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Beautiful the Nature is! - Albatross

Korea

설악산 등산기 2(Seorak Mountain)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2. 7. 28. 20:01

 

 

 

 

설악산 등산기(2008. 10. 15 - 10. 17)
(신흥사-천불동계곡-대청봉-봉정암-백담사)

 

  Is Paris buring? I don't know.
  Is Seorak burning? Sure, it is!

 

 

 Part I

작년, 그러니까 2007년 설악산을 등반한 것은 10월 22일이었다.  그때 등반하면서 일주일 정도 일찍 왔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설악산의 상부와 중부는 이미 단풍이 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 해는 일주일 빠른 10월 15일부터 2박 3일로 등산 일정을 잡았다.

 

 

사실 속초는 매년 다섯 번 정도 간다. 속초에 꼭 볼 것이 많아서 간다기 보다, 3시간 차를 몰고 가면서 시원한 산을 볼 수 있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속초 바닷가 특히 장사항에서 생선회를 먹어 볼 수 있는 것이 두 번째 이유다. 사람들은 보통 대포항에 많이 가지만, 나는 장사항을 자주 찾는다. 속초에 가는 세 번째 이유는 푹 쉬는 것이다. 전에는 속초에 가면 북쪽으로 차를 몰고 통일 전망대까지 갔다가, 양양에 들렀다가, 강릉에도 들리면서 드라이브를 즐겼지만, 지금은 그저 속초에 가서 쉬고 오는 것이 보통이다. 여행의 목적이 두루두루 구경을 할 것인지, 아니면 푹 쉬었다가 올 것인지를 먼저 결정해야 하는데, 요즈음에는 전자보다는 후자가 마음에 든다.

 

 

<양평 별장>

 

 

양평을 지나면서 작년에 가보았던 어느 선생님 별장  생각이 나서 한 번 들러 보기로 했다. 주인도 없는 남의 집을 불쑥 찾아간다는 것이 이상했지만, 주인이 없으니까 가 본다는 것도 그럴 듯한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양평의 봉상리 이정표를 보고 오른쪽으로 빠져 나와 다시 오른쪽 들을 보면서 시원한 논길로 접어든다. 채 5분도 걸리지 않아, 한 나절 인연이 있었던 그 별장은, 비록 주인은 아닌 나그네에게 작년의 느낌과 기분을 그대로 전달해 주었다. 마당에는 잔디와 잡초가 자리를 잡고 있었고, 집주인이 심었을 키 작은 소나무 몇 그루에 물을 준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작년 이 집 안에서 몇몇 선생님이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려진 음식을 여유롭게 들면서, 행복이란 이런 것인가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조금 더 걸어 올라가,  연못가 느티나무 아래에서 시원한 바람을 즐긴 후, 근처의 강가로 갔었다. 모두 신발을 벗고 바지를 걷어 올리고, 마치 초등 학생처럼 일렬로 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 웃고 이야기했었다.  

 

 

텅 빈 집과 텅 빈 마당에서 추억과 쓸쓸함이 나를 감싸고 돈다. 바람이 불었다. 어디서인지 나뭇잎 몇 개가 내 앞에 떨어진다. 철 늦은 매미 소리는 내가 이제 여기를 떠나야 함을 알린다. 언제나 가볼 수 있지만, 아마도 다시는 오지 않을 이 집을 그렇게 가슴에 담고 자리를 떴다. 눈에 눈물이 조금 고였다. 눈물 한 방울이 얼굴을 타고 내려오다 멈추었다. 자동차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눈물은 이내 사라졌다.  

 

 

한계리 삼거리에서 직진하여 한계령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제 물들기 시작한 설악산이 내 앞에 펼쳐진다. 오른 쪽으로 서서히 눈에 들어오는 점봉산과 왼쪽으로 절벽을 이룬 설악산이 가을이 절정에 달했음을 알린다. 붉고 노란 옷을 입은 산이 시원하게 뻗은 길 양쪽으로 펼쳐져 있다. 가까운 산은 진 붉은 색으로 선명했고, 먼 산은 아련한 안개에 싸여 굽이굽이 물결치며 돌아갔다. 지금 설악산은 불타고 있다.

