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Beautiful the Nature is! - Albatross

Korea

지리산 등산기 2(Jiri Mountain 2)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2. 7. 28. 21:56

 

 

 

 

 

 

 

<반야봉에서 본 노고단: 멀리 오른 쪽 산 중턱에 노고단에서 내려오는 자동차 길이 보인다.>

 

지리산 등산기 (노고단에서 벽소령까지)

Part II

 

10월 28일: 대피소 내에서는 취사와 식사가 금지되었기 때문에, 새벽 5시 40분쯤 취사장으로 나갔다. 컴컴한 밖에는 등산화와 등산복 그리고 이마에 자동차 불빛처럼 밝은 전등을 단 사람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마치 게쉬타포가 이스라엘 사람을 수색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그들은 무시무시하게 보였다. 취사장에 들어가니 밥짓는 사람과 추위를 피하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이 초만원을 이루었다. 노고단 대피소에서 잠을 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은데, 이 사람들이 어디서 온 것인지 알아보았더니, 전날 영등포에서 야간 열차를 타고 새벽에 구례에 도착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새벽 4시 시내버스를 타고 성삼재로 와 그 시간에 이미 노고단 산장에 도착했던 것이다. 도대체 등산이 뭔지,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부산떨게 만드는지 기가 차기도 하고, 가상하기도 했다.  

 

 

서울 근교에서는 등산 때, 아예 취사도구를 가지고 올라가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나는 등산 갈 때는 당연히 버너나 코펠을 가지고 가지 않는다. 그런데, 큰 등산의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식사 때만 되면 그룹을 지어서, 지지고, 볶고, 굽고 끓여 먹는다. 나도 다음부터는 코펠과 버너를 준비해볼까하는 생각이 났다. 하여튼 나는 참치 통조림에 초코파이만 먹으면 된다. 그러나 그럴 자리도 없어서 그냥 침실로 돌아와 그들이 가기를 기다렸다.

 

 

 

 

<안개 낀 노고단에 유치원생을 데리고 온 여자>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 식사를 간단히 해치웠다. 등산은 7시부터 시작됐다. 기온은 약 1도 정도이고 바람이 매서웠다. 체감 온도는 영하 약 4-5도 되는 것으로 느껴진다. 노고단을 올라가는데, 구름으로 보이는, 뿌연 안개가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금방 사라졌다. 구름을 뚫고 약 20분간 올라가니 노고단 고개다. 안내판을 보면 노고단에서는 반야봉과 천왕봉이 보인다고 되어 있으나, 몇 십 미터 떨어진 돌탑이 희미하게 보일 뿐이다. 몇 미터 앞에서는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아이를 데리고 한 여인이 등산을 시작했다. 초등학교 학생은 가끔 보았지만, 유치원생을 데리고 이런 고지대에 온다는 것은 나의 상상을 초월한다. 나중에 알게 되지만, 그들은 내가 반야봉 등산 후 내려올 때, 그 밑에서 만나게 된다. 그들이 어디서 잠을 잘지, 어디로 내려갈지 걱정이 되었다.

 

 

오늘 가야할 길이 내 능력 범위에서 약간 벗어난 거리 이기에, 나도 이런 저런 생각하지 않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 갈 길을 나섰다. 지리산 종주 능선은 끊임없는 잡목이나 풀밭으로 이어진다. 1700 미터의 반야봉을 제외하면 대체로 해발 1200 미터와 1600미터 사이를 계속 걷는 길인 듯하다. 가파른 길도 별로 없고, 또 내려 가는 길도 별로 없이 그냥 죽자하고 걷는 것이 앞으로 몇 시간 내가 해야할 일의 전부다.  

