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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내 누님같이 생긴 폰이여!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21. 11. 26. 13:41

두타산 베틀 바위

 

내 누님같이 생긴 폰이여!

 

 

어젯 밤, 친구와 술 한잔 했다. 사실은 점심 모임에서, 중국집에서 백주를 마셨었다. 일단, 술이 좀 얼큰히 취하자, 더 마시고 싶은 욕망이, 그만 마셔야 한다는 절제심과의 투쟁에서 승리한, 빛나는 전과의 결과이기도 하다.

 

오후부터 저녁 때까지, 횟집에서 술, 노래방에서 술, 순대국 집에서 술, 하여튼 술이 술을 마시다가 하루가 지나갔다.

 

핸드폰 분실을 알게 된 것은 밤 12시 경이었다. 8시에 집에 도착하였으나, 비몽사몽이었으므로, 핸드폰에 대한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잃어버렸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다. 그러다가 우연히 핸드폰 생각이 나서, 여기저기 다 찾아보기 시작했다. 30분간 있을 법한 장소를 다 찾아 보았으나, 결국은 찾지 못 하고 말았다.

 

아들이 코로나 이후 1년만에 만나서 선사한 갤럭시 노트 S20, 다음에 아들 만나서, 아버지에게 선사한 전화기 좀 보자고 하면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이 나자, 속상함이 머리 끝까지 솟아 올라왔다. 왜 나는 이렇게 병신같은 짓만 하는지 참으로 인생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이 되어 눈을 뜨니, 핸드폰 생각부터 났다. 일단, 집 전화로 나의 핸드폰에 여러 번 전화를 해 보았으나, 핸드폰 습득자는 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어제 술 먹었던 장소에 전화를 걸어보는 일 뿐이 없었다.

 

우선 지갑에 넣어두었던, 국민 카드와 롯데 카드의 사용 내역을 조사했다. 각 회사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카드 사용내역을 살펴보고, 영수증을 추적하여, 술 먹은 곳의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노래방은 저녁에 문을 열므로, 일단은 식당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남겨진 핸드폰이 없다는 말만 들을 수 있었다.

 

하는 수 없이, 택시 회사에 연락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전화기에서 나오는 안내 말을 따라서, 카드번호를 넣고, 비밀 번호를 넣고, 하여튼 하라는 대로 여러 단계를 거쳐, 결국 어제 내가 타고 집으로 왔던 택시 기사의 핸드폰 번호가 나왔다. 와우, 피나는 노력의 댓가가 바로 택시 기사의 핸드폰 번호였다!

 

택시 기사 핸드폰 전화 번호로 전화를 거니, 뜻밖의 나의 전화에 기사는 짐짓 놀라는 듯 했다. 그러면서, 내 전화를 가지고 있으나, 지금은 바빠서 더 이상 전화를 받을 수 없으니, 몇 시간 뒤에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나는 조바심이 나서 몇 시에 전화 걸겠냐고 물었다. 그는 12시에 전화하겠다고 했다.  맙소사, 하늘이 나를 버리지 않았구나! 그러나 잠시 후, 기사가 정말 나에게 다시 연락을 할지 , 불안감이 었다.  

 

나는 초조한 나머지 계속 시계만 주시했다. 그러나 12시가 지난지 30, 아직도 전화는 오지 않고 있다. 그냥 틱틱 돌아가는 시계의 초침만이 내 가슴을 후벼파고 있다. 과연 핸드폰은 내 손에 안전하게 돌아올 것인가? 조용한 집 전화기로 내 시선이 집중된다.

 

드디어 약속 시간보다 31분이 지난, 1231분에 택시 기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금 핸드폰을 가지고 우리 집 근처로 나온다는 것이다.

 

지금 오후 1, 드디어 택시 기사로부터 또 전화가 왔다. 지금 집 근처에 왔으니, 나오라는 것이다. 지금 나가고 있는 중이다.

 

나갔다가 핸드폰을 돌려받았다. 어디 갔다, 이제 왔나, 군대가서 죽었다는 남편이 살아돌아온 아내처럼, 나는 하늘에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사례금 10만원을 드렸다. 기사는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러지 않아도 되는데. . . .”라는 말을 남기고.

 

 

 

핸드폰을 잃어버리려고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잃어버린 핸드폰을 다시 찾으려고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서글픈 늙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책상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폰이여

 

한바탕 소동을 벌리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서정주, '국화 옆에서' 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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