 

 

장수대를 지나며 단풍은 절정을 이루었다.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낀 것을 사진으로 남긴다. 뒤 따라 오던 차들이 덩달아 내가 쉰 곳에서 정차한다. 그리고 나를 따라 사진의 셔터를 누른다. 나는 한계령에 도착할 때까지 다섯 번을 쉬면서 보고, 또 보고, 그리고 사진을 찍었다.

 

 

<한계령>

 

 

한계령에 도착하니 이미 주차장은 만원이었고, 길 양쪽으로 수십미터도 이미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쿵짝거리는 음악 소리와 웅성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바로 앞에 있는 절벽의 들꽃이 눈에 들어왔다. 이름 모를 들꽃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나무 한 그루 없이 오직 들꽃만이 절벽을 덮고 있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경이로웠다.

 

 

<한계령 주차장 맞은 편 절벽에 들꽃이 질펀하게 펴 있다>

 

 

정상에서 내려 오다가 중간 지점에서 주차하고 주전골로 내려갔다. 옛날 이곳에서 스님을 가장한 도적들이 위조엽전을 만들다가 관청에 발각되어 폐사되었는데, 이 때문에 이 주변의 계곡이름이 주전(鑄錢)골이란 말이 생겼다고 한다.

 

 

<주전골의 단풍>

 

 

몇 년전 여름, 이곳을 걸으면서 비디오를 찍었던 생각이 났다. 용소폭포에 담긴 물은 여전히 쪽빛이었다. 전에 왔을 때는 주전골 계곡의 바닥에 있는 자갈을 밟고 내려갔으나 그 사이에 개울 가에 수많은 나무로 된 인도를 만들어 놓아, 이제는 돌을 밟고 가는 거리가 많이 줄어들었다. 우중충한 단풍 속에서 가끔 나타나는 투명하고 붉은 일급 단풍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군계일학이란 말은 이런 때 사용하라고 생긴 말일 게다. 개울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서 끊임없는 행락객의 줄을 본다. 오늘따라 연인들이 많다. 그들의 기분이 어떠할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또한 충청도와 경상도와 전라도 말 소리가 섞여 들려오니, 과연 이곳이 전국 제일의 가을 단풍 명소임을 느끼게 한다. 나는 해가 질 때까지 주전골을 떠나지 않았다. 그냥 앉아있다가, 걷다가, 그리고 누워서 하늘을 보면서 단풍을 즐겼다. 그리고 붉은 태양이 붉은 단풍에 마지막 저녁빛을 던져 주는 것을 본 후, 나는 그곳을 빠져 나와 나의 숙소가 있는 속초로 차를 몰았다.

 

 

 Part II

 

<산행도>

 

 

10월 16일 아침 8시 반. 나는 신흥사가 있는 설악산 소공원 안에 서 있다. 설악산의 아래 쪽은 아직 푸르름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위쪽은 이미 붉은 색으로 변해있다. 정문에 서 있는 돌로 만든 곰이 내게 인사한다. 지난 여름 미찌꼬와 함께 왔을 때, 나에게 인사했던 곰상이다. 케이블카가 붉은 산을 배경으로 바쁘게 오르내린다.

 

 

<설악산 소공원>

 

 

관광객의 열기가 사방에서 느껴진다. "애자야, 너 진짜 멋있다. 저 요염한 자태라니!" 소나무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는 뚱뚱한 할머니에게, 몸뻬를 입은 또다른 할머니가 한 마디 한다. "요염한 자태? 요염한 자태 다 얼어죽었나? 뚱뚱한 돼지가 개폼 잡고 나무 가지에 소변 보는 자세구먼."이라는 말이 내 입에서 나오다가 들어간다. 사실, 요즈음 저런 노인을 보면, 내가 저런 노인이 아직 안된 것이 천만 다행스럽고, 한편 가까운 미래의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정신이 아찔하다.

 

 

<여기저기 붉은 나뭇잎이 보인다>

 

 

여기서부터 희운각까지는 작년에 가 본 길이다. 나는 단풍을 마음으로 그리고 또 눈으로 즐기는 것을 제일의 목표로 잡았다. 맑은 물에 햇빛이 들어와 오각형, 육각형을 이루며 아롱댄다. 시냇물 양쪽으로 단풍은 내 주위를 감싸고 든다.  

