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악산 등산기
5월 18일 오전 6시 40분에 동서울을 떠난 월악산 행 시외버스는 장호원, 충주를 거쳐, 8시 30분에 수안보에 도착했다. 1시간 50분 걸린 셈이다. 수안보에서 9시 정각에 월악산으로 출발할테니, 어디가서 놀다오라는 버스 기사의 말을 듣고, 내 친구는 “무슨 30분이나 기다 려야하는지, 세상에 이럴 수가 어디 있느냐?”는 등 투덜댔다. 그것도 운전수가 들으라고 하는 것 같다. 나는 그를 빨리 제지해야했다. 지난 번 가야산에서 운전기사의 유별난 성격을 익히 체험으로 알고 있는지라, 말썽이 나지 않도록 한 손으로는 내 친구의 입을 막고, 한 손으로는 손목을 잡고, 전투경찰이 데모 대원 끌고 가듯, 버스 밖으로 그를 밀쳐냈다.
한 고비를 넘겼으니, 지금부터 수안보 시내를 구경하러, 여기저기 어슬렁거려 보기로 했다. 마침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내 친구는 우의를 걸쳤는데, 그 모습이 가관이다. 판초 우의를 뒤집어 쓰고, 발목이 젖지 않도록 비닐봉지 두 개를 밑둥을 잘라서 거꾸로 방향을 틀어 발목에 챙챙 동여맸다. 오래된 등산화는 비에 젖어 그야말로 거지 중에 상거지다. 가게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한참 바라보던 그는 “나는 어디가고, 웬 각설이가 나를 바라보네.”라고 허허 웃으며 자신의 모습을 즐긴다.
관광객으로 들끓어야할 이 관광지는,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상가의 문이 닫혀있 었다. 가게 밖에 진열해둔 물건들은 큰 천막으로 대충대충 싸여지고, 이리 묶이고 저리 묶 여져, 비를 맞고 있는 꼴이, 마치 전쟁터의 시체 더미를 보는 것 같다. 문이 열려있는 몇몇 가게도, 한 여름철도 아닌데 파리를 날리고 있었다. 가끔가다 보이는 주인장은 하염없이 담배를 피우면서, 동물원 원숭이 보듯 신기한 눈초리로 우리를 본다. 우리도 별 수 없이 가게 문 안에 있는 주인을 동물원 원숭이 보듯 볼 수 밖에 없었다. 원숭이가 원숭이를 본다! 내 경험으로는 이런 경우 싸움밖에 할 일이 없기에, 우리는 그냥 버스로 돌아와 버렸다.
9시 정각에 월출산으로 출발하는 버스의 승객은 우리를 포함하여 모두 7명이었다. 모두 서울에서 온 등산객들이다. 차창에 흘러내리는 빗물을 보면서 각자가 한 마디씩 한다. “아 이구, 송계 계곡에서 막걸리나 먹다가 올라가야겠네.” “아이구, 내 이럴 줄 알았어. 내가 등 산만 가면 꼭 비가 온다니까?” 그런데 내 친구는 “죽어도 간다. 빗물이 묻은 바위에 미끄 러져, 팔다리가 부러져도 나는 간다.”고 말한다. 그러더니 나를 보고, “너는 네 마음대로 해라. 갈테면 가고 말테면 말아라. 너는 너고, 나는 나다.”라고 말했다. 나는 “참, 너도 너다.”라고 말했다. 그 순간 나는 “너는 너다”와 “너도 너다”라는 말의 말로 설명하기 힘든 교묘한 차이점을 생각하며, 우리 말의 멋스러움을 느낀다.
