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Beautiful the Nature is! - Albatross

Korea

덕유산 등산기(Deukyou Mountain)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2. 7. 30. 10:32

덕유산 등산기

 

무주 덕유산은 내가 태어난 충남 금산에서 고속도로로 10 여분 걸리는 거리에 있다. 시외 버스로 가도 반 시간 내지 한 시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다. 하지만 오늘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덕유산에 올라가 본 적이 없다. 물론 구천동은 구경 삼아 몇 번 들려 본 적은 있다. 그러나 그렇게 가까이 있으면서도 덕유산을  올라가 볼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었다.

 

 

"데구산에는 호랭이가 산댜." 나는 가끔 이 말을 들으면서 자랐다. 또한 "데구산에 나물 캐러 가자."라든지 "누가 데구산에 갔다가 길을 잃어 오밤중에 돌아왔다."라는 말도 들었었다. 금산 사람들은 덕유산을 데구산이라고 불렀다. 이 덕유산이 얼마나 큰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리고 계곡이 얼마나 깊은지, 나는 별 관심도 없이 그런 말만을 들으면서 어린 시절을 그곳 금산에서 보냈다.  

 

 

<등산 지도: 구천동 주차장에서 등산을 시작하여 향적봉(1,614m)에 올랐다. 내려올 때는 곤돌라를 타고 무주 리조트 방향으로 내려왔다.>

 

 

3월 29일(일요일) 새벽 6시 10분에 친구가 강변역에 도착했다는 문자 메세지가 왔다. 곧바로 집에서 나가 테크노 마트 앞으로 갔다. 그는 갑자기 몸이 아파서 올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약속 때문에 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친구의 얼굴이 어쩐지 좀 핼쑥해 보였다.  

 

 

나의 충성스런 애마 누비라를 타고 88 강변 도로를 경유하여 중부고속도로에 진입한 것은 7시가 조금 안 되었을 때였다. 이른 새벽이라 그런지 길은 휑 뚫려 있어서, 자동차는 쌩쌩 달렸다.

 

 

오창 휴게소의 한국식 식당에 들어갔다. 나는 선지 해장국을 시켰고, 친구는 다슬기 해장국을 시켰다. 어제 먹다만 음식을 다시 내 놓았는지, 성의가 없어 보이고, 음식도 까칠해 보였다. 나는 그럭저럭 먹었으나, 친구는 불만이 많은 듯 했다. "이런 것이 6,000원이라니..."친구가 투덜댔다.

 

 

9시경에 금산에 도착했다. 오늘 등산을 같이 가기로 한 초등학교 동창생이 배낭을 메고 집 앞 고샅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친구 옆에는 또 한 사람이 있었는데, 졸업 후 처음 보는 중학교 동창생이라고 했다. 머리 속에 이 중학교 동창생을 떠 올리니 기억이 너무 희미하다. 40년 전의 기억을 무슨 수로 떠 올리나? 며칠 전의 기억도 희미한데 어찌 거의 반 세기 전의 일을 기억한다는 말인가?

 

 

네 명이라는 대 군단을 이끌고 즉시 덕유산을 향해 출발했다. 37번 국도를 타고 무주로 향했다. 무주에서 구천동 가는 길은 교통량에 비해 도로가 너무 좋았다. 시골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요즈음 시골 구석구석까지 아스팔트 길이 번듯하게 잘 나 있지만 그 도로를 이용하는 차는 드물기만 하다. 사람도 없는 시골에 이렇게 좋은 길을 만들어 놓은 것이, 낭비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가끔 든다.  

 

 

9시 40분에 구천동 주차장에 도착했다. 배낭을 메고 조금 올라가니 국립공원 관리공단 직원이 긴 막대기를 들고 게시판에 있는 지도를 가리키면서 등산 코스를 안내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지금이 산불이 날 확률이 가장 높기 때문에 한 코스를 제외하고는 모든 등산로가 폐쇄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유일한 코스인 백련사를 경유하여 가는 코스로 가는 도리밖에 없었다.

