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Beautiful the Nature is! - Albatross

Essays

금산 회상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24. 3. 9. 19:37

<2024년 2월 24일-25일 다년 온 곳이다>

 

금산 회상

 

2024224일 토요일, 새벽 530, 마치 지진이나 해일이 일어나 싸이렌이 울리 듯, 전날 맞추어 놓았던 핸드폰 알람이 밤의 적막을 뚫었다. 눈을 손으로 비비면서, 하품을 하고는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전날 밤에 준비해 두었던 여행 가방을 등에 지고, 컴컴한 지하도를 따라 자동차가 있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금산을 향해 서울에서 출발한 것이 정확히 오전 6시였다.

<금산읍에 있는 이정표>

 

새벽에 출발해서 그런지 중간의 길은 막힘이 없어서, 자동차는 물 흐르듯 부드럽게 달렸다. 충남, 금산읍에 도착하니 아침 9시경, 200키로의 거리를 3시간 정도 걸렸다.

 

자동차에서 내려 보니, 금산을 대표하는 진악산이 흰 눈으로 덮여,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눈 앞에 이정표가 높이 매달려 있었는데, 금산에서 출발하여 갈 수 있는 진안, 논산의 방향을 나타내고 있었다. 과연 내가 정말 금산에 오기는 온 거군. 금산에 와 본지 1년도 넘는 세월이 흘렀구나.

 

우선 사우나에 가서 샤워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바로 눈 앞에 있는 사우나 입장료는 8천원, 몇 년만에 사우나에 가보는 것인지, 모든 것이 낯설기만했다.

 

8천원을 내고, 욕실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 넓은 목욕탕에 딱 한 사람이 개구리 네 발을 벌리고 연못 위에 떠 있듯, “여기가 내 천국여! 어매, 기살어!”라고 세상에 자기 영역식을 거행하는 듯 했다. 그는 나를 힐끗 보더니, 온탕 안에 누워서 붕어마냥 눈을 껌벅이며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아무 이유 없이 죄를 지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같은 온탕이지만, 그로부터 될 수 있으면 멀리 떨어진 곳에 조용히 몸을 담궜다.

 

내가 슬그머니 온탕에 몸을 담그자마자, 그는 벌떡 일어나 온탕 밖으로 나갔다. 나는 내가 정말 무슨 큰 잘 못을 했는지, 사방을 둘러 보았으나 그럴만한 이유를 찾지 못 했다.

 

밖으로 나간 그는 온탕 옆에 있는 열탕에 손을 넣더니, “앗 뜨거!” 하며 기절초풍이라도 하는 듯, 팔짝 뛰며 신경질을 냈다. 그러더니 어디서 세수대야를 가져와서 열탕 옆에 있는 냉탕에서 찬물을 떠서 뜨거운 열탕에 붓기 시작했다.

 

열탕과 냉탕을 가르는 시멘트 경계선에 두 발에 의지하여 앉아서, 세수대야로 냉탕의 찬물을 뜨거운 열탕으로 옮기는 물 소리가 장마 후 금산 십이폭포에서 물떨어지는 소리보다도 컸다.

 

그때 두 다리 사이에 길게 매달려있는, 벽시계의 추를 닮은 것이 볼성사납게 내 앞에서 춤을 추듯 흔들거렸다. 그것이 뜨거운 물에서는 만발이나 늘어지는구나 생각하며, 벌어진 내 윗 입술과 아랫 입술을 두손으로 잡아 당겨 닫았다.

 

<금산 삼태리 마을 회관>

 

고향 마을에 도착하니,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정월 대보름을 맞이하여 마침 동네 사람들이 마을 회관에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다. 얼핏 식사하시는 열대여섯 명의 어른들 중, 내가 알만한 사람은 서너명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같은 동네 사람이라도 누구인지 식별이 불가하거나, 외부에서 새로 이사온 사람들이었다.

 

내가 이미 칠십 중반이고, 십대 중반에 고향을 떠났으니,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고향 떠난 지 60, 생각해보면 길기는 긴 세월이다. 참으로 세월은 빠르게도 흘러간다. 그 동안 세상도 변하고 사람도 변했다. 그래도 변함이 덜 한 것은 산천이라고나 할까?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 없네라는 말이 맞고 또 맞는 말이다.

