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욕심이 없다”
며칠 전, 달구어져 뜨거운 후라이팬을 왼손에 올려 놓는 큰 실수를 저질렀다. 아무 생각없이, 뜨거운 후라이 팬의 밑부분에 맨 손을 갖다 댔던 것이다. 순간, “아야”라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나는 후라이팬을 부엌 바닥에 떨어뜨렸다.
순간 손바닥으로 통증과 쓰라림이 급습했고, 나는 어찌 할 바를 몰라 동동거렸다. 그때, “화상을 입으면, 먼저 찬물에 담가라”라는 말이 펀득 떠올랐다. 마침 부엌에서의 일이라, 수돗물을 틀어 놓고, 일분 동안 손을 냉각시켰다.
물에서 꺼내 보니, 손 가락 몇 군데가 흰색으로 변해있었고 쭈굴쭈굴해져 있었다. 그때, 사극에서 보았던 한 장면이 생각났다. 범죄자의 얼굴에 인두로 문신을 새겨 넣어, 영원히 전과자임을 세상에 알리는 바로 그런 흉터였던 것이다. 이제 나는 손에 화상 문신을 하고, 범죄자처럼 살아야하는 것인가?
몇십년 전, 학교에서 숙직을 하다가 창문이 떨어져, 자고 있던 내 입술이 몇 센티 찢겨나갔던 생각이 펀득 들었다. 이제 늙을만큼 늙은 나이에 이런 일이 또 발생하다니! 기가 차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하고, 한숨만 나왔다.
마침, 토요일 밤이라, 근처 병원이 모두 문이 닫혀있었다. 하는 수 없이 택시를 타고 가장 가까운 대학교 응급실로 갔다. 응급실에는 오만 군상의 인간들이 통증을 호소하며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응급처치 요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그들이 끌고 다니는 환자 운반용 침대에서, 떨그렁 거리는 소리가, 마치 상여꾼들이,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어흥, 어흥”하는 듯이 들렸다.
응급 처치 요원은 내 손가락을 보더니 2도 화상이라고 했다. 우선 찬물에 30분 동안 담그고 있으라고 했다. 30분이 지난 후, 약물에 적신 거즈를 손가락에 감고, 그 위에 붕대를 감았다. 그후에, “이런 곳은 흉터가 남을 수 있어요. 내일 성형외과에 예약을 잡아 놓겠습니다. 거기서 치료받으세요.”라는 말을 하고, 나를 퇴원시켰다.
치료비는 10만원이 조금 더 나왔다. 고마운 생각보다, 찬물에 담근 후, 붕대 감아주고 10만원, 이거 너무한 것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응급실에 오지 않고 집에 있을 걸,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음 날, 성형 외과에 갔다. 붕대를 풀어보니, 손가락 몇 군데가 쭈글쭈글했고, 별 다른 이상은 없는 듯 했다. 의사는 연고를 발라주고, 붕대로 감아 주었다. 그런 다음, “댁이 멀면, 근처에서 치료를 받으시고, 괜찮으면 이틀 뒤에 오세요.”라고 했다. 이 말을 듣고, 큰 화상은 아니라는 것에 안심이 되었다.