 

 

약 1시간 반 걸어서 백련사 직전 테이블이 있는 쉼터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같이 간 친구의 배낭을 뒤져서 소주 2병 중 한 병을 꺼냈다. 소주를 가져온 친구는 몸 상태가 좋지 못하여 나머지 세 사람이 공평하게 종이 컵에 따르니 소주 한 병이 순식간에 달아났다. 각자 나름으로 음식을 가져왔는데, 금산 친구의 튀긴 고추가 가장 맛깔스러웠다. 그것도 술이라고 갑자기 취기가 들었다. 누구나 술을 먹으면 술에 취한다. 참 놀라운 사실이다. 먹으면 취한다는 사실이----. 이 세상에 확실한 것은 하나 뿐이 없다. "술은 먹으면 취한다."

 

 

<초입에 구천동 수호비가 보인다.>

 

 

<백련사 입구>

 

 

백련사는 아담한 절이었다. 산비탈에 지어진 이 사찰은 일요일이라 그런지 많은 참배객과 등산객으로 들끓었다. 이 절을 여러 번 와봤다는 중학교 동창생으로부터 절에 대한 간략한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는 내려올 때 사찰을 구경하기로 하고, 그냥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백련사>

 

 

그런데 백련사를 지나자마자 급경사 등산로가 나타났다. 나는 갑자기 체력이 떨어졌다. 동료들을 앞에 보내고 나는 좀 늦게 가겠다고 했다. 나의 체력은 점점 더 떨어져갔다. 본래 서울에서 같이 간 친구가 몸이 좋지 않았었는데, 올라가지 못하는 것은 오히려 내가 아닌가? "내가 정상에 가지 못할 수도 있으니 만약 기다려도 내가 오지 않으면 그냥 내려오라"고 앞서 올라간 그들에게 핸드폰으로  연락을 했다.  

 

<이런 길이 계속 이어진다.>

 

 

이 길을 여러 번 와 봤다는 이미 올라간 중학교 동창생 말이 생각났다. 덕유산 등산로 중에서 이 길이 가장 힘들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 내가 겪는 것은 평소의 힘든 것과는 다른 "힘듬"이었다. 나는 10분에 한 번씩 무조건 쉬었다. 웬만하면 중단할까도 생각했는데, 여기까지 온 것이 너무 아까워서 가는 데까지 가보기로 했다. 5~6살 먹은 아이들이 어머니와 함께 뒤 따라 오다가 나를 추월했다. 나는 이를 악물고 그들을 따라갔으나, 결국은 그들을 따라 잡을 수가 없었다.

 

 

나는 내가 왜 이리 힘이 없나 곰곰이 생각했다. 아마도 제주도 여행에서 오는 여독이 아직 풀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는 나이도 나이인 만큼 그럴 만한 때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떻든 금방 정상일 것 같은 느낌은 계속 나를 속이고 있었다. 정상일 것 같아 올라가 보면, 또 올라가야 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미로 같았다. 1600미터인 덕유산의 실제 등반 높이가 얼마인지 모르지만, 동해시에 있는 두타산보다도 더 힘든 산 같았다. 실제 두타산은 내려오는 길이 멀어서 그렇지, 올라가는 길은 그런대로 걸을 만한 길이었었다.

 

 

<덕유산의 90% 지점에서 뒤를 돌아보고 찍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정상이 눈 앞에 펼쳐진다. 정상 입구에서 기다리던 친구들이 올라오는 나에게 박수갈채를 보냈다. 나보다 약 20분 먼저 올라왔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내가 참 대견하기도 했다. 뭐 대견하다기보다는, 본래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가다보면 정상에 도달하는 것이 산이 아니던가?   

 

 

정상 부근에는 넓은 들판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무 하나 보이지 않고 누런 풀만이 눈에 보이는 곳까지 펼쳐져 있었다. 저 멀리 중봉에 안테나가 뾰죽하게 솟아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바로 눈 아래에는 등산객 대피소가 자그마하게 자리 잡고 있다. 오른 쪽으로 저 멀리 산 너머에 또 산이 겹쳐져 보였다.

