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성 여행기 4 "루후어와 간즈"
"간즈 백탑과 구름을 보며"
< 여행 노선>
<루후어 광장의 조각>
2019년 5월 15일 늦게 루후어(炉霍: 로확)에 도착하였다. 그날 밤, 시내를 관통하고 있는 강을 따라, 숙소 주위를 산책하는 중, 어디서 크게 울리는 음악소리가 들렸다. 공원 또는 광장으로 보이는 곳에서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나에게 특별히 관심을 끄는 것은 아이들이 춤추는 모습이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춤을 따라하며 배우고 있었다.
사실 나는 전부터 궁금하게 여기는 것이 있었다. 오래 전, 예를 들어 조선 시대에 아이들은 무슨 춤을 추었을까? 결론은, 지금 전해 오는 각종 아리랑이나 타령을 그 당시에도 부르고 거기에 맞추어 춤을 추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이들이라고 해서 특별한 춤을 보거나 배운 적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나오기 전에는, 우리는 노래와 춤이라는 것이 서태지처럼 저렇게도 할 수 있구나, 라는 생각 자체를 못 했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 "가련다 떠나련다 어린 아이 손을 잡고"라는 어른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있다. 아이라고 해서 어른과 다른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아이에 맞는 노래를 만들어 부르게 했기에 아이들이 따라하는 어린이 노래가 있을 뿐이다.
<광장에서 춤을 춘다.>
<동영상 39초: 어른을 따라하며 배우는 아이들>
<아름다운 루후어 시내의 일 부분>
<루후어쇼우링스(炉霍寿灵寺): 시내에 있는 가장 큰 사찰이다.>
<사찰 아래에 있는 건물들: 색깔이 아름답다.>
<동네 입구에는 어디가나 마니차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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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즈로 출발
<5월 16일 아침 간즈로 출발했다. >
<위 사진의 일 부분을 확대해 보았다. 무언가 염원이 담긴 듯 하다. >
<가는 도중 보이는 경찰이 붙여놓은 경고판이 눈에 띈다. "높은 지대는 산소가 부족하여 길이 위험하니, 몸이 불편하면 운전하지 마시오." 고산지대임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
<간즈 시내>
<간즈 백탑사 앞에 놓여있는 안내판: 한글을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답답하다. >
<중앙에 있는 건축물의 도처에 붙어 있는 조각품이 설산을 배경으로 독특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간즈에서 최대의 명물은 백탑사이다. 시내 중심부에서 가까운 이 절은 말 그대로 백탑이 장관이다. 그 주위에 있는 설산과 뭉클뭉클 다가오는 흰 구름이 이 사찰의 백탑과 잘 어울려 시네마스코프 영화관이 된다. 나는 이곳에서 한 시간 이상을 머물며 수백장의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다가 구경하고, 쉬다가 바라보고, 한숨을 몰아 쉬다가 또 눈을 사방으로 돌렸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나는 하늘에 흰 구름이 솟아 오를 때마다, 내 마음도 소용돌이 친다.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내 마음은 뛴다!"라고 말한 워즈워드보다, 구름을 바라보는 내 심장은 더욱 크게 뛴다. 하늘에 뭉클 뭉클 솟아오르는 저 흰 구름! 아, 어쩌면 좋으냐? 어쩌란 말이냐?
<한 주민이 탑 주위를 돌고 있다.>
<고 프로로 찍은 사진: 다른 사진기와 좀 다른 느낌을 준다.>
<백탑사 뒤 설산을 줌 렌즈로 확대해 촬영하였다.>
<역시 고 프로로 찍은 사진>
백탑사 내부에도,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수 많은 진열품이 놓여 있다. 불교 용품의 미적 우수함에 놀라기보다는, 좀 으시시하고, 무섭고, 정신이 혼란스럽다.
