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Beautiful the Nature is! - Albatross

Korea

내장산 등산기(Naejang Mountain)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2. 7. 29. 11:46

 

<등산 코스>


 

내장산 등산기

 

 

 

2008년 11월 10일 아침 7시 30분에 내장산 탐방지원센터를 출발했다. 내장산은 등산보다는 단풍을 보러 많이 찾는 산이다. 나도 처음에는 단풍 사진만 찍으려 했으나, 지리산 종주를 한 뒤로 산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지리산 극기 훈련을 치른 후로는 어떤 산이든지 무섭지 않게 되었다. "지리산도 종주했는데, 그까짓거, 뭐"라는 태도로 바뀌었다. 그래서 오늘도 산의 일 부분을 갔다 오기 보다는 내장산 종주 코스를 택했다.

 

 

내장산은 보통 10월 말부터 11월 초까지가 단풍이 절정을 이루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예보에 의하면 올해 단풍 절정은 11월 11일로 되어 있다. 오늘이 11월 10일이니 신문에 난 예고가 맞다면 절정 중에서도 최고의 절정에 내장산을 찾는 것이다.

 

 

 

<내장산 단풍>

 

최근 들어 낮 기온과 밤 기온의 차이가 심해서 뿌연 안개가 하루 종일 끼었었는데, 오늘도 예외는 아니다. 날씨는 청명하나 내장사와 그 주위에 끼고 도는 안개가, 마치 백내장 섣불리 걸린 사람이 바깥 세상을 보는 느낌이다.  

 

 

모텔 주인의 말에 따르면 단풍 철은 휴일이나 평일이나 관계없이 내장산은 항상 구경꾼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고 했다. 어제도 오전 10시 이후에 온 차들은 주차 공간이 없어서 차를 멀리 대고 걸어오든지, 그렇지 않으면 돌아가야 했었다고 말했다.

 

 

<매표소에서 내장사까지 2.5키로는 단풍으로 불타고 있었다.>

 

 

 

<내장사 가는 길>

 

입구에서부터 내장사까지 약 2.5키로 구간에 걸쳐서 그야말로 "내장산의 단풍"이 펼쳐진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단풍은 매표소에서부터 내장사에 이르는 구간에만 존재한다. 내장산의 중부, 또는 상부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2005년 여름에 여기에 왔을 때, 푸른 단풍을 보다가, 오늘 찬란하게 타오르는 단풍을 보니 전혀 다른 천지에 와 있는 것 같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가끔 보이는 등산객을 제외하면, 내 앞으로도 내 뒤로도 텅 비어 있는 아스팔트 길이다. 아스팔트 길 양쪽으로 단풍은 절정에 치달아 있었다. 가끔 잎이 진 것도 있고, 또 가끔은 아직 푸른 빛을 간직한 단풍도 눈에 띄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최고의 경지에 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곱게 물든 단풍도 있었고, 약간 검은 빛이 도는 칙칙한 단풍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매표소에서 내장사 입구인 일주문까지 그야말로 시뻘건 단풍이 훨훨 휙휙 소리를 내며 불타고 있다. 설악산의 단풍이 유명하다고 하지만, 확실히 설악산 단풍은 내장산에 비교할 바가 못 된다.  

 

 

아스팔트 길이 있고, 그 옆에 또 산책로가 나 있어서, 어느 길을 택해서 가든지 단풍은 끝없이 펼쳐져 있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붉은 터널을 통과하면 작은 연못에 다다르게 된다. 물 속에 비치는 내장산과 정자가 산뜻한 조화를 이루며 반사의 참 맛을 느끼게 해 준다.

 

 

 

<케이블카 바로 앞에 있는 연못과 정자>

 

 

일주문 근처에 도착하니 마침 태양이 서서히 모습을 들어내고 있었다. 지금 내가 단풍을 바라보는 것은 순광(태양을 등지고 보는 것)이나, 역광(태양을 바라 보는 것)이 아니라, 사광(태양과 사진사가 90도를 이루는 것)이다. 뿌연 안개가 햇빛을 받아 마치 화재가 나 시뻘건 불이 나오기 직전 연기가 부서져 나오는 것 같다. 그 속을 걸으며, 보며, 느끼며 호흡한다. 그 속에 나는 없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내 영혼만이 존재한다.   