 

 

어느덧 양폭 산장에 도착한다. 시계를 보니 12시다.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식사를 한다. 여자들 몇 명이 빙 둘러 앉아 부라보를 외친다. 무엇인가 봤더니 4홉짜리 소주를 종이 컵에 가득 부어, 마셔라 마셔라 한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잠시 그들을 관찰했다. 숫자를 세어보니 7명이다. 소주 4홉이 순식간에 달아난다. 또 산에 오면서 4홉짜리 소주는 처음 본다. 보통은 무슨 과일주 담을 때나 4홉짜리 소주를 사용하지 누가 산에 오면서 그런 것을 가져오나? 그들은 내가 관찰한 10여분 동안 계속 주거니 받거니 하더니 4홉짜리 소주 몇 병이 날아갔다. 그 짧은 순간에 혀가 꼬부라지고 얼굴이 설악산보다도 더 붉어졌다. 그들은 나에게도 한 잔 권했다. 나는 "됐다"라고 말하면서 자리를 떴다. 나는 가야할 먼 길이 내 앞에 놓인 사람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줌마와 재미있는 시간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놓친 물고기가 커 보이듯, 웬지 아쉬움이 남는다.

 

 

<단풍은 단풍으로 이어진다>

 

 

오련폭포를 지나고 천당폭포를 지나니, 일단의 수녀들이 내려온다. 등산을 갈 때도 수녀들은 평소와 같은 복장인 것을 보니, 사람의 고정관념이 참 무섭기도 하다. 그러면 잘 때도 수녀복을 입고 자는지도 궁금했다. 아마 그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목욕을 할 때도 수녀복을 입고 할까? 그럴지도 모른다. 무슨 등 긁는 대나무 같은 것에 비누를 묻혀서 닦아내고, 옷을 입은 상태에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는 것이 아닐까? 아마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세계에 나 하나뿐일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발길을 옮겼다.

 

 

<등산하는 수녀님>

 

 

희운각 전 약 500미터는 수직 등산로다. 일박을 하지 않고 당일치기 등산을 하는 사람들은 여기까지 올라오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사람이 드물다. 오색이나 백담사 혹은 공룡능선을 탄 사람만이 나와 마주친다. 직상승 코스를 올라가는 중 붉은 단풍나무가 나를 위로해 준다. 나의 피나는 노력에 대한 일종의 보상차원이리라.

 

 

<붉은 단풍으로 여인의 얼굴도 붉다>

 

희운각에 도착하니   오후 2시다. 희운각은 지금 한창 수리 중이다. 헬리콥터로 건설자재가 운반되어 온다. 전기 톱으로 나무 자르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한다. 관리자인듯한 사람이 소량으로 흐르는 물에 양치질 하는 사람을 발견하고 호통치는 모습이 눈에 띈다. 패잔병처럼 여기저기 누워있는 사람도 눈에 띈다.

 

 

나는 중청을 향해 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지금부터가 내가 가보지 못한 코스다. 점점 올라가면 갈수록 왼쪽의 공룡 능선과 오른쪽의 천불동 계곡의 바위가 내 뒤로 모습을 들어냈다. 나는 몇발자국 걷다가 뒤를 보고, 감탄하고 셔터를 누르고 그리고 또 걸었다. 작년 공룡능선 갈 때보다 더 짜릿한 느낌을 준다. 작년의 공룡능선은 위압감을 주는 경치다. 오늘은 위에서 멀찌감치 보면서 마치 유리 통에 들어 있는 소형 인형을 보는 느낌이다. 까마귀떼가 까악까악 소리를 지르며 하늘을 난다.

 

 

<공룡능선 위로 까마귀가 날고 있다>

 

 

 

 

<천불동 계곡이 보인다>

 

 

소청과 중청 그리고 희운각으로 갈라지는 삼거리까지는 그야말로 끝없는 계단의 연속이다. 뻔히 바로 앞에 보이는 길을 한 시간 반 동안 온갖 고초를 당하는 심정으로 올라가야 한다. 지금 내려가는 사람은 오밤중이나 되어야 설악산 소공원에 도착할 것이다. 바로 그 삼거리에서 북쪽으로 공룡능선, 저 멀리 울산 바위가 보이고, 서쪽으로 소청산장과 봉정암으로 이어지는 계곡이다(지도를 참조하기 바란다). 그리고 동쪽으로 대청봉으로 이어지는 고래등 같은 길이 보인다. 무수히 많은 기암 괴석과 알 수 없는 붉은 열매 군락지를 보면서 드디어 나의 숙소인 중청 산장에 도착하니 오후 5시였다. 8시간 반 만에 도착했다.

