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Beautiful the Nature is! - Albatross

Korea

두타산 등산기(Dota Mountain)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2. 7. 28. 19:00

 

두타산 등산기

 

 

 

 

두타산을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항상 나를 따라다녔다. 첫 번째 이유는 아름답다는 말을 많이 듣기도 했거니와 거기에 갔다 온 사람치고 편하게 갔다 왔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죽을 뻔 했다"가 두타산에 다녀온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었다. 또한  월악산 등산갔을 때 많은 미련을 남긴 삼척댁이 그렇게도 좋다는 산이다. 삼척댁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할까라는 생각도, 적지 않게 마음 언저리에 남아 있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지금 어딘가에서 아침 식사를 준비할까? 아니면 남편과 월악산의 일로 아침부터 대판 싸움을 할까? 본래 남자란 가끔 쓸 데 없는 생각을 많이 하는 동물이다.

 

 

두타산—맨 먼저 떠오르는 것은 두타(頭打), 즉 머리를 때린다는 생각이다. 머리가 멍멍할 때, 머리를 수 백 번 때리면 제 정신이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잘못 머리를 때리다가는 멍텅구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한자로는 두타(頭陀)로 되어 있다. 즉 "머리가 비탈지어 있다"는 뜻이다. 머리가 갸우뚱 하다는 말인지도 모른다. 머리를 갸우뚱하니 생각은 깊을 것이다. 이런 자세는 불도(弗道) 수행으로 적절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내 개인적인 생각일 뿐, 실제로 두타(頭陀)라는 말은 불교 용어로써 "속세의 번뇌를 버리고 불도(弗道)를 수행하다"는 뜻이라고 한다.

 

 

새벽에 텐트에서 나와 눈을 들어보니, 멀리 아련히 두 개의 정상이 비스듬하게 보인다. 왼쪽이 두타산, 오른쪽이 청옥산이리라. 오늘따라 연푸른 안개가 희미하게 먼산을 가리고 있다. 살짝 가려져 있는 두 봉우리가 너무나 아름다웠다. 마치 베일 속에 살며시 가린 여인네가, 누드 여인의 몸매보다 더 은은하고 애절한 느낌을 주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전전날 나는 친구로부터 설악산으로 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필리핀에 가기 전 거의 일 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등산을 가다가 한 달 동안 만나지 못하니, 그 동안 좀 적적했었나 보다. 나는 필리핀에서 돌아온지 며칠도 되지 않아 피로가 아직도 풀리지 않았고, 한 달 내내 운동도 하지 않아, 몸이 등산할 상태가 아니었으나, 그의 제안을 뿌리치기 힘들었다.

 

 

설악산 캠핑장에 도착하니 친구는 텐트를 쳐 놓고, 삼겹살에 소주, 김치와 풋고추 그리고 마늘을 준비해 놓고 반갑게 나를 맞이해 주었다. 우리는 밤이 이슥할 때까지 술을 마시며 그 동안의 일을 이야기했다. 친구는 거기에 온지 이미 며칠이 되었었다. 나잇살이나 먹어가지고 혼자 텐트 생활을 하니, 생각과는 달리 힘도 들고, 외롭기도 한 모양이었다. 더구나 밤만 되면 비가 와서 텐트 속으로 물이 들어와 고생 깨나 한 모양이었다.

 

 

어제 설악산에서  무릉 계곡이 있는 동해의 두타산으로 오면서, 친구도 나도 숙취로 고생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고 보니 등산을 하여 몸을 단련하고 술을 마셔 몸을 망치니, 이것은 건물을 짓고 부수는 일을 끊임없이 계속하는 일과 같으리라. 술과 담배를 전혀 입에 대지 않고 오로지 운동만해서, 건강을 유지하여, 오래 오래 사는 것 보다는, 큰 건강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적절히 몸을 망치고 또 이를 회복하며  사는 일이 더 의의 있는 일일 줄도 모른다고 자기 도취적 합리화를 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2008년 7월 4일 새벽 6시 반에 두타산 캠핑장 텐트에서 나와 두타산 정상으로 향했다. 기분이 상쾌했다. 어제 밤에 근처 가게에 미리 주문해 놓은 김밥을 찾아 배낭에 넣었다. 방금 만들었는지, 은박지로 싼 김밥의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물 두 개를 사서 배낭에 넣었다. 힘든 산이라고 하니, 조금이라도 배낭을 가볍게 해야 했다. 기본적으로 카메라가 일 키로나 되니, 배낭의 무게게 항상 몇 키로가 된다.