송계 계곡에 도착한 것은 9시 30분이다. 놀랍게도 비가 뚝 그쳐 있었다. 다리를 건너 월악 산입구로 가다가, 일산에서 왔다는 부부를 만났다. 우리와 함께 버스를 타고 온 부부다. 그 들은 가게에서 김밥을 사려고 했으나, 그 가게에는 그런 것은 없었다. 빵 조가리 몇 개 사든 그들과 함께 산행이 시작된다. 그들은 일산에서 새벽에 자가용으로 동서울로 와서, 강변에 차를 주차하고, 동서울 터미널에서 시외 버스를 타고 거기에 온 것이다. 그들은 점잖으면 서도 활기찬 부부였다. 남자는 식물에 상당한 조예가 있어서, 눈에 보이는 모든 식물의 이름을 구구단 암기하듯이 즉각즉각 알아 맞췄다. 예를 들면 어떤 꽃을 보더니, 이것은 부침개(a kind of cake)도 아니고 지친개(a tired dog)도 아닌 "지칭개"라고 정확하게 읊는다.
입구에서 보이는 월악산은 중간 부분이 구름에 휩싸인 신령스러운 산으로 보였다. 좌에서 우로 눈과 고개를 다 돌려야 볼 수 있는 월악산의 전경(全景) 파노라마는, 16미리 카메라로 담아내기에 역부족이었다. 시원하게 펼쳐져 있는 산을 보고, “야, 대단한 산이다!” 네 명 모두 이구동성으로 합창했다. 바로 앞에 있는 농가를 전경(前景)으로, 안개에 휩싸인 월악산은 마치 꿈 속에서나 볼 수 있는 한 폭의 동양화다. 어렴풋이 비치는 햇살을 받아, 구름 속의 월악산은 몽환적(夢幻的)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한 참 동안 멍하니 산을 바라보던 우리는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다. 내 친구는 우리가 등산에 일가견이 있는 것처럼 말했지만, 결국 일산 부부 팀을 따라 갈 수는 없었다. 역시 젊은이와 늙은이의 차이를 느낀다. 처음 한 시간 삼십분은 그야말로 사투를 벌려야할 정도로 가파른 경사다. 한 시간 반 동안, 단 한 군데도 평평한 길이나, 내려가는 길이 없이 끊임없는 오르막길로 치닫는다. 올라갈 때, 장단지와 발 뒷꿈치 사이 폭 들어간 부분이 땡기는 것을 처음 경험했다. 등산을 하면 허벅지가 아프든지, 숨이 막히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장단지 밑 부분이 왜 이리 계속 땡길까? 길은 연이어 오르막길이다. 해결 방법이 없는 등산로다. 여자는 월경(月經) 때문에 평생 고생하고, 남자는 월급(月給) 때문에 평생 고생한다더니, 오늘은 월광(月光)도 없는 월악산(月嶽山)에서, 내 장단지가 찢겨져 나간다.
그나마 중간에 맨발의 청춘을 만난 것은 가뭄에 단비라고나 할까? 그 사람 때문에 속도를 늦출 수 있었다. “맨발의 청춘” 하니까 "평양 맨발"이 생각난다. 아주 오래 전 30대 초반일 게다. 언젠가 비디오 가게에 가서 “좋은” 비디오 없냐고 물으니, 평양 맨발이라는 비디오를 내줬다. 집에 와서 보니 이것은 완전한 포르노였다. 나도 놀라고 아내도 놀랐다. 얼른 비디오를 껐다가 다시 보고, 끄고 또 다시 보고, 결국은 다 보고야 잠을 잤다. 잠을 자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그것이 정말로 “좋은” 비디오라는데 공감했었다.
