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Beautiful the Nature is! - Albatross

Korea

국사봉 등산기(Kugsabong Peak)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2. 7. 28. 00:42

 

 

<국사봉 등산기>

 

등산을 시작한 것은 청계사 주차장부터다. 기열이의 봉고차에서 내리니,
자가용으로 뒤 따라온 조평화가, 평화로운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해 준다.
주차장 입구에서, 누군가가 호빵을 사서 한 사람에게 하나씩 나누어 준다.
그 옆에서는 트럭에 귤을 가득 싣고 장사하는 아저씨가 귤을 잘게 썰어서,
먹지 않겠다는 사람을, 마치 숫캐가 암내난 암캐 따라다니듯
뒤쫓아가 기어히 먹여준다.
그리고는 내려올 때, 꼭 좀 사달라고 애걸하며 졸라대느라고 이미 목이 쉬었다.  

 

 

좀 올라가니 만개한 백목련 꽃이 나무를 도배했다. 며칠 지나면 뚝뚝 떨어질 그 목련을 보며,
“그래 즐길 때 즐겨라. 눈물나게 찬란하도록 즐겨라”라고 목련에게 말 한 마디 해준다.

모란이 지고나면 그뿐.
너의 한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날 마냥 섭섭해 울지니.
이 꽃을 피우기 위해  
너는 얼마나 기다렸는다
이런 전차로 이 봄을 즐기지 못하면
너는 목련이 아니라 목석에 지나지 않으리니
나는 그를 슬허하노매라.
-영랑시의 왜곡-

 

청계사가 아닌 쪽, 즉 개울을 건너기 전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기열과 조피아는 마치 조건반사 훈련을 받은 쥐가,
먹이를 찾아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목적지로 직진하듯,
쏜살같이 앞쪽으로 향한다. 그러더니 멀쩡한 길을 놔두고
아직도 가랑잎이 뒹굴고 있는 늪지대로 향한다.
임 향한 일편단심도 아닌,
꽃을 향한 일편단심 가실줄이 있으랴.  



하나 둘, 꽃이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것은 현호색이요, 저것은 노루귀요,
또 저쪽에 보이는 것이 천남성이라나.
아무리 내게 가르쳐 주면 무엇하나, 마이동풍이요, 쇠귀에 경읽기다. 암기해보았자
그 기억력의 지속 기간은 10 초를 넘기기 어렵다. 10 초를 넘기지도 못하면서도,
꽃의 이름을 물어보는 나는 얼빠진 놈이다.
아마 석룡이가 왔으면 나와 근사한 맞상대가 되었을 것이다.

 


얼마를 지났을까? 갑자기 노란 꽃밭이 나타난다. 이쪽에 보니 여기도, 저쪽에 보니 저기도,
내 주위에도 지천(至賤) 으로 깔려있다. 그러고 보니 지천이라는 말은 너무 흔해서 천해보인다는
뜻이련만, 여기서는 그냥 산천이 다 노랗다는 뜻이다.
피나물이란다. 아름다운 이 노란 꽃을 병아리 꽃이라고
이름 지었어야 했을 텐데, 무슨 생뚱맞게 피나물이냐? 내 말을 엿들었을까?
조피아는 꽃을 꺾어 줄기에서 나오는 붉은 핏빛 수액을 보여주었다. 솜털에 숨겨져 있던
매의 발에서 앙칼진 발톱이 나오듯, 문둥이처럼 순진한 이 노란 꽃에서 붉은 피가 나오다니,
사월에 한을 품은 여인네가 죽어서 생긴 꽃이리라.

 


이런 데서 사진을 찍지 않으면 어디서 찍으랴. 기열이는 수십 방을 찍어댔다.
100 미리 렌즈만 가져온 나는 인물 사진 몇 장 찍었다. 꽃밭(野花)에서 꽃(人花)을 찍으니
내 마음도 찢어지게 즐겁다.
꽃에 얼굴을 가까이해야 잘 나온다는 나의 말에 순순히 따르는 혜순씨.
웃어보라니 웃고, 자세를 낮추라니 낮춘다. 죽으라하면 죽을 듯하다.

 


한 참 동안 넋을 잃고 꽃의 향기와 색깔과 분위기를 즐긴 우리는 드디어 정상을 향했다.
여기서 부터는 앞사람의 엉덩이만 보고 걷는 가파른 등산길이다.  
갈지자가 아닌 하늘을 향해 직선으로 걷는다.
그 때, 5월에 설악산에 가는데, 공룡능선은 이것보다 더 가파르냐고 누가 나에게 묻는다.
공룡능선에 갔다오니 이제 대접이 달라지는구나라는 생각이 스치는 순간,
비실비실 곽영을이도 갔다왔는데,
여성 동무들은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기열이가 중간에 끼어든다.  
나한테 물었는데 왜 지가 대답하나?


나는 갑자기 승질이 났다.
“이 사람아, I am not what I used to be.라는 말도 모르나.
오늘날의 나는 과거의 내가 아니라구.
영어과는 폼으로 나왔나?"

