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도>
<세석 대피소에서>
지리산 등산기 Part III
2008년 10월 29일: 눈을 뜨니 새벽 6시 벽소령이다. 3일째 샤워를 못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세수나 이빨도 닦지 못했다. 대피소가 산 정상에 위치해 있어서 물이 부족해여 대피소에서 이것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낮에 10시간을 걸었으니 얼마나 땀이 났겠는가? 온 몸이 근질근질하고 끈적거렸다. 내의는 하루에도 여러 번 땀에 젖었다가, 체온으로 스스로 말랐다. 이틀까지는 이런 생활을 참을 수 있었으나, 오늘 하루 더 이런 생활을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조차 싫었다. 오늘 어떻게 할까 생각을 하다가 일단은 장터목까지 가서 상황을 보아 판단하기로 했다.
동료와 나는 6시 반에 세석평전을 향해 출발했다. 세석까지는 6.4키로 3시간 걸린다. 나도 좀 몸이 뻣뻣했지만, 나의 동료는 온몸이 쑤시고 뼈가 부서지는 것 같다고 죽는 시늉을 했다. 그는 천왕봉 등정을 포기하고 세석에서 백무동으로 내려가겠다고 했다. 기왕에 여기까지 온 김에 같이 가보자고 나는 그에게 제안했다. 그는 자기를 죽여 땅에 눕히고 그 위로 넘어가라고 했다. 그의 표현은 아마 영어에도 있는 표현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Over my dead body 이다. 즉 "나의 죽음 몸 위로 걸어가라"라는 뜻이다.
오늘은 어제와 날씨가 많이 다르다. 아침부터 날씨가 흐리다. 하기야 하루에도 여러 번 날씨가 바뀌니까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비라도 곧 내릴 것 같다. 중간 중간에 나타나는 "곰 출현 주의" 라는 경고성 현수막이 인상적이다. 곰 출현을 어떻게 주의하나? 곰이 나타나면 어떻게 하라고 써 있어야 할텐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지리산 도처에 있는 곰 출현 주의 안내>
단풍은 단풍으로 이어지고, 구름이 몰려왔다, 언제인지 모르게 사라졌다. 덕평봉을 지나 칠선봉에 오르니 경치가 빼어나다. 높은 바위에서 바라보니 굽이치며 내려가는 산줄기와 계곡이 비단 옷을 입었다. 비단 옷은 바람에 펄럭이며 자신의 몸을 휘젓는다. 좀처럼 자신의 속살을 보여주지 않는 검붉은 지리산은, 산 위에서 아래로 내려 꽂는 바람 오케스트라에 맞춰 몸의 일부를 파도타기 하면서 보여준다. 한 동안 넋을 잃고 바라본 동료는 이제 가자고 나의 팔을 잡는다.
<벽소령 출발 후 풍경>
어느덧 영신봉이 모습을 들어내고, 저 멀리 세석 대피소가 보인다. 왼쪽으로 천왕봉이 새싻처럼 돋아 있다. 세석은 넓은 평원이다. 능선에 이런 대 평원이 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다.
친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음식을 코펠에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내려갈 사람이니 모든 것을 없애고 가겠다"고 그는 말했다. 아내가 준비해 준 모든 음식을 넣고 끓이니 죽도 밥도 아니 되었지만, 그 맛만은 기가 막히게 좋았다.
<세석 대피소에서 동료가 마지막 점심을 준비한다.>
그는 너무 힘이 들면 오히려 몸에 좋지 않으니 같이 하산하자고 나에게 말했다.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고는 나는 깜짝 놀랐다. 본래 종주가 목적인 것을 순간적으로 망각한 것이다. 나는 "절대로 그럴 수 없다"고 다시 고쳐 말했다.