다시 맨발의 청춘 이야기로 돌아온다. 불그죽죽한 개량 한복에 축구화를 두 손에 들고, 날날이 봇짐을 지고 가는 이 등산객에게 말을 걸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10년 동안 이렇게 걸었어도 단 한 번도 발을 다친 적이 없다고 했다. 보통 사람은 지면과 평행으로 발을 전진시켜 나아가기 때문에 돌에 걸려 다치지만, 그는 위에서 아래로 발을 내려 놓기에 다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물 중에서는 코끼리가 그렇게 하고, 사람은 마사이족이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맨발 보행의 장점은 걸을 때, 다섯 발가락을 다 사용한다는 것이다. 맨발 보행을 시작한 후, 단 한 번도 감기에 걸린 적이 없다고 했다. 금오산에서 내려올 때 돌이 모두 칼날 같아서, 마치 신내린 무당이 작두를 타듯 내려온 적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 한 손에는 부채와 또 한손에는 방울을 들고 내려왔냐고 내가 물었다. 한 손에는 막걸리와 다른 한 손에는 안주를 가지고 내려왔다고 그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송계 삼거리에 오니 드디어 좀 쉬운 길이 나타난다. 기분이 이리 좋을 수가 있을까?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은 이런 경우에도 해당되리라. 금상첨화라고나 할까? 한 여인이 따라 붙는다. 최근 들어 산에만 가면, 여복이 있는 것을 어찌 설명할 방법이 없다. 이 여인은 삼척에서 왔다고 했다. 다른 일행이 있지만, 속도가 느려서 자기가 먼저 왔다고 말했다. 내 친구의 풍부한 경험에 따르면, 이 여인네 타입이 여자로서의 가장 바람직스런 타입이라고 한다. 키가 작고, 말랐으며, 여기에 나긋나긋하다면, 더 이상 바랄 데가 없다는 것이다. 그의 범상치 않은 관찰과 실제 경험을 통해 얻은 자기 나름의 결론은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는, 여자를 보는 또는 여자를 고르는 요체(要諦) 중의 요체다.
가만이 보니 그가 묘사한 것에 딱 맞는 여인이다.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조건에 맞을 뿐만 아니라, 얼굴도 곱상하고, 말소리도 나긋나긋 한데다, 예절 바르기가 범상치 않다. 남자 앞에 걸어가는 것을 극히 사양한다. 남자가 앞서가야 한다는 것이다. 사진을 찍기는 좋아하지만, 찍히기는 좋아하지 않는단다. 그 이유는 자신은 젊다고 생각하는데, 사진에 나타난 자신의 모습은 자신을 실망시키기 때문이란다. 하여튼 놓치기 아까운 여인이다. 저런 여자를 젊었을 때 만나지 못한 것이 천천지 한이 된다고 내 친구는 허공을 보며 말한다. 급기야 소주 한 잔 하겠냐는 친구의 말에, 정상에 가서 자기가 가져온 메밀전을 안주로 같이 하자고 그녀는 말한다. 웬 호박이 굴러도 덩굴채 굴러 떨어지나? 친구 입이 찢어진다.
이야기는 이야기를 낳고 또 낳는다. 올라가면서 웃음과 희망이 섞인 대화는 그칠 줄을 모른다. 삼척에는 두타산이 있는데, 여기 월악산이 좋기는 하나 두타산만 못하다고 그녀는 말한다. 내 친구는 두타산을 자꾸 수타산으로 발음한다. 여자에 정신 팔리니, 아니 이 여자와의 앞날을 생각하니, 정신이 몽롱한가 보다. 급기야 그녀는 내 귀에 대고 저 사람은 몇 번이나 말해줘도 두타산과 수타산을 구별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그녀가 내 친구보다는 나에게 관심이 더 많다는 표시가 아닐까? 나도 갑자기 기운이 나기 시작했다. 아무리 월악산이 힘들어도 하늘아래 뫼이로다. 남의 여자 하나가 사람을 이리도 기운차게 바꾸어 놓는다.