 

 

<뜨는 태양을 사광으로 받아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말이라는 것은 본 것과 느낀 것을 표현하는데 적절하지 않은 도구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래도 현존하는 것 중, 인간이 가진 가장 최선의 도구가 말뿐이 없어서 그렇지, 나의 느낌을 말로서는 적절히 표현할 수가 없다. 그래서 자신의 느낌을 좀더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각종 수사 기법을 사용할 도리밖에 없음을 새삼 깨닫는다. 이런 경우 백 마디 말보다는 사진 한 장이 낫다는 속담으로 나의 느낌을 대신하고자 한다. 그렇지만 생각나는 대로 몇 글자 적지 않을 수 없다.  

 

 

 

<단풍길>

이른 새벽 단풍 길 밟고 간다.


호젓하다.
바람 한 점 단풍 잎을 스쳐간다.   
어슴프레한 안개 속에 색동저고리 펄럭인다.

 

한 줄기 햇빛
단풍 잎에 부서졌다.
내 영혼이 그 속에 나부낀다.
내 청춘도 그 속에 출렁인다.  

눈물이다.
모든 것은 눈물이다.


이른 새벽 단풍 길 밟고 간다.

 

 

 

<내장사의 일주문: 조금 걸어가면 내장사가 나온다.>

 

내장사 가기 전, 내장사 입구인 일주문에 도달한다. 거기에서 오른 쪽으로 올라가는 길이 바로 내장산 일주 코스다. 평범한 그러나 좀 가파른 길을 따라 어느 정도 오르면, 두 노인 부부가 운영하는 노천 술집 겸 음식점이 나온다. 안내판이 이채롭다. "이곳에서 쉬었다 가면 일년 내내 건강합니다."라고 본래 써 있었다. 그러나 만족스럽지 못한지 "이곳에서 쉬었다 가면 평생 일년 내내 건강합니다."라고 평생을 첨가해 두었다.  

 

 

조금 올라가면 벽련암에 도착한다. 아침이라 그런지 문이 닫혀있다. 왼쪽으로 벽련암을 끼고 오른쪽으로 계속 오르면 조선말기 유림들이 명성황후를 추모하여 제사를 지내고 원수를 갚을 것을 맹세했던 석란정지가 나온다. 표지판과 글자만 남아 있다. 계속되는 갈지자(之) 산길을 따라가면 드디어 서래봉에 도착한다. 9시가 조금 넘었다. 8시 정각에 일주문에서 출발했으니 한 시간이 좀 더 걸린 셈이다.

 

 

<서래봉 가는 중간에 나타나는 석란정지: 오른쪽 바위>

 

 

농기구인 써레 발을 닮았다하여 이름 붙여진 서래봉은 아래쪽에서 보면 웅장한 바위 덩어리이나, 정작 서래봉 위에서 보면 바위 하나 보이지 않는다. 그저 높은 산 위에 와 있는 느낌이다. 그 아래 내장산이 붉은 병풍 속에 살짝 모습을 들어 내놓고 있다. 동쪽으로 산 아래 안개가 계곡을 덮고 있다. 땀을 닦으며 사과 하나에 물 한 모금 마신다.

 

 

그때 갑자기 어디서 벼락치는 소리가 들린다. 사실 올라오면서 "벼락이 칠 수 있으니 철 난간을 피하라"는 안내판을 보고 왔기에 나는 정말 날벼락 치는 줄 알았다. 눈을 돌려보니 남자 하나에 여자 네 명이 갑자기 통성기도를 시작했던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들어본 가장 큰 목소리는 군대있을 때, 의장대 대장의 쩡쩡 울리는 지휘 목소리다. "받들어 총" 할 때는 천지 나뭇잎이 흔들리는 듯하다. 그런데 바로 옆에서 이들의 통성기도는 모르면 몰라도 의장대장의 목소리를 비웃듯 의장대장의 목소리보다 더 컸다. 내가 알기에, 보통은 기도라는 것이 한 사람이 기도하면 나머지는 가만히 있다가 끝에 "아멘"하고 끝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들은 동시에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는 말로, 천지가 떠나갈 듯이 기도를 한다. 갑자기 너무 큰 소리를 냈는지, 숨이 막히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기침을 해가며 가슴을 친다. 이들의 기도는 정확히 5분 동안 계속되었다.