나는 고기와 김치 그리고 햇반을 넣어 함께 끓인 꿀꿀이 죽을 신속하게 먹었다. "더 먹고 가라"는 그의 말을 사양하며 섭섭함을 어쩌지 못하고 장터목으로 떠날 채비를 했다. 음식을 먹다 말고 그는 나를 한 참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동안 짧은 산행이었지만 정이 들었었나 보다. "나중에 언제 만나면 다시 멋있게 등산해 봅시다." 그가 내게 한 말이다. "덕분에 등산 즐거웠습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말이 그렇지 이 사람을 언데 다시 보랴? 다시 숟가락을 드는 그를 보며, 나는 촛대봉으로 향했다. 11시였다.
<촛대봉으로 향하면서 찍은 세석 대피소>
마치 정든 고향을 떠나듯이 뒤로 세석 대피소를 자주 본다. 실제 습지도 아닌, 이름만 습지인 세석 습지를 지난다. 촛대봉에 올라보니 천왕봉이 아직도 멀리 보인다. 저기를 언제 올라갔다가 언제 내려올까? 갈 때까지 가보자.
능선은 능선으로 이어져 양쪽으로 탁 트인 풍경이 이어진다. 어느덧 연하봉을 지나 장터목에 도착한다. 오후 한 시가 조금 넘었다. 쌀쌀한 바람 속에서 몇몇 사람이 김치찌개에 소주로 몸을 녹이고 있다. 장터목의 유래에 대한 안내판도 눈에 띈다. 그때 전에 함께 근무했던 선생님이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가? 얼마나 반갑던지? 선생님도 내 손을 덥석 잡았다. 기념 사진 찍고 백무동으로 내려가는 선생님을 보니 같이 내려가고 싶은 마음 굴뚝같다.
나는 여기서 3 가지 중 하나를 택해야 했다.
2) 모든 것을 포기하고 백무동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가장 편한 방법이겠지만, 본래 종주하겠다는 나의 의도가 산산 조각나는 것이다.
나는 머리 속에 온갖 경우의 수를 생각한 끝에 3번을 택했다. 나중에야 어떻게 되든 오늘 모든 것을 끝장내기로 했다. 천왕봉에 올랐다가 하산하기로 했다.
<장터목 대피소>
<정말 우연히 만난 전 직장 동료 선생님>
나는 대피소에 들어가 오늘 밤 예약을 취소하고 1시 20분 천왕봉을 향해 출발했다. 처음 얼마 동안은 고사목이 사방에 흩어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임시 전망대에서 사방을 돌아보니 가슴이 시원해졌다. 이제 내려가는 사람은 있어도 올라가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바로 앞에 보이는 천왕봉이 왜 그리 먼지 가슴을 쥐어짜야 했다.
<천왕봉 올라 가는 길>
바위를 넘고, 철계단을 몇 개 통과했다. 1900미터 가까이 왔다. 위압감이 서서히 느껴진다. 드디어 하늘과 통한다는 통천문이 나타났다. 월출산에서도 통천문이 있다. 이제 정상에 다 왔다는 뜻이다.
<천왕봉>
드디어 정상이다. 정상에는 약 10명 정도의 등산객이 사방을 보며 흥분에 들떠있었다. 멀리, 내가 출발한 노고단과 힘들게 올랐던 반야봉이 보였다. 저 먼 곳에서 여기에 오다니! 나는 무엇보다도 내 발의 위대함에 놀라고 감사해야 했다. 일 미터도 안 되는 보폭이 모여, 끝이 가물가물한 이 길을 걸어왔다니! 신통하기도 하고, 고맙기도하고, 기적같기도 하다. 북쪽으로 백무동이 보이고 남쪽으로 중산리가 손에 닿을 듯이 가까워 보였다. 남서쪽에 걸려있는 태양을 보며 눈시울을 적셨다.