신륵사 삼거리부터는 또 끝없는 계단의 연속이다. 마지막 진을 빼 놓는다. 한 여자는 정상을 겨우 100미터 남겨두고 죽으면 죽었지 올라가지 않는다고 앙탈을 부린다. 남편으로 보이는 사람이 온갖 감언이설로 말을 해도, 차라리 자기를 죽이고 올라가란다. 그들을 뒤로 하고 우리는 영차 영차를 외치면서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이다. 발 아래부터 멀리 눈에 보이는 곳까지 연이은 산은 5월의 연푸른 왈츠를 연주하고 있었다. 구름 속에 어렴풋이 보이는 치악산과 그 앞의 충주호는 천상의 화가들이 그린 그림보다도 아름다웠다. 난간 아래 발 밑을 보니, 견우직녀가 만난 다리 아래를 보듯, 아찔함과 아름다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정상은 너무 좁아서 밀려드는 사람을 모두 포용할 수 없었다. 엉덩이도 내려 놓을 곳이 없는 것이다. 월악산 표석에서 사진 한 번 찍는데 몇 분을 줄서서 기다려야 했다. 미안하기는 하나 새치기를 해서 후다닥 한 방 찍고 말았다. 왜냐하면 아까부터 그녀와의 메밀 전에 소주 생각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소주는 양(陽)이고 메밀은 음(陰)인지라, 월악산에서 완벽한 음양의 조화가 아닌가? 내 친구의 배낭에서 소주가 나온다. 그녀의 배낭에서 은박지로 싼 메밀 전으로 보이는 물건이 나온다. 키가 작고, 날씬하고, 나긋나긋한 여인이, 내 앞에서 방긋거리며 분주히 움직인다. 여인의 조그마한 손에서 은박지가 벗겨지기 시작한다.
바로 그때 웬 날벼락 같은 소리 들린다. “당신 거기서 뭐하고 있는거야?” 소리가 나는 쪽을 보니 웬 늙수구레한 사람이 저쪽에서 오고 있다. 산에서는 보통 누구나 친구고, 아무에게나 음식을 주고 또 받아 먹는다. 그런데 직감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그녀와 우리는 모른척하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우리는 그 짧은 순간에 날아서 몇 미터 떨어졌다.
“아니 당신이 늦게 와서 이분들이 길을 안내해서 온 것인데, 왜 그리 화를 내고 그래?” “저 사람들이 당신 애인이야 뭐야. 지금 뭐하려고 하는 거야?” 남편의 말이다. “뭐하긴 뭐해. 이 대낮에 사람들 많은데서. 당신 집에서도 그러더니 밖에서도 그러네.”
그녀는 남편 편이 아니라, 우리 편인 듯 했다. 그 남자는 마누라를 믿지 못하여 죽기살기로 올라온 듯 하다. “늙은이 주제에 처복은 있어가지고, 온갖 주책은 다 부린다.”고 나는 생각했다. 어떻게든지 이 악마의 소굴에서 저 여인을 구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하여튼 우리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가 됐다. 아무리 하다 마는 것이 인생이고, 가다 마는 것이 인생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먹다 마는 것이 아니라, 먹기도 전에 초전박살났다. 초장에 초싹하면 파장에 파싹한다더니..., 말못할 아쉬움과 미련을 접어두고, 눈 인사만 하고 악마에게 여인을 맡긴 채, 우리는 발길을 중봉으로 돌려야 했다.
메밀 전과 그 여인에 대한 애잔한 생각은, 그 뒤 한 참 동안 우리를 지배했다. 초록빛 산과 그녀의 얼굴이 겹쳐보였다. 나무 밑에 쪼그리고 앉아 비통한 심정으로 소주를 따라 마셨다. 오늘따라 술을 먹어도 꿈쩍도 않는 것은 웬일일까? 이 나이에 순정이란 것이 남아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 동안 사랑에 너무 굶주렸을까? 한 동안 말없이, 마치 죽은 자의 시체를 화장해 강에 뿌리고 오는 사람처럼 우리는 그렇게 걸었다.
