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Beautiful the Nature is! - Albatross

Korea

제주 올레 1(Jeju Olleh course 1)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2. 7. 29. 19:03

제주 올레 1

(8박 9일 간의 제주도 도보 여행기)

 

 

 

<황토민박집의 현수막>

 

 

"간세다리의 바당 올레 하늘 올레"
사람을 약 올리는 말 같기도 하고, 염불 소리 같기도 하다. "너 올레 말레?"처럼 들리기도 한다.

 

 

간세다리는 제주도 말로 "게으름뱅이"라는 뜻이고, 바당은 "바다", 올레는 "큰 길에서 집으로 가는 작은 길"을 뜻한다. 따라서 이것은 "게으름뱅이가 걷는 바다 길 하늘 길"이라는 뜻이다. 즉 천천히 쉬면서 놀면서 걷는 오솔 길이다.  

 

 

언제부터인가 여행을 떠날 생각을 할 때마다 "이번에는 어디를 가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한반도를 샅샅이 돌아 본 것은 아니어도 상당히 많은 부분을 이미 가 보았기에 마땅히 가 볼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책방에서 본 것이 서명숙저 "놀멍, 쉬멍, 걸으멍 제주 걷기 여행"이라는 책이다.

 

 

자동차로 6-7시간 걸려서 통영이나 해남에 가는 것보다 훨씬 쉬운 방법이 제주도였던 것이다! 집에서 김포까지 한 시간, 김포에서 제주까지 한 시간이면 새로운 세계가 전개 된다는 평범한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은 것이다. 제주도하면 패키지 상품으로 2박 3일, 성산 일출봉과 몇몇 명소를 둘러보고 오는 곳이지, 그곳을 내가 두 발로 걷고 오는 곳이라는 것을 꿈에도 꾸어보지 못했던 것이다. 

 

 

 

 

 

<책 표지>

 

 

이 책에 따르면 서명숙씨는 언론사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다가 뜻한 바가 있어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떠났던 사람이다.  그녀는 하루에 20키로씩 걸어 40일 동안 무려 800키로를 걸었다. 그 길을 걸으면서 그녀가 태어난 제주도도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보다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스쳤다고 했다. 그 뒤 한국에 와서, 한 코스 당 15키로 - 25키로 정도의  걷는 길을 만들어왔다. 현재 11개의 코스가 개설되어 있고, 3월 말경 제 12 코스를 개장하고, 6월쯤 13코스를 개장할 예정이라고 한다. 아마도 제주도를 한 바퀴 도보로 걷는 코스를 만드는 것이 그녀의 목적인 듯 하다.

 

 

나는 중학교 때까지 시골에서 자랐다. 금산군 남일면 초현리에 있는 외갓집을 갈 때 "마장리-비모골 -망석동"이라는 들판을 지나 "작수끝"이라는 곳에서 강을 건너 초현리로 걸어 갔었다. 또한 면 소재지인 초현리에서는 동네 대항 배구 대회가 가끔 열렸었는데, 동네 청년들이 배구하는 것을 응원하기 위해 4키로나 되는 그 "마장리-비모골-망석동"길을, 초등하교 시절에 걸어가기도 했었다. 언제부터인가 그런 길을 한 없이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몇 페이지 읽고, 바로 내가 원하는 것이 이런 길을 걷는 것이라고 단정지었다.

 

 

2009년 3월 9일 책을 구입했고, 그날 저녁 3월 11일자 제주행 비행기를 예약하였다. 지리산 등산 갈 때와 비슷한 준비를 했다. 며칠 있을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짧으면 5일 정도, 길면 15일 정도 있다 오리라고 생각했다. 노트북 컴퓨터를 가지고 갈까 말까 망설였다. 배낭에 넣었다가 뺐다가 또 몇 번 하다가, 무거운 것을 지고 어떻게 하루종일 돌아다니겠느냐는 아내의 말을 듣고, 과감히 제외시켰다. 돈은 약 40만원 가지고 갔으나 신용카드가 있었기에 돈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 본 제주시>

 

 

3월 11일 아침 8시 20분 김포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약 50분 후 제주 공항 근처를 날고 있었다. 비행기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제주도의 초록의 싱그러움이 여기가 남쪽 나라임을 나에게 알렸다. 해외에 갈 때마다 설레던 마음은 제주도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기야 제주도도 해외가 아닌가?  