삼태리 회관에 도착하여 사촌 동생의 환대를 받았다. 사촌 동생은 모르는 사이에 삼태리 이장이 되어 있었다. 이장이 된지 벌써 일년이 지났다고 하니 축하도 못해 준 것이 좀 미안하기도 했다.

 

내가 이번에 삼태리에 간 것은 삼태리 사람들과 식사를 하러 간 것이 아니었다. 삼태리 곽씨 중, 옛날 설이나 추석에 함께 제사를 지냈던 가까운 문중 사람들과 점심 식사를 하자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에 간 것이었다.

<가까운 곽씨들 모임이다>

 

자리를 옮겨 흔터골 오리 고기 집에 도착하였다. 열 명이 조금 넘는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누구인지 모르는 젊은 사람이 두 명 있었고, 나머지는 누구인지 기억 속에 아직도 존재하는 그러나 서먹서먹한 그런 사람들이었다.

 

오리 고기가 나왔는데, 이미 마을회관에서 일차로 가볍게 식사를 한 터이라, 더 먹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술이나 먹자, 는 말이 여기저기 터져나와, 죄없는 소주만 큰 잔에 따라 주는대로 홀짝홀짝 마셨다.

 

<물탕골이라는 곳에 있는 옛날 집>

 

식사 후, 이장을 맡고 있는 사촌 동생을 따라서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삼태리를 이렇게 돌아보는 것이 몇 년만인지 모른다.

 

동네 앞에 있는 논길을 가로질러 가면, “마디라는 곳으로 가는 작은 길이 나온다. 그 좁은 길 왼쪽에 큰 정자나무가 한 그루 있었고, 조금 지나면 산 비탈에 상여를 두는 곳이 있었다.

 

막상 가보니 느티나무도, 상여집도 모두 없어졌다. 어렸을 때, 그 상여 앞을 지날 때는 귀신이 내 머리털을 잡아끌고 들어가는 것같아 머리털이 쭈뼛쭈뼛했었다. 특히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거나, 어렴풋이 달빛이 비치는 저녁이면 그 무서움은 나의 전신을 휘감아 돌고 돌아 나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 이때는 내가 마치 죽은 귀신이나 된 듯 몽롱한 상태가 되기 십상이었다. 이곳을 통과할 때 몽다리 귀신이 잡아갈까 두려워서 두 귀를 막고 검은 고무신을 벗어 양 손에 쥐고, 오로지 땅만 보고 죽어라 하고 달렸었다.

 

또한 그 당시에 들었던 귀신 이야기 중 정말이라고 여겼던 것은, 여우가 늙으면 불여우로 변하고 다시 할머니로 변하여 비 오는 날에는 지팡이를 짚고 혼로 길을 걷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언젠가 비오는 날, 아이들 몇 명이 지나가는 꼬부랑 할머니가 지나가면 돌을 던지기로 하고 손에 돌을 들고 느티나무 근처를 어슬렁거린 적도 있었다. 그날 꼬부랑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우리 앞을 지나가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정말 그날 할머니가 지나갔더라면, 지게 작대기와 돌에 맞아 피투성이가 되었거나,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저 세상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삼태리 앞산에서 본 삼태리 전경>

 

<삼태리 연못에서 본 진악산>

 

내가 살던 삼태리는 맨 위쪽에 연못이 있다. 이곳에서 멀리 금산 진악산을 바라보면, 이 산이 좌우 균형을 딱 잡고 마치 마을의 수호신이라도 되는 듯, 굳건히 금산을 지켜주는 듯 하다.

