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선유도!
선유도는 군산 앞 바다에 있는 작은 섬이다. 신문 광고에서 선유도행 광고를 보니 1만 9천원으로 나와있다. 대충 어림잡아 군산까지 버스 왕복 차비 3만원, 한 시간 반 배 삯, 왕복 2만원이니 최소한도 5만원이다. 거기다가 세끼 식사를 대접한다고 하니, 아무리 머릿속 계산기를 두들겨 봐도 수지가 맞지 않는다. 그렇다. 이런 종류의 관광은 쇼핑에서 남겨 먹으니까 쇼핑만 절대 하지 않으면 내가 손해날 장사가 아니지. 나는 굳게 마음먹고 여행사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했다.
사실 나는 버스를 이용한 단체 관광을 처음 해본다. 분위기가 어떤지, 누가 오는지, 버스 속에서 돌아가면서 노래를 부르는지, 모두 잠만 자는지, 모든 것이 궁금했던 것이다. 또한 혹시 말로만 들어본 “묻지마 관광”이 아닐까하는 호기심도 있었다.
11월 24일 아침 8시 잠실에서 버스에 탔다. 사람의 수는 대충 30명 정도니까 한 버스에 적절히 탑승한 셈이다. 잠시 뒤 마이크를 잡은 여성 가이드는 요즈음 관광객이 많아, 회사 버스가 모자라 다른 버스를 빌려왔기에, 이 버스를 찾는데 고생이 많았을 것이라면서 몇 번이고 사과를 했다. 나는 지하철에서 나오자마자 가장 가까운 차를 탔는데, 그 차가 이 차인지라 별 문제가 없었기에, 이 가이드가 왜 저리 사과를 하는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그때 그녀는 또 그 문제로 사과를 했다. 나는 저 가이드가 돌았구나라고 생각했다.
잠시 뒤에 아침 식사가 있다고 한다. 안내양 혼자는 처리할 수 없으니 자원봉사자를 구한다. 밥은 전기 밥통에, 반찬은 아이스박스에 준비해왔다. 앞으로 나온 자원 봉사자와 함께, 능숙하게 음식상이 차려진다. 일회용 접시에 찰밥과 김치, 콩나물을 포함한 몇 가지 음식을, 앞에서 준비하면 뒤로 뒤로 전달하는 식이다. 안내양은 이런 찰밥은 다른 데에서는 죽어도 먹어보지 못할만큼 맛이있다고 했는데, 그 말이 맞았다. 하지만 찰밥은 맛이 있었으나, 나머지 반찬은 그 찰밥의 감칠 맛을 상쇄하기에 충분했다.
운전수석 옆에 있는 TV에서는 계속 대중가요가 흘러나왔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뽕짝인 것을 보니 아마 최신 뽕짝인가 보다. 내 뒤에 있는 아주머니는 노래가 나오길 기다렸다는 듯 계속 따라 불렀다. 밥을 먹으면서도 따라하다가, 숨이 막혀 가끔 밥알이 내 뒤꼭지를 후려치기도 했다. 그녀의 남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 옆에 있는 아저씨가 조심하라고 큰소리쳤지만, 그녀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노래는 노래로 이어졌다. 하소연하는 가사가 들렸다. “고지식한 내 인생, 상도 벌도 주지마오”. 철학도 나왔다. “잠시 왔다가는 인생, 잠시 머물다갈 세상.” 청춘의 미련도 남아 있었다. “체온을 남기고 싶다. 이 밤이 새면.” 그러나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있었다. “짱 놓고 떠날 너는 내 인생의 슬픈 마돈나.” 짱놓고 떠난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학교에서는 짱이라는 말은 왕초를 뜻한다. 어렸을 때는 짱박아 둔다라는 말을 사용했었다. 이번에는 짱을 놓고 떠난다? 정을 두고 떠난다든지 나를 못살게하고 떠난다든지 둘 중 하나 일것이라고 아무런 근거도 없이 결론을 내리고 나는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어느 듯 버스는 서산 근처로 왔다. 무슨 사슴뿔 파는 집이다. 아, 여기가 나의 결심을 실험하는 실험대구나. 절대 사지 말아야지. 몇 번 다짐하고 들어갔다. 우리는 안내를 받아, 녹용 체험장으로 들어갔다. 뚱뚱한 신사가 마치 배삼룡 처럼 우리를 울리고 웃기며 자기 손아귀에 가지고 놀았다. 그는 녹용은 분골, 상대, 중대, 하대로 나눌 수 있다고 말하면서, 각각의 효능을 과대평가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렇다고 녹용을 사냐?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 나는 재삼재사 사지 않기로 다짐했다.
잠시 후 사슴고기와 녹용 술이 들어왔다. 사슴 고기는 처음 먹어 본다. 녹용 술도 처음 먹어 본다. 그는 이 녹용술이 좋다는 것을 눈을 부라리며 침을 튀어가며 핏대를 올려가며 말을 이어갔다. 문득 춘향 어머니가 옥에 있는 춘향에게 “춘향모 악써 가로되 네 서방인지 동방인지왔다”라는 고3 국어 시간이 생각났다. 별 생각을 다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술 한 잔 들이켰다. Very goo------------d.