 

 

<초입에 있는 무릉 계곡은 넓은 돌로 된 마당 바위가 특징이다.>

 

 

조금 올라가니 넓은 마당 바위 위로 물이 흐른다. 그 냇가의  바닥은 한자로 쓰여진 무수한 사람의 이름으로 덮여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을 과신해서 일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남기길 원하는 것 같다. 하지만 영원히 이름을 남기는 사람은 극소수이며, 날 파리처럼 그 극소수의 대열에 합류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일 것이다. 사람은 자신을 알고 있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잠시 남아있다가 곧 잊혀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나도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의 기억 속에 잠시 머물다가, 곧 잊혀지기를 바란다. 나의 존재가 찌꺼기로 남아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 오래 동안 존재한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괴로움이다. 어찌 보면 이런 일은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는 것은 정말 자유롭고도 기분 좋은 일이다.

 

<바닥에 새겨진 무수한 이름들>

 

50분쯤 걸었을까? 왼쪽으로 두타산과 두타산성으로 가는 안내판이 보인다. 그 길을 따라 오르기 시작한다. 정말 가파른 길이다. 이제부터 이 길이 나를 죽이려나 보다. 그러나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어차피 이 산이 힘들 것이라는 것은 각오하고 올라가는 것이다. 이 길은 나무 숲 가운데 나 있어서, 내가 지금 어디에 올라가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오는 사람도 가는 사람도 없이, 마치 30년 전 장돌뱅이가 새벽달을 벗삼아  새벽 장 보러 가듯 우리는 그렇게 걸었다. 달빛만 없다 뿐이지 "메밀꽃 필무렵"의 허생원이 밤길을 걷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에서 여자의 말 소리가 들렸다. 나는 환청이라고 잠시 생각했다. 평일인데다가 너무 이른 시간이었기 때문에 등산객이 있으리라고 상상도 못 했다. 그러나 환청이 아니었다. 뜻밖에도 두 여인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내 친구는 하늘에서 호박이 덩굴째 떨어졌다는 듯이 쾌재를 불렀다. 위대한 업적을 이룬 장수처럼 갑자기 힘이 솟는 듯 했다.

 

 

그가 슬금슬금 이야기를 해 나가니, 그들에 대한 정보가 고구마 뿌리 따라 나오듯 줄줄이 밝혀진다. 두 사람은 친 자매지간으로 동생은 동해시에 살고 있고, 언니는 서울에서 산다고 했다. 언니는 휴가를 받아 동해시에 왔고, 오랜만에 함께 등산하러 온 것이라고 했다. 두 사람은 가벼운 산행을 주로 하다가 가끔 가다가는 1000미터 이상의 고지도 함께 가는 그런 사람이었다.

 

 

<우연히 만난 심양 자매: 그들이 있어 등산이 더 재미있었다.>

 

 

하여튼 거기에서부터 등산이 좀 쉬워졌다. 요즈음 "생각대로 하면 되고"라는 광고가 자주 TV에 나온다. 나는 그 노래가 나오면 따라 부를 수는 있지만, 생각대로 하면 무엇이 된다는 것인지, 그리고 그 광고가 무엇을 선전하는지 지금도 모른다. 얼핏 지나갔지만, 그 아가씨들이 자신도 모르게 부르는 노래 소리에 "저런 말도 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돈 없으면 겟돈 깨면 되고, ----하면, 적금 깨면 되고--" 뭐 이와 유사한 노래를 흥얼거렸는데, 그 사람들이 지어냈는지, 아니면 유행하는 말인지 알 수 없지만,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덧 소나무가 하늘을 덮고 있는 지점까지 왔다. 자태를 뽐내는 소나무에서 솔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소나무 사이로 저 멀리 안개 낀 청옥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그 이후로 길이 조금 편해지는가 싶더니 숲속에 난 좁은 길로 계속 치받는 길이 또 계속된다.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두타산>

 

 

친구가 좀 쉬었다 가겠다고 먼저 가라고 했다. 그 동안 운동을 안 해서 사실은 내가 걱정이 되었었는데, 헉헉 대는 친구를 보니 그래도 내가 대견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내 친구는 3일 전에 설악산 신흥사에서 천불동 계곡을 지나 대청봉에 갔다가, 다시 백담사로 내려와서 버스를 타고 다시 설악산 캠핑장에  왔던 것이다. 연속해서 거대한 두 산을 오르니, 아마 너무 힘이 들었나 보다. 어떻든 산에서 아프거나 지치면 본인만 서러운 법이다. 다른 사람이 도와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친구는 갑자기 아가씨들에게 초코렛이 있으면 달라고 하더니, 하나를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그리고는 염치를 무릅쓰고 또 하나 달라더니 또 먹어 치웠다. 그 효과를 보았는지, 갑자기 친구가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결국 내 친구, 두 여인, 그리고 내가 마지막 이런 순서로 다시 산행은 시작되었다.

