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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a

사천성 여행기 2 "마얼캉-창렬사-송강전"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9. 6. 8. 08:24

 

사천성 여행기 2 "마얼캉-창렬사-송강전"

 

"저 산은 내게 우지 마라 하고"

 

 

 

 

<중국 사천성의  위치>

 

 

 

 

<사천성의 지형도>

 

 

 

 

<사천성 여행 노선 >

 

 

 

 

<차점자 시외버스 터미널: 아래 붉은 현수막에, "여행객을 투숙시키기 위해 끌고 가는 행위를 엄금한다"고 써 있다.>

 

 

성도에서 마얼캉으로 가려면, 茶店子旅游集散中心(차점자여유집산중심) 버스 터미널로 가야한다. 이 지역이 지금이나 또는 옛날에 찻집이나 차를 파는 가게가 많이 있으리라는 짐작은 할 수 있으나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안내지도를 보면 사천성의 대부분의 도시는 여기서 버스를 이용하여 갈 수가 있다.

 

 

 

 

<터미널에 붙어 있는 여행 안내 노선>

 

 

 

 

<중간에 잠시 쉬는 정류장이다.>

 

 

 

 

<땅이 비옥하지 못하여 강인한 생명력이 있는 키 작은 잡초만이 생존가능하다.>

 

 

 

 

<약 3500원(20위안)짜리 점심 뷔페다.>

 

 

가는 도중 점심 때가 되어서 어떤 식당에 단체로 들어갔다. 뷔페식이었는데, 주인 아줌마는 귀중한 음식이니, 먹을 만큼만 가져가서 남기지 말아 달라고 두 번이나 당부했다. 점심 식사가 끝나고 사람들이 빈 식판을 아주머니에게 반납하면 아주머니가 정리해서 차곡차곡 한쪽에 식판을 쌓아두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음식을 조금 남긴 채 아주머니에게 반납했다. 아주머니는 그 식판의 음식을 버릴까말까 망설이더니 옆에 놓고 치우지 않았다. 나는 아주머니가 식판에 조금 남은 그 음식을 어떻게 하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살펴보는데, 시간이 흘러도 그것만 놔둔 채 나머지 식판을 치우고 있었다. 버스 시간이 되어서 끝까지 관찰하지 못했지만, 나는 지금도 궁금하다. "남은 음식을 다시 본래 음식과 합쳤을까, 버렸을까, 아니면 아주머니가 먹었을까? 아니면 개나 줘버렸을까?"

 

 

 

 

 

 

북쪽으로 가던 버스는 문천에서 두 갈래로 갈라진다. 구채구 방향으로 가는 차와 마얼캉으로 가는 차로 갈라져 목적지를 달리한다. 문천은 몇 년전에 지진이 나서 수 많은 사람이 죽은 곳이다. 문천에서 좌회전 하면 소위 말하는 전장북로를 따라 사천성의 장족들이 사는 지역을 통과한다. 우리가 탄 버스는 해발 약 3300미터 되는 최고점을 지나 다시 해발이 낮아지면서 해발 2600미터의 마얼캉에 도착한다. 성도에서 오전 8시 40분에 출발하여 오후 3시 반에 마얼캉에 도착했으니 약 7시간 걸린 셈이다.

 

 

 

 

<마얼킹의 새벽 하늘>

 

 

마얼캉은 도시로서 대단히 불리한 여건을 갖췄다. 깊은 계곡에 강이 흐르고, 양쪽으로 깎아지른 듯이 서 있는 절벽의 산 사이의 좁은 계곡에 도시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좁은 계곡에 어떻게라도 사람이 살 자리를 만들어 내어 살고 있는 곳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라도 사람들이 살 수 있는 땅이 있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살 것이다. 평지가 별로 없으니, 사람들은 이곳에 어쩔 수 없이 둥지를 틀고 삶의 터전을 마련한 것이리라. 이들의 삶이 얼마나 어려울지 짐작이 갔다.