 

 

 

 

<노고단을 지나면 나타나는 전형적인 풍경>

 

 

돼지령에 도착하여 양 손에 큰 막대기 두 개를 든 등산객을 만나게 된다. 이 사람은 포항에서 왔는데, 백무동에 자가용을 두고, 38,000원을 들여 택시를 타고, 성삼재로 가서, 등산을 시작한 사람이다. 38000원이라는 돈은 서울에서 구례를 왕복해도 남는 금액이다. 비싼 요금을 지불하니 정신이 없어서, 지팡이는 자가용에 놔두고 왔다. 장대나 다름없는, 자기 키의 1.5배나 되는 막대기를 꺽다리처럼 짚고 등산한다. 내가 서울에서 왔다고 하니 그는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기 시작한다. 그는 개포동 아파트 8천만원 할 때 자기 아파트를 팔고 사업을 시작하여 망했다고 했다. 그 뒤 노가다 일을 하다가 지금은 포항에서 직장을 얻어 다닌다고 했다. 개포동하면 그 당시에 개도 포기한 동네라고 했었는데, 현재 8억하는 아파트 생각만 하면, 자다가도 입에서 개 거품이 난다고 했다. 나는 지난 과거는 잊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말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말 대신 그에게 공감을 표현해주는 것이 더 좋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즉, "예, 정말 그러시겠네요. 참 마음이 아팠겠어요."라고 했었어야 했다는 것을 후에 깨달았다.

 

 

 

 

<돼지령에서 찍은 사진: 나의 복부 근처에 있는 불룩한 것은 카메라 가방. 앞 뒤로 완전 배불뚝이가 되었다.>

 

 

눈에 보이는 것은 계속 잔잔한 풀과 나무다. 설악산이 농구 중계 방송이라면, 지리산은 마라톤 중계 방송이다. "마라톤 선수가 뜁니다, 달립니다, 힘을 냅니다"라는 말 이외에 할 말이 없듯이, 나도 잔잔한 잡목과 풀의 연속이라는 말 이외에는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오늘따라 날씨가 좋아서, 푸른 하늘이 내 가슴을 앗아간다. 멀리 푸른 하늘 사이로 구례읍이 보이다가 사라진다.

노루목에 도착한 것은 9시 반이었다. 노루목에서 파란 하늘은 최고조에 달한다. 가끔 나타나는 구름은 헝클어진 백발을 연상시키며 사방으로 휘날린다. 나는 여기서 고민을 하게 된다. 반야봉을 올라가느냐 마느냐의 문제 때문이다. 그냥 가면 편하게 오늘 숙박지인 벽소령에 도착하겠지만, 반야봉을 올라갔다 가면 약 1시간 반 또는 2 시간 계획보다 늦어진다. 반야봉에 가면 천왕봉과 노고단이 훤히 보여 최고의 경치라는 포항 사람의 말을 듣고, 나는 올라가기로 결심했다.

 

 

 

 

<돼지령을 지나서>

 

 

 

 

<사방으로 보이는 산, 산, 산>

 

 

 

 

<반야봉에서 본 동쪽: 먼 곳 가장 높은 곳이 천왕봉이다>

 

 

반야봉은, 올라가는 한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평지가 없는 오르막길이었다. 정말 20키로 배낭을 메고 한 시간 올라간다는 것은 사람 죽이는 일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배낭을 어디 숲에 숨겨 놓고 올라갔다 와도 되는데, 왜 그런 생각도 없이 그것을 지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올라갔는지 모르겠다. 경사가 너무 가파라서 반야봉에서 내려오는 사람도 땀을 흘리기는 나와 마찬가지다.

 

 

천신만고 끝에 정상에 도착하니 1732 미터라는 조그만 표석이 보인다. 서쪽으로 노고단이 보이고, 남쪽으로 섬진강이 보인다. 동쪽으로 천왕봉이 멀리 보인다. 저 먼 천왕봉까지 걸어간다고 생각하니, 내가 어디 머리가 돈 사람이 아닌가 의심이 갈 정도였다. 하여튼 청명한 날씨에 뿌려진 흰 새(bird) 구름을 보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런 청명한 날씨는 일년에 몇 번 없다고 동료가 말해준다. 끊임없이 사진을 찍어 댔다.

