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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충사 입구에 있는 등산 안내판: 노란색은 글에 언급된 지명
천황산 등산기
영남의 알프스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밀양, 청도, 울산에 그림처럼 모여있는 해발 1천m 이상인 가지산, 운문산, 재약산, 천황산, 신불산, 취서산, 고헌산, 간월산 등을 말한다. 오래 전 스위스의 알프스산 일부를 가 본 적이 있는 나는, 이곳이 왜 영남의 알프스라고 불려지는지 궁금했었다.
전날 해가 질 때까지 창녕의 우포 늪에서 사진 촬영을 했었다. 밀양으로 오던 중, 날이 어두워 창녕의 부곡에서 일박을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자동차로 밀양으로 와 영남루 일대를 구경했다. 간단히 김밥을 먹고, 또 김밥을 싸서 등산 시점(始點)인 밀양의 표충사로 온 것이다. 시계를 보니 10월 8일 수요일 아침 9시다.
최근 들어 건망증이 심해, 등산을 갈 때마다 무엇인가를 꼭 하나씩 빠뜨리는 것이 습관이 돼 버렸다. 이번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모든 것을 챙겨가서 산행 중 후회하는 일이 없게 하겠다고 맹서에 맹서를 거듭했다. 배낭에 넣을 물과 음식 그리고 전등, 카메라와 모자, 지팡이 두 개, 핸드폰과 지갑이 있음을 확인하고 더 필요한 것이 무엇이 있는지 곰곰이 생각했으나, 그 정도면 됐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9시 5분 표충사의 오른 쪽으로 등산을 시작했다.
<약 10분 걸으면 나타나는 리본 전시장>
그런데 걸어가면서도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빠뜨린 것은 없는데, 왜 이상할까? 무엇이 이상한지를 알아야 조처를 취하지. 나는 계속 찜찜한 생각을 하면서 걸었다. 표충사를 떠나 등산을 시작한지 20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나는 무엇이 이상한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우연히 내 발을 보니 구두를 신고 올라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 다른 것은 그냥 두고 가더라도 등산화는 신고 가야하는 법이거늘, 이 무슨 낭패란 말인가? 표충사로 내려가서 등산화를 신고 다시 그 지점까지 온다면 왕복 40분을 손해 보는 셈이 된다. 즉 10시가 되어야 그 지점에 다시 온다는 이야기다. 나는 40분 손해를 보고 다시 내려갈까, 아니면 그냥 올라갈까 머리를 쥐어짜며 생각했다. 바보 같은 머리를 때려보기도 하고, 나 같은 놈은 뒈져도 싸다는 말도 막 해 버렸다. 결말이 나지 않아, 눈을 감고 명상을 하면서까지 내면의 나에게 어떻게 할지 묻고 또 물었다.
눈을 감고 장고(長考)를 하고 있던 바로 그때, 지나가는 등산객이 내가 길 옆에 묵상을 하고 있으니, 실신한 것으로 착각하고 나를 흔들어 깨웠다. 그는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물었다. 나는 아무 문제도 없다고 나도 모르게 말했다. 나는 그와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어떨결에 그를 따라 나섰다. 내가 왜 그토록 장고를 했는지도 또 잊고, 미친 년 풍악대 따라 나서듯 건들건들 그를 따라 발걸음을 옮긴 것이다.
보통 등산 중 사람을 만나면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하다가 얼마 있어 직업이 무엇인지, 어디에 사는지를 묻고 대답하게 된다. 그런데 이 사람이나 나나 할 듯 말 듯 하면서 그저 허드레 이야기만 하면서 산에 오른다. 사적인 문제에 대한 질문을 극도로 꺼리는 나는, 나와 비슷한 사람이 지구상에 또 있음을 알고, 세상이 좁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보통의 숲속 길로 한 시간 정도 올라가니 천 길 만 길 낭떠러지 위에 흑룡(黑龍) 폭포를 볼 수 있는 전망대가 나타난다. 약 50미터 가느다랗게 놓여진 흑룡폭포는 실제는 절벽으로된 계곡의 일부다. 비가 와서 계곡에 물이라도 흐르면 과연 검은 용이 올라가는 듯한 자태를 뽐내며, 그 위용을 자랑하리라. 하지만 물이 없는 이 폭포는 그저 폭포라는 이름만 갖고 있을 뿐이다.