계산을 하고보니, 진찰료 약 2만원 치료비 약 3만5천원, 합계 5만 5천원이 나왔다. “아니 붕대 풀고, 연고 바르고, 붕대 감는데, 5만 5천원이라니!” 아까운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다음 치료받을 날짜를 정하고 예약금으로 2만원을 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자꾸 치료비 생각이 났다. 의사 만나는 데 2만원, 연고 바르고 붕대 감는데 3만 5천원, 합계 5만 5천원이라. 이런 치료를 받는데, 과연 5만 5천원을 내는 것이 정상인지 곰곰이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밤에 잠을 자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화상입은 곳이 흉이 얼마나 생길까보다, 5만 5천원을 내고,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 아니면, 동네 병원에서 몇 천원내고 치료를 받는게 나은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하여튼, 그 날밤에 이어, 그 다음 날도, 돈을 조금 더 아끼느냐, 아니면 치료를 잘 받느냐, 이 생각이 내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동네에서 치료 받으면, 돈을 아끼는 데, 대학 병원에 왜가?” 하다가, “그래도 흉터 생기면 큰일이니 대학 병원 가야지!” “아니야, 대학 병원 가면 연고 바르고 붕대만 감아 주는데?”란 생각이 번갈아 내 머리를 짓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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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기왕에 예약을 했으니, 한번만 더 대학 병원에 가자고 결심하고, 대학 병원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대학 병원에 가면서 계속 또, “취소를 하고 일반 병원에 가서 몇만원을 아끼는 게 나을 텐데!”라는 생각과, “야, 너, 너무 쪼잔하게 굴지말고, 네 몸둥아리 치료하는 거니까, 가서 치료받아,”라는 생각이 번갈아 들었다. 이런 생각은 병원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병원에 도착하여, 치료를 받느냐 마느냐 하는 최후 순간, 나는 아무 생각없이, 마치 로버트가 걸어가듯 접수대에 가서, 예약을 취소하고, 진찰비 2만원을 돌려받았다. 이런 나의 행위는 거의 무의식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그러나 자세히 내 마음을 휘집어 보면, “돈 몇 만원을 헛되이 쓰는데 대한 내 마음 깊숙한 곳의 「진짜 내」가, 병원 문턱에서, 나의 발길을 돌렸을 것이다”라는 것이다. 여차하면, 몇 만원, 어떤 때는 십만원이 넘는 돈으로 술을 먹는 내가, 이런 치료비는 아까워 벌벌 떠는 것이다. 아니 이런 것이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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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병원 외과에 갔다. 조금 늙수그레한 의사는 수십년간 수많은 환자의 붕대를 감고 풀고했던 능숙한 솜씨로 나의 손에 감은 붕대를 풀었다. 붕대를 푼 순간, 내 손을 보고, 의사도 놀라고 나도 놀랐다. 한 두 군데, 약간 쭈글거리는 것을 제외하면 내 손은 거의 완전한 상태로 보였다. 와, 이틀 사이에 상처가 이렇게 멀쩡하다니,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열린 입을 한참 동안 벌리고 있었다.
뭐, 치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의사도,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식으로 한참 멍하니 있었다. “여보슈, 뭐 이런 것 가지고 병원에 오슈!”하는 표정이었다. 의사가 할 일이라고는, 병원 기록지에 내가 알지도 못 하는 몇 마디 적는 것 뿐이었다. 심지어는 알콜 소독도 하지 않았다. “연고 처방을 해 줄테니 약을 사서 하루에 2-3번 바르세요.”가 의사가 한 말 전부였다.
간호사를 따라 치료비 내는 곳에 가니, 1만 6천원을 내라고 했다. 아니, 연고를 발라준 것도 아닌데, 상처 구경하는 비용이 1만 6천원? 이거 뭐,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 만난 것 아니야? 대학 병원에서 5만 5천원 내는 것보다 4만원이 쌌지만, 그때의 생각은 모두 잊고, 이제는, 아무 치료도 하지 않고, 눈으로 관찰한 댓가가 1만 6천원이라는 것이, 속이 쓰리도록 아까울 뿐이었다.
집에 도착하여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나는, 아니 어쩌면 인간은, 조그마한 손해도 보지 않으려고 하는 원초적 욕심으로 가득차 있는게 아닌가? “나는 이제 욕심이 없다, 모든 욕심을 다 내려 놓았다”, 라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거짓말일 뿐이다. “나는 이제 아무 욕심도 없다,”라고 말 속에 이미 자신의 욕심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아니, 욕심이라는 것은, 내 의지로 욕심을 내고 안 내는 것이 아니다. 욕심이란, 나의 생각이나 결심의 범위를 벗어나, 나와 아무 상관도 없이, 스스로 알아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내 마음의 상태일 뿐이다.
“이제 욕심을 내려 놓고 살아라”, 또는 “이제 욕심을 내려 놓고 살겠다”, 라는 말은 그냥 잠깐 머리 속에서 생각하고 나오는 말일 뿐이다. 따라서 욕심을 내려 놓거나, 욕심을 버리거나 할 필요도 없고 또 그렇게 되지도 않는다.
욕심은 나의 적이 아니다. 욕심이 바로 나다. 욕심을 버리면, 나를 버리는 것이다. “나는 이제 욕심을 버렸다”는 단지 스스로를 위로하는 입에 발린 표어일 뿐이다. 우리는 자신의 욕심을 잘 바라보고, 소중히 여기며, 살살 달래가면서, 그렇게 한 평생을 욕심과 함께 살아야 한다.
(2021년 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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