높은 산 넘고 넘어 천왕봉에 도달하여
어제처럼 삼류 시조 한 수 읊고 나그네 길 떠난다. 무릎을 생각해 빨리 떠나야 하는 나는, 남한에서 한라산(1950 미터) 다음으로 높다는 천왕봉(1915 미터)에게 작별을 고했다. 아마 너를 다시 못볼 줄 모른다. 내 너를 잊지 않으마, 안녕. 시계를 보니 2시 40분이다.
<천왕봉에서 본 반야봉: 맨 뒤에 조금 볼록한 산. 그 옆에 어렴풋이 노고단이 보인다.>
거기에서 법계사까지는 그야말로 직강하 중 최고의 직강하 코스였다. 두 지팡이로 최대로 몸의 중력을 의지하며 마치 발이 없는 사람이 목발에 의지하여 걷듯이 그렇게 발걸음을 옮겼다. 거의 쉬지 않고 두 시간 정도 걸었을까? 드디어 법계사 입구가 보인다. 거기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중산리, 왼쪽으로 가면 경남 자연 학습원이다. 나는 왼쪽 학습원을 향해 걸었다. 지금부터는 경사가 완만하여 걸을 만하다. 이제 모든 것이 계획대로 이루어진다는 자신감과 승리감이 들기 시작했다.
<법계사>
<자연 학습림 근처의 풍경>
단풍이 한창인 산과 계곡을 보고, 물소리를 들으면서 목적지인 자연 학습림에 도착하니 5시 50분, 이미 땅이 보이지 않았다. 마침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버스를 타고 다시 중산리로 갔다. 거기에는 버스가 없었다. 다시 밤바람을 맞으며 15분을 걸야야만 버스 정류장이 나온다. 버스 정류장에서 약 40분 기다렸가 진주행 버스를 탔다. 한 시간에 걸친 진주행 버스 속에서 나는 내가 오늘 성취한 업적에 희열을 느꼈다. 나는 대단한 놈이라고 스스로에게 자꾸 말해줬다. 그럴수록 힘은 더욱 솟구쳤다.
내가 탄 버스는 밤 8시에 진주 시외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근처의 모텔이 모여있는 곳으로 갔다. 모텔이 줄잡아 50개는 되는 듯 천지가 휘황찬란했다. 아무 모텔이나 들어갔다. 모텔 주인 아저씨가 혼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밤에 심심하면 여자나 불러서 놀다 자라고 말했다. "아저씨, 등산하다가 한 번 죽었는데, 또 한 번 죽으라는 이야기입니까?"라고 내가 말했다. 말을 해 놓고 보니, 아가씨와 놀다 자는 것이 왜 죽으라는 것인지 내 논리가 이상했다. "아, 그러면 죽은 듯이 푹 주무시소."라고 모텔 주인이 말했다. 그의 말이 이상했지만, "자는 듯이 죽으시소."보다는 나은 말이라고 생각되어 그냥 3층 방으로 올라갔다.
우선 샤워장에 가서 때미리 수건으로 껍질을 벗기듯이 문지르고, 이빨이 닳아 없어지도록 치솔질을 해댔다. 머리에 샴프를 다섯 번을 뿌려 감았다. 얼굴과 몸에 스킨과 로션을 빵에 버터 바르듯이 질척질척하게 발랐다. TV에서는 내가 즐겨보는 "너는 내 운명"이라는 일일극이 방송되고 있었다.
