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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한라산 등산기(Halla Mountain)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2. 7. 28. 19:15

 

 

 

한라산 등산기

 

 

한라산에 간다! 그것도 갈매기가 날고 북두칠성이 보이는 밤 하늘을 가르며 배를 타고 간다! 별을 벗삼고 바람과 동행한다.

 

 

9월 26일 오후 7시에 인천항을 출발한 배는 800명이 넘는 인원으로 가득 차 있다. 배에 타기가 무섭게 사람들은 좌충우돌 하며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아무 데나 공터만 있으면 짐을 펼친다. 몇 층인지 모를 곳에서 나도 덩달아 짐을 내려 놓는다. 누가 누구인지 확인도 하기 전에, 그 옆에는 화투판이 벌어진다. 눈을 조금 옮겨보니그 옆에는 먹자판이 벌어진다. 그 옆에는 술판이 벌어진다. 한 사람, 두 사람  난장판을 비집고 눕기 시작한다. 그런 중에 책을 꺼내어 활자판을 섭렵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살얼음판 걷듯이 자리를 떠 배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판"으로 끝장날 판인가 보다.  

 

 

 

 

3 등석 예약을 한 우리 일행에게는 아마 방이 없는 듯하다. 있어도 찾을 수가 없는 것 같다. 갑판을 서성였다. 내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다시 내 짐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 다른 사람처럼 덩달아 왔다갔다 하면서 바쁜 척 하든지, 아니면 배 바닥에 누워 모자로 눈을 가리고 잠자는 척 하는 일 뿐인 듯 싶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저 배의 기둥에 기대에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유일한 일인가 보다.

 

 

배의 이름은 "오하마나". 웬일인지 아무리 노력해도 외워지지 않는다. 미국의 대통령 후보 "오바마" 같기도 하고, "오수잔나"라는 노래 제목 같기도 하고, 장윤정의 노래 "어머나, 이러지 마세요" 같기도 하다. 그때 누군가가 "가나마나, 오나마나"에서 "나"를 "하"로 바꾸면 된다라고 비명을 지른다. 그렇지! "오나마나"에서 "오하나마"로 바꾸면 되는구나! 순간 제주도의 "가파도"와 "마라도"가 생각난다. 빚을 "갚아도, 말아도" 아무 상관이 없다는 그 이야기다.

 

 

기왕 말이 나온 김에 이런 이야기도 있다. 스님이 어느 집에 들어가니 젊은 여자가 벌거벗고 요염하게 누워있다. 스님 왈, "봤으니 가나봐라 가나봐라"라고 목탁에 맞추어 염불한다. "봤다고 주나봐라, 주나봐라"라고 여자가 응답한다. "안주면 가나봐라, 가나봐라."라고 스님은 물러서지 않는다. 여자는 "서있다고 주나봐라, 주나봐라"라고 지지 않는다. 그 때 남편이 보고 있다가, "느그끼리 잘해봐라, 잘해봐라"라고 신경질을 낸다. 깜짝 놀란 스님은, 돌아가면서, "준다고 하나봐라, 하나봐라"라고 말하며 대문으로 향한다. 이에 여자는 망연자실하여 "다음에 또 안와봐라 안와봐라."라고 했다든가?(맨 끝의 여자가 한 말은 필자가 붙여 본 말이다.)

 

 

 

 

몽롱한 생각에서 허우적거리며 나온 것은 천지를 진동하는 불꽃놀이의 폭죽 소리 때문이다. 듬성듬성 보이는 별빛 속으로 휘황찬란한 불빛이 수를 놓는다. 검은 하늘에 코스모스 밭이 펼쳐졌다가 사라졌다. 은하수가 폭발하여 눈 앞에 다가온다. 따발총 소리와 더불어 수없는 포물선이 하늘을 가른다. 사람들의 외침과 감탄, 그리고 아우성 속에 오색 찬란한 불꽃은 하늘에 그림을 그렸다 지웠다.  