 

반야봉에 올라보니  천왕봉이 멀리있다.
싯퍼런 하늘에 까마귀도 나는구나
탁트이는 가슴으로 그대 곁에 다가가리.

 

삼류 시조 한 수 읊은 뒤에 하산 길을 찾는다. 오늘 가야할 길이 멀기에 빨리 내려갈 것을 동료에게 제안하니, 그는 나보다 가까운 연하천 대피소에 예약이 되어 있어서 시간이 있으니 좀 더 반야봉에서 머물다 가겠다고 했다. 나 혼자 하산하기 시작했다. 등산 길이 험해 내려오는 데도 올라간 것만큼 시간이 걸렸다.

 

 

 

 

<반야봉에서 포항 사람>

 

 

 

 

<반야봉에서 본 남쪽: 멀리 희미하게 섬진강이 보인다.>

 

 

 

 

 

 

 

<반야봉에서 본 노고단 옆 산>

 

 

반야봉을 내려오니 11시 10분쯤 되었다.  초코 파이와 참치, 두유, 그리고 쥐포 몇 마리를 순식간에 먹어치우고 또 걷기 시작한다. 점심 시간이라고 해봐야 10분을 넘지 않는다. 이런 곳에서 시간에 쫓긴다는 것이 얼마나 압박감을 주는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사람들이 바위 위에서 웅성거린다. 삼도봉이라고 쓰여 있는데, 봉우리라기 보다는 길 옆에 있는 그냥 바위처럼 보인다.1732미터인 반야봉에서 내려왔으니 1499미터의 삼도봉이야 아무 것도 아니었다. 나는 처음에는 삼도봉이 어떤 사람의 호에서 따온 것으로 생각했다. 금속으로 된 삼각형 표지판을 보니, 전라북도, 전라남도, 경상남도 등 삼도(三道)가 갈라지는 지점이라고 하여 삼도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그러니까 나는 방금 경상남도에 접어들었다.

 

 

 

 

 

<삼도봉 표지판>

 

 

삼도봉을 지나면 끊임없이 긴 계단을 만나게 된다. 내가 산에서 본 가장 긴 나무 계단이 아닌가 한다. 계단 바로 아래에 있는 화개재에 도착한 것이 12시다. 옛날 화개재에서 장이 섰었다는 안내판이 보인다. 여기에서 왼쪽으로 빠지면 뱀사골이다. 한 쪽에서는 몇 사람이 이미 피로를 이기지 못하여 큰 대자로 뻗어 있다. 새벽 5시부터 등산을 시작했다면 7시간을 걸었으니 그럴만도 하다. 나는 아직 그 정도는 되지 않은 것이 큰 위안 거리다.

 

 

 

 

<화개재 직전에서 나무 사이로 보이는 하늘: 하여튼 하루 종일 푸른 하늘은 원 없이 본다.>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화개재에 누워있는 등산객들>

 

 

 

<화개재 안내판>

 

문제는 화개재에서 토끼봉으로 올라가는 지점에서 발생했다. 왜 그런지 10 미터를 올라가지 못하고 죽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약 5분 쉬었다가 가면 또 10미터도 올라가지 못하고 내가 내가 아닌 듯한 느낌이 들었다. 머리 채를 휘어 잡아채는 느낌이 들더니, 어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힘을 내어 걸어도 별반 진척이 없었다. 나는 위급 상황임을 깨닫고, 다시 쉬면서 사정없이 초코렛을 먹었다. 순간 반야봉을 올라간 것이 무리였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미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나는 내려오는 사람에게 여기가 토끼봉이 맞는지 물었다. 그는 여기에 무슨 토끼가 있느냐고 하면서 반달곰은 있다고 말했다. 나는 내가 질문을 잘못했는지, 그가 잘 못 알아들었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정신을 내자"라고 소리를 지르고 정신력으로 버티려고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나는 정신이 육체를 지배할 수 없음을 확실히 깨달았다.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여 밤을 산에서 보내더라도 우선 힘을 비축해야함을 느꼈다. 배낭을 내려 놓고, 그 배낭에 기대어 정신이 돌아올 때까지 무조건 쉬기로 했다. 눈을 감고 있으니 오만 잡 생각이 흐릿하게 들었다. "탈진, 무모, 실신, KBS 뉴스, 전직 교사 지리산에서 사체로 발견" 등의 단어가 머리에서 TV 자막으로 좌에서 우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마 20분 정도 눈을 감고 있었을 것이다. 천만 다행으로 힘이 좀 생겼다. 쉬면 힘이 생긴다는 것을 신비로움으로 느꼈다. 무거운 배낭을 버리고 갈까하다가 11만원이 아까워 다시 메고 걷기 시작했다.

