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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설악산 공룡능선 등산기(Seorak Mountain)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2. 7. 27. 21:08

 

 

 

<설악산 공룡능선 등산기>

 

 

 

 

 

 

 

 

 

 

 

 

 

 

 

 

 

 

 

 

 

 

 

 

 

 

 

 

 

 

 

 

 

 

 

 

 

 

 

 

 

 

 

 

 

 

 

 

 

 

 

 

 

 

 

 

 

 

 

 

 

 

 

 

 

 

 

 

 

<설악산 공룡능선 등산기>

 

이 글이 너무 길어 여기에 올리는 것이 부담스럽다. 이런 글은 처음 써보는 지라, 독자들에게 재미없는 글을 읽게하여 시간을 뺏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웬만하면 읽지 않는 것이 건강에 좋을 것이다. 3박 4일 중, 첫날인 22일과 마지막 날인 25일의 내용은 적지 않기로 한다. 긴글이 더 길어질 것 같아서다. 23일과 24일에 걸친 외설악 등반에 대해서만 언급하겠다.

 

 

10월의 설악산은 아주 오래 전부터 가보고 싶었다. 그러나 교직에 있는 한 `10월의 설악산에 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휴일날은 인파 때문에, 평일은 근무 때문에 불가능했다. 내가 명퇴를 한 것도 제 때에 가보고 싶은 곳을 가보는 것이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였다. 설악산이 그 중의 하나다.

 

 

설악산을 염두에 두고 설악산의 어디로 갈 것인지 결정하는데 며칠 간 시간을 보냈다. 이런 저런 비교를 한 후, 단풍이 곱다는 천불동 계곡, 그리고 천불동 계곡을 아래로 보며 멀리 동해까지 보인다는 공룡능선을 택했다. 한 가지 걱정이 되는 것은 공룡능선은 위험하니 주의를 하라는 지도상의 표시가 있었고, 인터넷으로 문의한 바, 같은 대답이 나왔다는 것이다. 특히 약 5시간 걸리는 공룡능선 길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전혀 없으며, 이 곳이 대단히 위험하다는 내용이 인터넷 여기저기 적혀있었다. 더구나 마등령에서 신선대로 내려올 때는 3키로에 걸친 길이 급경사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전에도 한계령을 출발하여 대청봉에 올랐다가 오색의 급경사면으로 내려오느라고 왼쪽 무릎을 다쳐서 지금도 성하지 못하여 두고두고 후회하는 것이 현재의 나다. 그런데 영원히 병신이 될지도 모를 상황이 내 앞에 전개된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것보다도 나 혼자 간다는 것이 더욱 나를 망설이게 만들었다. 사고가 생겼을 경우 어찌한단 말인가? 나이를 먹을수록 무모한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할텐데라는 생각이 자꾸 떠올랐다. 그러나 한편으로 지금 내가 이곳을 가보지 못하면 아마 영원히 가보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더 강함을 나는 느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기본 원칙을 세웠다. 우선, 지도상에 나와 있는 시간보다 조금 더 느린 보조를 유지하기로 했다. 그리고 내려가는 길은 무조건 한 시간 내지 두 시간 더 여유를 두고 가기로 했다. 급경사에는 15분 걸은 뒤에 무조건 5분 이상을 쉬기로 했다. 나머지는 운에 맡기기로 했다.

 

23일 아침 7시에 일어나 간단히 참치에 김치를 넣은 찌개와 햇반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배낭을 꾸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엇을 배낭에 넣고, 무엇을 빼야하는지가 너무 어려웠다. 꼭 가지고 가야할 것이 너무 많고 그러다 보니 너무 무거워 걷기가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하루 10시간을 걸어야 하는데, 어떻게 무거운 배낭을 지고 가야하는가? 그렇다고 1000미터 이상의 고지대에서 먹고 자야할 기본적인 물건은 가져가야했다. 솔직히 말해서 넣고 빼면서 가지고 갈 물건을 결정하는데 한 시간 반이 걸렸다. 그래서 가지고 간 것이, 최소한의 옷, 음식, 카메라였다. 옷과 음식은 생존에 필수적인 것이고, 카메라는 적어도 생과 사의 갈림 길에서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카메라는 16-80미리 줌렌즈 하나만 가지고 가기로 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번 여행에 찍은 모든 사진은 바로 이 줌렌즈 하나만으로 찍은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설악산하면, 케이블카를 타거나 울산바위를 가보거나, 신선대까지 가거나, 좀 더 힘이 남아도는 사람은 금강굴까지 간다. 나도 지금까지 그랬다. 그러나 그것들은 껍데기 중의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60을 바라본 나이에 알게 되었다. 신선대에서부터 드디어 설악산이 나오는 것이다. 약 8 년전에 한계령으로 올라가서 대청봉을 거쳐 오색으로
내려올 때도 고생만 했지 아무런 감흥을 얻지 못하고 왔기에 설악산에 대한 인상은 그저 그런 산에 불과했었다.