 

한번은 초현리라는 곳에서 외할머니가 오셨었다. 할머니는 진악산을 보고, “, 진악산이 저렇게 늠름하게 딱 자리 잡고 있으니, 삼태리에 인물이 나는가 보다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금산 어디에서 진악산을 보아도 저렇게 멋있는 모습은 볼 수가 없다. 특히 서산에 붉은 노을이 물드는 저녁에는, 앞쪽에 연못의 물과, 뒤에는 진악산, 그 위에 붉은 하늘이 펼쳐져, 마치 신선 세계에 들어온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어렸을 때, 여름만 되면 이 연못에서 수영을 자주 했었다. 이 연못은 꽤나 넓어서, 여기에서 빠지면 그냥 목숨을 잃는다. 그런데 그 당시에 한 아이가 연못을 가로질러 수영을 하면, 왜 그런지 쪽팔린다는 생각으로 모두 그 아이의 뒤를 따라서 연못을 가로질러 수영을 했었다. 연못의 가장 자리는 물이 따뜻 하지만, 가운데를 통과할 때는 물이 차가와서 온몸이 찌릿찌릿하여 그 무서움은 말할 수도 없었다. 연못 아래에서 이무기나 귀신이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해서 머리 속이 멍해지기도 했었다. 어떻든 다른 아이들이 이곳을 통과해 갔으니 나도 가야 했었다. 그게 아이들의 심리였다.

 

그때 동네에 좀 이상한 사람이 있었었다. “이 놈의 섀끼들이, 내 연 못에 허락도 없이 목욕을 하고 자빠졌네!” 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지게 작대기를 들고 쫓아오는 바람에, 옷을 옆구리에 끼고, 젖은 몸으로, 사방으로 도망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아마 그때 동작이 조금이라도 느렸더라면 지게 작대기가 피로 물들 정도로 비참하게 맞아 죽었을 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해도 뒷골이 찌릿찌릿하다.

 

<금산읍 중심을 흐르는 냇물>

 

술이 얼큰하게 취해서, 혼자라도 금산읍에 가서 또 한 잔 하기로 했다. 믿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이곳 삼태리 사람들은 버스비를 내고 택시를 타고 다닌다. 삼태리에서 금산읍까지는 약 5키로, 택시비는 약 만원이 나온다. 그런데, 콜택시를 불러서 금산읍에 갈 때, 1300원 정도만 내면 된다. 나머지 돈은 누가 내는지 모르지만, 세상에 이런 일이, 라는 프로에 나올 정도로 신기한 일이다.

 

금산읍 쇠전 다리 있던 곳 근처에 내려 천천히 걸었다. 인삼 시장이 몰려있는 곳을 지나, 개울을 따라 올라간다.

 

사람을 구경할 수가 없다. 인구 소멸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것인가, 덜컥 겁이 났다. 옛날에 사람들로 바글 거리던 그 길이 바로 여기 아니던가? 장날이면 붉은 립스틱을 바르고 분 냄새를 풍기며 막걸리를 팔았던 곱디고운 아가씨 아주머니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시장 골목으로 들어가 보니 찬 바람만 불고, 듬성듬성 남아 있는 몇몇 가게도 개점 휴업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내가 들어와 물건이라도 하나 팔아줄 것을 기대했던 할머니도, 야속하게 지나가는 나를 보고 큰 한숨을 쉬는 듯, 말없는 절망의 공기가 오후의 금산읍 시장을 구름처럼 떠돌고 있었다.

 

<금산읍에 있는 가게: 불개미 옷 수선, 머리 끄댕이, 말만 들어도 좀 무섭다>

 

머리채나 머리털의 끄트머리가 바로 머리끄덩이이다. 어렸을 때, 어른들 싸우는 소리 들으면, “내가 이년의 머리끄뎅이를.... 내 가만두나 봐라!” 이런 소리 많이 들었었다.

 

갑자기 나타난 미장원 간판, “머리 끄댕이를 보니 옛날 생각이 아니 날 수 없다. 실제로 장날만 되면, 심심치 않게 여자들이 머리 끄댕이를 잡고, 마치 황소가 머리를 맞대고 싸우듯이, 삿대질을 해대며 싸우는 장면을 본 기억이 떠 올랐다. 죽기 살기로 대적하는 두 싸움꾼의 삐뚤어진 입술 사이로 흰거품이 질질 흘러 나오면서, “요씨, 네년이 뒈지던지 내가 뒈지던지, 오늘 끝장을 내자라며 필사적으로 싸우는 광경을 심심치 않게 목격하곤 했었다.

 

일단 싸움이 벌어지면, 옆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말리게 되고, 결국 싸우던 두 사람의 손 아귀에 상대방 싸움꾼의 머리털이 한줌 쥐어진 채로 숨을 헐떡거려야만이 비로소 이 혈전은 끝나게 마련이다. 그리고 이 싸움꾼들의 마지막 멘트는, “너 오늘 운 좋은지 알어. 다른 사람들이 안 말렸으면, 오늘이 네 초상 날었어, !”이 된다.

