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백산 산행기
2008년 12월 7일 7시 30분에 동서울을 출발한 풍기행 첫 버스는 정확하게 10시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어떤 관광버스가 다른 사람들을 태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들은 소백산에 가는데 우리도 그곳에 가는지 물었다. 만약에 비로사라는 절 쪽으로 간다면 무료로 태워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얼떨결에 그러겠다고 말했다. 본래는 희방사로 가려고 했던 우리는, 한 순간에 출발지가 희방사에서 비로사로 바뀌고 말았다. "어차피 소백산은 소백산이지, 뭐 출발지를 따질 필요가 있나?"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참 인생이란 별 것도 아니다. 하루 아침에, 단칼에 바뀌는 것이 인생이다. 대학 입시 원서 낼 때, 단지 몇 분 생각으로 자기의 운명이 결정되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보아왔다. 또한 결혼 상대자도 하루 아침이 아니라 순간에 바뀌기도 한다. 내가 아는 어떤 선배는 약혼자가 모임에 늦게 나타나는 바람에, 그 순간 옆에 있던 어떤 여자와 눈이 맞아 결혼했다. 또한 몇 시 비행기를 타려고 했는데, 무슨 일이 있어서 그 비행기를 탈 수 없었던 사람이 그 비행기가 추락해서 목숨을 구했다는 이야기를 가끔 듣기도 한다. 정말로 알다가도 모르는 것이 사람 팔자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면 운명이 우연이고, 우연이 운명이다. 어떻게 말을 찍어다 붙이는가에 달려 있을 뿐이다.
10시 반에 삼가 탐방지원센터에 도착했다. 삼가 탐방지원센터라. "삼가" 하니 "삼가 명복을 빕니다."가 먼저 떠오른다. 그러고 보면 우리 나라 지명도 참 이상한 데도 많다. 우선 부산에 "대변항"과 함평에 "학교면"이 있다. 해남에 "고도리"가 있고, 증평에는 "연탄리"가 있다. 양산에는 "소주리"가 있고, 군위에는 "파전리"가 있으며, 순창에는 "대가리"가 있다. 이상한 이름의 금메달은 경주가 차지한다고 봐야 한다. 경주에는 "외칠리"와 "내칠리"가 있고, 심지어 "박다" "박으리"도 있다. 위에 열거한 네 지명은 모두 다 한 곳에 붙어 있다. 하기야 금산에 있는 나의 고향은 "삼태기"가 아니라 "삼태리"다.
<비로사>
10시 반에 주차장을 출발한 우리 일행은 10시 40분에 비로사라는 절에 도착했다. 우리 일행이라고 해봐야 내 친구와 나 둘 뿐이다. 이 절에 있는 건물 6채 중 3채는 재건축을 하고 있었고, 나머지 건물만 단아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공사하는 굉음이 계곡을 진동하고 있었고, 신도나 방문객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따뜻한 양지쪽에서 쭈그리고 앉아, 감 한 개 꺼내 먹었다. 반쯤 자연 냉동된 대봉감을 먹는 것은 꿀맛에 비유할 바가 아니었다. 모르면 몰라도 앞으로 단 것을 먹을 때 비유표현으로 "꿀맛"이라는 표현 대신 "한 겨울의 반쯤 얼린 대봉 맛"이라고 바꿔야 할 것이다.
<담양쪽에 있는 눈꽃 나무>
등산다운 등산은 비로사부터 시작된다. 비로사까지는 산책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로사에서부터 갑자기 등산객이 많아졌다. 단체 관광객이 꼬리를 몰고 올라온다. 혼자 가는 여자에게 접근하여 작업을 펼치려는 내 친구의 노력은 가상하나, 오늘은 왜 그런지 결과가 신통치 않다. 두 명의 여성을 노렸다가 실패한 내 친구는 "이거 내 실력이 녹이 쓴거야, 일진이 사나운 거야"라고 한 마디 한다. 이 나이에 여인에 대한 집념은 대단하다. 그러고 보니, 여인에 대한 생각이 없는 목숨은 죽은 목숨과 다를 바가 없다고 이 친구가 말한 기억이 난다. 정말 그럴까? 하기야 조물주의 첫 목표가 종족 번식이니까 조물주의 입장으로는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이 말에 섭섭한 사람이 어디 한 두 명이랴.