 

 

그러나 천불동 계곡을 올라가면서 나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길 양쪽으로 뻗어 있는 하늘을 향해 뻗어있는 기묘한 바위들이 병풍처럼 서 있었기 때문이다. 투명한 물이 내는 소리를 배경으로, 나무 사이사이로 보이는 설악산은 그야말로 온갖 모양의 자태를 뽐내며 내 곁으로 다가왔다. 설악산의 입구는 아직도 초록색이고 중간 정도는 단풍이 들었으며, 어느정도 올라가자, 이미 나뭇잎이 모두 다 떨어져 있었다. 중간 중간에 놓여 있는 폭포만 볼거리가 아니라, 모퉁이를 돌아, 바위와 바위 사이를 휘감아 도는 물 그 자체가 풍성한 볼거리였다. 또한 가파르게 연결되어 있는 철계단은 위압감으로 나에게 다가왔으며, 그 위를 소리를 내며 걷는 것은 나에게 흥미로운 전진의 자극이 되었다. 적절히 나뭇잎이 떨어져 있어 그 사이로 바위가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기도 했다. 속치마만 걸친 여인네가 바람에 치마가 펄럭거려, 여인네의 알몸이 보였다 보이지 않았다가 하는 것과 흡사하리라. 이런 면에서 여름에 오면 초록의 잎으로 인해 거대한 바위를 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을 읽을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지 모르지만 쓰다 보니 자꾸 글이 길어져서 짧게 써야 겠다. 본론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벌써 이렇게 되었다. 위로 올라갈수록 사람들이 보이지 않아 어는 정도 올라가니 어느덧 나 혼자만이 걸어가고 있었다. 한참을 걸어갔을까, 서양인 두 명이 내 앞을 걸어갔다. 그냥 갈까하다가 말을 걸었다. 그들은 독일 대학생으로 경상대에서 독일어를 가르쳐보고 이제 10월말에 독일로 간다는 사람들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목적지인 희운각이었다. 약 3시반이었다.

 

 

자야할 곳을 둘러보니 한심했다. 침상 위에 번호가 빽빽이 붙어 있어 겨우 옆으로 누워야 잘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이런 것이라도 있는 것이 천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같이 갔던 독일인 후리드리히라는 남학생과 수잔나라는 여학생은 예약도 없이 무조건 온 사람이었다. 이들은 잠자리가 있으면 머물고, 없으면 내려가겠다고 했다. 혹시 부엌이라도 있으면 자고 가겠다고 했다. 주인에게 문의하니 잠시 기다리고 하더니 얼마 후에 잘 곳이 있다고 했다.

 

 

곧 날이 저물고, 사람들이 그룹으로 모여서 끓이고 굽고 볶아 먹는 저녁 시간이었다. 최소 3명에서 최대 10명까지 그룹으로 왔지, 나처럼 혼자 온 사람은 내가 전부였다. 다른 사람들이 파티를 열고 있는데 혼자 멍하지 있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기분이었다. 하는 수 없이 후리드리히와 수잔나 그리고 나는 같이 앉아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밤이 다가와 우리는 캔 맥주를 하나씩 마시게 되었다. 일단 술이 한잔 들어가니 소주 한 병을 나누어 마시게 되었고,주인이 먹다 남은 소주도 주인 몰래 먹어 버렸다.

 

어느 듯 주인도 우리와 같이 한 잔 하게 되었다. 예년 같았으면 사진사들이 10명이상 이곳에일주일 이상 머물면서 사진을 찍었으나 올해는 단 한명도 올라와 사진을 찍는 사람이 없다고했다. 30년 만의 최악의 단풍이라고 했다. 8월에 단 3일만 해가 보였다고 했다. 사실 설악산의 단풍은 없었다. 칙칙한 단풍 몇 그루가 가뭄에 콩 나듯 보였을 뿐이다. 또한 그 날은 약간의 안개가 껴서 먼 곳은 희미하게 보였다. 날씨가 좋은 날에 다시 올라와야겠다는 소리가 먼 곳에서 들린다 그래서 나도 단풍을 찍을 생각은 조용하게 접어두었다.