 

 

 

 

<학생으로 보이는 한 무리의 소년 소녀가 거리를 거닐고 있다.>

 

 

 

 

<도시 가운데로 무서운 강물이 빠른 속도로 내려 뺀다.>

 

 

 

 

<여기에는 주로 藏族(장족)이 많이 산다. 강족(羌族)도 산다고 하나 볼 수 없었다.>    

 

 

 

 

<이상한 복장을 한 젊은이들이 거리를 지나간다.>

 

 

 

 

<상가 및 식당 밀집지역>

 

 

 

 

<새벽이면 일정한 장소에 모여 동충하초를 사고 판다.>

 

 

재미있는 것은 동충하초 시장이다. 시내 일정한 곳에 터를 잡고 새벽에 어디서인지 동충하초를 팔고 사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동충하초는 지금쯤 캐는데, 동충하초의 잎이 너무 작아 잘 보이지 않아, 산과 들을 기어 다니면서 이 잡듯이 뒤져서 캐낸다고 한다. 이 약재는 면역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데, 비교적 비싼 값에  팔리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훌륭한 돈벌이 수단이 된다.  위 사진의 바구니에 들어 있는 동충하초는 개당 약 6천원 잡으면, 100만원어치가 넘을 것이다.  100만원을 바구니에 담고 다니는데, 이를 날치기해가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보면 사람들은 순진한 모양이다.  몇 뿌리 사서 먹어보았으나 맛이 없고, 밋밋한 나무뿌리 씹는 것과 같았다. 여기 사람들은 동충하초(冬虫夏草)라고 부르지 않고, 줄여서 충초(虫草: 총차오)라고 부른다.

 

 

 

 

<호텔에서 전통복장을 걸친 아가씨들이 밖으로 나간다.>

 

 

 

 

<장족 전통복장의 젊은이들>

 

 

장족 복장을 한 사람들을  따라가보니, 호텔 바로 앞에 있는 경기장에서 행사 예행연습을 하고 있었다.  예행연습하는 사람들은 초등학생부터 어른까지, 군인, 경찰 등 각계각층이 망라되어 있었다. 인민복을 입은 아이들의 복장도 신기하거니와 인민복을 입어서 일까, 아이들의 걷는 모습이 더욱 보무당당해 보였다. 전체가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했다. 관중석에서는 누가 더 악을 써서 응원을 하는지, 마치 한국의 연고대 응원전을 보는 것 같았다. 그 앞에는 행사 총책임자인 듯한 남자가, 참석자들을 혼내기도 하고, 비위도 맞추기도 하면서 목에 핏대를 세우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연발하고 있었다. 무대에는 "청춘의 마음은 당을 향한다.  새로운 시대를 건설하자. 아바주(마얼캉이 속한 주가 바로 아바주이다) 5. 4 운동 100주년 기념 행사"라고 써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시진핑이 했다는 말이 적혀있었다. "초심을 잊지 말고, 사명을 기억하자!"

 

 

 

 

<인민복의 어린이들: 보무당당하다>

 

 

 

 

<예행 연습은 노래와 춤, 그리고 웅변 등으로 이루어졌다.  한 사람이 작은 마이크로 지휘를 하고 있었다.>

 

 

 

 

<무대 전경>

 

 

 

<동네 사람들이 관중석에 앉아 구경하고 있다.>

 

 

 

<공공 장소에 흔히 볼 수 있는 표어. 시진핑 주석이 말한 "不忘初心, 牢记使命(초심을 잊지 말고, 사명을 기억하자"가 여기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도 자주 눈에 띈다.>

 

 



<창렬사>

 

 

 

<마얼캉-창열사-송강전 여행 개념도>

 

 

