 나는, 나를 째려보는 시커먼 야크가 마치 투우에 출전하는 야만적인 황소나 지옥의 저승 사자처럼 두려웠다. 그러자 그 옆에 있던 검은 양치기 개가 사정없이 짖어대고, 흰 이빨을 들어내며 인정사정 없이 공격할 태세였다. 나는 일단 진보도 아닌, 후퇴도 아닌 자세를 취하며, 이 동물들이 스스로 제풀에 꺾이기를 바랐다.
그때 몇 명의 중국 젊은이들이 맞은 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보고 한국에서 왔냐고, 중국말로 물었다. 그렇다고 말하니, 그 중 한 사람이 사기꾼(骗子:피엔쯔)이라고 말했다. 즉 한국 사람이 아닌데, 한국 사람이라고 사기친다는 것이었다. "야 이사람아, 내가 당신에게 사기쳐서 무슨 이익이 있겠나? 여기가 시장터인가? 내가 철조망 넘어 개구멍으로 장사하는 사람인줄 아나!"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한국 사람인지 아닌지, 테스트해 보려면, 한국말로 질문을 해보라고 그들에게 말했다. 그 중 한 사람이 한참 생각하더니, "너희들, 어디 가?"라고 나에게 말했다. 한국 연속극을 보면서 배운 말 중에 기억에 남는 말이 그 말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공부하러 학원 가! 오만원 학원, 아니 오명불 학원!"라는 나의 말에, 그들은 무슨 말인지 몰라, 벙 뜬 듯이 보였다.
그러는 사이, 개 짖는 소리도 잠잠해지고 야크는 "이크" 도망치자, 생각했는지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러자 이제는 세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을 가져왔어야 하는데, 라는 생각을 하자마자, 참 호화스런 생각을 한다는 생각이 뒤 따르고, 그 뒤를 이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앞에 간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서간 사람들의 방향을 따라 걸어가니, 허허벌판, 그 다음 외나무 다리가 나타났다. 외나무 다리를 건너자 모든 것이 잘 되었다는 확신이 섰다. 평화롭게 노래만 부르다가 게슈타포의 압박에서 벗어나는 영화, Sound of Music 한 편을 이곳 중국 사천성에서 보았다!
<앞서 도착한 사람들이 중국 공안 검색을 통과해 도착해 있던 자동차 주위에 모여있다. >
<이후 자동차는 4300미터를 넘어 오명불 학원 정문쪽으로 향한다.>
사실은 우리가 오명불 학원 후문을 통과한 것이 아니라, 써다라는 도시로 가는 북문을 통과한 것이다. 따라서 몇십키로를 더 가야만이 오명불학원에 도착한다. 4300미터 정점을 찍고 자동차는 고도를 낮춰 써다 도시를 통과한다.
외국인은 아예 이곳에 올 수 없지만, 중국인도 모두 등록을 하고 써다에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중국인들이 서류를 작성하는 모습이 자동차 유리창 너머로 보인다. 조금 더 들어가면 천장터(죽은 사람의 시체를 토막 내어 새에게 뿌려주는 장소)로 가는 길이 나타나고, 마침내 그렇게도 갈망하던 목적지 "오명불 학원"에 도착한다.
<중간에 우박이 내렸다.>
<써다 시내의 한 장면>
<써다 시내: 외국인 출입금지구역이다.>
<오명불학원 주차장에서 버스를 타고,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정상까지 가야한다. >
오명불학원 주차장에 내려서는 정상까지 버스를 타야 한다. 이미 우리는 중국인만 들어올 수 있는 지역에 들어왔으므로, 중국인 행세를 해야 했다. 외모는 중국인과 다를 바가 없으므로, 한국말만 하지 않으면 적발될 일이 거의 없어 보였다. 만약 나의 외모가 서양인이라면, 이곳에 들어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버스 타기 전, 작전 아닌 작전을 세웠다. 1)절대로 말을 하지 말 것, 아니, 한국말을 하지 말 것. 2) 말을 해야할 상황이라면, 중국말을 할 것. 말이 서툴다고 이상히 여기면, 홍콩이나 대만에서 왔다고 거짓말할 것.
<버스 유리 창에 내리는 빗물을 바라 보면서 시내버스를 타고 정상으로 올라간다. >
<정상에 도착하면 보이는 오명불학원의 윗 부분. 아래 쪽에 이 정도는 아니지만 또 다른 노란 빛의 집들이 올망졸망하게 모여있다.>
버스에서 내리면,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 수 많은 성냥갑같은 집들을 본다. 과연 사진과 그림에서만 보았던, 글로만 읽었던, 말로만 들었던 오명불 학원! 1980년에 세워지고 이름이 알려져 신도들이 모여 이룬 집단 불교학교! 이제는 도를 찾고 깨닫기 위해 사방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인해 계곡을 가득 채우고, 아래로 퍼져 그 수를 셀 수 없는 어마어마한 집단을 이루고 있다. 여기에 있는 작은 집들은 모두 남녀 승려들의 집이다.
