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Beautiful the Nature is! - Albatross

Essays

늙으면 소심해진다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23. 4. 3. 10:52

늙으면 소심해진다

어제(202342) 있었던 일을 간단히 적으려 한다.

 어제 진부역에서 서울로 가는 아내를 기차로 태워 보내고, 무엇을 할까 곰곰이 생각했다. (“곰곰이, 곰곰히중 어느 것이 맞는지 엄청 고민 많이 했다.)

 여기 대관령 근처에서 매일 트레킹을 1-3시간 하기 때문에, 대관령 지역은 이미 수 십 번씩 다녀보아서 더 이상 새로운 곳이 없었다. 이제 먼 곳에 있는 트레킹 코스를 알아보아야 했다.

 진부역 앞에 마침 정선에서 온 시내버스가 있었는데, 기사님께 여쭈어 보니, 오늘이 정선 아리랑 장날이라고 했다. 전날 알아두었던, 정선의 항골 계곡 트레킹과 정선 아리랑 장을 연결하면 그럴듯한 그림이 그려질 거라고 생각하고, 차를 정선 방향으로 몰았다.

 정선장은 이미 몇 번 가보아서, 그 모습이 눈에 선했다. 정선장에 도착한 것은 오전 10시경. 사방으로 뻗어 있는 골목에, 수많은 상인들이 좁은 골목을 가득 메우고, 갖가지 농산물을 팔고 있었다.

 시식 코너가 많아서, 내가 지나갈 때마다, 상인들은 무엇을 먹어보라고 외치고 있었다. 어떤 구경꾼은 손에 이쑤시개를 여러 개 들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아예 굶주린 이리처럼 공짜 시식으로 이미 불룩 나온 배를 더욱 불룩하게 만들려는 작정인 듯 했다. 그리고 그의 입가에는 이런 저런 음식 쪼가리가 널부러져서 붙어 있었다.

 그때, “금산에서 막 캐온 인삼을 엄청나게 싸게 팝니다라는 확성기 소리가 들려서,  소리나는 쪽으로 가보니, 한 젊은이가 트럭에서 인삼을 팔고 있었다. 나는 아무 생각도 없이, 그 사람에게 가서, 그냥 125,000원 어치 인삼을 샀다. 금산에서 자라서 무의식 중에 인삼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가 금산 사람인지 물었다. 그는 그렇다고 했다. 나는 그가 무슨 면에 사는지 물었다. 그는 더듬거리더니, 남산면에 산다고 했다. 나는 내가 금산 사람인데, 금산에 남산면은 없다. 당신 금산 사람이 아니면서, 금산 사람이라고 사기치는 구먼이라고 말을 하려다가 벌린 내 입을 두 손가락으로 얼른 닫았다. 괜히 아침부터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장국밥 집에 들어갔다. 장터 국밥 하나 시켰다.  옆에서 몇 사람들이 와서 아침부터 막걸리를 부어라, 마셔라 하며 그야말로 시골 장날의 전형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나는 보통 여행이라는 것을 혼자 하는 편인데, 그럴 때마다, 몇 사람이 빈대떡이나 파전, 돼지 족발 등을 안주 삼아 떠들어대며 먹는 모습을 보면, 저 사람들은 무슨 팔자가 좋아서 저러고 다니는지 부럽기 그지없다. .

 

  

 

 

 

 

정선 아리랑 장에서 약 12키로 떨어져 있는 항골 계곡으로 트레킹을 떠났다. 조금 가다가 자동차의 연료가 떨어져 주유소에 들렸다. 그런데, 셀프 주유소이어서, 내가 스스로 알아서 주유를 해야 했다.

 먼전 핸드폰의 삼성 앱 카드를 카드리더기 근처에 갖다 대고 주유를 시작했다. 중간에 기계가 알아서 자꾸 멈추었지만, 하여튼 인내심을 발휘하여 그럭저럭 연료 주입을 마쳤다. 그런데 이 일이, 이 글을 쓰는 중요 화제가 될지는 전혀 알지 못하고 목적지인 항골로 자동차를 몰았다.

 

 

항골에 도착하여 안내판을 보니, 위 그림의 1-9 지점까지 3시간이면 왕복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은 계곡을 따라 잘 정비되어 있었고, 물길을 따라 요리조리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어떤 곳은 자갈, 어떤 곳은 나무 데크, 또 어떤 곳은 가랑잎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산 비탈이었다.

 

 

 

 

30분이 지난 뒤, 잠시 쉬면서 핸드폰을 보는데, 오늘 주유비로 15만원이 결제되었다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아니, 지금까지, 10만원 이상의 연료를 넣은 적이 없는데, 15만원?

 가슴이 철렁했다. 좀 과장한다면, 사형 판결을 받고 매일 감옥에 있던 사형수에게, “, 이제 단두대로 가자?”라는 말을 듣는 것과 비슷한 그런 느낌이었다.

 나는 주유를 하고, 주유비가 얼마인지 확인하지 않은 일, 그리고 영수증을 받아오지 않은 일이 후회가 되었다. 나는 왜 그런 것도 못 하는 바보인지, 내가 나를 보아도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내가 항골로 가는 것이 아니라, 나는 골로 간다. 아니 골빈당으로 가려고 작정하고 가는 것이구나!