 

 

조금 걸어가니 대학생으로 보이는 두 젊은이가 길 옆에서 개글개글 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만 힘든 것이 아니었다. 조금 또 올라가니 한 사람이 나무에 기대어 정신이 나간 듯이 보였다. 나는 그에게 정신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괜찮다고 나보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는 자기 동네의 조기 축구 회장이어서 매일 축구를 한다고 했다. 지리산은 별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이럴 줄은 몰랐다고 했다. 매일 축구를 하건, 헬스 클럽에 다니건, 젊은이건 간에, 지리산 등산과 같은 지구전, 장기전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평소에 얼마나 등산을 해 보았는지와 인내심이 얼마나 있는지가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 축구나 헬스에 다니는 사람보다 등산을 꾸준히 하는 사람이 대체로 더 오래 사는 것도 인생이라는 지구전에 더 강하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개재에서 연하천까지는 정말 사투라고 불러도 좋을 그런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서 사진 촬영은 사치라고 생각했다. 나는 약 3 시간 동안 사진 한 방도 찍지 않았다.  

 

 

 

 

<연하천에서 본 하늘>

 

 

천신만고 끝에 연하천 대피소에 도착한 것은 3시였다. 보통 2 시간 걸릴 거리를 3 시간 걸려서 왔다. 나는 참치 캔, 김치, 초코파이를 꺼냈다. 초코파이와 김치의 만남-- 정말 환상의 어울림이다. 거기에 참치와 함께 먹으면 그 맛이 어떤지는 먹어보지 않으면 설명할 수가 없다. 옆에서 구두발로 밟고 귀싸대기를 날려도 울면서 먹을 극상의 조합이다.

 

 

나는 연하천 대피소 주인을 찾아 여기서 잘 공간이 있는지 물었다. 내가 예약한 벽소령은 거기에서 두 시간 정도가 더 걸리기 때문이다. 그는 예약이 완료되었기에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고 했다. 내 얼굴을 보더니, 그는 아무 문제 없으니 벽소령으로 가라고 했다. 힘이 다 빠진 사람은 눈동자가 게슴츠레하고 입에서 개거품이 나오는데 나는 멀쩡하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했다. 참치와 초코파이와 김치를 먹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갑자기 힘이 솟는 듯 했다. 이번에는 정신이 육체를 지배함을 느꼈다. 짧은 시간에 육체와 정신에 관한 나의 생각이 정반대로 바뀐 것이다. 그러고 보면 말이란 아무 말이나 해도 반은 맞고 반은 틀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말을 하건, 공자님이 말을 하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얼마나 공평한 세상이며, 놀라운 신의 조화인가?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 말라"는 말도 반은 맞지만, "올라가지 못할 나무라도 쳐다보라"라는 말도 반은 맞은 말이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도 반만 맞고, "티끌 모아 봤자 태산이 될 수 없다."는 말도 반만 맞는 말이다.