 

 

 

창밖을 보니 내가 탄 비행기의 바퀴가 덜컹 거리며 내려오고 있었다. 곧 착륙한다는 기내 방송이 들렸다. 구부려져서 내려오던 바퀴는 중간 부분이 곧게 펴지면서 힘차게 묶여지는 느낌이 들었다. 비행기 바퀴가 땅바닥에 어떻게 닿는지 궁금하여 유심히 살폈다. 서서히 내려 오더니, 수백키로의 비행기 속도에서 오는 마찰에, 바퀴는 땅에 닿는 순간 파란 연기를 "퍼썩" 내뿜으며 팽이가 돌 듯이 맹렬한 속도로 돌았다. 그러더니 속도를 줄여 서서히 돌았다.  

 

 

배낭을 찾아 어떻게 할까 잠시 생각했다. 북적거리던 사람들이 삼삼오오 순식간에 공항을 빠져 나갔다. 나도, 우주를 떠도는 외로운 별처럼, 묵직한 60리터 배낭을 메고 어슬렁 어슬렁 공항을 빠져 나왔다. 말이 잘 통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지금부터의 여행은 사실 해외 여행과 마찬가지다. 나 스스로 시내버스와 시외 버스를 타야 하고, 내가 잘 곳을 골라 들어가 흥정을 해야한다.

 

 

버스를 여러 번 타야할 텐데 그때마다 동전을 꺼내는 것이 귀찮을 듯 하여 T money 카드를 구입하려고 했다. 제주도에서는 서울의 교통신용카드는 통용되지 않는 지역이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 10여분을 왔다갔다 한 후에 1번 게이트로 나가 이상한 다리 밑에서 2만원짜리를 구입했다.

 

 

시외버스 터미널로 가는 시내버스를 탔다. 집채 덩어리만한 배낭에다가 한 손에는 지도를 들고 가는 나를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상한 듯이 쳐다 보았다. 오늘은 1 코스 도보 여행을 할 예정이었으므로 동일주 도로(제주시 - 성산포 - 서귀포)로 가는 시외 버스를 탈 예정이었다. 시내버스에 내려 시외버스 터미널에 들어가니 마침 안내 하는 아저씨가 어디가서 타라고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동일주 도로 시외 버스를 승차 후 약 15분만에 내가 탄 시외버스는 출발했다. 제주 시내를 빠져나가더니 동일주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좀 큰 읍이 나오면 그 읍으로 들어가서 사람들을 태우고 다시 큰길로 빠져 나와 달렸다. 마침 "조천"이라는 곳의 장날이어서 버스는 사람들로 붐볐다. 60리터 배낭을 무릎 위에 올려 놓으니 무겁기도 하거니와 내 꼴이 말이아니었다. 짐을 많이 가져온 것을 또 후회했다. 그러고 보니, 짐을 적게 가져와서 후회한 적은 없어도, 많이 가져와서 후회한 적은 매번 겪는 일이었다. 없으면 사면 되지만, 많으면 버리지 못하는 것이 내 습성인 것이다.  