 

 

술을 먹으면 영어가 잘 되는 경험은 모두 했으리라. 내 생각인지 모르지만 영어가 술술 나왔다. 내가 영어 선생이라고 했더니 수잔나는 자기가 하는 영어가 맞는지도 나에게 물었다.한국 사람들이 자기들에게 대단히 호의적으로 대해주어서 여행이 편하고, 즐겁다는 이야기를 했다. 독일어 전공자로 독일에서는 일자리가 없어서 장차 다른 나라 특히 한국에 다시와서 일자리를 얻고 싶다고도 했다. 전날 진주에서 속초로 와서 찜질방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올라오기 시작했고, 다음날은 백담사로 간다는 것이었다. 수잔나는 사진에 관심이 많은여학생이었다. 나의 홈페이지와 육구사영 홈페이지 주소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사진을 몇 방찍고, 육구사영에서 자기 사진을 다운받아 가라고 했더니 그러겠다고 했다. 그래서 그들의사진을 25일 날 올린 것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소주는 소주를 불렀다. 내일 산행이고 뭐고 소주는 내 목을, 마치 맑은 물이 천불동 계곡을 흘러가듯이 흘러들어갔다. 결국 소주 5병과 캔맥주 3개를 셋이 나누어 먹었다. 끝부분에는 기억에 별로 없는 것이 어떻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9시경 잠자리에 들은 것으로 기억될 뿐이다.

 

 

새벽에 목이 말라 눈을 뜨니 4시 반이었다. 물을 마실 수도 나갈 수도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그냥 눈을 감고 있었다. 오로지 들리는 것은 사람들의 코고는 소리와 이빨가는 소리 뒤척이는 소리였다.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방귀를 뀌는지를 처음 알았다. 알게 모르게 사람이 하루에 방귀뀌는 것이 50번이라고 하는데, 그제서야 수긍이 갔다. 하여튼 코고는 소리와 방귀뀌는 소리가 여름 논의 개구리 울음소리 같았다.

 

 

5시 반 캄캄한데 밖으로 나왔다. 개울에서 빈 물병으로 물을 떠서 한 병을 마셨다. 사람들이나와 아침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하늘에는 별이 보였다. 컵라면 하나 사서 먹고 나니 별이 서서히 사라졌다. 드디어 어둠이 사라져 땅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가 6시 반이다. 독일 대학생과 작별을 했다. 그들은 인제로 가서, 대전을 경유하여 금산으로 간다고 했다. 옛날에 “대천, 군산”으로 갈 미군이 발음이 비슷한 “대전, 금산”으로 왔다가 허탕치고 간 것을 목격했기에, 몇 번이고 그들에게 목적지를 확인하여 주었다. 그들의 입에서 금산은 인삼이다라는 말을 암기시킨 뒤에야 비로소 나는 안심이 되었다. 금산에서 인삼죽을 사먹으라는 충고를 주고 작별을 고했다.

 

나는 마등령으로 걷기 시작했다. 취기 때문에 약간 비틀거렸지만, 걸을 수 있었다. 다행이면서도 오늘 하루 걸을 일을 생각하니 앞날이 캄캄했다. 역경이 닥치면 사람은 강해진다고했던가? 나는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처럼 더욱 마음을 가다듬고 터벅터벅 걸었다. 내 이렇게 비장한 각오로 걸어간 것은 처음이리라.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하며 한 시간을 걸었으나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겁이 났다. 길을 잃은 것은 아닐까? 내가 지금 꿈을 꾸는 것은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눈 앞에 기암괴석이 나타났다. 배낭을 내려놓고 보고 또 보았다. 그리고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이런 광경은 이제 시초일 뿐이었다. 앞으로 네 시간 동안 계속 뾰죽한 바위와 온간 모양의 바위를 양쪽으로 보면서 능선을 따라 내려간다. 한 참을 가다가 바위에 앉아 “내가지금까지 왜 이런 곳을 와보지 못했나?”라고 생각하면서 눈물이 났다. 더 머물러야 된다는생각과 가야한다는 생각이 병립하면서, 내 다리는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천불동이 계곡에서 바위의 뿌리를 보는 것이라면 공룡능선은 하늘에서 바위의 끝과 펼쳐진 바위의 파노라마를 보는 코스다.

