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Beautiful the Nature is! - Albatross

Korea

가야산 등산기(Kaya Mountain)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2. 7. 27. 16:39

 

<가야산 등산기 Part I>

 

 

가야 산이라면,

가지 않으면 강일까?

 

 

가야산은 합천 해인사를 품고 있는 산이다.
인터넷에서 해인사로 가는 방법을 찾아보니,
1)대구로 가서 시외버스를 타고 해인사로 가는 방법,
2)성주로 가서 시내버스로 백운동으로 가는 방법,
3)합천에 가서 버스를 타고 해인사로 가는 방법의 순으로, 추천 순위가 나열되어 있었다.

 

 


불확실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나와 내 친구는 어차피 합천 해인사이니
합천으로 우선 가는 것이 옳겠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해인사는 합천군내에 있기 때문에,
합천에 가면 인터넷에 나와 있지 않은 시내버스가 많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울남부터미널에서 출발하는 합천 행 고속버스를 출발 3일전 예약했다.

 

 

 

 

 

 

4월 19일 오후 4시 45분 버스를 탔다.
타면서 고속버스 기사는, 해인사로 가는 방법을 잘 알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야산을 가는데 어디서 내리는 것이 좋습니까?”라고 기사에게 물었다.
“고령에서 내리이소.”
인터넷 어디에도 없는 고령에서 내리란다.
의심쩍어 다시 물어보았다.
“고령에서 내려요.” 무슨 잔소리가 그리 많냐는 위압적인 표정으로 그는 강세를 주어 말한다.
나는 세 번이나 물어볼 배짱까지 있는 사람이 못된다.
조용히 자리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보았다.
운전기사가 오늘 아침 부부 싸움 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더 이상 그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버터 바른 오징어를 씹었으나, 퀴퀴한 맛이다.

 

 

 

 

 

대전을 지나 금강 휴게소에서 고속버스는 정차한다.
25분간 시간을 줄테니 모두 저녁을 먹고 오라는 방송이 나온다.
우리는 오늘 저녁 식사를 근사하게 먹어 볼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일부러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
휴게소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금강 휴게소는 정말 전망이 좋았다.
훤히 보이는 강에서는 낚시질 하는 사람들이 보였고,
강둑을 따라 일렬로 놓여있는 포장마차는 손님을 기다리며 하품을 하고 있었다.
계단을 따라 강으로 내려가, 포장마차로 가고 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잔잔히 흐르는 물과, 건너편 연두색 산의 색깔을 보면서,
버스 기사의 호통은 모두 잊었다.

 

 

버스가 성주 터미널에 정차할 때는 이미 밤이었다.
성주 참외 축제 플래카드가 희미한 불빛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다.
건물 지붕에 크고 노란 모형 참외가 눈길을 끈다.
몇 사람 내려주고, 다시 고속도로로 돌아온다. 조금 가니 고령이다.

정말 고령에서 내려야할까?
내 친구는 아마 그렇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래서 운전수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작은 목소리로 옆에 있는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아주머니는 대답한다. “합천으로 가야제, 왜 고령에서 내리는교?”
정말 신경 쓰인다.

 


하는 수 없이, 운전 기사에게 또 물어 볼 밖에.  
“가야산 가려면 고령에서 정말 내립니까?”
“내 말을 왜 못 믿습니까? 내가 이 버스 운전한지 억만년도 넘습니다.
그 아줌마한테 왜 묻습니까?
여기서 내리든지 합천으로 가던지 말던지 맘대로 하이소.”
괜히 조용히 내려야하는데, 기사 양반 신경 건드렸다가, 온갖 수모를 다 당한다.
그놈의 귀는 소머즈 귀인가?  
그런 작은 소리도 다 알아 듣는다.
그래도 고령(高齡)인 내가 고령(高靈)에서 온갖 챙피 다 당한다.
고령(高嶺)을 넘다가 당하지 않은 것을 위로 삼아야 할까?
그랬다면 “쓰리 고”다. 쓰리 고에 피박이 얼마나 무서운데.
오늘 일진이 사납다.

