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관산 등산기
“천관산은 지리산(智異山)·월출산(月出山)·내장산(內藏山)·내변산(內邊山)과 함께 호남지방의 5대 명산 가운데 하나이다. 수십 개의 봉우리가 하늘을 찌를듯이 솟아있는 것이 마치 천자(天子)의 면류관과 같아 천관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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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장흥군 관산읍에 있는 천관산 입구에 도착한 것은 2월 14일 오후 2시였다. 장흥이 얼마나 먼곳이냐? 남해안 끝이 아니던가? 천관산 등산을 해가지기 전에 마치기 위해 서울에서 새벽 6시에 출발했었다. 한눈 팔지 않고 직접 왔으면 그 이전에 도착했겠지만, 여기저기 들르는 그놈의 호기심 습성 때문에 이렇게 늦은 것이다. 내 다리 상황을 고려하면 정상에 갔다 오기는 빠듯한 시간일 것이다. 동료가 있다면
모르겠으나 혼자라는 것이 좀 꺼림칙했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손전등을 준비했으나 혹시 다치기라도 하면 어쩔까라는 생각에 쭈빗쭈빗 머리 카락이 치솟았다.
매표소 직원에게 물으니 충분히 갔다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정말로 해 지기 전에 갔다 올 수 있습니까?” 라는 나의 말에, “아이구, 60 먹은 사람도 갔다오는데, 젊은이가 그것도 못갔다와요? 걱정일랑 붙들어 매고 갔다 오쇼, 잉? ”라고 나에게 호통치듯이 내 뱉었다. 겉이 좀 젊어보이니 별 피해를 다본다는 생각을 했다. 겉만 보고 나의 체력을 과대평가하는 그가 좀 못 마땅했다. 그러나
이왕에 왔으니 한 번 저질러 보기로 했다. 발걸음이 빠르다. 등산 하는 중 이렇게 성큼성큼 걷기는 아마 처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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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0분을 오르니 장천재가 나타난다. 안내판에 따르면 장천재는 "실학자였던 위백규 선생을 모신 곳"이라고 되어 있다. 그가 누구인지 나는 전혀 알지 못한다. 그 보다는 도화교라는 다리가 멋있다라는 생각을 먼저했다. "복숭아꽃 다리"라! 이 다리를 보고 "도화교 아래 복숭아 꽃이 유유히 떠내려간다"라는 생각을 했다면 사람들은 나를 낭만적이라고 할 것이다. "한 여인이
면사포를 쓰고 도화교 아래로 복숭아 꽃 떨어지듯 몸을 날렸다"라고 생각했다면 사람들은 아마 나를 비관론자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어쩐지 나는 자꾸 후자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하여튼 딸이나 하나 있다면 도화라고 이름을 지을텐데라고 생각하며 장천재에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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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뢰문이라! 그런데 그 문에 붙은 “청뢰문”이라는 말이 아이러니컬하게 느껴졌다. 벼락치는 소리를 듣는 문이라? 참 멋들어지기도 하다. 벼락하면 내 머리 속에는 “벼락 맞을 놈, 벼락 맞을 년” 뭐 이런 말 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데, 문에 서서 벼락소리를 듣는다니, 무슨 도를 부리는 스님이나 할 것 같은 이야기다. 과연 대문에서 벼락치는 소리를 듣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이름을,
이렇게 문 앞에 붙여놓은 사람은 분명 천재 아니면 바보일 것이다. 하여튼 나도 죽기 전에 언젠가는 천둥 칠 때 문간에 앉아 그 소리 좀 들어보아야 겠다. 도승은 못되더라도, 도전 정신이야 가상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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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뢰문을 지나 다시 10분쯤 지나니 체육공원이 나타났다. 두 아낙네가 낮은 철봉에 다리를 얹어 놓고 끊임없는 수다를 떨고 있었다. 좀 쉬기도 할겸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하기도 하여 벤치에 앉아 물 한 모금 마셨다. 그녀들에게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 척, 다른 곳에 카메라를 돌려대며 그들의 말에 잠시 귀를 기울인 것이다.
“글쎄, 그 남자가 이번 주말에 남해에 가자고 하더라.” “지난 번 그 남자?” “아니 그 남자가 데려온 남자. ”그래서." “일단 못 간다고 했지. 남자들이란 처음에는 좀 빼야 되거든.” “그래?”