<흑룡 폭포>
좁은 자갈밭 길을 따라 또 한 시간 정도 가니 이번에는 층층(層層) 폭포가 나타난다. 한참을 보아도 이 폭포가 왜 층층 폭포인지 알 수가 없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출렁 다리 위쪽에 폭포가 있고, 보이지 않는 길 아래에 폭포가 또 하나 있었다. 먼 곳에서 보면 2층 폭포가 눈에 들어오겠지만 현장에서는 상층 폭포만 보이므로 실제로는 단층 폭포인 셈이다. 여기도 역시 물이 찔찔 흘러서 보는 이로 하여금 애처로운 생각을 들게 할 정도다.
<층층 폭포>
땀이 범벅이 된 나의 등산 동료는 이 층층 폭포에서 아예 위통을 벗고, 젖은 땀을 짜낸다. 그리고는 수건에 물을 적셔 윗 몸을 닦아낸다. 층층 폭포에서 한 동안 쉰 그는 담배 한 대를 입에 물더니, 드디어 자기의 과거를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평생을 부산에 살았으며 작년에 이곳 밀양으로 이사왔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딸이 미국에서 간호학을 공부하는데 돈을 부쳐주느라고 뼈가 부서진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들은 취직이 안 되어서 부산에서 방을 얻어 혼자 소일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했다. 자신은 고등학교 교장 출신으로 작년에 정년을 했다고 했다. 어디 가서 교장이었다는 말을 절대 꺼내지 않는다고 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교장이라는 말을 듣고, 사람들이 처음에는 "아, 그러십니까?"라고 말하고는 "제까짓 것이 교장이면 교장이지, 뭐."라고 뒤에서 소근댄다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그도 나처럼 전기, 전자, 사진, 비디오, 여행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이다. 일단 취미가 비슷하니 할 이야기가 많아지게 되었다. 그는 최근에 나온 산요 제품인 xacti라는 비디오를 가지고 왔다. 가볍게 동영상과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비디오 카메라다. 탐이 나서 한번 만져 보았다. 그는 자기가 찍고, 편집하고, HD Full 화질로 CD를 구워내는 것까지도 이야기했다. 대단하다.
<재약산 가는 길: 단풍이 물들기 시작한다>
약 30분을 올라갔을까? 한 젊은이가 서성이며 사자평(獅子坪)이 어디 있는지 묻는다. 재약산과 천황산 뒤쪽에 억새밭이 있다고 지도상에 나와있음을 내가 알려주었다.
말을 마치고 옆을 보니, 바로 그 지점에 고사리 분교로 가는 이정표가 나온다. 해발 약 800미터에 위치한 고사리 분교는 1966년에 개교하여 1996년에 폐교가 되었다고 한다. 졸업생 총 36명을 배출하고, 지금은 흔적조차 없고, 터만 남아있다고 한다. 주로 화전민의 아들 딸이 이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재약산 정상 부근의 억새>
거기에서 다시 힘든 등산이 시작된다. 왼쪽으로 신불암으로 내려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큰 나무는 없고, 그저 작은 관목이 눈에 보이는데까지 펼쳐져 있다. 한 사람이 겨우 다닐 만한 좁은 길에 짐승의 배설물이 여기저기 보인다.
<재약산 정상 부근의 억새 밀집 지역: 학교 운동장 정도의 크기다>
드디어 저멀리 재약산(載藥山)의 정상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억새가 듬성듬성 보인다. 그러나 사자평원치고는 좀 실망스러운 억새다. 인터넷에 보면 "100만평 이상 펼쳐져 있는 억새밭"이라고 되어 있다. 왜 사람들은 가보지도 않고 그런 거짓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아니, 전에는 그랬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적어도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 표현과는 거리가 좀 멀다. 본래 소문난 잔치 먹을 것이 없다는 말이 있는데,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재약산 정상에서 본 영남의 알프스>
<재약산: 약초가 많이 쟁여져 있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란다.>
재약산 정상에서 사진을 찍고, 점심을 먹으려고 그 옆에 있는 나무 그늘을 찾았다. 그늘에는 울산에서 왔다는 부부가 홍어회에 막걸리를 곁들인 점심을 먹고 있었다. 먹어 보라는 권유에 못이겨 막걸리 한 잔에 홍어회 한 점을 집어 들었다. 젓가락도 없어서 손가락으로 꼴사납게 집어 들었다. 코를 찌르는 홍어 냄새와 탁 쏘는 홍어 맛이 막걸리와 어설픈 부조화를 이루었다. 아직도 이 음식에 익숙하지 못한 나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눈 딱감고 목구멍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맛있는 홍어는 처음 먹어본다는 말과 함께 고맙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밀양에서 2000원주고 사온 김밥 두 줄로 허기를 채웠다. 옛날 두타산 갔을 때, 음식이 떨어져 고생한 생각을 하여, 이번에는 이런 저런 과자류와 육포, 초코렛을 가져 갔기에 에너지가 고갈되는 일은 절대로 없었다. 교장선생님은 아내가 준비해준 듯한 도시락에 김치로 점심을 드신다. 마음에 흡족하다고 느끼는 순간 옆에 벗어 둔 나의 구두가 보였다. 김샜다. 한 쪽 구두는 이미 매듭이 풀어져 안쪽 상단부가 조금 찢어졌다. 구두를 신어보니 안에 있는 양말이 허옇게 보였다. 내려갈 때까지 버텨야 할테데, 중간에 왕창 찢어지는 날에는 맨발로 내려 가야할 판이다. 그러면 수건으로 발을 싸매고 가야하겠지.