 

 

 

<정상>

 

 

<정상>

 

 

정상에서 점심을 먹었다. 각자가 너무나 많은 음식을 가져와 많은 음식이 수북하게 쌓였다. 다른 사람 주기도 마땅치 않았다. 하지만 딱 한 병 남은 소주만은 아껴가면서 먹었다. 그러나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무거운 소주를 가지고 온 친구에게, 기왕에 가져오려면 좀 더 가져오지 왜 이것만 가져와서 좋다가 말게 했냐고 핀잔을 주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는 말이 있듯이 그는 할 말을 잃고 하늘만 쳐다 보았다.

 

 

<향적봉: 오랜지색 옷을 입은 사람이 서울에서 같이 간 이완식, 뒤에 모자 쓴 사람이 중학교 동기 동창생 김현수,  뒤에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초등학교 동창생 박동희다.>

 

 

<향적봉에서 리조트 스키장을 배경으로 찍었다.>

 

 

 

<돌로 잘 다듬어진 정상이다. 안내판이 특이해 보인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들 힘들었는지, 무주 리조트의 리프트를 타고 내려가자는데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정상에서 리프트 타는 곳까지는 20분이면 갈 수 있다. 날이 따뜻해서 눈이 녹아 좁은 길은 질척거렸고, 가끔 녹지 않은 눈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리프트를 타고 올라온 사람들이 밀물처럼 향적봉을 향해 몰려왔다. 편하게 올라온 그들이 부럽기도 하고, 형편없고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려 오는 길>

 

 

조금 내려오니 키 큰 나무 몇 구루가 죽어서 껍질이 벗겨진 채, 오돌오돌 떨고 있었다. 지리산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 여기서도 펼쳐진다. 아직도 녹지 않은 스키장의 스키 코스가 구불텅 거리면서 움직이는 뱀처럼 뻗어 있다.   

 

 

리프트 정거장 근처에는 전망대가 놓여있었다. 전망대에서는 서쪽 산이 마치 종이접기라도 하듯이 멀리 첩첩이 놓여있는 산이 아련히 시야에 들어왔다. 전망대 아래서는 몇몇 연인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꼬마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술래잡기를 하고 있었다. 또한 정상에는 큰 기와집이 한 채 있었는데, 단순히 그것을 바라보는 것 이외에는, 그  건물이 서 있는 목적이 없는 듯한 건물이었다. 올라가지도 못하고 안에는 아무 것도 없는 휑한 건물이다.

 

  

 

<정상의 전망대>

 

 

 

리프트 요금은 편도 7000원이었다. 리프트를 타고 내려오는 경치가 빼어날 뿐만 아니라, 그 길이도 다른 케이블카보다 더 길어 보였다. 몸이 좋지 않거나 아픈 사람은 이 리프트를 타고 올라갔다 내려오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년 눈이 많이 쌓였을 때, 이곳에 사진 찍으러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터넷에 보면 향적봉의 눈 사진이 많이 돌아다닌다. 대부분은 아마 리프트 타고 와서 찍은 사진일 것이다.

 

 

아래로 내려오니 구천동 주차장까지 태워주는 무료 셔틀버스가 있었다. 등산로 입구와 리조트를 왕복하는 셔틀 버스다. 본래 우리는 택시를 타고 우리 차가 주차해있는 곳으로 갈 생각이었다. 무슨 횡재나 만난 듯이 우리는 대단히 기뻐하였고, 운전 기사에게 고맙다는 말을 수백 번도 더 해댔다.

 

 

<대단한 소나무>

 

 

무주 리조트에서 조금 내려오면 정말 대단한 소나무가 한 그루 있다. 속리산 가는 길에 있는 정2품 소나무에 비길 바가 아니다. 나무 가지가 너무 벌어져서 찢어지지 않도록 가지 사이를 쇠로 연결한 것이 이채롭다. 구천동에 가는 사람은 꼭 한 번 들려보기 바란다.

 

 

<친구 집>

 

 

다시 차를 타고 금산에 있는 친구 집에 도착하니 5시다. 이 친구는 서울에서 오랫 동안 살았었는데, 뜻한 바가 있어 시골에 와서 살고 있다. 한적한 곳에 아담하게 집을 지어 놓고 다른 농부들과 비슷한 그런 삶을 살고 있는 듯하다.  

