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왕산 등산기
2007년 12월 23일, 목이 말라 눈을 뜨니 새벽 3시다. 어젯밤에 너무 마셨나? 머리가 무겁고, 목이 부어있음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어젯밤 친구가 짬뽕을 하지 말라는 말을 무시하고, 소주에 더덕 동동주를 섞어 마신 것이 생각났다. 그러나 후회는 하지 않았다. 좀 몸이 안 좋다고 해도, 어젯밤 술 먹는 그 자리에서만은 행복했으니까.
다시 잠을 청해도 방바닥이 뜨거워 잠이 오지 않았다. 위풍이 센데다가 문을 조금 열어 놓은 상태라 그런지, 공기 온도는 0도, 내 배의 온도는 5도, 방바닥의 온도는 60도라고 하면 대충 이해가 될 것이다. 한 마디로 배는 얼어 죽고, 등 허리는 데어 죽는 형국이었다. 처음으로 청해보는 민박집에서의 잠인지라, 머리는 초롱초롱 맑아지고, 가끔가다 동네 개짓는 소리만이 정적을 깨뜨렸다.
어제 오후 4시 반에 동서울 터미널에서 주왕산 행 버스를 탔던 기억이 났다. 주왕산에 도착하니 밤 8시 반이었다. 버스 기사에게 물어 값싸고 좋은 집을 물어 간 곳이 “민박촌 식당”이라는 집이다. 이 집에서는 식사도 하고, 민박도 하고 또 노래방도 한다. 머리에 무스를 바르고, 뒤로 묶어 가지런하게 정돈한 식당 집 아주머니가,나의 술잔 속에 어른 거렸다. 내 친구는 허툰 수작임을 뻔히 알면서도, 어떻게든지 말을 걸어보려고 하는 노력이 내 눈에 가상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노력을 할 수 있는 내 친구가 부러웠으며, 이것이 지금부터 내가 배워둬야 할 가장 중요한 일 중의 하나라고 뼈저리게 느꼈다.
아침 7시에 다시 그 식당에 갔다. 그 아주머니는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내 눈에 어른거렸다. “지금도 그대 젊음 예전 같이 고운지고. 머문 듯 가는 것을 내 눈이라 속는 것이, ---” 대학교 영시(英詩) 시간에 피천득 선생님이 읊었던 세익스피어 시간이 생각났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이런저런 때에, 이런저런 사람을 만나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이런저런 미련을 남기고 떠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안개 낀 주왕산으로 향했다.
입장료 2천을 내고 들어가면 대전사라는 절이 나온다. 대전사를 지나자마자 오른쪽으로 주왕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이 길은 끝없는 나무 계단으로 이어져있고, 중간중간에 아래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천연 전망대가 있어서, 아래에 펼쳐진 주왕산 계곡의 파노라마를 볼 수 있다. 끝없이 펼쳐진 산과 바위를, 마침 아침 햇살이 비추고 있었고, 그 아래는 안개가 움직일 줄 모르고 자리잡고 있었다. 주왕산은 대부분 소나무로 덮혀 있었다. 쭉쭉 뻗은 소나무 군락지대에 가끔 참나무를 비롯한 잡목이 듬성듬성 박혀있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정상에 오른 것은 안내판에 나와 있는대로 대전사를 출발한 후 딱 한 시간 10분 지나서다. 7시 50분에 산행을 시작했고 9시 정각에 722미터라고 새겨진 이정표에 도착했으니 걸린 시간은 정확히 한 시간 10분. 그 동안 우리는 어떠한 사람의 그림자도 볼 수 없었기에 혹시 길을 잘못들은 것이 아닌가 생각도 했지만, 여러 가지 정황이 맞아 떨어지는 것을 보니 길은 제대로 가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내 친구는 갑자기 배낭을 열면서 “내가 보물을 가져왔다.”라고 말하드니 진로 소주 25도짜리를 꺼냈다. 지금은 거의가 20도 짜리이니 하기야 그의 말이 맞기도 하다. 우리는 상대방이 반병 이상을 절대로 마시지 못하도록 서로를 감시하며 정확하게 반 병씩 갈라 마셨다. 한 사람이 조금이라도 더 마시려고 했다면 아마 살인사건이 발생했을지도 모른다. 짜릿한 25도짜리 소주가 정상을 넘나드는 솔잎 향기와 더불어 순식간에 온몸에 적셔왔다. 잠시 “울고넘는 박달재”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드니, 내 친구는 옛날 동네 처녀들과 연애했던 이야기 보따리를 슬슬 풀어 놓기 시작했다. 개구리가 울기시작하면 동네 처녀 총각들이 잠 못 이루고 가슴을 두근거리며 서로를 그리워하며 헤만다고 했다. 이때는 말 한마디면 모든 것이 끝장나는 시기라고도 했다. 이런 세상도 있었구나라고 생각하며, 나는 침을 꼴깍꼴깍 넘기며 그의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들었다.