다음 날, 즉 2019년 5월 14일, 마얼캉 시내를 나와 창렬사로 향했다. 창렬사의 가장 큰 특징은 입구에서 약 900미터를 계속 갈지자(之)로 올라간다는 것이다. 우리를 태운 기사는 38개의 모퉁이를 돌아서 정상에 올라간다고 말 했지만, 누구든지 어지럽고 헷갈려서 정확하게 모퉁이를 몇 개 돌아야 정상에 도착하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2600미터의 마얼캉에서는 고산증세가 없었는데, 약3500미터의 창열사에 오니 고산증세가 나타났다. 어지럽고, 힘이 없고, 토할 것 같은 증세다. 사람을 멍석에 말아, 물을 적절히 뿌리고, 도리깨로 실컷 패대면 아마 이와 비슷한 증세가 나타날 것이다. 전날 이런 것을 예측하고 "홍경천"이라는 약을 사 먹었으나, 약효는 거의 없었다. 이런 때는 앉아서 쉬고 천천히 걷는 도리밖에 없다.

 

 

 

 

 

 

창렬사는 아직도 공사 중이었다. 아마 10년은 더 있어야 완성될 듯 싶었다. 뒤에는 얕은 민둥산이 있어서 여력이 있는 사람들이 코라를 걸어 돌도록 되어 있었다. 사찰의 옆은 멀리 설산이 구름에 가렸다 나타났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절 안에는 여러 얼굴을 가진 부처상이 위엄있게 자리잡고 있었고, 그 앞에는 알 수 없는 동물의 형상이 만들어져 있었다.

 

 

다른 건물 안에 들어가 보면, 수 많은 사람들이 절 내부를 돌면서 염불을 했고, 손에는 염주나 다른 기도 도구가 들려있었다. 그들의 진지한 모습에 저절로 내 마음이 숙연해진다.

 

  

 

 

 

 

 

 

 

 

 

 

 

 

 

 

 

 

 

 

 

 

그 중에는 젊거나 어린 승려들이 있었다. 겉으로 보아 한창 사춘기일 듯 보였다. 남자로서 사춘기를 지난다는 것은, 내 경험으로 보아, 그야말로 연기와 숯불로 가득찬 토굴을 지나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자나깨나 여자 생각은 왜 그리 나는지, 공부는 왜 그리 하기 싫은지, 어른들이 하는 말이 모두 위선적으로 보이고, 세상이 두렵기 그지 없었다. 웃다가 울음이 나고, 자다가 일어나 헛소리하며 방을 서성인다. 지금 저 사춘기의 스님들도 그럴 것이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아니 동물로 태어난 이상, 이런 시절을 겪지 않을 수 없다.

 

 

스님들은 땀을 흘리면서, 하늘을 날면서, 노란 옷과 자주색 옷을 휘날리면서, 농구를 하고 있었다. 공을 농구 골대에 던지면 다시 땅에 떨어지고, 떨어진 공을 하늘로, 하늘로, 던져 올렸다.  아마 힘이 다 빠져 녹초가 되어서야 비로소 운동을 멈출 것이다. 그래야 어려운 사춘기를 지내든지, 잊든지, 씹어 삼키든지 할테니까!

 

 

 

 

 

 

한 어린 스님이 차디찬 바람을 맞으며, 손에 라면 봉지를 들고 걸어가고 있었다. 나이드신 스님이 그를 불러 세웠다. 어린 스님의 눈에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없지만, 한참 동안 어린 스님의 눈을 살피며 무슨 말을 하더니, 노 스님과 어린 스님이 작별을 했다.

 

 

저런 과정을 거치면서 인간으로 되어가는 것인가? 그냥 문명을 누리는 아이들처럼 핸드폰 만지고, 맛있는 것 먹고, 시시덕 거리면서 하루를 보내면 몹쓸 인간이 되는 것인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인가? 저 아이는 세뇌를 당한 것인가, 아니면 참 자아를 찾아가는 것인가? 내 방식대로 주관적으로 살아간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인간의 탈을 쓴 이상, 그리고 어떤 문명에 노출된 이상, 그는 이미 그가 아닐 것이다. 그저 많은 무리 중의 조금 다른 한 사람일 뿐일 것이다.

