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성 여행기 1
"성도"
<사천성의 위치>
<사천성의 지형도: 사천성은 해발 500미터의 성도에서 서쪽으로 가면 급격히 해발 고도가 높아진다.>
<사천성 여행 노선: 앞으로 이 지도에 여행 노선이 화살표로 그려질 것이다. >
2019년 5월 11일, 오후 3시, 서울에서 인천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 가운데 통로를 사이에 두고, 어린 남자 아이와 엄마로 보이는 여자가 타고 있었다. 요즈음 아이 보기도 어려워, 아이의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아이가 자리에 앉자마자 엄마는 늘 그랬다는 듯이 핸드폰을 앞 좌석 컵걸이에 걸어 놓고 아이에게 핸드폰의 동영상을 보게 했다. 아이는 바로 핸드폰에 나타나는 동영상에 빠져들어 시선집중의 경지에 접어들었다.
잠시 뒤, 아이는 엄마 "쉬, 쉬" 했다. 엄마는 쏜살같이 비닐 가방을 열고 빈 물통을 꺼냈다. 아이를 의자에 세우더니, 아랫도리를 벗겼다. 그리고 아이의 고추가 나타났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아이의 고추가 살에 착 달라붙어, 물통 속에 소변을 보게 할 수가 없었다. 잠시 망설이더니, 엄마는 마치 지렁이를 손으로 잡을 때처럼 징그러운 듯, 엄지와 검지를 이용하여 아주 조심스럽게 고추를 몸에서 떼어내 병 안에 진입시켜 일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엄마, 잘 하지?" 엄마가 말했다. "엄마는 뭘 잘 하는데?" 아이가 물었다. 엄마는 아이의 입을 손가락으로 막았다. "쉿! 지 애비처럼 입만 살아가지고. . . " 그때 버스는 영동대교를 지나 88도로에 접어들고 있었다.
청두 근처에 비행기가 왔을 때는 이미 11일 자정이 넘어 12일로 접어들고 있는 한 밤중이었다. 잠시 후에 도착한다는 비행기 안내방송을 듣고 밖을 보니, 멀리 보이는 몇 개의 불빛과 비행기 꼬리만 보였다. 잠시 뒤 덜커덩 거리는 소리와 더불어 비행기는 착륙에 성공했고, 빗줄기는 더욱 강해져 활주로 주변을 전혀 볼 수가 없었다.
지문 채취를 포함한 입국수속을 마치고, 택시를 기다리는 긴 줄에 섰다. 사람도 많지만, 택시도 끊임없이 도착하여 몇 분만에 택시를 탈 수 있었다. 오랜만에 택시 기사와 중국어를 연습하니 설레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다. 엉뚱한 내용을 물으면 곤란하니까, 일단은 내가 잘 알고 익숙한 대와 내용, 즉, 날씨, 음식 등을 이야기하며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바라본 외부>
전에 있던 "심지 코지 게스트하우스"는 이름을 바꾸어 "老宋青年旅舍(노송청년여사)"로 바뀌어 있었다. 객실에서 바라다 보이는 외부 건물은 우중충하고 칙칙했다. 몇 년전 이집에 왔을 때, 손님들로 북적대던 모습은 찾을 수 없고, 손님없는 마당에는 개 한 마리와 고양이 세 마리가 제 세상인양 사람을 본체만체하고 오만방자하게 굴었다.
늦은 점심을 먹고, 찾은 곳은 무후사다. 삼국지의 주인공인 유비와 제갈량 등을 모신 곳이다. 당나라 때의 비석 그대로 남아 있는 당비(唐碑)는 반드시 봐야할 것으로 나와 있으나, 유리문으로 닫혀있고, 글자도 잘 보이지 않아, 실제로는 그냥 사진 찍고 오는 곳으로 되어 있는 듯 했다.
<혜릉: 유비를 모신 무덤이다>
안쪽으로 좀더 들어가면 혜릉(惠陵)이라는 글자가 보이는데, 둥근 산처럼 보인다. 이곳이 바로 유비의 묘다. 사람들은 그냥 한 바퀴 돌고 밖으로 나간다. 참고로 제갈량의 묘는 섬서성 보계시(宝鸡市) 있다고 한다.
<제갈량>
<유비>
출사표는 전쟁에 나가기 전에 제갈량이 왕에게 고한 내용이다. 출사표 이야기는 많이 들어왔는데, 전쟁에 나가기 전에 술을 마시면서 전의를 다지는 영화를 많이 보아왔고, 전에 학교에서 수학능력시험 보러 가기 전날에는 출정식을 하는 것도 보았다. 아마도 거사를 행하기 전날 어떤 행사를 하는 것은 꽤 오래 전부터 행해진 일 같다. 어떻든 출사표는 중국인이 보기에 대단한 명문이라고 한다.
