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3가 생선회”
최근에 마누라의 잔소리가 아주 심해졌다. 같이 밥을 먹으면, "왜, 이렇게 밥을 흘리며 먹냐, 왜 이렇게 숟가락을 덜덜 떠느냐, 왜 이렇게 침을 흘리며 먹냐, 늙은이가 왜 이렇게 밥을 많이 먹냐" 끝도 절도 없이 마누라의 잔소리는 이어진다!
오랜만에 곰탕집에서 허접한 안주 시켜놓고 소주 한잔 먹으려고 하면, 왜 이리 비싼 안주만 골라 먹냐, 다른 사람은 안주를 아껴가면서 먹더구만, 이놈의 늙은이는 아까운 줄도 모르고 안주만 먹는다고 씨불여댄다. 하는 수없이 안주 안 먹고 소주만 마셔대면, 술 못 먹어 환장했냐, 다른 사람은 값싼 막걸리를 마시는데, 요놈의 늙은이는 이 비싼 소주를 한자리에서 두 병이나 처마셔대니 살림살이 거덜 난다, 기둥뿌리가 흔들거린다는 둥 못 할 말이 없다! 그러다가 깡술도 못 먹는 사람이 종로 3가에는 수두룩하다는데 팔자 좋아 곰탕 안주로 술을 먹으니 팔자 좋은 줄 알아라, 라는 말로 이어진다.
나는 마누라 입에서 “종로 3가”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고, 귀가 번쩍 눈이 번득 떠졌다. 그렇지! 내가 며칠 전에 종로 3가 갔었는데, 그 노인들은 생선회를 먹고 있었어. 나는 이때다 싶어, 마누라에게 조심스럽게 한 마디 했다. “며칠 전에 종로 3가에 바람 쐬러 갔었는데, 노인 둘이 생선회를 먹고 있더구만.”
그랬더니 마누라 눈을 부릅뜨고, 입에 게거품을 물고서는, 위아래를 째려보더니만, 따발총처럼 이야기한다. “이제 죽으려고 환장을 했구먼. 어디서 감히 내 앞에 회 얘기를. . . . 살다 살다 보니 참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구나!”
씩씩 거리던 마누라, 분을 못 참아, 입가에 튀어나온 침을 혀로 핥으며, 나보고 하는 말이,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못 할 말이 없다지, 아마!” 나는 죽는 것은 그리 서럽지 않으나, 죽기 전에 소원이 있다고 했다. 마누라는 그 소원이 무엇인지 한번 말이나 들어보자고 했다. “죽기 전에 종로 3가에서 회 한번 먹어보고 싶은데 . . . . .” 너무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을 해서, 내가 하는 말을, 마누라가 알아듣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랬더니 용케도 여름철 벼룩 뛰는 소리만도 못한 나의 말을 알아듣고는, 마누라는 나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쭈욱 째려보고서는, “살다 살다 별꼴 다 보네. 이제 회까지 먹어본다? 허허,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이럴까? 정말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나는, “꼭 한 번만 회!”“라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알았어! 내 인심 한번 써서 종로3가에서 회 한번 구경시켜 주지!“ 내 말이 떨어지지 마자, 마누라는 나의 멱살을 힘차게 나꿔 채고는 문을 열고 앞장서서 계단을 내려갔다. 마누라의 보무당당한 소리가 무섭고 겁이 나기도 했지만, 나는 종로3가에서 생선회를 먹을 수 있다는 기쁨과 하해와 같은 마누라의 인자하심에 감사의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렸다.
마누라는 내 눈 위에 붕대를 감아, 앞을 못 보게 했다. ”너무 좋은 곳을 데려가니, 당신 눈을 가리고 가서, 현장에서 안대를 풀어주겠소.“라고 말했다. 나는 나의 소원을 들어주는 마누라의 넓고도 넓은 은혜에 감사하며, 눈물을 흘렸는데, 눈물이 콧물과 섞여 장마철 논두렁 물꼬에서 흐르는 논물처럼 흘러내렸다. 눈물은 안대를 적시고 밑으로 흘러내려, 와이셔츠가 물에 빠진 것처럼 축축이 젖었다. 마침내 젖은 셔츠에서 눈물방울이 뚝뚝 땅바닥에 떨어졌다.
”자, 회가 있는 곳에 도착했소.“ 마누라의 말이, 천당의 문을 열어주는 문지기의 목소리처럼 희망차고 우렁차게 들렸다. ”이제 당신은 그토록 원하던, 종로 3가 회를 보게 될 것이오“ 마누라의 말에 나는 감읍하여 또 어린애처럼 엉엉 울었다. 내 몸의 모든 수분이 눈물로 변하여, 나는 이제 불만 붙이면 훨훨 타는 장작이 되었다.
”내 할 일은 여기에서 끝났소, 저기에 회에 목마른 사람들이 초조하게 당신을 기다리고 있소, 당신은 그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을 것이오. 그들과 함께 회 잘 드시고, 늦지 않게 집으로 오시오. 그 회를 먹고 거기에 써 있는대로 회의 효과가 있으면 들어오고, 효과가 없으면 내 눈 앞에 얼씬도 하지 마시오. “
마누라가 떠난 후, 나는 마누라의 나지막한, 참으로 인자한 말에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사방을 훑어보았다. 눈에 익숙한 종로 3가 바로 거기였다.
노인 몇 사람이 웅성웅성 대며 서 있었다. 나는 비틀거리며 서 있는 노인들을 헤치며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놀랍게도 큰 플래카드가 하나 놓여있었다. 플래카드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환) 종로3가 고개숙인 노인 친목 발기회 (영)“
생선회 중에서는 발기회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마누라의 속 깊은 뜻에, 또 다시 말 없이 흐르는 눈물을 두 주먹으로 닦았다. 아, 당신은 나의 영원한 동반자여! 나도 모르게 입에서 노래가 나왔다.
순간 나는 무서움에 몸서리쳤다. 마누라가 "발기회"를 먹고 효과가 있으면 집으로 돌아오라고 했는데. . .발기회의 효과라! 나는 고무신을 벗어 아스팔트 위에 쌔려대며, ”오! 주여, 오! 주여“라고 소리치며 주저앉아 울고 또 울었다.
(2021. 11. 22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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