 

 

내 뒤에 두 명의 여자가 타고 있었다. 이들은 무슨 이야기를 계속 하면서 갔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두 여자들도 나와 같이 올레 1 코스를 여행할 사람들이었다. 혼자 걷는 것보다는 같이 걸으니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이들은 제주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올레꾼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제주도 사람들은 "볼 것도 없는데 뭘 보겠다고 저리 돌아다니는지, 정신 나간 사람들이 아니냐?"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하기야 "서울에 볼 것도 없는데 외국인이 뭘 보러 오나?"라고 말하는 것과 뭐가 다르랴? 사람은 자기가 사는 곳의 아름다움을 모르고 산다. 자기가 가진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고 산다. 나의 것은 모두 신통치 않고 남의 떡이 커 보일 뿐이다.

 

 

 

 

<오늘 걸은 1코스 15키로>

 

 

시흥 초등학교 정류장에서 내려 말미오름(제주도에 있는 조그만 산을 "오름"이라고 한다.)으로 올라간다. 눈 앞에 펼쳐지는 초록의 싱그러움이 신비함으로 다가온다. 성산 일출봉과 우도 그리고 그 사이에 보이는 바다가 잔잔한 바람과 함께 가슴에 안겨온다. 검은 돌덩어리로 경계선이 그어진 초록색 밭이 인상적이다. 길 옆에 노란 꽃과 별 모양의 꽃이 지천으로 깔려 있다. 서울에서 지금쯤 꽃을 찾으려면 아마 눈을 비비고 다녀야 할지 모르겠다.

 

 

정상에 산불감시원 두 명이 우리를 맞이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귤을 주면서 자세하게 안내를 한다. 산불 감시원 중 한 사람은 나중에 내가 묵은 민박집에 놀러와 결국 소주를 같이 마시게 되었다. 정말 세상은 넓고도 좁다.

 

 

 

 

<말미 오름에 있는 산불 감시요원과 동료: 모자를 벗은 사람이 함께 소주를 한 사람>

 

 

 

<말미 오름에서 내려다 본 밭과 성산 일출봉>

 

 

 

 

 

<도처에 있는 무 밭>

 

 

 

 

<중간에 길을 막고 있는 소떼>

 

 

절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매어 놓은 나무 난간을 따라 걷는다. 내가 언제 이런 목장을 걸어 보았더냐? 신기하다. 잔디밭의 촉감이 발 아래 느껴진다. 무수한 사진을 찍어댄다. 아래로 내려와 좁은 길을 지나게 된다. 오른 쪽에는 유명한 제주도 무 밭이 놓여있다. 그런데 말미오름에서 알오름으로 가려면 골목에 소 몇 마리가 떡 버티고 서 있는, 사방이 소똥으로 가득찬 지점을 통과해야 한다. 그렇다고 산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올 수도 없는 맹랑한 길이다. 한 참을 기다리니 소가 길을 비켜주어 통과했다. 나중에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 보니, 어떤 여성 올레꾼은 그곳에서 한 시간을 기다렸다가 소를 피해 통과했다고도 한다. 지독한 쇠똥 냄새를 한 시간 동안 맡아 가면서 말이다.

 

 

 

 

 

<말미오름에서 알오름으로 간다>

 

 

 

말미오름 다음에 알 오름이다. 역시 이 알오름도 목장이므로 문을 열고 들어가서 다시 문을 닫고 나와야 한다. 파란색 문틈으로 손을 넣어 안에 있는 고리를 열고 들어가서 다시 문을 닫는다. 눈망울이 말똥거리듯 사방 여기저기에 단단한 말똥이, 말똥말똥 흩어져 있다. 눈에 띄는 말은 단지 한 마리였는데, 나머지는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주민들이 감자를 캔다>

 

 

 

 

<종달리>

 

 

종달리에 내려왔다. 누가 이름을 종달리라고 지었는지 참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고 하늘의 종달새가 눈 앞에 아롱거린다. 또한 혹시 종이 어디에 매달려 있는지도 유심히 살펴보았다. 종이 매달려 있어서 종달리라는 이름이 생겼나 싶어서다. 붉은 지붕과 파란 지붕이 나지막하게 펼쳐져 있어 튀는 색감이 가슴을 친다. 아이들 수업이 끝났는지 한 떼의 초등학생들이 바람처럼 골목으로 뛰쳐 나왔다가 수퍼마켓으로 들어가더니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냅다 뛰기 시작한다. 마을 회관 앞에 산발을 한 나무가 떡 버틱고 서 있다. 희랍 신화에 나오는 메두사의 머리처럼 하늘을 배경으로 헝클어지고 뭉쳐지고 꼬여있다.