 

또 어떤 싸움꾼들은 손바닥을 허공에 대고 탁탁 치고, 침을 땅바닥에 탁탁 뱉고, 싸움 끝낸 황소가 그러듯이, 고무신 바닥을 땅에 몇 번 싹싹 뒤로 밀어 비벼서 비로소 치열한 전투를 끝내기도 한다. 그 당시에 금산에 겡까 도리라는 별명의 여자가 있었는데, 하여튼 그 여자한테 한번 걸렸다 하면, 상대방 여자는 앞발 뒷발 다 들고 살려주쇼”, 해야 싸움은 끝난다는 소문이 파다했었다.

 

<금산읍 어떤 술집 겸 인삼매장>

 

인삼 거리를 걷다보니, 가게 유리창에, “인삼 튀김 + 막걸리”, 라고 쓰여진 집이 대여섯 군데 있었다. 어느 집을 갈까 몇 번 왔다리 갔다리 하다가,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좀 예쁘장한 아주머니가 그럴 듯한 모자와 심상치 않은 스카프를 걸치고 손가락으로 들어오라는 신호를 보내는 술집으로 들어갔다. 나보고 그랬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나에게 눈웃음을 보내는 것이라고 믿기로 했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이 판국에 별 다른 도리도 없었다.

 

술도 얼큰하게 취했겠다, 이쁜 아주머니에게 씨잘데기 없는 말을 해보려는 순간, 어디서 굴러먹던 개뼉다구인지, 술에 쪄든 놈팽이 대여섯 명이 우당탕탕 점령군처럼 들어왔다. 그들은 입구 근처에 자리를 잡자마자, 술집 아주머니와 허튼 말을 섞고, 잘난 척을 하며 뻔한 수작을 부렸다. 나는 기분이 팍 상했다. 상황으로 보아 이런 장면이 금방 마무리 될 것 같지 않았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입장이 되어 버렸으니 이 일을 어이하랴. 가는 날이 장날이고, 다 된 밥에 코 빠뜨리고 산통까지 깨져부렀네! 본래 재수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고, 재수 없는 년은 앞으로 넘어져도 움푸 패인 곳에 넘어진다더니, 이를 두고 하는 말이렸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인삼 튀김 값 1만원, 인삼 막걸리 값 3천원, 합계 13천원을 지불하고 휘파람을 불며 밖으로 나왔다. 물론 다 먹지 못해 남은 술과 인삼 안주는 가방 안에 쑤셔 넣고 말이다.

 

<인삼 막걸리와 인삼 튀김>

 

<마을 회관 내부>

 

<젊은이들이 달집을 만들고 있다>

 

택시를 타고 다시 삼태리에 왔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자, 달집 태우기 행사가 시작되려고 했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잠깐 어렸을 때 추억에 잠기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지금은 달집 태우기로 알고 있지만, 어렸을 때는 그냥 불놀이로 알고 있던 행사였다.

 

우선 달집을 만들 때는 그 안에 반드시 생 대나무를 많이 넣어야 한다. 대나무가 많을수록 그 불놀이는 그만큼 멋있는 불놀이가 된다. 달집 사방에 불이 붙어 활활 타는 시각적 효과와, 대나무가 타면서 나오는 천지를 뒤흔들 것같은 땅땅, 펑펑 소리가 함께 어울어져야만이 비로소 불놀이는 천당과 지옥을 반쯤 섞어 놓은 듯, 환희와 공포의 용광로로 변하는 것이다.

 

 

 

또 깡통 주변 여기저기에 많은 구멍을 낸 후, 끈을 매달고, 깡통 안에 나뭇 가지나 숯을 넣어 불을 붙인 후, 끈을 잡고 빙빙 돌리면, 휙 휙 소리를 내며 불꽃이 원을 그리며 깡통 밖으로 나왔었다. 깡통의 구멍을 뚫고 나오는 붉고 흰 불과, 깡통을 돌릴 때 나오는 휙휙 거리는 소리에 매혹되어 논두렁을 다니면서 불을 지르기도 하고, 다른 아이들의 깡통과 부딪치기도 하면서 깡통 싸움도 했었다.