나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엿듣는 것이 이렇게 흥미로운지 예전에 몰랐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당신이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상대방은 아무도 당신이 그런 초능력을 가지고 어떤 일을 했다는 것을 모른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초능력을 갖기를 원하겠는가?”라고 물은 적이 있다는 글을 읽었다. 이런 실험을 한 사람은 그 초능력이 아마도 “은행을 턴다”든지 “원수를 소리 없이 죽이는
것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이 실험에서 1 위를 차지한 것은 뜻밖에도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을 엿듣는 능력”이었다.
나도 그들의 이야기를 모른 척, 더 듣고 싶었지만, 그들은 자리를 뜨기 시작했고, 내 나름으로 지는 해도 걱정이 되었다. 그 뒤의 이야기는 내 마음대로 상상하면서 사라지는 그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시골 물이 쏜다더니, 내가 시골 여인의 남편이 아닌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기면서 재미있는 세상이라고 생각했다. 정신을 차리고, 나는 오른쪽으로 꺾어 치받는 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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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처에 각종 산행 클럽에서 매달아 놓은 빨간, 노란, 그리고 파란 리봉이 매달려 있다. 길을 잃었을 때는 반가운 안내자이지만, 많이 걸려있으니 아름다운 장식이 되기도 하고, 마치 서낭당과 같은 느낌도 든다. 몇 미터 간격으로 끊임없이 매달려있는 리봉을 보면서 봄날의 연분홍 치마를 연상한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을.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 봄날은 간다.”
내 나이 20 이라면 이런 글만 가지고도 아마 잠을 이룰 수가 없었을 것이다. 상상에 상상을 거듭하여 아마 언덕에 올라 찬 바람을 쐬어야만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일이 나에게도 한 때 있었다,라는 추억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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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의 반쯤 왔을까 오른 쪽으로 넓은 들판과 호수가 시야에 들어왔다. 왼쪽으로는 천관산의 남쪽 능선이 보였다. 그때 오른쪽에서는 바람이 강하게 불어와, 나무와 마른 풀이 움직이면서 서걱거리는 소리를 내서 좀 무섭기도 했다. 등에는 땀이 좀 났지만, 손과 발 그리고 얼굴은 춥고 시러웠다. 오늘은 다시 내려갔다가 내일 다시 올까도 생각했지만, 지금까지 올라온 것이 너무 아까워 그럴 수도 없었다. 대부분의
사고가 이런 아까운 생각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젊게 보인다는 매표 직원의 말을 기운 삼아 그냥 계속 걷기로 했다. 역시 칭찬은 죽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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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를 걸었을까? 육중한 바위 밑에 시커먼 굴이 보인다. 발걸음을 옮겨 가보니 선 바위 옆에 그 깊이가 몇 미터도 되지 않는, 큰 개 한 마리 기어 들어가면 알맞을 그런 굴이다. 윗 부분이 비바람에 무너져 버린, 나의 어린 시절 우리집 굴뚝이 무너진 것 같다. 이것이 무슨 대단한 굴이라고 인터넷 사방에 유명한 금강굴로 나와있다. 참 어지간이도 자랑할게 없는 산인가 보다. 당장 나보고 굴을 파라고
해도 한 나절이면 이 정도는 팔 수 있지 않을까? 금강굴(金剛窟)이 아니라 금견굴(禁犬窟)이다. 하여튼 솔직히 말해서 유명하다고 이름난 곳을 가보면 정말 실망스러운 곳이 많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별 이름은 없지만 일단 가보면 정말 놀라운 곳도 많다. 누군가가 나서서 실제로 다녀보고 정확하게 사실을 사실대로 기록해야 할 것이다. 그 누군가가 내가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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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생각도 잠깐, 이게 웬일인가? 통나무로 된 깔딱 계단을 올라가니, 과연 천자의 관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지는 해를 배경으로 실루엣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누가 이 산을 천관산이라 이름 지었을까? 멋진 관을 쓰고 있는 선비의 산이다.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걸음을 재촉한다. 내 눈 앞에 나타난 위압적인 그 모습! 사슴 뿔 같기도 하고, 옛날 우리 할아버지가 쓰시던 갓 안의 망건 같기도
