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코스의 종점인 절부암에서 본 차귀도>
제주 올레코스 12
2009년 6월 19일 - 본능적으로 새벽 5시에 일어났다. 아침 태양에 비치는 차귀도를 찍기 위해서다. 그러나 어슴프레한 안개로 차귀도의 모습은 그리 환상적이지 못했다.
문제는 그것이 아니라 어제 실수로 떨어뜨린 카메라가 문제다. 자동초점 기능이 망가졌기 때문이다. 내 경험으로 수동 초점을 맞춰서 찍으면 열 장 중에서 한 장이 제대로 나올까 말까다. 나는 될 수 있으면 가까운 것은 찍지 않고 먼 곳의 경치만 "카메라의 거리를 무한대"로 놓고 찍을 도리밖에 없었다.
예기치 않았던 복병을 만난 나는 고민에 빠졌다. 사진을 찍지 않고 계속 돌아다니느냐, 아니면 서울로 돌아가느냐의 문제다. 나는 고민해 보았으나, 사진기 없이 여행을 한다는 것은 학생없는 교실이요, 신자없는 교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여행과 사진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를 생각해 보니, 그 둘은 하나요, 하나가 없을 때 다른 하나는 의미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마치 손바닥은 여행이요, 손등은 카메라와 마찬가지였다.
한편 어떻게 생각하면 카메라 없이 편안하게 경치를 즐기면서 느긋하게 돌아다니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니, 오히려 그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편안하게 경치를 즐긴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를 생각했다. 좋은 경치를 볼 때마다 카메라에 대한 생각으로 절대로 좋은 경치를 즐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편, 나는 지금 오라는 데도 없고 오지 말라는 데도 없다. 내일 꼭 해야 할 일도 없으며, 하지 말아야 할 어떤 일도 없다. 내가 하는 일이 나에게 의미만 있으면 된다. 아니 의미가 없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바람이 불면 부는대로 물결이 치면 치는대로 그렇게 하면 된다.
나는 지금 너무나 쓸데 없고, 너무나 사소한 일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은 언제나 내 앞에 서서 나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시간의 종이 아니라, 시간의 주인이다. 나는 환경의 종이 아니라, 환경의 주인이다. 나는 나의 주인이다. 오늘 걷다가 마지막 발걸음이 멈추는 순간 결정하자. 나는 햄릿이 삼촌을 죽여야 할지 말지를 고민하는 것처럼 번뇌에 휩싸였다가, 갑자기 한 줄기 빛을 보고 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시조를 지어 볼 것이다.
<자구내 포구의 새벽>
짖게 흐린 하늘가에, 먼 동이 트는구나.
<새벽의 차귀도>
호종단은 무슨 일로, 지맥 수맥 다 끊었나?
*「섬의 이름에 얽힌 전설이 전한다. 옛날 중국 송나라 푸저우[福州] 사람 호종단(胡宗旦)이 이 섬에서 중국에 대항할 큰 인물이 나타날 것이라고 하여 섬의 지맥과 수맥을 모조리 끊은 뒤 고산 앞바다로 돌아가는 길에 날쌘 매를 만났다. 그 매가 돛대 위에 앉자 별안간 돌풍이 일어 배가 가라앉았다. 이 매가 바로 한라산의 수호신이고 지맥을 끊은 호종단이 돌아가는 것[歸]을 막았다[遮] 하여 차귀도라 불렀다는 것이다.」
<차귀도 등대>
붉은 노을 배경으로, 그대 모습 육중하다.
<아침 해에 모습을 드러낸 차귀도>
차귀도에 햇빛 나니, 풀잎까지 보이누나.
<당산봉에서 본 지평선>
당산봉 바위 올라, 바다를 바라본다.
<당산봉에서 본 고산리와 산방산>
성냥갑 기와지붕, 다닥다닥 붙어 있다.
<당산봉에서 본 차귀도와 자구내 포구>
한 폭의 그림이란, 이런 것을 말하는가?
<북쪽에서 본 차귀도>
갈대 숲 저 너머로, 차귀도가 아니더냐
<생이기정 바당길>
올록볼록 튀어나온, 삼총사가 기이하다.
<생이기정 바당길>
아, 구름은 어찌하여 저리 날고
<생이기정 바당길에서 본 차귀도>
이리보고 저리보고, 하루 종일 바라본다.
<절부암 풍경>
경치 좋다, 경치 좋다, 정말로 경치 좋다.
<절부암에 있는 김대건 신부 기념관>
주여, 정녕 당신은 어디 계시옵니까?
초록빛 바다 위에, 흰 돛단배 하나 떴다.
<신선리로 가는 바닷가>
쭉 뻗은 아스팔트, 시원하게 뚫렸구나.
결국 나는 그날 12시 40분 비행기로 서울에 왔다. 혼자 있는 오후가 오늘따라 적적하기만 하다. 드디어 아내 오는 소리가 난다. 나는 아내를 환영하기 위해 크게 소리쳤다. "여보, 나 왔어." 내가 올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아내는 "어머머..." 하며 깜짝 놀라 뒤로 넘어져 문에 부딪쳤다. 반쯤 까무라친 아내를 진정시켰다. "다음부터는 제발 약속한 날짜에 와. 간 떨어진 줄 알았네. 나는 도둑이 들어온 줄 알았단 말이야."
(2009년 6월 24일 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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