그는 석 잔을 먹어야 건강에 좋고, 다섯 잔을 먹으면 오늘 밤이 좋다는 것이다. 밤이 좋다! 김종찬인지, 김구라인지가 부른 "토요일은 밤이 좋아"라는 노래가 언뜻 머리를 스쳤다. 그래 좋다면 좋은 거지 나쁠 것이 있나. 나는 “건강”과 “오늘밤” 중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를 잠시 생각하다가 "오늘 밤"을 선택했다. 다섯 잔을 순식간에 들이켰다. 마치 주사를 맞은 듯, 채 일분도 가지 않아서 그 효과가 왔다. 옆에 계산서를 든 아가씨가 다가 오더니 녹용을 사라고 했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힐끗 보았다. 술을 먹고 여자를 보면 여자가 어떻게 보이는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그리고 오늘 밤도 생각했다. 나도 모르게 사겠다는 말이 입에서 튀어 나오는 것을 참았다. 그러나 채 1초도 지나지 않아 내 입에서 사겠다는 말이 나오고 말았다. 40만원이라는 돈이 겨우 4만원 정도로 생각 되었다. 아니 동전 몇푼으로 생각되었다. 결국 나는 그들의 술수(wine tactics)에 큰 방조제가 장마에 무너지듯 힘없이 무너졌다. 그것은 마치 동정을 창녀에게 바치는 17세 소년의 심정과 유사하리라. 술과 안주를 보면 맹세도 잊는다는 서양 속담은 틀림없이 경험에서 나온 철학이다!
군산에서 선유도행 배를 탄 것은 한 시 쯤되었다. 결국 아침 8시에 버스를 탔으니 5시간쯤 걸렸다. 그 중에서 둬 시간은 녹용집에서 보냈다. 혹시 이런 경우에 “짱 놓고 떠난다”는 말을 쓰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장항 제련소를 우측으로 끼고, 좌측으로 군산 공단이 계속 보였다. 잠시 더 가니 오른쪽으로 새만금 방조제가 멀리 눈에 들어왔고, 어선을 따라 갈매기가 죽기살기로 달려들었다. 사람들은 이명박이가 어쩌고 정동영이가 저쩌고 이회창이가 어떻고 이야기하더니 드디어 열을 내고 삿대질을 하며 이야기 했다. 그러다가 서로 욕을 하고, 이단 옆차기가 나오려고 할 때, 선유도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과 더불어 모든 싸움도 끝났다.
선유도에 도착하니 경운기를 개조한 택시와 봉고차 택시 몇 대가 손님을 끌려고 대기하고 있었다. 동남아 여행할 때, “말타시오”라고 회치던 현지인들이 생각났다. 경운기는 거기서는 마차라고 부르며, 이 마차의 주인들은 손님을 유치하기 위해 마치 말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뛴다. 6명이 한 조를 이루어 마차 하나 올라탔다. 조금 가다가 시동이 꺼졌다. 같이 앉아 있던 아주머니가 궁시렁 댔다. “씨발, 좀 고쳐가지고 장사해 먹지. 날로 먹으려고 해!” 그 아주머니는 아까부터 일인당 5천원이 너무 비싸다고 투덜대던 아줌마다.
우리는 다른 마차로 바꿔타고, 건성건성 대충대충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유명한 장자도 다리, 선유도 해수욕장, 이름모를 큰 바위 등을 주마간산격으로 보았다. 그러고 보니 주마간산 격이 아니라, 실제로 주마간산이다. 언제 조용히 차분하게 왔다 며칠 묵고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야 여행이라는 것이 몇몇 곳을 제외하면, 목적지에 도착해보면 다 그렇고 그런 것이리라. 여행하는 것이, 가는 재미 오는 재미 빼면 뭐 있겠나 라고 혼잣말을 하면서 마차를 탄 자리로 돌아오니 딱 40분 걸렸다. 선착장 부근에는 횟집과 오뎅집, 조갯집 등이 있었으나, 사 먹을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마침 나를 전문 사진사라고 부르며 아까부터 자기를 찍어달라고 하던 한 분이 소주와 생선회를 주어서 몇 잔 했다. 아래 사진에 나와있는 선글라스를 낀 분이다.
다시 군산 선착장에 도착하니 안내양이 반갑게 맞이한다. 거기서 서해안 고속도로가 서울로 오는 첩경이겠지만, 다시 들러야할 젓갈집이 강경에 있으니 그리 간다고 했다. 어두운 길을 밝히며 가는 우리 버스는, 마치 한 밤중에 호랑이가 쌍눈에 불을 켜고 가는듯 했다. 또한 우리는 처형당하기 위해 독일군에 끌려가는 유대인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금에 절인 파뿌리처럼 말없이 졸고 있었다.
강경의 젓갈 시장에서 또 쇼핑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북적대는 사람들 중 나에게 관심을 끄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장사꾼의 딸이다. 장사에 온 신경을 쓰고있는 어머니를 얼마나 많이 보았겠나? 하루 종일 장사만 하는 어머니의 사랑이 얼마나 그리웠겠나? 아이는 어머니의 치마자락을 잡고 따라다니며 칭얼댔다. 그 아이는 내가 들이대는 카메라에 잠시 호기심을 보였다. 그러드니 말없이, 자기도 모르게 손이가는 어머니에 의해 습관적으로 들어올려져 어머니 등에 업혔다. 아이는 이런 일에 익숙하다는 듯 이내 잠에 골아 떨어졌다.
이렇게 세상은 돌고 돈다. 이래도 세월은 가고 저래도 세월은 간다. 좋고 나쁜 경험은 없다. 오직 새롭고 새롭지 않은 경험만 있을 뿐이다. 오늘도 새로운 경험을 많이 했다. 기쁘다. 언제나 나에게 새로운 경험이 기다리고 있는 한, 나는 어떠한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그곳에 기쁘게 들어가리라. 설령 그것이 죽음이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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