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산 등산기
달마산 등산기
완도의 새벽은 유난히 일찍 오는 듯했다. 동창이 밝아지는 어렴풋한 느낌을,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게 느꼈다. 선착장의 배들 사이로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잔잔한 바람은 배를 꿈틀거리게 만들었고, 꿈틀거리는 배는 바로 앞에 놓여있는 작은 산의 산새들을 깨우기에 충분히 컸다. 장가가는 신랑을 맞이하려는 것처럼 붉은 바다를 배경으로 새들이 이리저리 날고 있었다.
자동차 키를 돌려 엔진을 가동시켰다. "부르릉~릉~" 오늘따라 엔진 시동 소리가 경쾌했다. 재수가 좋을려나 보다. 그래 내 앞에 무슨 불운이 있으랴. 완도에서 나오면 다리를
건너자마자 첫 지명이 "남창"이다. 묘한 감정을 느끼면서 무엇인가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아 사방을 두리번 거렸다. "저것봐라. 저기다." 라고 내 친구가 소리쳤다. 그것은 다름 아닌 기사식당이었다. 해남, 강진 쪽에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기사 식당의 반찬은 26가지다. 돼지고기 볶음, 홍어, 조기 새끼가 기본으로 나온다. 나머지는 나물과 김치류다. 값은 일인당 5천원이다. 반에 반도 다 먹지 못하고 고맙다는 말 한마디 남기고, 달마산으로 향했다.
작년 달마산을 지나면서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빠른 시일 안에 꼭 와봐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오늘 실현되는 것이다. 달마산에 있는 미황사는, 미황사라는 이름에 걸맞게 아름다운 절이다. 절 자체의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려니와 절을 둘러싼 달마산의 아름다움은 가보지 않은 사람은 감히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좁은 한국이지만 아름다운 곳은 참으로 많다. 그러나 그 첫 번째를 꼽으라면 나는 해남의 미황사와 달마산이라고
주저 없이
말하고 싶다.
미황사 좌측에 있는 등산로를 따라 산행을 시작한 것은 정확히 8시 반이다. 어제도 8시 반에 월출산 산행을 시작했는데, 오늘도 8시 반에 산행을 시작한다. "8과 반"이 나와 무슨 연관이 있나 생각해 보니, 생각나는 것은 "8푼이"라는 단어밖에 생각나는 것이 없다. 8푼이가 아닌 것을 다행으로 여기면서 산을 오른다. 처음 약 30분간은 작은 나무 아래, 흙으로 된 평탄한 길을 걷는다. 그러나 그 다음은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는 길이다. 바위로 또는 자갈로 된 급경사 길의 연속이다. 489미터라는 말만으로, 설악산의 공룡능선을 타보았다는 자만심 으로, 월출산을 종주했다는 자신감을 믿고, 만만히 볼 산이 아니다. 나는 손에 든 카메라를 배낭에 집어 넣고, 좀더 진지한 태도로 등산에 임했다. 미황사에서 등산을 시작할 때 40분이면 된다고 했으나 막상 정상에 도착하는데 걸린 시간은 70분이었다.
이 작은 산을 누가 이리도 아름답게 만들었을까?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숲 사이로 나즈막하게 내려앉은 미황사다. 어떤 도사가 이런 곳에 절터를 잡았을까? 달마산의 그림자가 길게 미황사쪽으로 뻗어 있었다. 몇 번을 보고 또 보았지만 내 시선은 다른 곳으로 향할 줄을 몰랐다. 정신을 차리니, 시선은 동쪽으로 아름답게 펼쳐진 가을 밭을 따라 점점 먼곳으로 향했다. 밭 저 너머에 신비로운 완도가 곱게 펼쳐져 있었다. 반대쪽
서쪽으로는 수 많은 섬들 뒤로 진도가 보인다. 북쪽으로는 두륜산 도립 공원의 일부인 대둔산이 보인다. 여기서부터 약 6키로 남쪽으로 뻗어 있는 능선이 바로 달마산이다.