 

 

 

소금과는 관계없는 소금밭이라는 곳이 있다. 그 옆에 넓은 갈대가 평원을 이루고 있다. 이 갈대는 제주도의 독한 바람에도 아직까지 끝 부분이 날아가지 않고 본 형태를 유지한 채 정갈한 모습으로 우리를 환대한다. 바람이 불 때마다 서걱거리는 소리가 마치 개를 데리고 사냥하는 사냥꾼의 구두 발자국 소리 같다.

 

 

 

<중간에 있는 오징어>

 

 

한참을 뚝방을 따라 걸어간다. 바로 앞 오른 쪽이 성산 일출봉이요, 소가 누워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는 우도(牛島)가 왼쪽에 있다. 이미 썰물인지라 모래바닥을 많이 들어 내놓고 있다. 저 멀리 해초를 뒤적이는 어부가 보인다. 같이 가는 동료 중의 하나가 물길을 건너 일출봉으로 갈테니 말리지 말라고 농담을 한다.

 

 

길가에 한치와 오징어를 구워파는 한 아줌마가 있다. 언니라고 불리우는 동료가 한치를 한 마리 사서 나에게 넘겨준다. 사양할 때가 아니다. 새벽에 아침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서울을 떠났는데 지금  오후 2다. 배가 고플대로 고팠다. 인정사정없이 축축하게 구워진 한 치를 입안에 넣고 우기적 우기적 씹었다.

 

 

한치를 구워파는 아줌마 옆에는 조선일보에 나온 그녀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바람에 날리는 한치 옆에 머리를 팔랑거리며 파는 아줌마가 마치 선녀처럼 그려져 있었다. 그 사진 옆에는 황토방 사진이 있었는데, 그 것이 무슨 사진인지 물은 것이 인연이 되어 결국 그 황토방에서 5일간 머물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한치 장수 아줌마는, 내가 묵은 황토방 민박집 주인의 누님이었다. 세상은 얽히고 설켰다.

 

 

 

 

<시흥 해녀의 집에서의 점심. 조개 죽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시흥 해녀의 집에 도착한 것은 오후 2시 반이다. 내가 배가 고프듯이 동료 여자분들도 배가 고팠나 보다. 처음 반찬으로 나온 것을 눈 깜짝할 사이에 먹어 치웠다. 전도 맛이 있었고, 붉은 빛을 띄는 뾰죽뾰죽한 해초도 목구멍에 그냥 넘어갔다. 꼴뚜기 튀김도 무 채도 혀에 살살 녹았다. 나의 동료들은 잠시 후 좀 더 달라고 했다. 잠시 뒤에 또 더 달라고 했다. 결국 주문한 조개 죽이 나오기 전에 공짜 반찬을 네 번을 시켜서 먹었다. 내가 더 달라고 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주인 집 아주머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여자들의 용감무쌍함에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우리 나라 반찬 인심 좋은 것에 할 말을 잃었다. 잘 알다시피 유럽에 여행가면 식당에서 물도 사먹어야 되고, 다른 반찬 주문하면 또 돈을 내야하고, 화장실 갈 때마다 돈도 내야한다. 역시 한국은 (반찬) 인심이 좋은 나라임에 틀림없다.