정상에서 약 한 시간 30분을 내려오면 후리메기 3거리가 나온다.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만 누가 이름을 후리메기라고 지었을까? 메기를 후려쳐 잡은 곳일까, 자유로운(free) 메기라는 뜻일까? 아무래도 생각이 나지 않아 사전을 찾아 보았다. 후리: 후릿그물의 준말. 후릿그물: 자루의 양 끝에 긴 줄이 달린 그물을 강이나 바다에 둘러쳐 두었다가 두 끝을 당기어 고기를 잡는 그물(사실 이게 무슨 말인지 10분 이상을 생각해 보아도 모릿 속에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아마 이곳에서 옛날에 그물로 메기를 많이 잡았든지,이 지형이 그물 모양이든지 둘 중의 하나일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때 마침 한 젊은 여인이 저쪽에서 올라왔다. 우리가 등산을 시작한지 세 시간 만에 처음 보는 인간이다. 내 친구는 그녀와 무조건 악수를 하드니, 또 포옹을 해 보려는 듯이 보였다. 그녀는 야릇한 미소를 남기고는, 마치 무대 위를 걷는 모델처럼 성큼성큼 걸어 후리메기 그물을 안전하게 벗어나 시야에서 사라졌다.
한 참을 내려오니 제 3폭포가 보인다. 이단 폭포로 되어 있는데, 물이 없는 지금도 저렇게 큰 폭포인데, 여름에 비가 많이 올 때는 그 무서움이 하늘을 찌를 것이다. 그곳을 내려오면 제2폭포에 이르고, 또 조금 있으면 주왕산의 백미인 제1폭포에 이른다. 거대한 바위 사이로 놓인 계단을 밟아가며 그 장대함에, 하늘을 찌를듯한 그 장쾌함에, 그리고 또 금방 무너질 것 같은 아찔함에 장탄식을 하게 된다. 그 옆에 있는 코발트 빛 물은 몇 년전에 보았던 동강의 어라연 물보다 더욱 진한 쪽 빛으로 내게 다가왔다. 내 친구는 이제 가자고 내 팔을 잡아 끌었지만, 내 발은 발걸음 떼어 놓기를 거부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눈내리는 저녁 숲가에서서”라는 시 속의 말(馬)처럼, 내가 이상하다는 듯 내 친구는 나의 표정을 살피며 계속 가자고 나의 소매를 잡아 끌었다.
"숲과 먼 호수 사이 근처 농가도 없는 곳에 멎는 것을 일 년 중 가장 어두운 밤에. 말은 내게 무슨 잘못이라도 있느냐고 묻듯 마구에 붙은 방울을 흔들어 댄다."
갑자기 북적대는 한 무리의 사람들에 의해 몽롱함에서 벗어난 나는, 친구의 손을 잡고 발걸음을 서서히 옮겼다. 계속해서 펼쳐진 학소대, 시루 바위 등이 내 마음을 계속 붙잡고 있었다. 한 참을 내러오다가 연화굴로 가려는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부부가 보였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번이 세 번째 만나는 부부다. 어젯밤 식당에서 저녁을 먹을 때 옆에서 같이 먹었고, 아까 제 2폭포에서 본 것이 두 번째고, 지금 세 번째 또 만난다. 내 친구는 이것은 전생의 무슨 인연임이 틀림없다고 말하면서, 이 부부를 잡아 끓어 길옆에 앉히고는 배낭에서 무엇을 꺼냈다. 자세히 보니 25도짜리 소주였다. 짜식, 아까 정상에서는 없다고 하더니 꼬불쳐 뒀다가 이제야 꺼내다니. 기분 좋은 배신감을 느끼면서 우리는 주거니 받거니 술 한 병을 비웠다. 그분들은 우리가 60이 가까운 나이임을 알고, 놀랐다. 젊게 사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내 친구는 말이 되는 소리 안 되는 소리 끊임없이 늘어 놓더니, 갑자기 상대방의 나이를 물었다. 상대방이 40대 후반이라고 말하니, “그런데 아저씨는 왜 그리 쭈그렁 망태가 되었소.”라고 범인 심문하듯이 툭 내뱉었다. 그 사람은 어이없다는 듯 말이 없었고, 어색함을 달래기 위해 “나는 유명한 사진사요. 내가 멋들어지게 사진을 찍어줄테니, 미친 내 친구의 말에 개의치 마시오.”라고 내가 말해 일촉즉발의 위기를 넘겼다. 이런 상황에서 내 친구는 그 남자와는 악수를 했고, 그 여자와는 포옹까지 하면서 헤어졌다. 나는 그의 수완에 놀랐고, 그러지 못하는 내가 한 없이 초라해 보였다. 음, ......
한 참을 내려오다가 등산에 관한 책을 쓴다는 분을 만났다. 한국의 700명산이라는 책을 쓴다는 신명호라는 분이다. 30년 동안 등산을 해오는 분이다. 60이 좀 지난 분 같다. 본인 자신이 직접 자동차로 여행하면서 손수 기록하여 쓴 것인데, 내년 4월경 책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등산에 취미를 가지면 아마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뒤로하고, 그분의 전화번호를 메모하고 헤어졌다. 언제 그분을 따라가서 1박 2일간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보고, 등산 기술도 배워보고자 한다.
주차장에 도착하여 표를 예매하고, 근처의 음식점에 들어갔다. 무엇을 시킬까 하다가 두부 김치를 시켰다. 주인 아주머니가 욕을 하건 말건, 내 친구는 또 빨갛게 진로소주라고 써 있는 25도짜리 소주를 꺼낸다. 그 배짱과 끝까지 숨기는 비법에 혀를 내 두르며, 나는 또 잔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한 잔 한 잔 기울일 때마다, 식당 아주머니의 얼굴이 점점 더 예뻐져 오는 것을 또 느꼈다. 낮술 먹었을 때 특유의 객기와 어색함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평평한 길이 울퉁불퉁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면서, 전봇대와 땅바닥이 내 이마를 치기 전에, 나는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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