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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여행 지도>
금산에서 내장산까지
금산에서 시제를 마치고 계획했던 내장산 등산을 위해 정읍으로 떠난 것은 11월 9일 오후 1시경이었다. 지방 도로로 갈까, 아니면 고속 도로로 갈까 잠시 생각하다가, 목표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지방 도로로 가보기로 했다. 노선은 금산-진안-임실-정읍으로 가는 것이다. 이 코스로 직접 가 본 적은 없지만, 진안, 임실 등은 몇 년전 가 본 적이 있으므로 오늘은 차창에 나타나는 배경에 추억을 덧씌워 순간 순간 향수에 빠져 보기로 했다.
일본 사람이 놓았지만 지금도 끔쩍 없다는 황풍리 다리를 건너 초현으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싯퍼런 물이 흘렀던 강은 대부분 말라 있었고, 그 자리에 듬성듬성 억새가 자라고 있었다. 옛날 외갓집에 갈 때 걸어갔었던 그 길을 내 차가 달리고 있다. 그 당시 외갓집에 갈 때, 가져 갈 것이 없었던 어머니는 나보고 미꾸라지를 잡아 오라고 했었다. 그 미꾸라지를 들고 졸래졸래 어머니를 따라 갔었다. 입에서 거품을 품어내며 쥐 죽은 듯이 있다가 가끔 꿈틀 대는 미꾸라지를 보시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미꾸리구나! 빨리 끓여라. 오늘 저녁에 포식하겠구나."라고 말씀하시면서 좋아하셨다.
초현을 지나면 곧 12폭포가 있는 금산군 남이면 구석리가 나온다. 12폭포를 지나는 길에는 은행잎이 바람에 불려 공중에 날고 있었다.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진 은행잎과 다른 붉은 가로수 잎들도 달리는 내 자동차 뒤에서 자동차 바퀴의 바람의 영향을 받아, 공중으로 솟아 올랐다가 사라졌다. 몇 년전 겨울 이곳에 왔을 때, 추위로 온몸을 웅크리며 걸어갔었던 징검다리가 보인다. 왼쪽으로 징검다리를 건너 30분을 더 가면 십이폭포가 나온다. 추억을 되살려 다시 가볼까 하다가 오늘 가야할 길이 멀기에 그냥 냅다 달렸다.
<2005년 1월 사진: 십이폭포를 가려면 이 징검다리를 건너야 한다>
조금 더 차를 몰고 가면, 진안군 주천면에 있는 운일암 반일암에 다다르게 된다. 계곡의 길이가 5키로 정도되는데, 운장산 명도봉과 명덕봉 사이를 굽이쳐 흐르는 냇물이 기암절벽에 부딪쳐 옥수(玉水)를 이루며 폭포와 큰 돌이 떡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서울 사람들은 잘 모르는 사람이 많지만 운일암 반일암은 상당히 많이 알려진 진안의 관광 명소다. 가물어 많은 물이 없는 이곳의 이름은 골짜기가 하도 깊어 반나절 동안밖에 해를 볼 수 없거나 구름에 가린 해밖에 볼 수 없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작년 10월 여기를 찾았을 때, 남자가 낚시질을 하고 여자가 다소곳이 그 옆을 지켜 보았던 장면이 눈에 선하다.
<2007년 10월 사진: 운일암 반일암>
다시 차를 돌려 용담댐으로 향한다. 굽이치고 돌아가는 용담댐도 작년 10월에 왔었다. 그때보다 물이 더 말라있는 용담댐은 해남의 달마산에서 보는 완도처럼 호수 안으로 꾸불텅 대며 뻗어 들어간 산 등성이가 인상적이다.
<2007년 10월 사진: 용담댐>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과 추억 속에 남아 있는 기억을 뒤 섞으며 조금 더 달리니 저 멀리 말의 두 귀를 닮은 마이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진안읍으로 들어서자 곧 자취를 감추는 마이산은 그 뒤 일부만 보여준 채 전체 모습은 영영 보여주지 않게 된다.