 

 

 

그의 집에서 바라보면 앞 쪽으로 넓은 들판과 강이 보인다. 뒤에는 산이 병풍을 두르고 있고, 옆에는 소나무 밭이 있다. 마당은 잔디를 깔아서 놀거나 쉬거나 고기를 구워 먹기 좋게 되어 있다. 이곳을 처음 가보는 서울 친구는 이 집을 대단히 부러워하였다. 나도 그렇지만 이 친구도 이런 집에서 살아보고 싶은 욕망이 간절한 듯 했다.

 

 

친구 부인이 이미 돼지고기와 소주를 준비해 놓고 우리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 집에 갈 때마다 이런 대접을 받아서 미안하기도 했지만, 염치 없이 먹어댔다. 밤 늦게 서울에 올라갈 생각이었으므로 소주는 적절히 절제하면서 마셨다. 두 부부는 장난을 치기도 하고, 말 싸움도 하면서 고기를 구웠다. 술과 안주와 대 자연과 으슥한 밤이 한 몸이 되어 굴러갔다. 친구들의 혀가 꼬부라지고 아무 말이나 해대는 시점까지 왔다. 좀 멀쩡한 정신으로 취기에 가득 찬 사람의 행동을 보고 말을 들어보니 코메디도 이런 코메디가 없다.

 

 

<친구 집>

 

중학교 동창생은 폐교된 초등학교를 일년에 1300만원에 빌려 홍삼 공장을 차렸다고 했다. 그 초등학교가 내가 다니던 금남 초등학교다. 작년에는 홍삼이 없어서 못팔았는데, 올해는 팔 곳이 없어서 홍삼이 창고에 쟁여있다고 말하면서 한숨을 내 쉬었다. 경기 침체의 희생자를 바로 내 눈앞에서 보니 마음이 숙연해졌다.

 

 

네 명이 6 병 정도의 소주를 비웠다. 몸이 좋지 않은 서울 친구와 내가 적게 먹었으니 금산 친구들이 술은 다 마신 셈이다.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하다보니 더 이상 먹을래야 먹을 수가 없었다. 방으로 들어가니 텔레비전에서는 김연아가 피겨 스케이팅에서 200점 이상을 받아 일등을 했다는 방송이 되풀이 되고 있었다.

 

 

술이 깰 때까지 고스톱을 쳤다. 돈은 돌고 돌아 결국 잃은 사람도 딴 사람도 없이 그렇게 끝났다. 서울로 떠날 준비를 하자, 친구가 자고 가라고 자꾸 붙잡았다. 본래 박동희라는 사람은 친구를 너무 좋아하여 항상 친구들을 잘 대접한다. "박동희씨는 친구라면 사족을 못쓴다."라고 부인이 말하는 소리를 여러 번 들은 적이 있다.  "자고 간다고 약속해 놓고 왜 가려고 하느냐?"고 말하면서 친구는 섭섭함을 나타냈다. 하지만 이런 저런 생각을 하여 결국 밤 9시에 그곳을 떴다.  

 

 

<친구 집에서의 바베큐>

 

 

서울로 오는 차 속에서 오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내가 앞으로 얼마나 더 이런 기회를 갖게 될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친구가 아직도 고향에 살고 있다는 것은 내 인생의 큰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랫 동안 이런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

 

 

며칠 전 어떤 사람이 인터넷에 올려 놓은 글이 생각났다. 늙어서 가까이 해야 할 다섯 가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연, 친구, 책, 술, 컴퓨터"이다. 대부분의 충고는 나이를 먹을수록 "술과 컴퓨터를 멀리하라."라고 되어 있는 것에 비하면 어떤 의미에서 놀라운 충고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이 세상에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다섯 가지 중에 특히 "술"이 포함되어 있어서 천만다행이다. 솔직히 말해 술은 "합법적인 마약"이다.

 


"마약 해봤어요?"
"아니요?"
"안 해봤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

 

KBS2 개그콘서트 "달인" 코너에 나오는 김병만의 말을 빗대서 해본 소리다.   

 


오늘 걸은 거리 약 9.4km

걸린 시간: 약 4시간 30분


(2009년 4월 8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