하다. 깡패에게 두들겨 맞아 옥수수가 몇 개 빠져 버린 시골 청년의 이빨 같기도 하다. 금강굴에서의 실망을 몇 배의 보답으로 되갚아 준다. 둔탁한 바위들이 무뚝뚝하게 서서, 작게는 각자의 위용을 뽐내면서, 전체로는 말 그대로 천관산임을 온몸으로 말해 준다. 역시 기대를 갖지 않다가 주는 선물이, 큰 기대를 갖다가 받는 선물보다 몇 배가 더 크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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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에 오르니 남북 양쪽으로 능선이 고래등처럼 뻗어 있고 서쪽으로는 계곡이 있다. 또 하나의 능선이 시선을 막는다. 북쪽으로 좀더 전진하여 구경하려 하였으나 찬 바람이 워낙 거세어서 발걸음이 띄어지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손을 호호 불어가며 남쪽 정상을 향한다. 바닥은 아직도 얼음으로 덮여있어 조심조심 올라가야 한다. 즉, 환희대를 향해 마지막 피치를 올려야 한다. 해는 서서히 지고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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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나 다를까? 너무 조심스럽게 걷다가, 환희대를 몇 미터 남겨두고 미끄러져 넘어지고 말았다. 그때 배낭 옆에 있는 작은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500 미리 플라스틱 물통이 빠져 나와 밑으로 떼굴떼굴 굴러간다. 가까우면 다시 가져가고, 멀리 굴러가면 그냥 가려고 순간 생각했다. 어디까지 굴러가나 보니 약 20 미터를 굴러 내려간다. 가질러 갈까말까를 몇 분을 생각하다가, 여기까지 가지고 온
것이 너무 아까워, 그래도 가지고 가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배낭을 벗어 놓고 조심조심 또 조심, 마치 심봉사 살얼음판 걷듯이 내려갔다. 내려가면서도 단지 몇 미터 걷는 것이 왜 이리 원통한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바람은 왜 이리도 세계 부는지 모르겠다. 거의 물병이 있는 곳에 와서 집으려는 순간 바람에 물병이 또 떼굴떼굴 굴러갔다. 약 3 미터 굴러갔을 것이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에이, 드럽다”라고 말하고 그냥 올라와버렸다. 20 미터를 걸어 내려가 놓고, 3 미터를 안 내려가고 만 것이다. 내 성미가 이렇게 고약한지는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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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배낭을 메고 몇 분 걸어가니 드디어 환희대가 나타난다. 이 봉우리를 환희대라고 지은 분의 작명 실력에 혀를 내두를 도리 밖에 없다. 사방이 탁 트여서 그야말로 환희감이 느껴진다. 안내판에 있듯 "누구나 이곳에서 성취감과 큰 기쁨을 맛보게 되리라." 이 환희감으로 물병에 대한 미련을 잊은 것은 천만다행이다. 누가 대학을 만들어 환희대(歡喜大)라고 이름을 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희대는 낙성대(落成大)나 몰운대(沒運大)보다는 백 배는 나을 것이다.
*낙성대(落成大) 몰운대(沒運大)의 한자는 자의적으로 왜곡해서 쓴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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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눈을 들어보니 이정표가 사람을 환장하도록 복잡하게 만들었다. 조그만 기둥 하나에 무슨 표찰을 저렇게나 많이 매달았을까? 팔이 아파할 기둥을 보니 측은하기 짝이 없다. 닭봉 헬기장이라는 말도 참 희안하다. 닭처럼 생긴 봉우리라는 뜻이겠지만, 혹시 닭이 방귀를 뀐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먼저 떠 올랐다. "닭이 방귀를 뀌다가 헐레벌떡 기절 초풍하는 장소"가 닭봉헬기장이 아닐까? 그 순간 언젠가 TV에 나왔던 육봉달이라는 사람이 떠 올랐다.
"맨손으로 북경오리를 때려잡고 떡볶이를 철근같이 씹어먹으며 달리는 마을버스 2-1에서 뛰어내린 육봉달."
내가 생각해도 우습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제 이곳을 떠나면 내 생전에 여기를 다시 와보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대한민국에 산이 그렇게 많은데 여기를 또 올 일이 있겠나? 모든 것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면 왠지 우수에 어린다. 눈물이 났을까? 지는 해가 조금 찌그러져 보였다. 곧 정신을 차리고 힘차게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내 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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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정상까지는 거의 평지에 가깝다. 가면서 능선 양쪽으로 끝없이 펼쳐진 억새밭을 보게된다. 바람으로 억새에 붙어 있는 솜털은 다 날아갔고, 줄기만 앙상하게 남아있다. 아직도 꿈쩍 않고 붙어있는 잎새의 서걱거림은 여전하다.
그러고 보니, 갑자기 나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남의 5대 명산이라는 이 천자의 면류관인 천관산을 그래 나 혼자 걷는다는 말인가? 오늘 이 큰 산을 독채 전세 냈다.