 

 

 

S자를 그리며 이어지는 계곡의 물소리는 경쾌하고, 흐르는 물은 거울처럼 맑았다. 계곡 바로 옆에 끝없이 이어진 아름다운 트레킹 코스는 모든 시름을 잊고 걷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러나 조금 걸으면 휘발유 값 바가지 쓴 것이 생각나고, 아니 생각을 말아야지 하고 걸으면, 또 휘발유 값 생각이 났다. 주유소를 찾아가 사실 이야기를 하고, 주인이 그런 일이 없다고, 잡아 떼면 어떻게 하지? 설령 환불해 준다 해도, 늙은이가 그런 것도 할지 모르면서 여행은 왜 다니는지 혼자 궁시렁 대면 어떻게 하지?

 

 

 아름다운 한 떨기 진달래가 검붉은 입술을 내밀며, 나에게 키스를 원해왔지만, 그 진달래가 마치 나의 목에 날카로운 이빨을 박고, 나의 시뻘건 피를 빨아먹으려는 박쥐처럼 보였다.

 하여튼 계곡을 걷는 3시간 내내, 생각을 말아야지 하면 또 생각이 나고, 하늘을 봐도 생각이 나고, 땅을 봐도 생각이 났다. 그럴 때마다 나의 경솔한 행동을 한 내 자신이 한없이 미웠다.

 에이, 그까짓 거 몇 만원 있어도 살고 없어도 사는 데, 무슨 걱정? 이라고 말하고 나면 10초 뒤에 또, 왜 나는 이리 병신같이 이런 일도 제대로 처리 못 하는지 후회가 이어졌다.

  하여튼 그러다가 그럭저럭 등산을 마치고 출발점으로 오니, 정확하게 3시간이 걸렸다. 주유소로 가기 위해 다시 돌아온 길을 따라 약 12키로를 차를 몰아야 했다. 자동차 속에서도, 나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후회, 주인이 환불 안 해주면 어떻게 하나, 라는 생각이 이어지고 거기에다가 과거에 잘 못했던 나의 행동들이 주마등처럼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주유소에 도착하여, 근무자를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여튼 여기 기웃, 저기 기웃 하면서 사람을 찾았으나, 세상 물정 모르고 낮잠을 자는 누렁 개만이 나를 유심히 바라볼 뿐, 인간이라고는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간신히 사람을 찾아, 사실 이야기를 하니, 그는 나를 사무소로 안내했다. 그러면서 그는 여기저기 뒤지더니 15만원 결제한 청구서를 보여주며 이것이 맞는지 물었다. 아마도 나처럼 바보 같은 노인네가 전에도 있었다는 듯, 그는 무엇이 잘 못되었는지를 한참 장황하게 설명했다.

 잘못된 원인을 요약하면, 1)카드를 카드 구멍에 꼽고 주유하고 결제하면 별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2)앱 카드를 이용할 때에는 주유전에 핸드폰 뒷면을 결제기에 터치해야 하고, 주유를 다 한 뒤에 또 한 번 핸드폰 뒷면을 결제기에 터치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식당이나 가게에서, 앱 카드는 한 번만 터치하면 정상적인 결제가 이루어졌었다. 결국 주유소는 일반 상점과는 다른 시스템인 것이다.

 주유소 근무자는 15만원 결제 취소하고, 또 실제 주유금액 73,000원 결제하였다. 결국 무심코 지나쳤더라면, 잃어버렸을 77,000원을 다시 찾아온 셈이다.

[오장폭포]

 대관령으로 향하는 길이다. 오늘 내가 실수한 것이 자꾸 생각이 났다. 강원도 돌고도는 길을 운전하면서, 늙은이가 정신머리가 없고 건망증이 심해서 노상 이런 짓만 해대니, 속이 상하고, 오장육부가 다 썩어문드러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썩어가는 오장육부 생각을 하는데, 앞에 폭포가 있어 고개를 돌려보니, 하필 오장폭포였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나는 폭포 아래 흐르는 물에 세수를 하고, 썩어 문드러진 오장을 오장폭포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노추산 신령님이 주신 4월의 새잎 같은 상큼한 오장육부를 내 몸에 집어 넣고, "나는 용감하다. 나는 멀쩡하다" 외치며 강릉 방향으로 자동차를 몰았다.

 

[안반데기에 있는 그림]

 

안반데기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리니, 찬 바람이 내 몸을 훑고 지나갔다멀리 보이는 좁은 길 위로 젊은 여인 한 쌍이 다정히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이 부럽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바람개비 사이로 새 한 마리가 세차게 부는 바람을 타며 묘기를 부리고 있었다. 하늘에는 점보다도 더 작은 낮달이 수줍어 하며 나에게 "빙그레"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

 

 

'Essays'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릉 화재 현장을 가다  (0) 2023.04.29
어이구, 가지가지 한다  (2) 2023.04.29
인물 사진 촬영  (0) 2022.01.05
내 누님같이 생긴 폰이여!  (0) 2021.11.26
종로3가 생선회  (0) 2021.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