 

 

산길은 산길로 이어졌다. 작은 나무 숲에 구멍을 뚫어 터널을 만들어 놓은 듯 하다. 전혀 외부가 보이지 않고, 가끔 천장에 있는 하늘만 보였다 말았다 한다. 길도 좁아서 한 사람이 겨우 통과할 수 있는 길이다. 가슴을 스치고 지나가는 스삭거리는 풀소리가 신비하리만치 귀속을 지나 가슴 속까지 파고든다.

 

 

<정상에 도착하기 약 한 시간 전에 나타난 이상한 솔방울>

 

 

최후의 인내력을 시험하는 곳은 거의 정상에 가까이 왔을 무렵, 밧줄이 S자를 이루며 묶여있는 약 100미터 구간이다. 쉬고 또 쉬고, 헐떡이고 또 헐떡이며 정말로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간신히 정상에 올랐다.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심호흡을 하고, 자신이 이루어낸 성취감에 잠시 도취되었다.

 

 

1353 미터 정상이라는 팻말을 보니, 정말 내가 여기를 어떻게 올라왔나 감회가 새롭다. 동해시의 반대 쪽으로는 정선이 보이고, 왼쪽으로는 삼척, 그리고 오른 쪽으로는 청옥산이 보인다. 그런데 청옥산에 대해 잠깐 언급해야겠다. 그때 안 것이지만, 청옥산은 3개가 있다. (1)두타산에서 바로 앞에 보이는 청옥산은 해발 1404 미터이다. (2)국립 자연 휴양림이 있는 청옥산(1276미터)은 봉화에 있으며, (3)정선과 평창 사이, 즉  가리왕산 맞은편에  청옥산(1256미터)이 또 있다. 등산을 끝내고 정선을 지나 서울로 오는데, 자꾸 이상한 방향으로 청옥산 이정표가 자주 나타나는 것이 이상했고, 전에 청옥산 자연 유양림에서 1박을 한 적이 있는데, 아무래도 귀신에 홀린 것 같아, 집에 와서 산행지도를 찾아 본 결과 알아낸 것이다.  독자들도 헷갈리지 말기를 바란다.

 

 

<정상에 오면 이루어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심양 자매가 사진 촬영 중이다.>

 

 

 

<두타산 정상에서 본 청옥산>

 

 

독자들이야 헷갈리건 말건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니 등산이야기를 계속 한다. 정상에서 이런 저런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고, 또 찍혔다. 전에는 좀 딱딱하게 찍었으나, 요즈음 파격적인 균형미를 찾으려고 애를 쓴다. 우리의 이런 포즈에 감탄인지 실망인지 웃음을 연발하며 아가씨들은 우리를 찍어 주었고, 우리도 그들을 찍어 주었다.

 

 

언제나 어디서나, 학생이나 어른이나, 점심 시간만큼 재미있는 시간이 또 있을까? 여자들이라 그런지 온간 종류의 반찬과 초코렛 그리고 심지어는 아주 작은 술병에 들어있는 소주까지, 마치 콩깍지를 열면 콩이 질서 정연하게 놓여있듯, 아가씨들의 반찬은 그야말로 가지런하고 단정하게 신문지 위에 놓여있다. 우리야, 뭐, 김밥이 처음이자 끝이다. 좀 창피했지만, 내려가서 막걸리 한 잔 사겠다는 말로 때워 넘겼다. 그들이 가져온 음식을 우리가 거의 다 먹고 말았다.