 

 

 

대부분의 길은 돌을 깔아 놓아 걷기에 편했다. 하지만 몇 군데는 밧줄을 타야했고, 깔딱고개도 여러번 나타났다. 얼마나 갔을까, 아마 한 시간은 갔을 것이다. 첫 사람을 만났다. 두사람이 밤중에 출발하여 거기까지 왔다고 했다. 산속에서 사람을 만나서 이렇게 반가운 적은아마 처음이리라. 만나자 작별하고 계속 걸었다. 그런데 최근에 일본어 연습을 좀 많이 한 탓인지 땅을 보고 걸으면 일본어가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텡끼 요호 기끼 마시따까? 쿠모리노치 아메데시다.(일기 예보 들어보았습니까? 흐린 뒤에 비가 온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제 밤에 독일인과 몇 시간 영어회화를 해 본 것이 또 생각이 났다. Koreans are very friendly to us Germans. /Yes, I think, Koreans are very curious about foreigners,especially about Western people. 참으로 인간은 이상한 존재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또 일본어가 튀어나왔다. 좃도 맛대 구대사이네(잠깐 기다려 주세요).

 

 

내려가는 길에 주르륵 미끄러져 넘어졌다. 손에 든 카메라를 보호하기 위해 그냥 넘어졌다.왼쪽 팔꿈치가 직접 땅에 닿았고, 그 충격으로 약간의 통증과 약간의 혈흔이 보였다. 그러나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이쯤이야 별 것 아니라고 느껴졌다. 그런데 가다가 또 넘어졌다. A C Pal, 나도 모르게 이런 소리가 나왔다. 카메라를 꺼내 들고 가면 다시 배낭에 집어 넣고 두 손을 사용해야만 넘을 수 있는 장애물이 나와 몇 번이나 넣고 꺼내다가, 나중에는 그냥되는 대로 하기로 했다. 그래서 그렇게 애지중지 여기던 렌즈 테두리에 두군데나 상처가 났다. 그러나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인간은 원칙의 동물이 아니라 상황의 동물이다.

 

능선을 따라 가면서 양 쪽에 펼쳐진 장관은 몇 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아마 좋은 친구들과 함께 걸었다면 그 감흥은 훨씬 더 했으리라. 하지만 나는 오늘 몸을 보전하며 가야할 길이 있기에 마음을 잡고 잡으며 걷고 걸었다. 드디어 마등령이 보였다. 말등처럼 보인대서 마등령인지 모르겠다. 돌로 된 산이 갑자기 흙으로 된 산으로 변했다. 왼쪽으로는 오세암이라는 팻말을 보면서 다시 또 오르기 시작했다. 약 15분 올랐을까 드디어 내려가는 길 3km 구간이다. 바로 여기가 내 무릎을 보호해야할 그곳이다. 무릎에 약간의 통증이 왔다. 쉬고 내려가며 또 쉬고 내려갔다. 여기서도 오른 쪽으로 펼쳐진 설악산의 속살은 여지없이 나에게충격으로 다가왔다. 야, 야, 멋있다는 말을 반복하면서 걸었다. 바위 위에 앉아 하늘을 보기도 하고 먼 산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하였다. 그러다보니 나의 과거도 생각이 났고, 미래도 생각이 났다. 여행이란 결국 새로운 환경이며, 새로운 환경은 새로운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것이 좋고 나쁜 것은 내가 가치를 부여할 뿐이며, 환경은 그저 환경일 뿐이다. 매일다니든 직장 생각도 좀 났고, 내 팔자가 왜 이리 좋은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좀 들었다.

 

 

드디어 신선대에 도착했다. 여기저기 군인들이 누워있었고, 우왕좌왕 서성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기념으로 술 한잔 해야할텐데 그러지도 못하고 파전 하나 시켜서 게걸스럽게 먹고는설악동 소공원으로 향했다. 평지를 걷는 것이 기분이 이런 것인가 새삼스러웠다. 아직도 초록색인 단풍잎을 보면서 높이에 따라 이렇게 온도차이가 나는 것이 신기로웠다. 여기저
기서 중국 관광객의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고, 일본인들의 조용한 이야기도 들려왔다. 나는이틀 동안 나를 기다려 준 내 차의 엉덩이를 토닥거려 주었다. 그리고 문을 열고 그 속에 있는 아이스박스에서 인삼 한 뿌리 꺼내 씹었다. 그리고 내일이면 금산에서 인삼뿌리를 씹을지도 모르는 후리드리히와 수잔나를 잠깐 생각했다. 잠깐 어제의 상념에 잡혀있다가 나는양양에 있는 나의 숙박지를 향해 자동차의 액셀러레이터를 힘차게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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