 

 

그 옆에는 이미 디스코 파티가 벌어져 있었다. 몰려든 인파 때문에 접근할 수 없어, 나는 먼 발치에서 불구경하듯 바라볼 뿐이다. 음악은 이제 "남행 열차"에서 "사방 사방"으로 이어진다. 사람들의 물결은 이리 엉키고 저리 엉켜, 흘러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몸을 맡겨둔다. 바라 보는 사람들이 제 자리에서 엉덩이를 들썩거린다. 이런 것을 난장판이라고 하는지, 지옥이라고 하는지, 천당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그저 휩쓸려 열기와 환희를 느낄 뿐이다.

 

 

어둠 속을 뚫고 밤 하늘을 가르며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배는 바다 위를 질주한다. 나의 과거, 현재, 미래가, 그리고 나의 추억, 나의 인생이 한 줌의 재가 되어 하늘에 흩뿌려진다. 배는 긴 기적의 여운을 남기면서 모든 사람을 품에 안고 그렇게 깊은 블랙 홀로 사라져 버렸다.

 

 

 

 

 

선상에서의 일출을 사진에 담고자 새벽에 일어났다. 사방이 컴컴한데 벌써 사람들이 갑판 여기저기서 웅성거리고 있다. 찬 바람은 여전히 내 옷깃을 스친다. 동쪽이 서서히 밝아오자, 붉은 태양은 자신의 몸을 불사르고 조각내어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이면 누구에게 든지  나누어주기 시작한다. 온 하늘이 붉고 노란 빛으로 가득 찬다. 그것을 바라보는 승객들의 얼굴도 아침 노을로 물들었다. 웃는 이도 있고, 소리지르는 이도 있다. 동명일기에 나오듯 소 혀처럼 붉은 기운이 검은 바다 물에 날름거린다. 그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배 한 척이 영화의 엑스트라처럼 왔다가 사라진다. 따뜻한 봄날 양지 쪽에 앉아 붉은 태양을 보고 눈을 감으면 오색 불빛이 아롱거리듯, 사람들의 탄성 속에 그렇게 노을은 이어져 갔다.  

 

 

배가 제주항에 도착한 것은 27일 아침 9시다. 배에서 내리는 사람들의 꼬리가 길다. 배는 입에서도, 옆구리에서도, 피난민 대열처럼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밖으로 내 뱉는다. 우리를 기다리는 버스가 일렬 종대로 늘어서 있다. 마치 군대에서 내무 사열을 받는 병사처럼 말이다.  

 

 

 

10시 정각에 성판악에서 등산은 시작된다. 성판악에서 진달래 대피소까지는 지도상으로 3시간 30분 걸리는 거리다. 안내자는 2시간 30분에 주파하여 12시 반에 진달래 대피소를 통과해야만이 정상에 갈 수 있다고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눈물을 머금고 다시 내려와야 한다는 것이다.

 

 

나를 포함한 우리 일행은 그야말로 눈물을 머금고 발악하며 앞으로 치고 나갔다. 등산의 중요한 일부인 사진 촬영은 아예 붙잡아 매야했다. 이 나이에 정해진 시간보다 한 시간을 앞당겨 가야하니 정말 눈에 뵈는 것은 앞 사람의 발 뒷꿈치 뿐이었다. 오늘 가야할 길 약 20키로를 8시간만에 주파해야하니, 시간 당 약 2.5키로가 된다. 더구나 식사하고 잠깐 쉬는 것을 뺀다면 시속 3키로 정도로 가야한다. 산길을 이렇게 걷는 것이 어디 가당치나 하겠는가? 내 이럴 줄 알았다면 아예 서울에서 출발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 빼도 박도 못하는 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일, 한숨만 나온다.  

 

 

나는 처음에는 그야말로 안개가 바람을 타고 산을 스쳐가듯 그렇게 날렵하게 걸었다. 등산로를 가득 채운 사람들을 따라잡고 또 뒤로 제치며 갔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얼마 못가서 나는 쳐지고 말았다. 나의 능력을 과대평가하여 초장에 너무 과속한 것이다. 초장 끝발 개 끝발이라는 말이 문득 생각났다. 기왕에 늦은 것, 아예, 사진이나 찍으면서 가자고 생각했다. 그러나 끝없는 숲의 터널이 연결될 뿐 하늘을 볼 수 없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와 있는지도 몰랐다. 장님 코끼리 다리 잡 듯, 그냥 대충대충 알아서 가는 것이다. 몸은 이미 땀이 날대로 나 있었다.  