 

 

점심을 먹었으면 물 한 잔 마시고 떠나는 것이 보통 남자들의 습관. 하지만 한국 여자들은 그냥 떠나지 않는다. 거울을 끄집어 내어 화장을 하는지 지우는지 한다. 몸을 돌려 살며시 감추며, 수줍어하며 화장을 하는 것이 오랜만에 보는 신선함이다. 언젠가 외국인과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아침마다 한국 여자들이 화장을 하느라 30분에서 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고,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서양 외국인은 세수만하고 그냥 로션을 바르고 곧장 식당으로 나왔다. 아마 그 서양 여인은 한국 여자들이 모두 다 신부 화장이나, 영화 촬영 전의 배우나 하는 그런 화장을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여자들에게 있어서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는 듯 하다.>

 

 

두타산 정상에서 청옥산으로 가는 길은 평탄하고 쉬운 길이다. 한 시간 걸으니 박달재에 오른다. 박달재에서 오른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고 청옥산으로 계속 가는 길이 있다. 매표소 입구에서 만나 우리와는 반대 방향 즉, 청옥산-박달재- 두타산으로 가겠다는 사람을 여기서 마난게 되었다. 그들은 우리가 그 시간에 거기까지 온 것을 보고 대단히 놀랐다. 그 사람에 따르면 우리가 온 매표소-두타산성-두타산-박달재 코스가 가장 힘들다는 것이다. 그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문제는 여기서 청옥산으로 올라가느냐 그냥 내려 가느냐의 문제다. 우리는 청옥산은 다음 산행을 위해 남겨두기로 했다. 모두 다 다녀오면 다시는 여기에 올 일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실은 올라 갈 힘이 없었다. 모든 힘을 다 쏟아 부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등산 책에는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두타산은 동해안에 가까이 솟아 있어, 등반고도차(실제로 등산해서 올라가야 할 거리)가 무려 1200 미터나 되기 때문에 쉽게 오를 수 없으며, 무릉 계곡의 골짜기는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를 이루고 있어, 충분한 일정과 지도를 지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두타산과 청옥산 중간에 있는 박달재 이정표: 여기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코스를 택했다.>

 

 

우리는 꼬리를 내리고 박달재에서 하산하는 코스를 택했다. 문제는 쉽다고 생각한 이 코스가 절대로 쉬운 것이 아니었다. 두 시간을 계속 내리 꽂는 돌밭으로 내려가야 하는 것이다. 무릎을 다칠까도 걱정이 되었고, 돌에 미끄러질까도 걱정이 되었다. 내려가는데 이렇게 힘이 드는 산은 처음 본다. 다리든, 허리든, 어디든가에 계속 힘을 주고 내려와야만 했다. 온 몸에 땀이 젖는다. 우리는 아가씨들을 뒤로 하고 앞서 나갔다. 우리가 지렁이나 능구렁이 거북이 등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속도로 내려왔는데, 이들은 우리보다도 느렸으니 심양 일행의 속도야 일러 무삼하리오.

 

 

드디어 계곡 물이 나타나 반가운 마음으로 세수를 했다. 발 바닥은 이미 뜨거울 대로 뜨거웠고, 힘은 빠질대로 이미 다 빠져있었다. 그러나 다 왔다는 생각은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그런데 거기에서 4키로를 더 내려가야 매표소가 나온다는 표지판이 보인다. 설마, 그럴까? 설마가 사람잡는다고, 걸어도 걸어도 험준한 계곡만 나타났다.

 

 

나는 친구에게 먹다 남은 음식이 없냐고 물었고, 친구는 나보고 똑같은 질문을 했다. 보통의 경우에는 비스켓 조가리라도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았으나, 이번에는 먼지 하나 없이 빈 배낭만 달랑거렸다. 하는 수 없이 조금이라도 음식이 남아 있을 아가씨들을 기다렸으나, 한 번 전장에 나간 남편이 다시 돌아오지 않듯, 이 여자들도 꿩 구워 먹은 소식이다. 우리는 다시 세수를 하고, 발을 물에 담갔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다. 그러는 사이, 내 친구는 돌 위에 뻗어 버렸다. 나는 가자는 말도 큰 소리가 안 나왔다. 그냥 내 발이 나도 모르게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내 친구는 방금 난 송아지, 첫 발걸음 띄어놓듯 비칠비칠 일어나더니 내 뒤를 따라왔다

 

 

<뻗어 버린 내 친구: 웃고 있는 듯하다>

 

 

우리 둘은 먹을 것이 뻔히 없는 줄 알면서도 먹을 것이 정말로 없는지 수 십 번을 물어 보았다. 근처에 무 밭이나 고구마 밭이 있으면 캐 먹으려 해도 아무 것도 없었다. 도대체 단식을 하는 사람은 얼마나 배가 고플까? 아프리카인들은 얼마나 배가 고플까? 갑자기 굶주린 자들을 동정하게 되었다. 이 시간에 왜 여기 지나 다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까도 생각했다. 저 밑에 보이는 깎아지른 듯한 무릉 계곡의 바위가 감자로 보였다가 고구마로 보였다 했다.