 

 

 

 

<성산 일출봉 근처의 모래>

 

 

 

 

 

<성산 일출봉 근처의 해안>

 

 

나는 해안을 걸으면서 생각했다. 여행에서 중요한 것은 딱 3 가지 뿐이라고.
 1. 내가 집을 나왔다.
 2. 내가 어떤 낯선 곳에 있다.
 3. 내가 나의 두 발로 걷고 있다.
나머지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된다. 무엇을 보거나, 무엇을 듣거나, 무엇을 하거나, 그리고 무엇을 먹는 것은 부차적인 것일 뿐이다.   

 

 

 

 

<성산 갑문 근처에 무수히 놓여 있는 작은 조개. 다슬기 모양>

 

 

성산 갑문 근처에 무수한 조개가 흩어져 있었다. 흔히 강에서 보는 다슬기처럼 보이는 것인데, 비로 쓸어도 될 정도로 사방에 흩뿌려져 있었다. 아마 양동이와 비 그리고 쓰레받기만 있으면 한 시간에 5 가마는 잡아들일 것 같았다. 마침 오늘이 보름이어서 사리인지라 물이 가장 많이 빠지는 날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사방에서 사람들이 조개를 잡고 있었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차를 세우고 덩달아서 조개 잡이에 뛰어 들었다.

 

 

 

 

 

<육지와는 다른 작은 윷을 가지고 윷놀이한다.>

 

 

성산 오일 장터를 지나 수마포 해변에 도착했다. 성산 일출봉 바로 옆에 있는 어촌이다. 마을 회관으로 보이는 곳에 해녀들의 옷이 걸려져 있었고, 그 옆에서는 남자들이 윷놀이에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여기 윷놀이의 특징은 조그만 종발에 윷을 넣어 상대편 지역에 던져 넣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낙방이라는 제도도 있으니, 상당한 기술이 요구되는 윷놀이인 듯 했다. 큰 막대기로 된 윷을, 어깨에 힘을 넣어 던져 돌돌 돌다가 윷이나 모가 나오면 소리지르는 육지와는 달리, 이 사람들의 윷놀이는 마치 초등학생들 장난치는 것처럼 초삭대는 듯이 보였다. 어떻든 약간의 알콜 기운에 젖은 동네 사람들은 성냥개비같은 윷 가락이 땅에 떨어질 때마다 소리를 지르고 춤을 덩실덩실 추어 댔다.  

 

 

 

 

<수마포, 광치기 해안에서 본 성산 일출봉>

 

 

광치기 해안이 오늘 코스의 종점이다. 광치기라! 옛날 시골에서 나이롱뽕이라는 화투를 치면서 뽕치기라고 했었다. 광을 많이 가지고 나이롱뽕을 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바닷물은 빠질대로 빠져 초록의 밑바닥을 완전히 드러냈다. 미역을 채취하여 등에 지고 뒤퉁거리며 가는 아줌마가, 아직도 미역이 지천으로 깔려 있으니 주워가라고 일러준다. 제주시에서 온 나의 동료들은 열심히 미역을 딴다. 그러나 미역을 넣을 주머니가 없어서 발을 동동 굴렀다. 마침 한 할머니로부터 비닐 주머니를 빼앗다시피 넘겨 받아,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오늘 밤 초고추장에 생미역을 찍어 먹는 그림이 머리 속에 그려져 있으리라. 소주도 마실는지 알 수 없지만.

 

 

 

 

 

<광치기 해안에 난 풀>

 

 

 

 

<광치기 해안 근처에 도망치는 말>

 

 