 

 

 

 

 

<벽소령 가는 길>

 

 

 

 

<벽소령 가는데 날이 어두워진다>

 

 

설렁설렁 걸으면서, 정신을 차려가며 다시 아름다운 풍경을 눈과 사진에 담는다. 잠시 뒤, 내 나이 또래의 남자가 뒤에서 나타났다. 그도 힘이 없어 죽겠다고 했다. 그는 영등포에서 전날 밤기차로 와서 새벽에 성삼재에서 출발한 사람이었는데, 반야봉은 올라가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자기가 말을 하고 내가 응답을 하려고 하면, 자기가 내 대신 또 응답을 했다. 나중에는 내가 아예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왜 말이 없냐고 나에게 따지듯이 대들었다. 대답을 하려는데 또 자기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50대 중반인데 이런 등산을 하다니 참 대단하다고 자화자찬을 늘어 놓았다. 그는 내 얼굴을 바라보며 반말을 하다가 존경어를 쓰다가 기분 내키는대로 초싹거렸다. 나는 내 나이가 그보다 많다는 말을 해서 그의 기를 꺾고 싶지 않아서, 나에게 반말을 하건 존경어를 쓰건 내비뒀다.

 

 

45살에 얼굴 반쪽이 마비가 되어서 오색약수터에서 한 달간 등산을 한 후 병이 나아 그 뒤부터 산을 찾는다고 했다. 자기 일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업이라고만 말한 그는, 더 이상 내가 무엇하는 사람인지, 자기의 직업이 무엇인지에 대한 언급없이,  젊었을 때 여자 편력에 대해, 마치 남자들 군대 이야기하면 힘을 내듯, 그렇게 열을 올리며 이야기했다. 그러더니, 한국은 웬만한데는 다 가보았는데, 해외 여행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내가 해외 여행을 해 본 적이 있는지 물었다. 나도 한 번도 해외에 나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는 껄껄껄 웃으며 위대한 동지를 만났다는 듯 나의 어깨를 끌어 당겨 안았다. 깜짝 놀란 나에게, "요즘 것들은 툭하면 해외여행 갔다 왔다고 자랑하는 것들이 많아서, 원. 쥐나 개나 다 해외 여행 갔다 왔다나? 누구 뭐, 야코죽이나?"라고 말했다. 나는 거짓말한 것을 천만 다행으로 여기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벽소령 가는 길>

 

한 시간 20분 걸린다는 거리를 2시간 20분 걸었다. 멀리 어둑어둑한 곳에 벽소령이 보인다. 이소령이나 김소령이 아니라도 좋다. 벽창호나 벽계수가 아니라도 좋다. 꿈에도 그리던 벽소령이 아니더냐?

 

 

그는 바로 내 옆 자리를 배정 받았다. 취사 도구가 없는 나를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 보더니 같이 찌개를 끓여 먹자고 했다. 그는 김치와 꽁치 통조림을 꺼냈다. 그리고 소주 한 병도 꺼냈다. 그곳 매점에서 산 햇반에다가 오랜만에 찌개를 먹으니 온 천하가 내 것인 듯한 느낌이다. 그는 "부라보"라고 소리쳤다. 나는 "환생이다"라고 소리쳤다. "환생이 뭡니까?"그가 물었다. "저 오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내가 소주 두 잔을 마시고, 나머지는 그가 다 마셨다.

 

 

"그나 저나 장가게가 그렇게 좋다고 하는데, 언제 가보기는 가봐야 할텐데." 취기 속 비몽사몽간에 그의 입에서 튀어 나온 말이다. "우리 내년에는 장가게 등산 한 번 합시다." 내가 맞장구를 쳤다. 그는 다시 나를 껴 안았다. "그래요. 꼭 그럽시다." 피로에 물든 육체는 한 잔 술에 순식간에 녹아 버렸다. 그나 나나 방에 돌아오자마자 곧 고꾸라졌다.

 

 

걸은 거리: 약 16.6 키로
걸은 시간: 약 10시간

 

(계속)

 

(2008년 11월 1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