 

 

진달래 대피소에 도착하니 12시 20분이다. 이미 도착한 일행은 점심 식사를 끝내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도시락을 꺼내 밥이 어디로 넘어가는지도 모르게 8분만에 먹어 치웠다. 그리고 물 한 모금 마시고 독촉하는 일행을 따라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진달래 대피소의 스피커에서는 이제 등산로를 폐쇄한다는 방송이 들린다. 전쟁 중 마지막 열차를 타기 위해 필사적으로 외치는 사람들의 외마디 소리와 같은 비명 소리를 뒤로 하고 또 정상을 향한 나의 혈투는 계속 된다.

 

 

 

 

한 시간 정도 걸었을까? 갑자기 키 큰 나무들이 없어지고 민둥산만 보인다. 지대가 너무 높아 키 큰 나무는 바람과 추위에 견딜 수 없는 지점이 바로 거기다. 눈을 들어 보니 저 멀리 백록담을 향해 올라가는 사람들의 행렬이 뱀처럼 늘어져 있다. 아래를 보니 제주도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 온다. 구름이 저 아래에 있는 것을 보면, 그래도 꽤 많이 올라왔나 보다. 그 높은 곳을 아이와 함께 가는 사람도 있고, 일행을 다 보내고 혼자 터벅터벅 걷는 사람도 있다. 어떤 이는 병든 닭처럼 길가에 앉아 졸고 있기도 하고, 어떤 이는 애인과 부등켜 안고 있기도 하다.

 

 

 

 

정상 부근에 도착하니 수 많은 사람들이 이미 올라와 먹고 마시고 떠들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사람들 틈을 비집고 올라와 백록담을 내려다 보았다. 저 멀리 바닥에는 세수하다 버린 물처럼 물자국만 찌질찌질 남아 있다. 한라산 정상 가장 자리는 검은 바위로 테를 두르고 있었다. 이름 모를 키 작은 나무들이 정상 부근에 깔려있었다. 사진을 찍으려 했으나 시골 대문처럼 나무 막대기로 둘레를 쳐 놓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관음사 쪽을 향해 정상을 돌아가는데, 몇 사람이 울타리를 넘어 가서 사진을 찍는다. 나도 따라 가려했으나, 그때 갑자기 웬 호르라기 소리와 함께 밖으로 나오라는 소리가 나를 겁먹게 했다. 아마 백록담 근처의 사진은 이 정도에서 만족하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때 누가 이 개구멍으로 가자고 소리쳤다. 우리 일행은 감독자가 보이지 않는 개구멍으로 기어들어갔다. 그리고 백록담이 잘 보이는 곳까지 도둑의 심보와 배짱으로 키를 낮추어 벅벅 기어 갔다. 사람의 발자국도, 짐승의 숨결도 없는, 오직 바람의 흔적만이 존재하는 그곳은 과연 천하 제일의 백록담 관찰지요, 오른쪽으로 보이는 검은 절벽을 찍을 수 있는 최고의 사진 촬영 명소였다. 도둑이 제발 저리기는커녕, 남 몰래 금지구역을 독차지한 흥분과 기쁨에 감격의 눈물이 흘렀다. 쪽빛 하늘이 일행의 눈에 반사해 보였다. 백록담 물에 하늘이 묻어 있는 듯 했다. 백록담이 손에 잡힐 듯이 가까웠다. 미치도록 좋다는 말을 이런 때 쓰나 보다.

 

 

 

 

다른 사람이 이것을 알고 떼로 몰려오면 어떻게 할까 지례 겁을 먹었다. 만약 그들이 우리를 쫓아 오면 위협을 주어 쫓아 보내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래도 막무가내로 온다면 돌을 던져 그들의 옥수수를 몇 개 뽑든지, 아니면 그들의 빨간 페인트 통을 부숴 버리기로 했다. 잔인하고 염치없는 공범들이 우선권을 지키려는 돼 먹지 못한 음모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여기에 다시 올 수도 있겠지만 영원히 못 올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잠시 우수에 빠졌다. 문득, 우리는 우리가 가야할 길의 겨우 반밖에 오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다.