둑으로 올라와 보니 바로 거기가 1000원씩 내고 사진을 찍는 유채밭 단지였다. 유채밭 단지에서 말을 타고 사진 찍는 사람도 있었다. 그 순간 비명 소리가 고개를 돌려보니, 말 한 마리가 옆에 있는 유채밭을 뛰쳐나가 거리로 달리기 시작했다. 고삐가 풀린 말은 지나가는 자동차에 치일 뻔하다가 다시 길 옆으로가고, 그러다가 다시 길 중심부로 갔다가 다른 자동차에 놀라 옆으로 도망쳤다. 사방에서 빵빵 거리는 자동차에 놀랐는지, 저항 정신이 발동했는지 모르지만, 말은 으흐흥 소리를 내며 질주 했다.  "고삐 풀린 망아지 같다"는 표현이 무슨 뜻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석양의 활주극이었다. 주인이 먹이를 가지고 쫓아갔지만 결국은 잡지 못하고 허둥대는 모습만 보였다. 나는 곧 자리를 떴다. 하지만 그 후에 그 말이 과연 잡혔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고성리라는 곳에서 오늘 함께 지낸 두 여인과 헤어졌다. 그들은 카메라도 없이 여행을 왔기에 내가 찍은 그들의 사진을 나의 홈페이지에 올려 놓으면 그들이 다운받아 가기로 했다. 하루의 동행이 인연이고 정이 들었는지 헤어질 때 섭섭했다. 내가 섭섭한 것보다는 그들이 더 섭섭해 하는 듯이 보였다. 언제 다시 만나자는 빈말 약속을 하며 그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멀어져 가는 버스를 보면서 나는 한 동안 먼 하늘을 쳐다 보았다. 아니다. 다음에 제주도에 가면 그들을 만나 보아야겠다.

 

 

황토 민박집에 전화를 걸자 몇 분 걸리지 않아 차가 왔다. 이미 그 차에는 두 명의 올레꾼이 타고 있었다. 온평 초등학교를 지나, 차는 한라산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약 10분뒤에 도착한 곳이 내가 앞으로 5박을 하게 될 황토 둥지 마을이라는 곳이다. 처음에는 이 집에서 많아야 2박을 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쩌다 5박이나 하게 된 것이다.

 

 

8명이 묵을 수 있는 방에는 나 이외에 4명이 이미 묵고 있었다. 두 젊은이와 두 원로분이 계셨다. 두 젊은이는 다른 방에 묵고 있는 아가씨들과 저녁 식사를 하러 갔고, 나는 원로분들과 함께 옆에 있는 식당에 가서 저녁 식사를 했다. 내가 묵을 민박집 옆에 식당이 있었던 것이다. 갈치국이 맛있다 하여 시켜 보았다. 그러나 갈치하면, 갈치 조림이나 갈치 구이가 떠오르는 생선이다. 나에게 갈치국은 좀 역겨운 맛이 있었다. 주인은 맛이 좋은지 물었다. 나는 좋다고 했지만, 그곳에 머문 5일 동안 갈치국은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오늘 걸은 거리가 15키로다. 무거운 짐을 지고 15키로를 걸었더니, 몸이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식사를 하면서도, 이런 상태로 과연 내가 얼마나 더 버텨낼 수 있을지 내 스스로 의문이 갔다. 무거운 짐을 지고 "놀며, 쉬며" 하루에 15키로를 걷는다? 앞날이 좀 걱정이 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민박집에 왔다. 1박에 1만원하는 민박치고는 상당히 좋은 집이라는 생각을 했다. 주인 말에 따르면 여자들 방은 올레꾼들로 항상 가득 차지만, 남자들 방은 항상 헐렁헐렁하단다. 주인 왈 여자 9명이면 남자는 1명이 올레꾼이란다. 하기야 육지에서도 봄철이 되면 관광차에는 여자들로 득시글 거리지 않나? 불쌍한 남자들이여! 처자식을 책임지기 위해, 직장에서 해고의 공포 속에 매일매일 살아가야 하는 인생이 아닌가? 놀러다니는 아내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남자들이다. 겉 모습만 강하고 큰 소리치는 그대의 마음에 한숨과 공허가 자리잡고 있질 않나? 오늘 집에 가기 전에 막걸리 한 잔에 파전 안주 삼아 흥얼거리며 작은 우주를 꿈꿔보기 바란다.  

 

 

 

 

<광치기 해안에서 본 성산 일출봉>

 

 


<2009년 3월 21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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