 

 

문제는 기도가 끝난 후, "여기 높은 산, 공기도 좋고, 하나님과 더 가까이 왔으니 다시 한 번 기도합시다."라는 말과 더불어 서래봉 통성기도 제 2막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때 마침 올라오던 다른 등산객이, "음식을 버리는 것만이 오염이 아니라, 저런 것들도 오염여! 이 조용한 산에 와서 무슨 짓이야. 서래봉에 오니 쓰레기만 있구먼. 저것들 때문에 서래봉이 곧 쓰레기봉 되었다가, 쓰레봉 되겠어."라고 무지막지하게 말하고는 인상을 쓰면서 지나친다. 기도 소리는 하늘을 찌르다 못해, 하늘에 구멍을 낸다. 나는 그들을 욕할 것도, 또 그들을 욕하는 사람을 욕할 것도 없이, 내 싫으면 떠나면 된다는 심정으로 그 자리를 떴다.

 

 

 

 

<산 정상에서 바라 본 남쪽 내장사>

 

 

<고막이 갈기갈기 찢겨 나가 허공에 뿌려질 것 같이 큰 통성기도:
"주여, 주여 하더이다.">
 

 

 

서래봉에서 불출봉 가는 길은 상당히 힘들다. 종주 코스 중 가장 난코스다. 몇 십미터 되는 철 계단이 여러 개가 놓여 있고, 이 계단을 따라 한 참 내려 갔다가 다시 올라가야 한다. 나의 걸음이 느려서인지, 그 기도하는 사람들이 벌써 나를 따라왔다. 가다가 좀 미끄러지면 보통은 "아이구, 어어"와 같은 감탄사를 내나, 그 기도단은 그때마다, "아부지, 아부지"했다. 내가 그들을 보내고 좀 늦게 가면 그들은 또 기도를 하여 나와 만났고, 내가 앞으로 가면 뒤 따라와 나와 또 만났다. 결국 기도단들의 호위 속에 안전하게 불출봉에 다달았으니, 이들의 기도 덕분에 내가 살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였다.  

 

 

불출봉에는 그래도 상당히 많은 등산객이 올라와 바닥에 자리를 잡고 음식을 먹고 있었다. 정상에 전망대가 있어서 오른쪽으로 내장 저수지 그리고 그 옆에 비스듬히 용산 저수지가 보였다. 물론 반대편으로는 내장산이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인다. 동쪽으로는 여전히 산 속에 둘러 싸인 안개 무리가 보인다.

 

 

<불출봉의 전망대. 경치가 가장 빼어나다>

 

 

<불출봉의 팔불출>

 

 

불출봉을 떠나 망해봉으로 향한 것은 11시가 좀 못 되어서다. 여기서부터는 등산객이 뚝 끊어지고 나 혼자 걷는다. 아마 보통은 서래봉으로 올라와서 불출봉에서 내려가든지, 불출봉으로 올라와 서래봉으로 내려가는 것이 일반적인 코스인 듯 하다. 망해봉의 어감이 좀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나 혼자만일까? "집안이 망해서 망해봉"이라는 느낌이 제일 먼저 들었다. 그 다음은 "민망해, 망해도 싸다"는 말이 떠 올랐다. "송해"나 "백남봉"도 떠 올랐다. 한자로는 望海峰으로 바다를 볼 수 있는 봉우리라는 뜻이다. 바다는커녕 저 멀리 정읍시가 안개 속으로 보일까 말까다. 지리산에서처럼 점심으로 초코파이에 캔 참치 그리고 감 하나를 깎아 먹는다.

 

 

<불출봉에서 본 내장산 계곡>

 

 

<망해봉 표지판>

 

 

거기에서 계속 내리막길과 다시 오르막길을 걸으면 연지봉이 나오고 조금 가면 또 까치봉이 나온다. 궁금하기 짝이 없으나, 연지봉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한자가 없어서 모르겠다. 까치봉은 한자가 필요없는 말이렸다. 왜 까치봉인지 모르지만 이해는 되는 말이다. 그때 내 옆에 있는 젊은 남자가 "이놈의 마누라는 뒈졌나? 20분을 기다려도 안 오네."라며 투덜댄다. 그의 마누라로 보이는 여자가 죽는 시늉을 하며 나타난다. "그것도 못 올라와서, 헐떡여. 차라리 죽는게 나." 라고 남자가 한 마디 한다. 이 말 듣고, 나 같아도 열받았을 것이다. 여자는 성질이 나서, "혼자가면 어떻게 해, 나 죽는 줄 알았구먼. 사람이 인정이 있어야지." 둘은 한 참을 싸웠으나 해결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길을 떠나야 했다.  