 

 

 

 

<알 수 없는 나무 열매가 정상 부근에 즐비하다>

 

 

예약을 확인하고, 2000원을 내고 담요를 받아 내가 잘 곳으로 왔다. 실내는 3층으로 되어 있는데, 나는 1층의 침상 약 70센티의 공간을 부여받았다. 좁아서 담요를 반으로 접으면 옆 사람을 침범하니 3분의 1로 접어 깔았다. 그리고 준비해간 빵으로 저녁을 대신했다.

 

 

<중청 대피소>

 

 

밖은 이미 어두웠다. 모자가 달린 파카를 입었으나 추위를 견딜 수 없어 다시 실내로 들어왔다. 나의 주위에는 다행이 혼자 온 사람으로 채워졌다. 나의 왼쪽에는 대구에서 온 사람이, 오른쪽에는 진해에서 온 사람이었다. 진해에서 온 사람 옆에는 또 대구에서 온 사람이다.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잠을 청했다. 작년에 희운각에서 코가 삐뚤어지도록 술을 먹은 것과는 딴 세상이다. 술  한 모금 입에 대지 않았다.

 

 

너무 피곤해서 인지 잠이 안 왔다. 내 옆의 진해 등산객은 수면제를 먹는다. 눈을 감고 있다가 12시쯤 문을 열고 나왔다. 어디서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나서 가보니 아래 층 다른 방에서 술 주정꾼이 난동을 피우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를 끌어내, 바람이 몰아치는 마당에 눕혔다. "그래도 숨은 쉬네"라고 누가 말했다. 그가 죽든 말든 그렇게 놔 두고 그들은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 옆에서는 어떤 사람이 자기 자식이 12시도 안되어서 잠잔다고 혼내는 휴대폰 전화 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이런 곳까지 와서 아이들 공부에 신경을 쓴다. 그 옆에 컴컴한 곳에서는 남녀가 서로 부등켜안고 키스를 해대고 있다. 내가 설 땅은 오로지 70 센티인 침상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나의 침실로 돌아왔다. 시계를 보니 밤 12시 반이었다.

 

 

Part III

10월 17일:  아침 4시부터 사람들의 부산한 움직임 때문에 잠을 잘 수 없다. 그때부터 등산을 시작하는 사람도 있고, 아침 밥을 짓는 사람도 있다. 떠드는 사람도 있고, 말다툼을 하는 사람도 있다. 하여튼 잠을 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 참을 기다려 5시 40분쯤 나는 내 옆에 있는 대구 사람과 함께 대청봉에 일출을 보러 문 밖으로 나왔다. 이미 대청봉을 향한 사람들의 전등 불빛이 일렬로 늘어져 있다. 사실은 휘영청 보름달이 있어서 전등이 없어도 등산하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대청봉에서 일출을 기다리는 군중들>

 

 

대청봉에 도착하니 이미 약 100명 정도의 사람들이 대청봉 표석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차례가 오지 않아 아직도 어두운 주위의 산을 찍었다. 카메라의 셔터 스피드를 확보하기 위해 노이즈를 각오하고 사진기의 ISO 값을 최대한도로 올리고, 밝기를 3단계 낮추어 어둡게 찍었다.

 

 

<노이즈가 많이 보인다. 대청봉에서 본 오색 쪽의 산>

 

 

그 시간에 이미 오색에서 올라오는 등산객이 보인다. 오색에서 3시에 출발했다고 한다. 그놈의 일출이 무엇인지 그 일출을 보기 위해, 밤새도록 버스를 타고 와 야간 산행을 한 것이다. 그들의 온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으며, 입에서는 한 겨울 쇠죽을 먹는 소의 입에서 나오는 것처럼 그렇게 입김이 그들의 얼굴을 감싸고 하늘로 올라갔다.

 

 

<일출과 비행기의 꼬리가 인상적이다>

 

 

푸르스름한 수평선 저 너머로 붉은 기운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더니, 검은 구름 위로 태양이 뜨기 시작한다. 사람들의 환성과 환호와 더불어 태양은 아주 빠른 속도로 올라오기 사작한다. 마침 태양 옆으로 비행기 한 대가, 바다를 가르며 지나가는 쾌속선처럼 지나간다. 사람들의 탄성이 극에 달하고, 극에 달한 것만큼 빠른 속도록 그 탄성은 잦아 든다.