나는 젊었을 때부터 혼자 다니기를 좋아했다. 물론 다른 사람과 다니는 것과 혼자 다니는 것은 각각의 장점과 단점이 다 있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자유다.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 내가 혼자 다니기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였다. 그 자유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아마 나는 그것이 없으면 곧 죽을 것 같다. 지금도 혼자 어디에 갔다 왔다고 하면, 혼자 무슨 재미로
다니느냐고 묻는 사람이 많다. 사실 나는 혼자 다니는 재미로 혼자 다닌다. 외로울 때도 많고, 위험할 때도 더러 있다. 경제적으로도 손실도 많다. 그러나 역시 나는 혼자인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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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눈을 들어보니 벌써 연대봉에 도달했다. 돌로 단을 쌓아놓고 그 위에는 사진과 더불어 사방을 안내하는 큰 안내판 하나가 서 있다. 그곳에서 오래 사방을 둘러 볼 수가 없다. 바람도 바람이려니와 지는 해와 씨름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말등성의 털처럼 나있는 억새의 흔들림을 보면서, 그리고 동쪽으로 멀리 보이는 바닷물을 보면서, 아까와 같은 일말의 우수를 느낀다. 잠시 바람을
피해 돌벽 옆에 앉아 쵸코렛 하나를 입안에 넣는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는다. 금방 추억에 잠겼다 깬 노루처럼 이제 하산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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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면서 동쪽을 보니 이미 봄은 거기에 와 있었다. 저 밭에 있는 것이 보리인지, 밀인지, 아니면 다른 것인지 모르지만, 이미 밭은 초록으로 덮여있었다. 서울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초록을 영어로는 그린이라고 하고 일본말로는 미도리라고 한다. 나는 미도리라는 말을 좋아한다. 마치 누님이 짜 주신 목도리처럼 따뜻한 느낌을 준다. 어렸을 때, 누님은 수를 놓아 시집가는 사람에게 팔아 용돈으로 사용한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나에게도 길고 두꺼운 목도리를 짜 주셨었다. 그 목도리로 입을 막고 가면 입김이 목도리를 뚫고 하늘로 허옇게 올라 갔었다. 그 허연 입김 속에서 나는 임금님도 보았고, 염라대왕도 보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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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를 갔을까? 갑자기 묵직한 장군이 나타난다. 양근암이다. 보통 남자의 성기를 닮은 돌을 양근석이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양근암이라고 한다. 석(石)하면 작다는 느낌이, 암(岩)하면 크다는 느낌이 들어서일까?그놈 정말 이름값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 맞은 편에는 금수굴이 있어서 자연의 조화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라는 안내판까지 있다. 그러나 "그 맞은 편에는 금수굴이 있어서 자연의
조화에 당연함을 느낀다"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놈을 부러워하는 것은 여자가 더 많을까, 아니면 남자가 더 많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춘기 이후 죽을 때가지 남자와 여자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은 참 불쌍한 존재라는 생각도 들었다. 조물주가 어떤 의도로 이렇게 만들었던 간에, 바로 남녀라는 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말을 하건 못하건, 속을 썩이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눈물짓고, 한숨짓고, 큰소리치고--- 그러면서 한 많은 세상을
살다가 갔을 것이다. 남자가 뭐길래? 여자가 뭐길래? 따져보고 잊고, 그러다 보면 다시 제자리에 돌아와 있고, 내일 또 그러고, 모레도 또 그럴 것이다. 하기야 오죽하면 머리 깎고 중이 되겠는가? 그런 문제에 대해 언젠가 스님과 밤새워 이야기 해보고 싶다. 하기야 이야기해보았자 또 제 자리로 오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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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은 순식간에 찾아왔다. 하산을 하면서 나는 환희대쪽에 있는 천관산 정상을 계속 바라본다. 몇 분 내려가고 또 보고 몇 분 내려가고 또 본다. "돌담길 돌아서며 또 한 번 보고 징검다리 건너 갈 때 뒤돌아보며 ~"라는 나훈아 노래와,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없고 밝은 달만 쳐다보니 눈물만 흐른다."라는 노래가 무의식적으로 나왔다. 무의식은 무의식이 아니라 유의식이다.
이제 바위는 잘 보이지 않지만 천관의 실루엣은 하늘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손전등을 켜며 걷는 나는, 천관산의 인디애나 죤스다. 그의 목적은 "탐험"이요, 나의 목적은 "생존"이라는 것이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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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점으로 내려오니, 검은 논과 짙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불과 연기가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논두렁이 불타고 있었다. 뜨겁고 매운 저 불 아래에 초록빛 새싹은 자라고 있을 것이다. 새싹의 냄새를 맡으며, 휘감아 몰아치는 불꽃과 연기를 한참 동안 넋을 잃고 보다가, 나는 다음 목적지인 완도군 고금도를 향해 나의 누비라 II의 가속기를 힘차게 밟았다.
(2008년 03월 23일 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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