<재약산에서 본 천황산 가는 길>
재약산에서 북쪽을 보니 멀리 천황산이 보인다.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이 개미새끼처럼 작게 보인다. 약 2.2키로로 한 시간 정도의 거리다. 산의 능선을 따라 가면서 오른 쪽을 보니, 멀리 산들이 정말 알프스 산처럼 줄줄이 이어져 있다. 교장선생님은 저것이 가지산, 저것이 신불산이라고 알려주었다. 산 넘어 산, 또 산 넘어 산이 아름답게 어렴풋이 놓여있다. 안개와 더불어 아련히, 구비구비 물결치는 검푸른 산, 산, 산. 아, 그래서 영남의 알프스라고 하는구나!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지금 내가 영남의 알프스 능선을 밟고 간다! 마치 시냇물에 놓여있는 징검다리를 걸어가면서 푸른 하늘과 물 위에 떠 있는 내 그림자를 보는 듯 하다.
<나의 영혼을 빼앗아가는 억새의 물결>
그런데, 얼마를 가니 이게 웬 일인가? 고개 마루에 끝없이 억새가 펼쳐져 있는 것이 아닌가? 바람이 불었다. 억새의 물결이 출렁인다. 그리고 억새도 내 마음도 흔들린다. 나부끼는 억새는 내 영혼을 빼앗아 하늘에 뿌린다. 나의 영혼은 회오리 바람이 되어 저 멀리 사라진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천황산 바로 아래 약 500미터 지점에 억새 군락이 있었다. 인터넷에 나온 100만평 이상의 억새군락은, 학교 운동장 4개 정도의 면적으로 고쳐야 할 것 같다. 물론 드물게 나있는 평원까지 합치면 백만평이 넘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억새밭이라고 불릴 만한 곳은, 한 번의 시야에 들어올 정도의 면적이다. 그래도 명성산 갈대밭보다 넓어 보인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갈대밭을 모아 놓으면 명성산의 몇 배는 될 것이다.
<천황재에 있는 휴식처: 무슨 대궐 마당 같다>
잘한 일인지 잘못한 일인지 모르지만, 길은 판자를 깔아 놓아 사람들이 억새 숲에 가지 못하게 만들어 놓았다. 음식점도 있었는데, 사먹는 사람이 없어서 인지, 비닐로 포장을 친 그 안에는 주인인 듯한 사람이 팔짱을 낀 채 졸고 있었다.
<억새는 억새로 이어지고....>
화전민이 그 곳에서 살았다는 이야기와, 빨찌산이 거기에서 활동했다는 이야기, 스님들이 그곳에서 무술을 익혔다는 이야기가 안내판에 기록되어 있다. 몇 사람의 등산객이 안내 지도를 보며, 지팡이로 여기저기 가리키면서 시끄럽게 경상도 말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의 말이 얼마나 억센지 옆에서 보면 마치 싸우는 것 같다. 경상도 액센트의 투박함을 다시 느낀다.