 

 

<대청봉에서 가까운 곳, 즉 소청과 중청 사이에 관상대가 있다>

 

 

"대청봉"이라는 안내 표석 앞에서 서로 사진을 찍으려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내 차례를 기다릴 수 없어 그냥 가려고 하니 이미 친구가 된 대구 사람이 찍고 가야한다고 말한다. 얼마를 기다려, 난장판 격투 끝에 1초만에 한 장 찍고 한 많은 대청봉을 떠난다.

 

 

<추위가 얼굴에 나타나 있다>

 

 

아침 햇살에 비친 양지쪽 산과 그늘진 산의 뚜렷한 윤곽이 가슴에 뭉클하다. 저 멀리 안개에 휩싸인 산이, 바다에서 섬이 솟아 있는 듯 봉우리만 눈에 들어 온다. 반대편 관상대 흰 통위로 보름달이 차갑게 느껴진다.

 

 

 

<공룡능선>

 

 

소청, 희운각, 대청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진해 친구와 마산 친구와 석별의 악수를 했다. 잠깐이지만, 그 짧은 순간에 정이 들었는지, 헤어지고 싶지 않은 생각이 간절했다. 그 둘은 소공원으로 내려간다고 했다. 한 사람은 버스로, 한 사람은 트럭으로 고향으로 간다고 했다.

 

 

 

 

<찍는 순간 작품사진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봉정암 쪽 산과 달>

 

 

<멀리 공룡능선을 배경으로>

 

 

나는 소청으로 내려와 라면 하나 시켰다. 4500원에 맛있게 먹고 바로 눈앞에 보이는 공룡능선 사진 몇 장 찍었다. 이제 웬만한 바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들어왔다 해도 감탄사도 나오지 않는다. 길 옆에 부석거리는 다람쥐와 낙엽을 보면서 직강하 코스를 걷는다.

 

 

봉정암에 도착하니 아침 9시다. 같이 중청에서 묵었던 또 다른 대구 사람이 반갑게 나를 맞이한다. 거기서부터 헤어질 때까지 그 사람과 하루를 같이 보내게 된다. 그는 머리를 박박 밀었으며 잘 때도 선글라스를 끼고 자는 사람이다. 손은 얼룩얼룩 흰 반점으로 덥혀 있으며, 얼굴은 푸석푸석하고 체중은 90키로 정도 나가는 약 65세에서 70세 정도의 대구 사람이다. 험상궂고 무서운 인상의 소유자다.

 

 

그는 자신의 과거사 보따리를 슬슬 풀기 시작했다. 스물 일곱 살에 근육무력증이라는 병에 걸렸다고 했다. 서울대학교병원을 비롯하여 무수히 많은 병원을 다녔어도 치료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대구로 내려가 죽기를 기다렸단다. 근육이 움직이지 않아 걷기는 커녕,혀조차 움직일 수가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고 했다.

 

 

<내려오는 길에 보이는 무수히 많은 폭포 중의 하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경치는 계속 바뀌고 있었다. 계곡의 바위가 눈처럼 희었다. 맑은 물은 굽이치고, 폭포지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양폭, 음폭으로 되어 있는 양폭을 지나, 이제 관음폭포를 지난다. 바로 이 계곡이 수렴동 계곡인 것이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이 계곡은 선 글라스의 등산객 이야기와 함께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이어졌다.

 

 

그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때 기왕에 죽는 셈치고 경기도 어딘가에 기도원이 있는데, 기도 후 많은 사람이 병이 나았다고 하니, 마지막으로 속는 셈치고 가보라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곳에 간 뒤 그는 다른 사람처럼 기도를 했다고 했다. 만약 병이 나으면 그곳에서 죽는 날까지 봉사활동을 하겠다고 기도했다고 한다. 놀랍게도 그는 단지 몇 번의 기도의 힘으로 몸을 회복하게 됐다고 했다. 그 대목에서 글썽이는 그의 눈물이 선글라스 너머로 희미하게 보였다. 좀 자세히 보니 선글라스 뒤에 있는 눈도 무서울 정도로 뒤틀려 있었다. 그가 잘 때도 선글라스를 끼는 이유를 이제 알 것 같다.