<마이산 등산지도>
마이산 입구에 도착한 것은 2시가 넘어서다. 마침 일요일이라 수많은 행락객이 길을 가득 메우고 있다. 주차장에 들어서는 데도 10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나는 등산을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해 산책만을 하기로 하고, 간단한 등산복 차림으로 사람들의 물결을 따라 걸어갔다. 소금을 뿌린 생돼지 갈비 굽는 냄새가 코와 혀를 자극하고, 그 옆에 놓여있는 소주가 왜 그리 멋있어 보이는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등산이나 구경보다도 먹는 것에 더 관심이 많은 듯이 보였다. 곧 탑영제라는 호수가 나타났다. 호수에는 한가로이 오리배가 유유자적하게 떠 있었으며, 그 위로 마이산의 바위가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마이산 탑영제>
약 40분을 걸으면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탑사에 도착한다. 사실 이 탑사는 세 번째 찾는다. 전에 여기에 왔을 때는 뜨거운 여름이었기에 하늘로 뻗어있는 수많은 탑에 감명을 받기 보다는 더위를 어떻게 피할까가 먼저 생각나는 여행이었다. 확실히 여행은 가을에 해야함을 온 몸으로 느낀다. 아무리 좋은 경치도, 아무리 좋은 음식도, 내가 내 몸이 편하지 않으면, 만사가 귀찮게 되는 것이다. 아기자기 하게 솟아 있는 탑 사이로 벽을 타고 뻗어 있는 능소화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보통 울타리에 피어있는 능소화를 가끔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큰 능소화 나무는 처음 본다. 능소화하니 왜 그런지 슬픈 생각이 든다. 능소화는 보통 황홍색 꽃을 담장과 울타리에 사정없이 피워대는 꽃이다. 지금 여기 있는 능소화는 꽃은 없고, 잎만 무성하게 바위를 타고 20미터 이상 무지개처럼 펼쳐져 있다.
<마이산 탑사>
<마이산 능소화>
<마이산 탑사>
<마이산 탑사>
기도하는 사람과 절하는 사람, 그리고 잡담하는 사람을 뒤로 하고 조금 올라가면 은수사에 도착한다. 심심하면 아무나 울려보는 큰 북을 제외하고는 눈에 띄거나 인상적인 건물이나 볼 것은 없다.
여기에서 약 20분을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암마이산과 숫마이산 사이를 통과하는 셈이,되고 정상에 도착한다. 오른쪽으로 숫마이산에 천황문이 있으나 안전 문제로 올라가지 못한다는 안내판이 있다. 그 안내판 바로 앞에 한 무당처럼 보이는 아주머니가 촛불과 향을 피워놓고 나무아미타불 관세음 보살을 끊임없이 외쳐대고, 바로 그 옆에 3초에 한 번씩 큰 절을 하는 한 아낙네가 땀을 흘린다. 나 같으면 댓 번도 못해서 팩 고꾸라질 것 같은데, 식식 거리면서 잘도 절을 한다.
정상의 왼쪽으로 가면 암마이산이다. 역시 여기도 자연을 복구 중이므로 올라갈 수 없다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앞으로 계속가면 북부 주차장이 나오겠지만 나도 갈 길이 바쁜 사람이어서 발걸음을 돌려 출발 지점인 남부 주차장으로 향한다.
다시 탑사에 도착한다. 역시 마이산의 최고의 구경거리는 탑사이다. 탑사의 어디를 가도 사람으로 들끓는다. 마침 외국인 커플이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여 탑을 배경으로 찍어 주었다. 그는 내 카메라를 보더니 Are you a photographer? 라고 물었다. 나는 No, I'm a amateur photographer라고 대답했다. 잠시 뒤, Yes라고 말할 걸 잘못했다고 후회했다. 그랬더니 그는 Oh, your hobby is taking pictures.라고 말했다. 나는 Ah, yes, you're right.라고 했다. Where are you from? 이라는 나의 말에 남자는 I'm from America라고 했고 여자는 I'm from Australia라고 했다. 내가 이상해서 Are you friends?라고 했더니, 남자가 She's my girlfriend라고 했다. 우리는 이메일 주소를 주고 받고 바로 헤어졌다. 나의 명함에는 이름과 전화번호 그리고 나의 홈페이지가 영어로 적혀있는데, 이것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나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특히 외국에 갈 때나, 한국에 다니더라도 외국인을 만날 때 사용하면 좋다. 그 자리에서 주소를 적으려면 갑자기 볼펜도 찾아야지 책받침도 필요하지 모든 것이 힘들다. 또 나중에 상대방이 적어준 주소를 보려고 하면 철자를 알아보기도 힘들다.