 

 

고령에 내려 해인사 가는 차를 물으니,
지금 막차가 떠나니 빨리 타라고 매표원이 독촉한다.
오후 9시쯤, 컴컴하고 좁을 길을 버스는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왕복 2차선인 길이다.
운전 기사는 마티즈 운전하듯 중앙선을 넘나들며
방방 뛰며 이리저리 달리기 시작한다.
그는 자가용을 추월한다. 이번에는 오토바이도 추월한다.
한 마디 해 주고 싶었지만, 아까 고속버스 운전 기사에게 기가 죽은 몸이라,
아무 말도 못하고 벙어리 꿀 먹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 뚜껑 보고 가슴 쓸어 내린다.
호탕한 내 친구마저, 아예 고개를 숙이고 버스 바닥이나 보고 있다.

 

 

목적지에 도착했다.
어디 갈까 망설이고 있는데, 갈데 없으면 운전기사 묵는 여관이 있으니
그리로 가자고 기사가 제안한다.
식사와 함께하는 여관이란다. 좋다고 했다.
그런데 한 아주머니가 2만원, 2만원 하면서 따라온다.
분명이 우리가 가는 곳은 3 만원일 텐데, 아줌마를 따라가려고 했으나,
이미 기사를 따라 가기로 했으니, 참 맹랑했다.
내 친구는 저 기사가 우리를 소개해 주고 중간에 얼마간의 소개료를 받을지 모르니,
다음부터는 운전수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고 일러준다.
운전수의 운전 행동으로 보아, 또 성깔이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오늘 참 운전 기사에게 많이 당한다.
게슈타포에게 끌려가는 유대인처럼 그냥 말없이 갔다.

 

 

우리가 도착한 여관 겸 식당은 이미 불이 꺼져 있었다.
기사는 잠자는 주인 아줌마를 불러내, 손님을 모시고 왔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했다.
잠자다 일어난 식당 아줌마는, 감나무 밑에 있다가 떨어지는 홍시가 입에 들어간 듯,
입이 귀에 걸렸다.
방긋방긋, 나긋나긋, 마루를 스치며 여기저기 분주히 움직인다.
마치, 학교 축제를 준비하는 여고생이 남학생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산채 비빔밥을 시켰다.
된장에 열 둬 서너 가지 나물이 나온다.
옆에 착 달라붙은 우리 언니, 이것은 무슨 나물, 저것은 무슨 나물이라고,
애교 섞인 목소리 듣기 좋다.
웬지 오늘 저녁이 기대되기도하고, 걱정되기도 한다.
무슨 짙은 로맨스가 있지나 않을까,
남편은 어디 갔냐고 물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런 사전 조사는 이런 경우에 굉장히 중요하다.
남편은 지금 방에서 잔다고 했다.
그 말을 반만 믿었다.
보통 남편이 없는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말까지 하는 것을 보니 나도 세상 물정을 제법 안다.
세상에 노력해서 안 되는 일이 없다. 기쁘다.

 

 

드라마에는 주연과 조연이 있다.
마찬 가지로 등산이나 여행도 주연과 조연이 있다.
주연이 등산이라면, 이런 먹고, 마시고, 아줌마와 이야기하는 것은 조연이다.
조연이 없다면 극의 제 맛이 안 나듯,
등산 그 자체만으로는 밋밋한 육포를 씹는 기분이다.
아니, 사실을 말하면 여행이나 등산에서는 주연보다 조연이 훨씬 더 빛을 발하는 법이다.
그래서 나는 하루에 갔다 올 곳을, 이틀 걸리도록 일부러 계획을 세우고,
이틀에 다녀올 것을 사흘로 잡는다.

 

 

등산을 갈 때, 언제 부터인가 이 친구와 내가 만나면, 소주는 각 1 병이다.
딱딱 한 병씩 자기 앞에 놓고, 자기 술은 자기가 마신다.
내 술을 상대방이 먹는 것도 원하지 않고, 상대방 술을 나도 먹지 않는다.
비정하지만 어쩔 수 없다.
오직 그것만이 우리가 술을 조절하는 유일 무이한 방법임을 체험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결심을 해도 등산은 물건너 갔었다.