 

 

<이어지는 단풍>

 

 

길을 따라 경치는 많이 변해 있었다. 빼어난 바위 대신 이제는 고운 단풍이 등산객을 맞이한다. 푸르다 못해 녹색의 쪽빛을 띠는 맑은 계곡 물은 작은 호수를 이루고 또 거기에서 흘러 내린다. 흐르는 물은 내 가슴을 파고 저며온다. 붉은 단풍이 계곡 물에 반사되고 어우러져 부서지고 다시 모인다.

 

 

<물이 잔잔하게 출렁이고 빛을 받아 반사되어 부서진다>

 

 

등산 동료는 한 숨을 크게 쉰 후, 이야기를 이어갔다. 병이 나으니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고 했다. 그러나 자기가 기도를 해서 나았다면 분명 기도대로 하지 않으면 집에 가다가 날벼락을 맞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기도원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기도원장이 죽어 그 기도원이 폐쇄가 된 후에야 집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그는 6년 반을 그 기도원에서 봉사 생활을 했다고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병원에서 못 고친다는 환자가 구름처럼 몰려드는데, 그 중의 약 30%는 병이 나아 집으로 돌아가고, 70%는 죽는다고 했다.

 

 

 

 

<영시암>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며 그리고 또 들으며, 끊임없는 평지 길을 걸어간다. 오세암으로 가는 삼거리가 있는 수렴동 대피소를 지난다. 얼마 뒤 영시암에 도착한다. 시계를 보니 오후 1시 반이다. 나의 카메라를 본 스님이 깜짝 놀라는 듯이 보인다. 잠깐 물 한 모금 마시고 또 걷는다.나그네 설움이라는 노래가 동료입에서 구성지게 나온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지나온 자죽마다 눈물 고였네
선 창가 고동소리 옛님이 그리워도
나그네 흐를 길은 한이 없어라"

 

 

노래를 듣고 보니, 정말 그의 인생은 나그네 설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청춘을 병마와 싸우면서 다 보내야 했던 그의 설움이 뼈 속에 사무쳤을 것이다. 그런 병마를 이겨내고 그 나이에 대청봉에 오르다니 그 감개무량함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서글픔과 기쁨의 눈물이 동시에 나왔을 것이다.

 

 

<끝없는 단풍>

 

 

저 멀리 개울 가에 수 많은 돌 비석이 보이는 것을 보니 백담사에 다 온 듯 하다. 용대리행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행렬이 길게 늘어져 있다. 차례를 기다려 용대리에 오니 오후 3시 반이다. 6시 반부터 걸었으니 9시간 걸린 셈이다.

 

<백담사 앞 개울에 있는 많은 돌탑>

 

 

나의 차는 소공원에 있고, 그의 차는 한계령에 있다. 우리는 각자 만원씩 내고 택시를 타고 소공원 내 차가 있는 데로 왔다. 그리고 거기에서 내 차로 다시 한계령으로 갔다. 거기서 그는 육개장을 샀다. 그는 육개장을 먹으면서 말했다. "이제 우리 친구가 되었으니 하루 밤만 더 있다가 갑시다. 내가 속초에 가서 회 한 접시 사겠습니다." 나는 그의 제안을 뿌리치고 집으로 가야겠다고 말했다. 이유는 단 한 가지다. 그의 얼굴이 무서웠다. 그는 자신의 명함을 건네 주었다. 그리고 대구에 오면 밥 한끼 사겠다고 했다.  

 

 

작별의 손을 내가 내밀었다.
"그러면 먼저 가시구려. 나는 아무래도 백담사로 다시 가야겠소."
"아니 백담사는 왜 다시 갑니까?" 내가 물었다.
"봉정암에서 다리를 질질 끌고 내려오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를 도와줘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그가 말했다.
"그래요?" 나는 어정쩡한 대답을 하며 자동차 문을 열고 운전대를 잡았다. 한계령 정상에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는 그의 모습이 내 자동차의 백미러에 나타났다.

 

 

서울로 오면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의 모습이 내 마음 속에 그리고 내 머리 속에 한 동안 남아 있었다. 오늘도 밤바람이 차다.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휘영청 밝은 저 달 빛이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10월 16-17일 이틀 간 걸은 거리는 23.2km, 시간은 17시간 걸렸다.

 

(2008년 10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