4시가 넘어서 30번 국도를 타고 임실로 향했다. 해는 이미 뉘엇 뉘엇 지고 있었다. 계속 그 길을 타고 가니 곧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섬진강 댐에 도착하게 된다. 섬진강 댐은 물이 많이 말라 있었다. 섬진강 댐 위가 바로 유명한 임실, 정읍, 순창으로 둘러 싸여 있는 옥정호다. 바닥을 들어낸 호수에 새파란 풀이 나 있다. 걸어가서 확인하기에는 너무 멀다. 먼 곳에서 사진 한 방 찍고 계속 달린다.
<옥정호 바닥에 있는 초록색 풀: 무엇인지 궁금했다>
칠보라는 이정표를 보고 좌회전을 하니 완전히 밤이 되었다. 여기서부터는 가는 차도 없고, 오는 차도 없다. 내장산으로 들어가는 산 속에 나 있는 49번 지방도다. 내장산에 가까이 왔다. 작년에 여기 내장산 입구에 아침 10시에 도착하니, 차가 움직이지 않아 방향을 틀어 방장산으로 갔던 기억이 났다. 오늘은 밤이라 그런지 내장산이 모두 비어 있는 느낌이다.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휘황찬란한 식당이 왼쪽에 7-8개 정도 있는데 모두다 전주 식당이다. 원조라는 말이 붙어 있기도 하고 1호점이라는 말이 붙어 있는 것만 다르지, 다 같다. 서로 손님을 유인하려고 애쓰는 것을 보면 주인은 다 다른 모양이다. 참 재미있기도 하고 웃기는 짬뽕이기도 하다.
<내장산에 도착하면 나타나는 식당. 모두 전주집인 것이 신기하다. 도착한 다음날 오후 5시경에 촬영했다.>
모텔을 정하고 밥을 먹으러 전주식당 중 아무 데나 들어갔다. 내 경험으로는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여기서 와라, 저기서 와라"라는 말 때문에 아주 골치 아프다. 또한 "장고 끝에 악수 뒨다"고 괜히 여기 갈까 저기 갈까 하다가 제일 나쁜 집으로 갈 확률도 많다. 적절히 손님 몇 사람 있는데 들어가면 된다.
하필이면 손님이 버글버글 거리는 집으로 들어갔다. 단체 관광객이 들끓고 있었다. 나는 나오려고 하다가 주인이 앉으라는 곳에 아무 데나 앉았다. 10분이 지나서 그냥 나오려고 하는데, 주문 받으러 왔다. 나는 북어국을 시켰다. 또 10분이 지나도 음식을 안 가져왔다. 그냥 나오려니까 그때 북어국을 가져왔다. 밥에 북어국을 말아 먹는데, 하도 시끄러워서 밥이 어디로 넘어가는지 모르겠다. 열받아서 소주 한 병 시켰다. 한 참 뒤에 또 소주를 가져왔다. 나는 막 따라서, 막 먹었다. 금새 소주가 날아갔다. 나는 동동주를 또 시켰다. 내가 술이 취해서 감각이 둔해서 그런지, 동동주는 금방 가져온 듯이 보였다. 동동주도 막 따라 마셨다. 그러나 세 잔이 들어가니 더 이상 들어가지 않고 정신도 몽롱했다. 나는 아주머니를 불러 술이 남았으니 술값을 깎아 달라고 했다. 술이 취하면 나도 할 짓 못할 짓 다 하는 사람이다. 먹다만 술은 깎아줄 수 없다고 했다. 술이 아까워 갈 수가 없었지만 더 먹을 수도 없어서, 딱 한 잔만 더 먹기로 했다. 한 잔을 따르고 술 바가지를 아무데나 홱 던졌다. 마침 지나가던 어떤 여자 얼굴에 바가지가 떨어졌다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여자는 마누라 바가지 긁듯 지랄을 해댔다. 나는 따라 놓은 술을 중얼중얼 대며 마시고는, 카드로 긁어 식사대를 지불하고 밖으로 나왔다. 여전히 입에 거품을 물고 지랄대는 여자에 대한 미안함 보다는 남은 술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
(2008년 11월 17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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