정상에는 봉화대가 남아 있다. 옛날 완도의 숙승봉과 북일 좌일산에서 서로 통신을 주고 받았다고 한다. 또한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 비를 내리게 했다 한다. 통신을 주고받건, 기우제를 지냈건 말았건 나와 무슨 상관이랴. 천길만길 낭떠러지가 내 앞에 놓여있고, 밧줄을 타고 능선을 가야하는 것을. 나는 심호흡을 하고 "유격"이라고 외친 뒤에 밑을 보지 않고 하늘만 보면서 게걸음으로 옆으로 걸어갔다. 비칠비칠
좀 더 가니, 발을 디딜 수 있는 철로 된 발 받침대와 밧줄이 보였다. 다시 한번 "유격"을 외치며 하강했다. 하여튼 정상에서 남쪽으로 약 200미터에 위치한 문바위까지 가는데 30분 정도 걸렸다. 온 몸이 땀으로 젖었다. 그제서야 혼자가서는 위험하다는 미황사의 게시판이 생각났다. 그래 모든 것은 괜히 있는 것이 아니야?
좀 더 남쪽으로 가야하는 것이 본래의 계획이었으나, 나와 내 친구는 이구동성으로 "야,
이제 그만 내려가자"라고 했다. 내려오면서 우리를 금방이라도 덥칠 것 같은 위압적인
달마산의 위엄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또한 좀 더 가보지 못한 섭섭함을 가슴 한 구석에
느끼면서, 살자니 고생이요 죽자니 청춘이라는 말을 생각하면서, 미황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난 겨울에 느꼈던 푸근함과 안락함으로 미황사는 다시 나를 맞이해 주었다. 스님의 염불 소리도 전과 같았다. 좁은 관을 타고 흘러내리는 샘물도 전과 같았다. 미황사 건물 사이로 보이는 달마산의 아름다움에 취했다가 우리는 해남의 땅끝으로 향했다.
아뿔사. 땅끝에 도착하여 사진을 찍으려는데 사진기가 없었다. 미황사 주차장에 두고
왔던 것이다. 놀라운 것은 미황사 주차장에서 잠시 카메라를 돌 위에 올려 놓으면서 "내가 아마 이것을 여기에 놓고 가지나 않을까"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 생각이 적중했던 것이다. 적중하다라는 말을 이런 경우에 사용하니 이상도 하다만, 갑자기 힘이 쭉 빠졌다. 이미 미황사를 떠난지 20분이 되었고, 다시 그곳에 간다면 또
20분이 걸릴 것이다. 그곳을 떠날 때 관광버스가 올라오는 것을 보았으니, 카메라가 지금도 거기에 있을리 만무했다. 내 말을 들은 내 친구는 자기 직감에 거기 카메라가 있을 것이니 가보자는 것이다. 정말로 직감이 그러했는지, 나를 위로하려고 했는지 알 수 없지만, 내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그것밖에 없었다.
차를 몰고 가는데 앞차는 왜 그리 천천히 가는지 모르겠다. 앞지르기를 하려면 여지없이
왼쪽에서 차가 와서 앞지를 수가 없었다. 운명이려니 생각하며 앞차만 따라갔다. 운명이라! 술을 먹고 40만원이 든 지갑을 잃어버린 것이 내 평생 가장 많은 돈을 잃어버린 기억이다. 사기꾼에게 속아 100만원을 날린 적이 있었다. 이것이 지금까지 돈을 날린 내 인생 경력의 전부였다. 그런데 이 카메라는 구입한지가 겨우 두 달
뿐이 되지 않는다. 카메라 값이 150만원, 렌즈 값이 80만원, 메모리 두 개에 바테리까지 합치면 250만원이나 된다. 신기록이다! 별 신기록을 다 세운다는 생각을 하면서 창밖을 보니 연못이 보였다. 연못에 반사되는 햇빛이 나를 몽롱하게 했다. 나는 잠시 꿈을 꾸고 있다는 착각에 빠졌다. 지나온 잘못한 일들이 주마등처럼 내 머리를 스쳤다. 나는 병신같이 왜 이런 짓만 하고 다니는지, 차라리 연못에 빠져 뒈지는 것이 낫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는 사이 내 차는 미황사 주차장에 다가가고 있었다.
갑자기 "저기 있다!"라고 내 친구가 소리쳤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카메라는 내가 놓았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사람들이 보지 못했는지, 대한민국 사람들이 모두 정직한 사람이 되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단지 몇 미터 떨어진 관광버스 옆에서 사람들은 음식판을 펼치고는 먹고 마시고 난리였다. 우리가 다시 와서 카메라를 가져가는지 마는지 등산이고 뭐고, 먹고 마시는 일에 관광객들은 열중해
있었다.