"선제께서는 창업의 뜻을 반도 이루시기 전에 붕어하시고, 지금 천하는 셋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 선제께서는 신의 낮고 보잘 것 없음을 꺼리지 않으시고, 귀한 몸을 굽혀 신의 오두막집을 세 번이나 찾으시고 제게 지금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을 물으셨습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신에게 역적을 치고 나라는 되살리는 일을 맡겨 주시옵소서."<출사표의 일부>
<출사표. 여기에 써 있는 것은 전출사표. 후 출사표도 있으나, 후출사표는 가짜라는 설도 있다. >
<유비의 묘 앞에 누가 꽃 다발을 갖다 놓았다.>
무후사 바로 옆에는 진리(錦里: 금리)라는 거리가 있다. 한국의 인사동보다는 좀더 북적거리고 먹는 장사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그 중에도 토끼 머리만 갖다 놓고 파는 집이 있었는데, 그 귀여운 토끼를 어떻게 잡아서 머리만 골라 먹는지 모르겠다. 전에 중국어 학원에 다닐 때, 성도에서 온 선생님이 계셨는데, 토끼 음식을 시켜놓고, 맨 처음 토끼의 눈부터 빼 먹는다는 말을 듣고 기겁을 한 적이 있었다. 하기야 한국인이 번데기를 먹는다는 말을 듣고, 기겁을 하는 외국인을 많이 본적이 있으니, 도찐개찐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 중에 뱀도 먹고, 지렁이도 먹는다는 사실을 아는 외국인도 있겠지만.
<금리 입구>
<가위를 든 예술가가, 손님의 옆 모습을 보면서, 검은 종이를 가위로 오려내, 순식간에 옆모습을 만들어 주고 돈을 받는다>
<진리에는 음식을 현장에서 만들어 보게하는 체험장이 도처에 있다.>
<금리의 한 골목>
<금리와 무후사를 지나 오다가 눈길을 확 잡아 끄는 과일을 보고 사 먹어 보았다. 약간 새콤하고 달짝지근하다.>
휴식을 취하고자 문화공원에 갔다. 한쪽 넓은 코너에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뭔가를 마시고 있었다. 유심히 살펴보니, 대부분은 차를 마시고 있었고, 더러 돈 많은 노인은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누가 운영하는지 모르지만, 젊은 아줌마 또는 젊은 청년 종업원이 주문자들이 어디 없나 하고 수시로 사방을 돌며 매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앉아 있는 노인들은 계속 해바라기씨를 까먹고 있었다. 차를 마시는 중간에도, 맥주 안주에도, 담배를 피우는 중간에도 해바라기 씨는 입속으로 연달아 들어가고 있었다. 해바라기 씨는 보통 해바라기보다 좀더 크고, 짭조롬하고 달짝지근 했는데, 아마도 안주 및 심심풀이로 먹는 것은 일반 해바라기 씨와 종류가 다르고, 그 조리법도 다른 듯이 보였다. 하여튼 처음에는 "이까짓 거 먹을 것도 없는 데 먹어서 뭐해", 라는 상태에서 나중에는 중독되어 아무 생각없이 계속 씨를 까서 입어 넣고 있는 나 자신을 보고, 환경에 쉽게 적응하는 것이 인간이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문화 공원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풍경의 아름다움을 먼저 아는 사람은 아마도 사진사인 듯! 망원 렌즈를 장착한 사진사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촬영에 여념이 없었다.>
자리를 옮겨 연잎이 우거진 곳으로 갔다. 조그만 연못에 연잎과 연꽃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 자라고 있었고, 주위에는 찻집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었다. 바로 옆에는 사천성 오페라인 川剧(천극) 공연장인 蜀风雅云(촉풍아운: 슈펑야윈) 공연장이 있었다. 벽에는 연극에 출연하는 배우들의 사진이 걸려있었는데 특이한 분장과 예사롭지 않은 눈초리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사천 연극 배우 사진: 벽에 붙어 있다.>
<문화 공원 내의 연못>
연못을 돌다보면 아름다운 꽃과 풀과 나무 그리고 그 물속에 비친 빛이 사람의 영혼을 빼앗는다. 특히 물 속에 비쳐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거리는 물결에 의해 부서졌다 모이는 나뭇잎과 꽃잎이, 간드러진 바이올린 연주에 춤을 추는 나비처럼 흔들거린다. 지상에서 붉게 핀 진홍빛 꽃들은, 연녹색의 못물과 조화를 이루어 환상적인 하모니를 이루고 하늘로 솟다가 다시 물속으로 떨어져 부서진다.
사방은 점점 어두워져 가고, 물결이 살랑살랑 일어 분홍색의 꽃잎을 어루만지면, 수중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는 양, 온 세상이 잔잔한 출렁임으로 가득 찬다. 어디에서 이름 모를 새들이 떼를 지어 날아왔다 날아간다. 내가 여행을 왔는지, 아니면 내가 나룻배를 타고 별유천지비인간에 왔는지 알 수가 없다.
이 한가한 즐거움이 당장 내일부터 닥칠 고산병의 전조임을 아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나는 지금 해발 500미터의 성도에 있다. 내일 2600미터의 마얼캉으로 그리고 3000미터 4000미터로 이어지는 강행군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잠시 잊고, 흘러가는 구름과 발 밑에 출렁이는 꽃잎이 어우러진 수채화를 보며 넋을 잃는다. 한줄기 저녁 바람이 나를 감싸고 돌다가 하늘로 올라가 멀리 멀리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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