 
나는 승질이 나서 죽을 각오로 아무도 따라오지 못할 속도로 정상으로 뛰쳐 올라갔다.   
저 밑에서 허우적대며 올라오려고 생고생하는 동료들이 보인다.
"저놈이 오늘 완전히 갔구나"라고 그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국사봉에 거의 다왔을까? 국사봉이라는 글자에서,  “사”가 무슨 사일까라는 말이 나왔다.
어떤 사람은 생각사(思)일 것이라고 했고, 어떤 사람은 스승사(師)일 것이라고 했다.
나는 뱀사(蛇)일 것이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아직도 승질이 덜 풀려서다.
막상 정상에 와보니 생각사였다.


그런데 갑자기, 전직 국사선생이 그것도 모른다고, 기열이는 조피아에게 핀잔을 주었다.
몇 번이나 가르쳐 주었는데도 그것도 모른다고 또 다시 입에 거품을 품고,
마치 제 아내 혼내듯 호통친다.    
내 귀에는 등산 멤버 하나 떨어져 나가는 천둥 소리 같다.
마치 천관산의 청뢰문(聽雷門)에 앉아 덜덜 떨고 있는 기분이다.

 

 

국사봉에서 사진 몇 방 찍고 보니, 정상 바로 아래에 막걸리 파는 아줌마가 있다.
한 잔 했으면 어떨까 했는데, 다른 사람은 별 무반응이다. 내려가서는 먹어도,
정상에서는 안 먹는다고 누가 말했다. 한 잔 하고 내려가면 그 내려가는 동안이 얼마나 즐거운데,
그것을 모르다니. 이런 것도 모르는 이런 한심한 작자들과 같이 등산을 하다니!
그들이 한심한지, 내가 한심한지, 아니면 우리 모두 한심한지?


나는 평화와 함께 싸게싸게 내려갔다. 아까 승질에 승질이 또 났다. 빨랑빨랑 내려오면서
평화와는 아무말이나 되는대로 했다.
아마 비아그라, 씨알리스, 모텔 등등의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젊은 놈들이 부럽다는
이야기도 아마 했을 것이다. 그러나  갑자기, 70 먹은 사람이 우리를 보면 그들은 우리를 부러워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힘이 불끈 솟았다.
그렇다. 우리는 불씨가 남아 있다. 불씨에 휘발유만 부으면 된다.
휘발유하니까 옛날 코메디언 양종철이 생각났다. 그는 불광동 휘발유다.
우리는 허공에 대고 외쳤다. 불씨도 없는 자와 우리를 비교하지 말라.
우리는 자신감 있게, 박력있게, 활기차게, 늠름하게, 입을 다물고 개선 장군처럼 아래로 내뺐다.

거의 초입에 왔을 무렵, 전날 비가 와서일까? 계곡물이 한 여름의 시냇물처럼 좔좔 댄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발을 담근다. 1 분을 담그니 이제 발이 시럽다 못해 발이 아프다.
그러고 보니 베트남 사람이 한국에 와서 겨울을 보내는 느낌을 물으니 한국의 추위는
통증으로 느껴진다는 얼마 전의 TV 장면이 생각났다.
나를 이곳에 오게 해준 발에 고마움을 느끼면서
소중히 닦고, 다시 등산화에 넣어 준다.

 

 

다시 차를 타고 순두부집에 왔다. 그런데 웬 일인지
한 할머니 비스무레한 여인네가 눈에 핏발을 세우고 주인에게 대든다.
대충 말을 들어보니, 신발을 잃어버렸는데 주인은 책임이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인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렇다. 
손님은 왕이라는데, 책임 없다는 말 한 마디만 하면 되겠는가?


그런데 이놈의 신발 문제는 10분이 지나도, 20분이 지나도 끝나지 않는다.
얼마나 끈질기게 할머니가 항의하는지 마치 훈련받은 개가
자기가 죽는 한이 있어도 물건을 물고 늘어지는 격이다.  
이제 손님들도 할머니편과 주인편으로 나누어 소리치기 시작했다.
나는 이런 꼴 생전 처음 본다.
훨훨 타는 장작 불에 경쟁적으로 기름을 자꾸 붓는다.  

서서히, 나는 신발 잃어버린 할머니가 밉기 시작했다.
저 한 사람 때문에 이 무슨 난장판인가?
급기야 저놈의 늙은이가 뒈졌으면 좋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의 고뿔이 낫는다면 아프리카 사람이 다 죽어도 좋다는 심보다.


그러면서도 나는, 나의 신발이 없어져 제 2의 투견 사태가 오지 않을지
문을 반쯤 열어 놓고, 한 쪽 눈은 음식에,
한 쪽 눈은 신발장에 고착 시켜, 도난방지에 심혈을 기울였다.   

 



할머니가 갔나보다. 영화의 페이드 아웃(fade-out)처럼 싸우는 소리가 멀어져갔다.
이제 음식이 또렷이 보이기 시작한다. 두부 정식이다.
맛깔스런 음식이 차례차례 나오기 시작한다. 아까 먹어보지 못한 동동주도 나온다.
동동주 한 잔 하니, 아까 위에서 승질 난 것이 좀 풀린다. 한 잔 더 하니 완전히 확 풀린다.
한 잔 더 하니 눈앞에 아름다운 여인네가 드디어 보인다.
아까 꽃밭에서 보았던 꽃 밭의 여인네들인지 잘 모르겠다.
야화(野花)속에 인화(人花)가 뭉그러져 있었다.
“꽃 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고운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름다운 꽃이여, 꽃이여.”


눈을 들어 서창을 보니, 해는 서서히 붉게 물들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