 

 

 

 

 

 

 

 

 

 

아, 뒤를 돌아 올라온 길을 보니, 참으로 대단한 길이다. 앞산에 구름으로 덮였다, 걷혔다를 반복하는 설산, 구불구불 나 있는 길을 따라 여기저기 놓여있는 민가, 검고 푸르고 전율을 느끼게 하는 깊고 깊은 계곡이 펼쳐져 있는 것인 아닌가? 산은 산을 끼고 돌고, 구름은 구름을 불러 서로 잇고 끊으면서 거대한 원형의 고리를 형성하고 있는게 아닌가?

 

 


저 산은 내게 우지마라 우지마라 하고 
발 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 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산 저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양희은의 "한계령">

 

 

 

 

 

 

 

 

 

 

"유치환의 깃발"보다도 더욱 소리 없이 아우성을 지르는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안개 속에 빠져드는 깃발이 있는가 하면, 안개를 뚫고 나오는 깃발이 있었고, 안개와 구름과 함께 어울려 춤을 추는 깃발이 있었다. 노란 탑 위로, 붉은 기와 지붕 위로, 바람은 서성이다 돌아가고, 안개는 몰려왔다 몰려가고 있었다. 내가 얼마를 더 살지 모르지만, 오늘 같은 감격스런 장면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자연의 신비라기 보다는 자연의 전율이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손에 잡혔다가 손가락 사이로 태초의 그리움이 흘러가고 있었다.  내 마음도, 내 기억 속의 청춘도, 나의 서러움도, 나의 기쁨도, 그렇게 멀리 멀리 하늘로! 하늘로! 사라지고 있었다.

 

 

 

 

 

 

 

 

 

 

 

 

 

 

 

 

 

 

 

 

 

 

 

 



 

<송강전>

 

송강전은 마얼캉의 일 부분이다. 입구의 주차장에 내리면 무료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버스를 타고 우뚝 솟은 절벽을 따라 작은 산을 반 바퀴 돌아 거의 정상 부근에 도착한다. 정상에 망루가 2개가 있는데 모두 군사적인 목적으로 쌓아올렸다고 한다. 망루의 입구를 막아 놓아서 안으로 들어가 볼 수가 없다. 망루는 사각형인데, 멀리 보이는 다른 망루들은 8각형을 이룬 것도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청나라 건륭제가 이 지역에서 전쟁을 수행한 적이 있는데 이 망루를 무너뜨리지 못하고 돌아간 후, 베이징에 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망루를 지어 놓고 병사들에게 훈련을 시겼다고 한다.

 

 

 

 

 

 

 

 

 

 

 

 

 

 

 

 

 

 

아, 그러나 세월의 흐름과 세대의 변천을 어떻게 거역하겠느냐?  이미 몇 집은 음식점과 찻집으로 변해있었고, 안에서는 현대 중국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뜨거운 햇볕을 밭으며 손님을 기다리다 지쳐 졸고 있는 한 아가씨가 얼떨결에 의자에서 넘어질 뻔 하기도 했다. 문을 개방하여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있게 만든 집 안에는 옛 사람이 쓰던 물건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흠집없는 침대 두 개가 나란히 놓여있어 옛날의 호화스런 생활을 엿볼 수 있다. 골목을 돌고 돌아, 걸어서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내려오면 바로 이 유적지를 한 바퀴 도는 셈이 된다.

 

 

 

 

 

 

 

 

 

 

 

 

 

 

 

 

 

 

 

멀리 탑이 보이고 그 아래 한 남자의 조각상이 보였다. 너무 멀어서 분간하기 어려웠으나, 그 조각은 한 손에 막대기를 들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지팡이를 들고 있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회초리를 들고 있다고도 하였다. 어떤 사람은 아마 소변을 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변을 보고 있다고 말한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오늘의 장원이렸다!  (다음은 "관음교"와 "써다" 편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