 

그 당시는 설부터 시작하여 동네 산에 올라 매일 연을 날렸었다. 계속 연을 날리다가 보름이 되면 그 연을 달집 불에 태워야 했는데, 그 좋은 연을 불에 태우는 것이 너무 싫어서, 연을 다른 사람 몰래 집안에 감추어 두기도 했었다.

 

하여튼 설날부터 정월 대 보름까지가 매일 축제날이었다. 풍악놀이 패가 집집을 다니면서 징, 꽹과리, 장구를 쳤고, 아이들은 그저 호기심으로 이 풍악놀이패를 따라다니며 더불어 춤을 추기도 하고 흥얼거렸던 기억이 아직도 희미하게 내 머리에 남아 있다.

<비가 내리는 저녁 불자동차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https://youtu.be/Pv2zU6XDFO4

<저녁의 달집 태우기 행사 동영상: 핸드폰으로 촬영 후 "린"의 "찔레꽃"을 넣어 합성>

 

마을 주민들이 달불 주변에 모여들었다. 언제 왔는지 소방차도 만일에 대비해 무장을 하고 있었다. 먼저 이미 얼큰하게 술이 취한 이장님을 비롯한 몇몇 사람들이 인사말을 한 후, 드디어 달집에 불을 붙인다.

 

붙인 불에 사방에서 석유를 뿌려대니 불은 순식간에 달집 전체에 옮겨붙는다. 대나무에서 펑펑 소리가 연달아 터져 나오고, 검붉은 불꽃이 하늘로 휘몰아치며 올라간다.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 소리를 내며 휘파람을 불어댄다. 마이크를 잡고 있는 반쯤 술에 취한 바람잡이가 구경꾼들로부터 웃음과 탄성과 함성을 이끌어 낸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구경꾼들의 머리를 적시고 얼굴을 적시고 턱 밑으로 뚝뚝 떨어진다. 구경꾼들의 얼굴에 빗물과 눈물과 붉은 달집불이 어우러져 그야말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처절하고 애절한 그리고 가슴 벅찬 대보름의 피날레가 된다.

 

<달집이 활활 타오른다>

 

<하늘로 불꽃이 솟아 오른다. 그 사이로 비가 내린다>

 

<타오르는 불>

 

<산산이 부서지는 불꽃>

 

하여튼 그날 불놀이가 끝난 후, 자정이 넘을 때까지 술을 마셨다. 그래서 써야할 말이 좀 더 남아 있기는 하나, 쓰다보니 너무 길어져 여기에서 이야기는 끝내고, 아래는 금산 및 진안 사진 몇장 올린다.

 

<다음 날 아침이 되니 또 눈이 내렸다. 눈에 덮인 삼태리 윗말>

 

<삼태리 고래실>

 

<금산에 있는 보석사 은행나무>

 

<금산 보석사: 초등학교 때 여기까지 걸어가서 뙤약볕에서 스님의 말을 듣다가 쓸어지는 아이들도 있었다.>

 

<진안군 주천면에 있는 운일암반일암: 여름에는 사람들로 붐빈다>

 

<운일암반일암, 외쪽의 높은 바위가 장군바위>

 

<운일암반일암: 계곡을 따라서 계속 이런 길이 이어진다>

 

<운일암반일암을 둘러싸고 있는 산>

 

<운일암반일암을 흐르는 계곡물>

 

<용담댐: 전라북도 사람 대부분이 이 물을 사용한다>

 

<용담댐>

 

<용담댐>

 

<용담댑>

 

<용담댐을 지나 마이산으로 가는 중 메타세콰이어 길>

 

<마이산>

 

<마이산 능소화>

 

<마이산 불상>

 

<마이산 걸어갈 수 있는 마지막 장면>

 

<마이산>

 

<마이산 대웅전>

 

<만지면 탑이 무너지니까  만지지 말라고 사방에 써 있다.>

 

<마이산의 일부분>

 

<마이산>

 

<탑을 쌓은 사람 이갑룡 처사, 라고 써 있다.>

 

<마이산>

 

 

<마이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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