여기서 공부하는 사람들은 보통 6년제 공부를 하고 특수 과정은 13년을 공부한다고 한다고 한다. 바이두 백과 사전에 따르면, 그 동안 9차례에 걸쳐 크고 작은 화재가 이곳에서 발생하였고, 2014년 1월 9일에는 150채의 집이 불에 탔다고 한다. 솔직히 말해서 한번 불이 나면 손쓸 새도 없이 번져 타 버릴 것이고 그러면 그 인명 피해는 엄청날 것이다. 그래서 일까? 전에는 없던 중간 길을 만들어 놓는 등 상당히 신경을 쓴 모습이 여기저기 목격되었다.
그건 그렇고, 저 많은 승려들의 먹을 음식과, 먹고 목욕할 물은 어떻게 공급하고, 하수도는 어떻게 처리한단 말인가? 해발 4000미터에 위치한 이곳으로 끌어들일 물이 아무리 바라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하수처리장으로 보이는 시설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내 앞에 지금 보이는 이 수 많은 집들을 하나의 구경거리, 사진 촬영의 피사체로만 볼 뿐, 그 속에 모두 사람이 산다는 사실을 망각할 뻔 했다.
<산 중턱에는 하얀 천이 바람에 나부끼다 부서져서, 여기저기 사방에 나뒹굴고 있다.>
<정상 부근에서 사람들이 오체투지 기도를 하고 있다.>
<역시 정상부근에 있는 건물: 아래로는 사람들이 마니차를 돌리며 원형으로 돌고 있다.>
<정상 부근에 이상한 동물의 형상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버스를 타고 올라간 정상에서 걸어서 내려오면 아스팔트 길이 나타난다.>
<여기저기서 승려들이 오체투지를 하거나 기도를 한다.>
<기도를 하다가 힘들어 쉬는 듯 하다.>
<오로지 신앙심으로 가득찬 듯한 한 여인이 자루를 들고 계단을 오르고 있다. >
<길에 보이는 것은 붉은 옷을 입은 승려가 대부분이지만, 일반 복장의 사람들도 눈에 띈다.>
<중간에 는 광장이 있고, 이 옆에는 지금도 건설 중인 건물 있다.>
<전에는 승려들의 집으로 가득 찼을 이곳에, 길을 만들어 분리해 놓았다. 아마 화재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일 것이다. >
<승려도 먹고 살아야 한다. 채소를 다듬고 있다.>
<스님들이 청소를 하고 있다. 여기 사람들은 특히 여자들은 마스크를 쓰고 있는 사람이 많다.>
<배고픈 야크가 떼로 몰려다니면서 쓰레기통을 뒤진다. 한 여승이 물건을 야크에게 던져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한다. >
<어떤 집의 벽에 각종 게시물이 붙어 있다.>
이 세상 자체가 영원하지 않다. 왔다가 가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한 스님이 산에서 내려오면 또 다른 스님이 찾아가 그 자리를 채운다. 나도 여기에 왔으니 이제 내려갈 때가 되었다. 자리를 털고 또 다른 세상으로 가야한다. 그러면 내일 누군가가 또 내 대신 구경하러 이곳에 올 것이다. 그렇게 떠 돌다가 종국에는 세상 자체를 떠나야 한다. 그렇다고 그것도 끝이 아니다. 나의 육신은 썩어서 다른 식물의 자양분이 될 것이고, 그 식물을 다른 동물이 먹어 또 하나의 윤회가 형성될 것이다.
오명불학원을 떠나 루후어(炉霍)로 가는 자동차 안에서 이 생각 저 생각을 한다. 창 밖으로는 또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저 사람들은, 왜, 무엇을 위해서, 젊은 청춘을 바쳐 저런 고행을 하는 걸까? 도대체 종교란 무엇일까? 종교는 선택이 아니고 운명이나 숙명일까?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라고 변영로 시인은 글로 표현했다. 그가 이 시를 쓰기 전에 이곳을 방문했다면, 아마도 "종교보다도 깊고"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을 것이다.
원숭이들이 먹을 것을 달라고 거리에서 차를 막고 데모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말하는 듯 했다. "우리는 먹을 것만 있으면 행복해요. 돈도, 명예도, 의복도, 종교도 다 필요없어요. 그냥 먹을 것만 주세요." 그러나 신은 그 누구에게도 만족이란 단어를 선사하지 않는 듯 하다. 반드시 무엇인가 부족하게 만들어, 자기에게 갈구하도록 만들어 놓는 것이 바로 신이 아닌가 한다. 당신이 가진 것에, 원하는 것에 만족하는 순간, 신은 또 다른 목 마름을 당신에게 선사할 것이다. (다음 여행기는 "루후어 그리고 간즈"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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