 

 

주위에서 주인 아줌마가 얼씬 거린다. 내 친구는 자기 술 한 잔을 권한다.
아줌마 싫지 않은 내색이다.
그들 둘이 몇 잔의 술이 왔다갔다 했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내 술을 내주지 않았다.  
나는 본래 술욕심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술이 몇 잔 들어가니,
너, 나, 언니 할 것 없이 마치 무슨 일을 해 낼 것 같은 동료 의식이 생긴다.

 

 

여자를 곧잘 말로 후려치는 내 친구는, 갑자기 양주를 한 병 가져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일 등산 때문에 먹을 수가 없다고 딱 뿌러지게 선포한다.
먹지도 못할 술은 왜 가져오노?
딱 한 잔만 먹어 보자고, 나와 주인이 사정사정했다.
내일 등산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가 너무나 애절하게 구는지라, 딱 “한 잔만”을 재삼재사 확인하고,
그는 열쇠를 갖고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에 그는 이따만한 양주병을 들고 나타났다.
양주병을 이빨로 까더니, 일인 당 딱 한 잔씩 따랐다.
이 먼 곳까지 왜 1리터 양주를 가져왔는지 또 생각해 보았지만 알 길이 없다.
가져왔으면 먹지,  먹지 않는 이유도 알 길이 없다.
고단수인 친구를 어떻게 당하랴.  
아까 먹은 소주에, 양주 한 잔은 불에 휘발유 붓는 격이다.
갑자기 정신이 혼미해지려한다.

 

 

오늘 저걸 먹고, 내일 등산은 짐싸두고, 낮잠이나 자다가 올라가 말아?
판단이 서지 않는다.
언니는 비음 섞인 말과 애교로 한 잔 더 하자고 했다.
나는 아무 말도 안했다. 양 다리 걸쳤다.
내 친구는 갑자기 일어나더니 육군 이등병처럼 말했다.
“우리는 가야산 등산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왔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과 밖으로 절주 자세를 확립하여,
내일 등산에 대비할 때다.”
아직도 국민교육헌장을 암송하다니 학교 다닐 때 공부깨나 했나보다.
그러더니 양주와 열쇠를 들고 방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그 순간 언니는 친구의 왼쪽 다리를 나꿔채 붙들고 늘어졌다.
“딱 한 잔이라고 해서, 딱 한잔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아니야, 가야해. 나는 가야해, 순이 찾아 가야해” 나훈아의 노래일 것이다.
나의 취기(醉氣)는 내 친구의 오른쪽 다리를 잡으라고 나에게 말했고,
나의 객기(客氣)는 이 여성의 뒷다리를 잡으라고 나에게 명령했다.
어쩐다냐? 그때 천관산 청뢰문 문신(門神)의 날벼락치는 소리 귀에 쩌렁쩌렁 울린다.
“너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어라.”

 

 

“이 다리 놔라.”
“오빠, 딱 한잔 만 더.”
“싸나이 가슴에 불을 붙이지 마라.”
“오빠, 딱 한 잔만 더.”
그녀가 알고 있는 어휘는 오로지 “딱 한잔만 더”뿐인 듯 했다.

 


깊어가는 밤과 더불어,
해인사 안방극장에서  연극 “이수일과 심순애”는 이렇게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급기야 내 친구의 망아지 뒷발질에 가련한 이 여인네는 내동댕이 쳐짐을 당했고,
그 사이 내 친구는 잽싸게 열쇠와 양주를 들고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여인네는 한 바퀴 반을 굴렀다.
술취한 사람은 넘어져도 다치지 않는다더니 그 말이 실제로 증명된다.
그녀는 저쪽에서 부스스 일어났다.
그 상황에서도, 그 사람 참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래 아무리 한 잔이라고 해도, 정말로 한잔만 하는 사람은 생전  처음 본다고 했다.
나는 한숨 짓는 그녀를 뒤로 하고, 세상은 전혀 살만한 것이 못된다고 생각했다.
남편에게 얻어 터진 마누라 그래도 집이라고 들어가듯,
나는 깽판을 부린 내 친구를 찾아 더듬더듬 어두운 계단을 올라 나의 방으로 향했다.

 

 

<가야산 등산기 후편은 다음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