<내려오는 길목에 있다>
배낭이 무거워서 그런지 오늘따라 힘이 들었다. 조금 올라가도 금방 숨이 차고 다리가 무거웠다. 설악산에 갔다 온 후, 알 수 없는 이유로 힘을 쓰지 못했던 내 친구는 "체력 역전"이라고 큰 소리 치면서 좋아하는 듯이 보인다. 자기는 바람처럼 몸이 가볍다고 의기양양하다. 앞서가는 그를 붙잡아 뭐래도 먹고 가자고 말했다. 그랬더니 소주 한 잔을 마시면 기운이 날지 모르니 한 잔 하자고 했다. 반 잔쯤 먹는데, 옆에 대 여섯 명의 산행꾼이 죽는 시늉을 했다. 친구가 한 잔 하겠냐고 그들에게 물었더니, 너도나도 한 잔씩 달란다. 정상에서 한 잔 하려고 준비했던 소주가 여기서 비운을 맞이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친구도 이 사람들이 다 마시면 어떻게 하나라고 걱정이 되었는지, 산에서 소주 마시면 더 지친다는 둥, 소주 먹고 죽은 사람도 있다는 둥 엄살을 피워서 겨우 두 잔만 주는 행운을 갖게 되었다. 어디가나 말 조심 해야 하는 법이거늘, 그 자리에서 금쪽 같은 25도짜리 소주가 다 날아갈 뻔 하지 않았나?
<정상에 도착하기 직전의 모습>
정상을 약 50미터 남겨두고 빙판 길이 나타났다. 오랜만에 아이젠을 착용하고 저벅거리며 올라가는 재미 쏠쏠하다. 나무에 핀 눈꽃이 아마치오 사진사의 눈을 사로잡는다. 친구를 앞서 보냈다. 뒤에 보이는 계단을 감싸고 도는 구름과 저 멀리 능선을 넘어 단양에서 오는 눈발이 내 마음을 사로 잡는다. 마치 펄벅이 지은 "대지"의 메뚜기떼를 연상시킨다. 여지 없이 나의 셔터의 표적이 된다.
<소백산 정상인 비로봉>
비로봉 정상에 오르니 갑자기 날씨가 돌변했다. 안개와 눈과 구름이 초속 20미터쯤으로 여겨지는 바람과 함께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혹독했던 어제의 추위가 좀 풀렸다고는 하나, 체감 온도는 영하 20도 내지 30도는 되는 듯했다. 바람이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불었고, 눈발이 휘날렸기 때문이다. 정상에 모여있던 등산객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깡다구 좋은 3명 정도가 남았다. 30초 이상을 견딜 수 없는 상황이다. 나는 그 동안 사진사의 근성이 좀 생겨서 목숨을 잃더라도 몇 장은 찍으려고 했다. 그런데 옆에서 내 친구가 사람 죽겠다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빨리 가자고 실성한 사람처럼 외쳐댔다. 대범하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운 내 친구가 그렇게 절박하게 가자고 외쳐대는 것은 처음 본다. 하기야 이 상황에서 미치지 않으면 이상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할 짓은 다 했다. 비록 1분의 짧은 순간이었으나 표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고, 사방을 돌아보며 한 방씩은 셔터를 눌렀다.
<능선에 있는 눈꽃>
비로봉에서 내려오면서 등산로 양쪽으로 백설의 장관이 펼쳐진다. 잔잔한 나무들이 완전히 눈꽃으로 뒤덮였다. 이런 눈꽃은 담양쪽 즉 북쪽에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앞에 보이는 삼각형 평원과 뒤에 보이는 비로봉이 반쯤 눈발에 가려져 아스라이 보인다. 일렬로 안개 속을 뚫고 말없이 걷는 등산객의 물결이, 숙달된 조교의 지시에 따라 화생방 훈련을 받으러 끌려가는 훈련병처럼 보인다. 더 멀리 좌측에서 올라오는 등산객은 더욱 의미하게 보인다. 아무런 말도 필요없고,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는, 그저 묵묵히 앞 사람의 발자국만 보고 걷는 무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움직인다. 눈꽃과 눈발과 구름과 안개가 등산객과 뒤섞여 아마도 다시는 내 평생 영원히 보지 못할지도 모를 장관을 연출한다. 내가 언제 이곳에 올 것이며, 이곳에 다시 온다 해도 이런 순간을 과연 다시 맞이할 수 있을까?
<등산객이 비로봉으로 걸어간다>
역시 인생은 운과 노력의 결합이지, 그 어느 하나만이 아니다. "노력 끝에 성공이 온다"고 하지만 이것은 우리를 위로하려고 하는 말이다. 뼈빠지게 노력해도 패배만하는 사람을 우리는 주위에서 흔히 본다. 그 반대로 슬렁슬렁 노력을 해도 하는 일마다 성공하는 사람도 주위에서 볼 수 있다. 세상은 너무나 불공평하다. 중요한 것은 이 불공평한 세상에 얼마나 잘 적응하느냐이다.
나는 여기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그럴싸한 말에 세뇌되었는가 생각해 본다. 우리가 벌써 말을 하고 언어를 사용하는 것부터 그 언어와 그 문화에 세뇌된 것이다. 우리가 말을 하고 언어를 사용하는 한, 아무리 묵상을 하고,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을 버린다해도, 그리고 마음을 비우려고 노력한다 해도, 우리는 절대로 마음을 비울 수 없고, 욕심을 버릴 수 없다. "버린다, 비운다"라는 말이 벌써 내 마음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될 수 없는 일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것이 가상하기는 하나, 노력한 만큼의 큰 성과는 얻지 못할 것이다. 김삿갓이 바람처럼 구름처럼 떠돌아 다니며 살듯, 주위 환경에 적절히 적응하며 사는 것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명을 채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될지도 모른다.