 

 

그래도 발걸음은 습관적으로 앞으로 띄어졌다. 얼마를 갔을까? 드디어 철 계단이 보였다. 물소리가 커졌다. 평소 같았으면 저 마당 바위에서 큰 대자로 누워 잠이라도 자다 가겠지만, 도저히 거기까지 갈 힘이 없었다. 수 십 미터 되는 철 계단에서 미끄러지면 끝장이리라. 조심스럽게 걷다가, 차라리 끝장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군대있을 때, 유격 훈련이라는 극한 상황에서나 가졌던 생각이다. 그건 그렇고 이 아가씨들은 왜 안 오는거야. 아가씨들이 죽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해는 점점 기울기 시작했다.

 

 

<내려오는 중에 보이는 바위 절벽과 계곡은 그야말로 여기가 무릉 계곡이구나라고 감탄하게 만들었다.>

 

 

 

그때 저 멀리에 사람들의 옷자락이 보였다. 아, 거의 다 왔나 보다. 친구가 젖 먹던 힘을 다해 내려갔다. "쌍폭포다"라고 외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나는 죽지 않기 위해 끊임없는 초록색 난간을 잡고 한 걸음 한 걸음 코끼리처럼 걸었다. 마침내 쌍폭포가 나왔다. 하도 고생을 해서인지 쌍폭포가 마치 나를 잡아 삼키려는 이무기의 이빨처럼 보였다. 거기에서 약 30미터만 가면 용추폭포가 나온다. 그냥 가려고 하다가, 젖 먹던 힘을 다시 쏟아부어 그것까지 보고 왔다. 흰 폭포가 마치 상어의 이빨처럼 보였다.

 

 

<쌍 폭포>

 

 

 

한참을 기다리고 기다려도 아가씨들은 오지 않았다. 우리가 힘든 것을 고려해보면 늦게 오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도 배가 고파 더 이상 어쩔 수 없어, 나뭇가지에 먼저 간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가려고 하는데, 얼굴이 벌개가지고 아가씨들이 내려왔다. 말하나 마나 힘든 표정이 역력하다.

 

 

<무릉 계곡의 일면>

 

 

거기서부터 30분을 걸어오니 매표소가 보인다. 살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저 육체가 없는 귀신이 헛개비처럼 걷는 느낌이었다. 아무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도 아무 것도 보지 않았다.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땅만 보고 걸었다.  그리고 빨리 아무 곳이나 들어가서 막걸리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침 6시 반에 등산을 시작하여 오후 5시 반에 내려왔으니 11시간 걸린 셈이다.

 

 

우리 일행 네 명은 간판도 보지 않고 아무 집에나 들어갔다. 조껍데기 동동주와 감자전을 시켰다. 순식간에 달아났다. 찹쌀 동동주를 시켰다. 순식간에 달아났다. 메밀 동동주와 파전을 시켰다. 그것도 순식간에 달아났다. 아가씨들의 얼굴이 붉게 변하기 시작했다. 내 친구가 갑자기 말이 많아지고, 큰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순식간에 사태를 분별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성능 좋은 렌즈로 앞 쪽에 초점을 맞추면 뒤쪽의 배경이 둥글고 찬란한 그리고 어렴풋한 배경이 되는 것처럼, 내 앞의 경치가 그렇게 아롱거렸다. 한 바탕 시원한 바람이 휩쓸고 지나갔다. 또 마셨다. 그 다음부터는 무엇을 마셨는지 모른다. 이 사람이 가고, 저 사람이 오고 또 갔다. 하늘은 붉고 푸르고 노란 색 물결이 되어 나를 휘감고 지나갔다.

 

 

두타산—사람들이 말하는 "죽을 뻔한 산행", 바로  오늘의 이 산행을, 나는 "죽었다가 살아 나온 산행"으로 기억할 것이다. 독자들은 "그래도 살 줄 알았는데 죽는 산행"으로 자신의 역사에 기록되지 않도록 충분한 준비를 해가지고 가길 바란다. 무엇보다도 제발 먹을 것을 아무 것이나 많이 가지고 가기 바란다. 그것이 바로, 두타산이 두타(頭打)산이 되지 않고, 두타(頭陀)산이 되는 첫 걸음일 것이다.

(2008년 08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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