한 참을 걸었을까? 갑자기 환상적인 경치가 나타난다. 놀랄만한 일은 중봉과 하봉 사이에서 보는 사방의 경치다. 초록의 하봉 너머, 충주호가, 영봉에서 보는 것과는 다른 아름다움으로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 왼쪽으로 송계 계곡을 따라 음식점들이 줄줄이 놓여있다. 오른 쪽으로 신륵사 방향으로 싯퍼런 산과 산이 이어져 있다. 누가 이곳에 잉크를 이리 뿌려놨을까? 월악산 정상인 영봉보다도 이곳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 헤어나오기 힘들었다. 친구로부터 이제 가자는 말이 나오기를 기다리니 한 없는 시간이 흘러간다. 구름도 흘러간다. 나도 흘러간다. 세월도 흘러간다. 내 청춘도 흘러간다. 내 청춘이라! 그래 말이라도 그렇게 해보자. 경치에 빠져 삼척댁에 대한 생각을 어느 정도 잊은 것은 그나마 행운이다. 그러나 미련까지 버린 것은 아니다. 그나저나 이놈의 여자 생각은 저 세상에 가야만이 없어지려나 보다.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그럴 수가 있다는 것이...
거기부터 다시 가파른 하산 코스다. 끝없는 초록의 터널을 걸어간다. 외부와 단절된 평온함의 세계다. 드디어 보덕암자가 나타난다. 물 한 모금 마셨다. 깨끗해진 몸과 마음으로 배낭을 메고 떠나려 할 때, 또 여인 소리가 들린다. 여자 둘에 남자 하나다. 이들은 논산에서 온 단체 등산객들이다. 그러더니 남자 하나와 여자 하나는 갑자기 배낭을 뒤적거렸다. 치약과 칫솔을 꺼내 이를 닦기 시작한다. 내 친구는 키스 사전 준비 동작이라고 한다. 하나 남은 여인은 우리에게 달라 붙어 껌도 달라, 사탕도 달라 한다. 주기만 하면 어디까지 따라간다고 했다. 얼마를 내려갔을까? 아까 이를 닦던 두 명 중, 남자가 헐레벌떡 쫓아왔다. 남의 처제를 데려가면 어떻게 하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여인네에게 검은 장갑 낀 손이 아닌, 맨손을 내밀었다. 내 친구도 손을 내 밀었다. 그녀가 누구와 악수를 할지 자못 궁금했다. 놀랍게도 그녀는 손이 두 개였다! 공평하게 한 손씩 나누어 주었다!
제천시 수산리에 도착했다. 특수 농작물 집단 재배지다. 무슨 식물이라고 밭에서 일하는 주인은 말하는데, 잘 알아듣지 못하겠다. 가락동 시장에 팔아서 돈을 많이 번다는 농부의 말만 메아리쳐 돌아온다. 우리가 내려온 월악산 영봉과 중봉 하봉이 멀리 아련히 보이는 것이, 마치 꿈속에서 지상 낙원을 보는 듯하다. “다음에 이 산에 꼭 다시 와야지”라는 생각과 “내가 이 산을 또 다시 올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번갈아 했다.
오늘 밤 분명히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당일치기 산행을 예상했지만, 다시 서울로 간다는 것이 도살장에 들어가는 누렁소의 심정이었다. 친구를 속이고 나 혼자 이곳에 남아볼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오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그런데, 아까 산에서 본 삼척댁이 저기 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녀를 만나러 그쪽으로 향하려했다. 그 순간 “야, 졸지 말고 정신 차려. 여기 버스 왔어. 빨리 타.” 내 친구의 말이다. "너에게 줄 좋은 꿈 꾸었다. 돈은 필요없다. 충주에 가서 소주나 한잔 사라. 나는 메밀 전을 사겠다."라고 나는 말했다. "얘가 낮술먹었나? 헛소리 그만좀해라." 친구가 말했다. 담양에서 오는 충주행 버스가 눈 앞에 서 있었다. 비몽사몽간에 친구에 떠밀려 나는 충주행 버스에 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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