나는 TV를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너무 기특한 내 자신에게 그에 걸맞는 보상을 내려야 했다. 근처 횟집에 가서 자연산 광어를 시켰다. 값도 보지도 묻지도 않았다. 물론 소주도 시켰다. 말하는 것으로 보아 한국에 온지 얼마되지 않는 듯한 중국 교포로 보이는 20살 정도의 젊은 여자가 생선회와 소주를 가져왔다. 생선회를 보니, 소주가 맑은 시냇물에 시퍼런 풀잎 떠내려가듯 목을 타고 넘어갔다. 나는 콜라도 가져오라고 시켰다. 콜라를 가져온 그녀는 주문서에 콜라라는 글자가 없는 것을 보고 어디에 체크를 해야 할지 난감해 했다. 나는 주문서에 그냥 "콜라"라고 쓰고 정(正)자 표시로 작대기 하나 그으라고 말했다. 그녀는 주문서에 "고나"라고 썼다. 왜 그런지 그녀가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아가씨에 대한 불쌍한 생각과 나의 성취감으로 나는 그 자리에서 만원을 꺼내 팁으로 줬다. 그녀는 고맙다는 말을 수십 번도 더 했다. 생선회와 매운탕과 소주가 어느 정도 들어가자, 몸이 나른해짐을 느꼈다. 눈을 들어보니 길 건너 2층에 라이브 카페라는 간판이 번쩍이며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횟집을 나와 음악 소리 들리는 그 카페로 향했다.
건물 2층에 있는 카페에 올라가니 넓은 홀 창가에 두 팀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한 팀은 3명으로 구성된 남자들, 또 한 팀은 남녀 2 명으로 된 커플이다. 중앙은 텅 비어 있었다. 나는 색스폰을 연주하는 음악가 바로 앞에 앉았다. 정말 멋들어지게 연주하는 모습과 그 색스폰 소리가 심금을 울렸다. "심금"이 아니라 "술금"이라고 해야 맞을지도 모르겠다.
<카페의 색스폰 연주자>
맥주에 오징어를 시켰다. 몇 곡을 들었을까? 창가에 앉은 남녀 팀의 다정한 모습이 자꾸 내 눈에 들어왔다. 호기심 겸 질투심으로, 그리고 길 가다가 뒤에 뭔가 있을 것 같아 아쉬워 하는 심정으로, 남녀를 자주 보았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갑자기 여자가 남자의 얼굴에 먹다 남은 맥주를 뿌렸다. 남자는 일어나더니 테이블을 엎어 버렸다. 접시와 유리잔이 깨지는 소리가 색스폰 소리보다도 더 컸다. 남자는 여자의 따귀를 갈겼다. 여자가 앙을앙을 댔다. 남자는 주머니에 있던 다른 손으로 여자의 다른 따귀를 갈겼다. 색스폰 연주가 멈추고, 색스폰 연주자와 그의 아내로 보이는 종업원이 그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나는 술값을 계산하고 밖으로 나왔다.
바로 옆 10 미터도 안되는 곳에 진주 남강이 흘러가고 있었다. 몇 시인지 모르겠다. 가끔 운동하는 사람과 벤치에서 사랑을 나누는 젊은이가 밤바람을 맞고 있었다. 물가에 비치는 가로등 불빛이 바람에 흔들리는 물결에 파동을 이루며 부서졌다. 인생은 작은 기쁨과 작은 슬픔으로 연결된 일상의 고리다. 그러나 가끔은 큰 슬픔과 큰 기쁨으로 능선을 이루는 지리산과 같은 것이 인생이기도 하다.
나는 물가에 앉아 돌을 던졌다. "첨벙" 소리와 함께 동심원을 이루며 퍼져가던 물결이 강가에 다다르자, 다시 방향을 바꿔 내 가슴으로 밀려왔다. 가슴에 파고들던 물결은 강가에 있는 가로등 불빛을 타고 하늘로 꼬리를 물고 올라갔다. 그것은 다시 하늘에 퍼져 은하수가 되고 별이 되었다. 나는 하늘에 있는 별을 하나 둘 세어 가슴에 담으며, 강가를 걸었다. 모든 것이 신비롭다! 모든 것이 희열이다! 모든 것이 무지개다! 바로 이것이 인생이다! 아무래도 오늘 밤 잠들기가 어려울 것 같다. 왜 그런지 아까 모텔 주인이 한 말이 자꾸 떠오른다. 나는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큰 호흡 한 번하고, 숙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 걸은 거리: 약 16.2 키로
(끝) (2008년 11월 2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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