 

 

 

<까치봉에서 본 서래봉>

 

 

까치봉에서 40분을 더 가면 내장산 최고봉인 신선봉(763미터)에 오른다. 오른 쪽으로 내일 등산할 백양사가 있는 백암산이 보인다. 왼쪽으로는 서래봉, 불출봉, 망해봉은 물론, 저 멀리 원적암과 벽련암이 물 속에 펼쳐진 하늘 그림처럼 훤히 보인다.

 

 

연자봉으로 가면서, 이미 너무 지쳐있음을 느낀다. 등산을 하다가 힘이 들 때마다 나도 모르게 나오는 것이 "울려고 내가 왔나, 웃으려고 왔나"다. 누가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니요, 내가 좋아서 왔건만, 힘들 때마다 내가 미쳤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다. 그러나 정상에 오른 후의 그 짜릿함, 아래로 내려와서의 승리감, 그리고 미지의 세계를 밟아 보았다는 희열감이 옛 쓰라린 추억을 망각시키고 다시 나를 이런 산으로 내모는 것이다.

 

 

<연자봉에서 내려오면서 찍은 케이블카. 연지봉과 연자봉은 다르다.>

 

 

연자봉에서 장군봉을 거쳐 가는 것이 일주 코스다. 그렇지만 나는 여기서 케이블카가 있는 전망대 코스로 내려가야 했다. 그 첫 이유는 힘이 너무 소진 되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그쪽으로 내려가면 내장산에 와서 내장사를 보지 못하고 돌아가기 때문이다. 연자봉에서 내려오는 길은 끊임없는 계단의 연속이었다.

 

 

저 아래 내장산 계곡이 완전히 붉은 색으로 도배를 했다. 나는 풍선을 타고 공중을 날면서, 단풍 밭을 지난다. 누가 이 도화지에 저렇게 노랗고 붉은 꽃잎을 뿌려 놓았을까? 누가 맑은 호수에 저다지도 투명한 하늘을 그려 넣었을까? 누가 저리도 곱게 뚝뚝 떨어지는 물감을 가을 잎에 뿌려 놓았을까?

 

 

전망대 주변은 이미 케이블카를 타고 온 사람으로 북적대고 있었다. 기념으로 동동주 한 잔 마실까 하다가, 걸어 내려가야 할 길이 있기에,  그냥 단풍으로 채워진 황홀감을 가슴에 안고, 내장사가 있는 아래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약 30분을 내려오니 내장사다.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마지막 코끼리 열차가 떠난다는 방송이 흘러 나온다. 마지막 빛을 이용해 사진을 찍으려고 분주히 움직이는 젊은 커플이 부러움을 자아낸다. 나는 내려오면서 앞으로, 또 뒤로 계속 사진을 찍었다. 오늘 찍은 사진이 약 300장 된다. 약 24 기가 바이트의 저장 공간에 바테리를 3개 가져 갔으니 일주일 동안 매일 400장을 찍어도 남아 돌 용량이다.

 

 

  

 

<내장사에서 나가는 길>

 

  

내 차가 주차되어 있는 곳으로 오니 5시다. 아침 7시 반에 등산을 시작했으니 9시간을 걸은 셈이다. 그러나 별로 피곤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몸이 이미 훈련이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오늘 밤에도 전혀 겪어보지 못한 이국적 경험이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여행에서 낮 동안의 경험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은 많은 것을 잃는 여행이 될 수 있다. 밤에만 가질 수 있는 경험은 낮 경험에 못지 않은 중요성을 갖는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고 경험이다.  

 

 

나는 자동차의 시동을 걸고, 헤드 라이트를 켰다.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내장산 계곡을 빠져 나와 오른쪽으로 향했다. 단풍길이라는 팻말이 눈에 보인다. 꾸불텅 거리며 돌아가는, 산 중턱에 있는 49번 지방 도로를 따라 약 10 여분 동안 눈길을 돌릴 수 없었다. 눈부신 단풍 때문이다. 그러고보니 내장산은 단풍으로 둘러 싸인 산이다.

 

 

얼마 뒤 전남 장성에 있는 백양사가 내 앞에 나타날 것이다. 애기 단풍으로 유명하다는 백양사다. 새롭게 시작되는 제2의 인생을 맞이하듯, 나는 휘파람을 불며 차창으로 들어오는 싱그러운 바람을 가슴으로 맞이했다. 그리고 큰 소리로 "그래, 이거야"라고 소리쳤다.   

 

 

오늘 걸은 거리: 약 15키로
걸린 시간: 약 9시간

 

(2008년 11월 19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