 

 

관음사 쪽으로 가는 길은 직강하 길이었다. 나는 준비해간 지팡이를 꺼내어 조심스럽게 걸었다. 다친 적이 있는 왼쪽 무릎이 땅에 닿을 때에는 지팡이에 체중의 반을 실었다. 지팡이는 나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지팡이를 하나만 사용하여 걸으니 내가 웬지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같은 걸음 걸이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번에 돌아가면 지팡이 두 개를 꼭 준비했다가 다음에 쌍 지팡이를 사용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여튼 패잔 병이 걷듯이 나는 그렇게 걷고 또 걸었다. 다리를 절룩거리며 관음사에 도착하니 오후 6시였다.

 

 

다시 버스를 타고 배에 도착하여 저녁을 먹고, 등정 기념주를 먹으러 배 안에 있는 라이브 카페에 갔다. 우리가 맨 처음 손님이다. 필리핀 반주자와 가수가 노래를 시작했다. 그 가수는 팝송을 부르다가 가끔 가다가는 김수희의 노래를 불렀다.

 

 

 

 

시간이 흐르자 카페는 사람들로 만원을 이루었다. 몇몇 술 취한 남자들이 앞으로 나와 되지도 않는 춤을 춰댔다. 가수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놓아둔 테이블 위로 한 취객이 올라갔다. 그 취객의 친구는 그를 쫓아가 테이블 위에서 잘난 척 하고 있는 사람의 바지를 벗기려고 했다. 음악이 멈추고 건장한 웨이터가 그들을 끌어 내리며 아래위를 째려 보았다.    

 

 

뚱뚱한 아줌마와 젊은 청년이 지루박을 춰댔다. 가수가 보이지 않게 하필이면 내 앞에서 춤도 아닌 어정쩡한 동작으로 그들은 생쑈를 부렸다. 이들은 이 후에도 툭하면 나타나 내 신경을 건드렸다. 내가 술을 조금만 더 먹었으면 발을 걸어 그들을 자빠뜨렸을 것이다.

 

 

 

 

 검은 옷을 입은 한 여인의 공연이 놀라웠다. 춤도 아닌 것이 쑈도 아닌 것이 뭔가 희안하다는 느낌이 드는 그런 동작이었다. 마이클 잭슨보다도 훌륭한 그 모습은 자신이 학교 식당 아줌마라는 본인 소개와는 걸맞지 않았다. 잠시 뒤 그녀는 자신의 전화 번호를 적어주며 꼭 전화하라고 나에게 신신 당부했다. 그러더니 그 여자의 친구로 보이는 입이 반쯤 삐뚤어진 여자가 다가와 저 여자가 꽃뱀이니 조심하라고 침이 마르도록 떠들어댔다. 그들이 경쟁적으로 나에게 내 귀에 대고 말을 하면 할수록, 나의 기분은 수직 상승 곡선을 그렸다. 그들은 한 마디로 나를 가지고 놀았고, 나는 그들의 손아귀에 놀림 당하는 것을 기분 좋게 즐겼다.

 

 

라이브 카페 문을 열 때 들어간 우리는, 문을 닫을 때 밖으로 나왔다. 장님이 장님을 인도하듯, 취객이 취객을 인도했다. 방으로 들어가야 할 우리는 갑판 위에 올라와 있었다.  저 멀리 육지의 불빛이 손에 잡힐 듯이 가까워 보였다. 어제 밤처럼 오늘 밤도 하늘에 별이 질펀하게 깔려있었다. 바람이 귓가를 스치며 마음을 평화롭게 했다. 어디서 한 쌍의 연인의 노래 소리가 들렸다.

 

 

창공에 빛난 별 물위에 어리어
바람은 고요히 불어 오누나
내 배는 살같이 바다를 지난다
산타루치아, 산타루치아

 

 

(2008년 10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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