<주민이 경내에서 휴식을 즐긴다. 저 많은 환타를 어떻게 다 마실지? 아니면 손님에게 파는 것인가? 아무래도 장사는 아닌 듯 하다. >
<호텔로 오면서 보이는 주덕 장군 동상: 1950. 1. 31. 중국군은 티베트를 제외한 모든 본토를 점령하였음을 선언한다. 주덕 장군은 제국주의 세력으로 부터 티베트의 해방을 주장하였다. "인터넷에서">
<티벳 장족 아주머니, 손녀로 보이는 아이와 함께 앉아 있다. 길 가다가 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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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7일 간즈사로 가는 도중 목격한 장면: 청소하는 아줌마가 바퀴 달린 바구니를 몸에 묶어 끌고 간다. 쓰레기를 자루에 담아 어깨에 메고 가는 것이 나은지, 아니면 사진에 나온 것처럼 바퀴 달린 바구니에 담아 넣어, 끌고 가는 것이 나은지는 상황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러나 가다가 눈에 띄는 대로 쓸어 담기에는 이 방법이 더 간편할 수 있다. 단지 아스팔트에 바퀴 돌아가는 소리는 자갈밭에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보다 몇 배는 더 크다. >
<간즈 시내에서 간즈사 가는 길>
<간즈사로 간다는 것이 엉뚱한 절로 갔다. >
단체로 간즈사에 가는 중이었다. 나는 산소량 부족으로 아무리 걸으려고 해도 숨이 막히고 힘이 없어서 걸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쉬고 걷고 하다가, 앞에 가는 사람들의 꼬리를 놓치고 말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산길을 조금만 걷다가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바로 간즈사였다. 하지만 나는 간즈사가 산 꼭대기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간즈사로 가는 중에 보이는 풍경>
<간즈사로 가는 길>
<간즈사로 가는 중. 위에서 개가 내려다 보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가도 앞에 간 사람은 보이지 않고, 간즈사 입구라는 간판도 보이지 않았다. 멀리서 개 한 마리가 내려다 보며, "성님, 어서 오슈! 간즈사 가려면 녹초가 될거유!"라고 말하는 듯이 보였다. 날은 덥고, 햇볕은 뜨겁고, 바람 한 점 없는 무더운 한 낮이었다. 가끔 가다가 소가 나타나서 길을 막고, 또 가끔 가다 검은 가마귀를 닮은 새떼가 썩은 송장을 본 듯이 까악 거렸다. 나는 내가 못 올 데를 왔나, 후회가 되었다. 지금부터라도 택시를 불러 타자니 너무 많이 와 버렸고, 그냥 돌아 가자니, 여기까지 온 것이 너무 아까웠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그냥 주구장창 걷는 도리밖에 없었다.
비록 고생은 되나 경치만은 기가 막혔다. 산 위에서 바라보니, 멀리 설산이 둥그렇게 간즈 시내를 감싸고 있었고, 그 앞 한 쪽에는 별장으로 보이는 집들이 듬성듬성 전원 풍경이라는 자수를 놓고 있었다. 평지 위에 나 있는 여러 갈래의 작은 개울로 물이 졸졸 흐르고, 여기저기 놓여있는 밭에서는 파릇파릇 농작물이 자라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내가 걷고 있는 위쪽을 보면, 멀리 산 등성이에 서 있는 나무들이 한 줄로 열병을 서며 날아가는 새들을 환영하는 듯 했다. 추위를 견뎌내기 위해 땅에 딱 달라붙어 자라는 형형색색의 앉은뱅이 꽃은 강인한 생명력으로 꿈틀거리며 애타게 여름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퉁이를 몇 번 돌았을까? 아, 드디어 간즈사가 보이는구나!(그날 저녁 알게 되었지만, 내가 지금 간즈사로 알고 있는 것은, 간즈사가 아니라 郎扎觉姆寺<랑자각모사: 랑자주에무스>라는 사찰이었다.) 저 하늘은 어찌 이다지도 푸르며, 산등성이는 왜 저리 아름다운가! 계곡을 사이에 두고 멀리 아담하게 자리잡은 간즈사! 앞서간 사람들은 지금 저기 어딘가에서 차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겠지? 나는 내가 해냈다는 기쁨에 겨워, 하늘을 보고 웃으며 걷다가, 하마터면 앞에 있는 돌뿌리에 걸려 넘어질 뻔 했다.
<간즈사로 착각한 랑자주에무스>
<내가 촬영한 사진을 검토하던 중 발견된 사찰 이름. 41은 방 번호>
길에서 잠시 쉬는데, 길가던 사람이 산 중턱에 있는 물탱크에서 흘러 나는 물에 머리를 감았다. 손도 안대고 코를 푼다는 말을 들었어도, 손 안대고 머리 감는 것은 처음 보았다. 나도 한번 따라 해보았다. 그거 앞으로 종종 해볼 만한 일이었다!
조금 더 올라가니 한 남자가 호랑이를 쇠사슬에 묶어 끌고 가는 그림이 보였다. 음, 대단한 절이군! 호랑이를 타고 가거나, 호랑이를 때려 잡는 그림은 보았어도, 쇠사슬에 묶어서 끌고 가는 그림은 처음이야! 이 절과 쇠사슬과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인가?