마지막 젖 먹던 힘을 내어 천황산에 오른다. 앞으로는 수많은 돌 비석이 놓여있고, 뒤로는 사자평의 잔잔한 억새가 바람에 맞춰 춤을 춘다. 정상 부근에 까마귀 네 마리가 영역 다툼을 하는지, 하늘에서 그리고 땅에서 싸움을 벌리고 있다. 정상에 도착한 것이 3시 반이다. 문득 천황봉이라는 말은 들었어도 천황산이라는 말은 처음 듣는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지리산 천황봉, 월출산 천황봉이지, 천황산은 아닌 것이다. 즉 천황봉은 많아도, 천황산은 하나가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천황산 정상 부근의 수많은 돌 비석>
정상에 오면 기념 촬영을 하여 족적을 남기는 법이렸다. 팻말을 팔로 안고 촬영을 하려는데, 뭣인가가 물컹한 느낌이 들었다. 까마귀 똥이 내 옷에, 내 손에, 그리고 내 모자에도 묻었다. 온몸이 새까만 까마귀는 그 분비물만은 흰색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새이랄까? 별 생각을 다 한다고 혼자 되 뇌이며, 근처의 풀을 뜯어 대충 여기저기 묻어 있는 분비물을 닦아 냈다. 사진을 찍다 말고 교장선생님은 "개그콘서트" 보는 것보다도 더 우습다고 이를 들어내어 웃는다. 노인네가 별 프로그램을 다 본다고 혼자 중얼거리다가, "웃찾사"도 보냐고 내가 물었다. "웃찾사"뿐만 아니라 "개그야"도 본다고 그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개그야, 진담이야?" , 내가 속으로 그에게 물었다.
<천황산 정상: 1189미터라고 새겨져 있다.>
거기서부터 계속 가파른 하산 길이다. 역시 숲속을 걷는다. 한 두 군데를 제외하면 옆에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좁은 산 길이다. 두 시간을 걸어 내려오니 조그만 암자가 보인다. 무릎이 아프고 발이 뜨겁다. 암자 밑에 있는 시냇물에 발을 담그고 세수를 했다. 금강동이라는 바위에 새겨진 한자가 눈에 들어온다. 금강동이라. 어디든지 금강이라는 말을 넣어서 나쁜 뜻이 없으리라.
표충사에 오니 6시 정각이다. 원효대사가 세웠다고 하는 절이다. 해는 이미 지고 몇몇 젊은 남녀가 팔짱을 낀 채, 서성인다. 저 멀리 주차장에, 관광 버스에서 내린 관광객들이 어둠 속에서 무엇인가 먹고 있다. 마치 비둘기가 산속에 있는 잠자리에 들기 전, 마지막 만찬을 서둘러 쪼아 먹고 있는 듯 하다.
<표충사 경내: 이미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교장선생님이 손을 내민다. "오늘 참 즐거웠습니다. 잘 놀다 가이소." 무려 9 시간을 그와 함께 보냈다. 등산 중, 낯선 사람과 하루 종일 보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가 떠나는 것을 보고, 나도 내 차가 나를 기다려주는 곳으로 서둘러 갔다.
나는 다음 목적지인 울산의 간절곶을 머리 속에 그려 보았다. 간절곶은 울산에 있는 해변 마을로 일출 촬영으로 소문이 난 곳이다. 큰 우체통이 놓여있는 곳으로 해마다 연말이 되면 사람들로 들끓는 곳이다. 표충사에서 100키로 정도 되니, 앞으로 두 시간은 차를 몰아야 할 것 같다.
<나무 사이로 반달이 보인다>
자동차 문을 여는데 저 멀리 나무 사이로 반달이 나를 보고 인사한다. "수고하셨어요. 저 예뻐요?" "그래 달처럼 예쁘구나." 말을 하고 보니, 더욱 애처롭고 예쁘다. 간절곶과 반달이라! "간절"히 바라면 "곧" "반"은 "달"성되는 곳이리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입에서 나온다. 아무리 생각해도 간절곶이란 말이 참 인상적이다. 간을 절여두는 곳간이란 뜻긴가? 간은 날 간이 제일인데 왜 절여둬? 아닐 걸. 그러면 간절곶은 간뎅이가 부어가지고 절규하다가 곧 죽는 곳이야.
나의 누비라는 허황된 말 장난에 빠져있는 주인을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듯, 왕방울 같은 전조등을 밝히며, 스스로 길을 찾아, 어두워진 가로수 길로 자신의 모습을 서서히 감추고 있었다.
(2008년 10월 14일) *지리산 정상은 천황봉이 아니라 천왕봉이 맞고, 월출산 정상은 천황봉이 맞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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