기분이 이렇게 좋을 수가 있을까? 히로뽕을 먹어 본 적은 없으나 아마 이 기분이 그 기분인지도 모른다. 혹시 후에 내가 히로뽕 복용으로 검찰에 기소된다면, 이 글을 읽는 독자 중 어느 분이라도, "그것은 단지 그 사람이 실험 정신이 투철했을 뿐입니다." 라는 증언 한 마디 부탁한다. 또한 나는 기분이 나쁠 때는 일부러 값진 물건을 잃어버려야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내 친구는 "내 직감이 맞았지?"라는
말을 백번도 더 했다. 흥분된 마음을 쓰다듬으며, 우리는 화개장터로 향했다. 내 친구가 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곳이라고 했다. 화개장터를 못 갈소냐? 수개장터 목개장터라도 간다. 차 속에서 우리는 "전라도와 충청도를 가로지르는 ~"으로 시작하는 조영남의 노래를 부르고 또 불렀다.
화개장터에 도착한 것은 해가 막 넘어가려는 찰나였다. 썰렁했던 지난 겨울과는 대조적으로 오늘의 화개장터는 그야말로 시골장이었다. 각설이 엿장수, 갖가지 장사꾼, 붐비는 음식점--- 그것은 마치 내가 어렸을 때 본 금산 장날과 흡사했다. 술이 얼큰하게 취한 아주머니들이 장터 여기저기서 얼씨구 춤을 추고 있었다. 내 친구도 못 참겠다는 듯, 소주 한 병을 나발 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카메라를 위하여!"라고
소리쳤다.
친구는 대봉 감을 사가겠다고 했다. 감을 파는 아주머니와 흥정이 붙었다. 주인은 지금까지 45개 한 박스에 37000원씩 팔았는데, 35000원에 가져가라고 했다. 내 친구는 33000원에 달라고 했다. 아주머니는 죽으면 죽었지 안 된다고 했다. 내 친구도 죽으면 죽었지 안된다고 했다. 이 두 사람은 결국 2000원에 목숨을 건 ok 목장의 사투를 벌리고 있었다. 결국 35000원에 감 몇 개를 더 주기로 하고 흥정이 끝났다. 결국 2000원을
깎느니 마느니 하면서 30분을 보냈다. 대충 2000초 쯤 된다. 그런데 두 박스를 사서 한 박스는 나를 주고, 한 박스는 친구가 가져가려고 했으나, 하필이면 우리가 사려는 크기의 감은 한 박스만 남았다고 했다. 다른 박스는 농부의 집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7만원을 지불하고, 아저씨를 대동하고, 차를 몰아 농부의 집을 찾아갔다. 그런데 길이 얼마나 좁은지 조심조심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오른 쪽 앞바퀴가 덜컹 하더니 오른쪽 뒷 바퀴가 덜컹거렸다. 내려보니 바퀴 두 개가 길 아래에 빠져있었다. 내 이럴줄 알았다! 카메라 찾아서 너무 기분이 좋더니만, 하느님은 너무 기분 좋은 놈은 내버려 두지 않는가 보다. 이미 어둠이 온몸을 휘감아 오고 있었는데
말이다.
농부는 동네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모두 5명. 그러나 나는 자동차가 그리 무거운지 처음 알았다. 5명이 들어도 꿈적도 안했다. 또 앞이 캄캄했다. 밤이어서 캄캄하기도 했지만---.
끙끙대며 씨름하기를 10분. 하는 수 없이 견인차를 불렀다. 술이 좀 취한 내 친구는 이런 신나는 기회를 다시 가질 수 없다는 듯, 의기 양양하게 농부와 화개장터의 삶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오늘 하루 일어난 일이 지금까지 내 평생
일어난 일보다 더 많다고 느끼면서, 나는 길 모퉁이에서 쭈그려 앉았다. 오늘 하루가 너무 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바퀴가 빠져있는 자동차에서 파카를 꺼내 걸쳤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서 얄궂은 미소가 흘렀다. "그래 이것이 인생이야!" 내가 나에게 말했다. "무슨 썩을 놈의 인생이 이러냐?" 또 다른 내가 나에게 말했다. 눈을 들어보니 저 멀리 견인차의 불빛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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