조금 더 올라가니 몇 마리의 동물들이 사슬에 묶이거나 철사 줄에 가로막혀 꼼짝 달싹 하지 못하고 있었다. 원숭이는 목줄에 매여 쇠창살 뒤에서 감옥살이를 하고 있었다. 염소인지 고라니인지 알 수 없는 동물은 주둥이를 묶어서 아무 것도 먹지 못하게 했다. 아니 저 상태로 숨이나 쉴 수 있는지 의심이 갔다. 사슴인지 뭔지는 철사 줄로 두손 꽁꽁 묶인 채로 한 많은 미아리 고개로 끌려가는 신세였다. 도대체 여기가 사찰인가, 감옥인가, 아니면 이 세상도 아니고 저 세상도 아닌 생과 사의 중간 세상인가? 나는 두렵고 답답하고 불안했다. 사찰 문안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모든 문은 잠겨 있었다.
<사찰 지붕 아래에 붉은 부리의 검은 새가 새끼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
나는 다시 아래로 내려와 중간에 나 있는 좁은 길로 들어갔다. 반 지하 방처럼 창문이 약간 보이고 나머지는 지하에 방이 줄줄이 들어서 있었고, 유리창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방안에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조금은 겁이 났지만 계속 앞으로 갔다. 드디어 붉은 옷을 입은 아낙네 몇 사람이 이마에 땅방울이 맺힌 채 진흙을 물에 반죽하여 계단의 갈라진 틈을 메우고 있었다. 어찌 된 일인지 남자 스님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여자들만 사는 절이라고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들은 나를 보고 "니하오"라고 했지만, 웬지 모를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이 절은 아직 완성되지 않아서 현재도 건설 중이었고, 그 어디에도 부처상은 보이지 않았다. 꼭대기로 가면 부처상이 있을 것 같아, 꼭대기로 가보아도 부처상은 찾을 수 없었다. 단지 한 가족으로 보이는 남자와 여자 그리고 아이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잠시 뒤, 남자는 우는 아기를 안고 달래기 시작했고, 여자는 꼭대기 층 유리 안을 향해 절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세 사람은 꼭대기 층을 돌기 시작했다.
한참을 지켜보다가 그들에게 다가갔다. 샘플로 가지고 다니는 사진을 보여주면서 가족 사진을 찍어 뽑아주겠다고 했다. 웬지 집안에 가족 사진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아무래도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고 친해지려면, 뭔가 호기심이 가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때를 대비해서 나는 포토 프린터를 가지고 다닌다. 사진을 뽑아주면서 간단한 이야기를 했는데, 그들은 여기에 자주 와서 기도를 하고 간다고 한다. 남자와 작별하며 악수를 하는데, 손이 무슨 돌덩이처럼 단단했다. 헤어지면서 그는 사진을 찍어 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여러번 했다. 또한 그날 늦게 그들을 간즈 시내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얼마나 반갑게 맞이해 주든지, 지금도 그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날 저녁 야크 고기와 맥주: 식당 앞 길거리에 불판을 갖다 놓고 앉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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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새벽 어느 초등학교 앞에 가게 되었다. 규율반장으로 보이는 아이 두 명이 문에서 등교하는 아이들의 외모며, 가방 등에 대해 사사건건 잔소리를 해대며 간섭을 했다. 한 아이가 가방에 불룩하게 무엇인가를 등에 지고 왔다. 키가 작고 다부지게 보이는 아이가, 옆에 있는 자기보다도 더 큰 동료에게 가방을 조사시켰다.
가방 안에서 큰 과장 봉지가 나오자, 그들은 과자 봉지를 빼앗아 버렸다. 그러자 빼앗긴 아이가 앙을앙을 대들며 봉지를 달라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뺏은 봉지를 서로에게 던지며 빼앗긴 아이를 약올렸다. 뜻밖에 교문은 수비수 두 명에 공격수 한 명의 럭비연습장이 되어 버렸다. 마침내 과자 주인은 울기 시작하고, 두 아이는 계속 봉지를 패스하고, 이를 바라보던 학생과 학부모가 웃으며 즐거워했다. 이른 아침 배꼽이 둬 번 빠졌다가 들어가는 간즈의 아침이었다.
<가방을 조사하여 과자 봉지를 적발해 낸다.>
<아이들이 등교하고 있다. 그 옆에 호떡 파는 아줌마가 있다. 저 멀리에는 설산이 보인다. >
<다음 여행기는 "더거와 신롱"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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