더 이상 추위를 견딜 수 없어 산불 예방 초소에 들어갔다. 좁은 공간에 검은 옷으로 무장한 등산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밖으로 나가야 하지만 나가기 두려워하는 마음이 그들의 얼굴 표정에 잘 나타나 있다. 그들의 입김이 뭉치고 흩어져 무리를 이루면서 마치 고호의 "별이 빛나는 밤"을 연상시킨다. 마호병에서 뜨거운 물을 따라 컵라면에 부었다. 준비해간 돼지고기와 김밥에는 손이 가지 않았다. 컵라면 하나와 소주 두 잔이 우리가 먹은 음식의 전부였다. 긴장감으로 목이 마르고 목이 메였기 때문이다.
<능선의 나무>
예방 초소에서 나와 하산을 시작한 것은 2시 40분이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하늘은 맑고 바람이 잦아 들었다. 눈꽃 터널을 탄성을 지르며 걷는다. 능선을 따라 걷는 것도 잠시, 우리는 단양의 천동으로 내려갈지, 아니면 희방사로 내려가야할지 결정해야 했다. 능선을 따라가면서 눈을 더 만끽하려면 희방사로 내려가야 하겠지만, 지는 태양과 싸우면서 그쪽으로 내려갈 수는 없었다. 우리는 천동으로 향했다. 천동으로 내려오면서 정상으로부터 약 300미터는 완전히 눈으로 뒤덮인 새하얀 신천지다. 고사목과 잔잔한 나무들이 백색의 향연을 연출한다. 산새 한 마리 울지 않는, 바람 한 점 없는 은세계다. 충격과 감동이 번갈아 온몸을 감싸고 돈다.
<비로봉 근처>
<비로봉으로 올라가는 등산객들>
천동 다리안 관광지에 내려오니 마침 4시 50분 제천으로 가는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 버스는 단양 시내를 돌고 돌아, 어둠을 뚫고 달렸다. 중간에 버스에 타는 사람들은 모두 노인들이었으며, 모두 다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올라왔다. 입구에서 자리에 앉는데 1분 이상이 걸렸다.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산을 오르는 나그네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운전기사는 잔소리 없이 노인이 자리에 앉을 때가지 기다린 후, 출발했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이지만, 나에게는 운전기사가 한 없이 고마웠다.
<천동가는 능선>
제천 시외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여 근처에 있는 아구찜 집에 들어갔다. 아구찜소(小)를 시켰는데, 둘이 먹기 힘들 정도로 그 양이 많았다. 주인 아주머니는 우리를 위해 새롭게 따끈한 밥도 해주었다. 경품이 있다는 "처음 처럼" 소주 병 뚜껑을 열었을 때, 뚜껑에는 "다음 기회에"라는 허탈한 글자가 보였지만, 소주와 얼큰한 콩나물, 그리고 주인 아주머니가 우리를 위해 특별히 갓 지은, 기름이 잘잘 흐르는 흰 쌀밥은, 소백산 정상에서의 컵라면의 부족함을 상쇄시키고도 남았다.
<천동으로 내려가는 길>
7시 반 서울행 버스다. 버스는 어둠을 뚫고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로 달리고 있었다. 오늘 하루 마치 천국과 지옥을 오르내린 것 같다. 귀신에 홀렸다가 살아온 것 같기도 하고, 한 여름 밤에 꿈을 꾸고 깨어난 것 같기도 했다. 등산과 여행을 하면서, 산천을 구경하고 경험하며,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과 호흡을 같이하려는 것이 나의 인생 후반기의 계획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글과 영상물에 남기고 다른 사람과 공유하려는 것이 내가 앞으로 할 일이다. 이런 나의 계획은 참으로 훌륭한 선택인 것 같다. 역시 인생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인생은 선택의 문제다!(Life is a matter of choice!) 그러나 이 선택이 우연인지 운명인지는 잘 모르겠다. 우연이 운명이고, 운명이 우연이기 때문이다.
오늘 걸은 거리: 약 16km 걸린 시간: 약 6시간
(2008년 12월 9일 작성) |
|
'Kore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주 올레 2(Jeju Olleh Course 2) (0) | 2012.07.29 |
---|---|
제주 올레 1(Jeju Olleh course 1) (0) | 2012.07.29 |
백암산 등산기(Baegam Mountain) (0) | 2012.07.29 |
내장산 등산기(Naejang Mountain) (0) | 2012.07.29 |
금산에서 내장사까지(From Guemsan to Naejang Temple) (0) | 2012.07.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