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 위에 막대기 하나가 놓여 있었다.
텅 빈 대관령 초등학교 교정 벤치 위에 막대기 하나가 놓여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도 없고, 이 막대기를 만지거나 바라보는 사람도 없었다. 태고적 자연이 그렇듯, 덩그러니 놓여 있는 막대기 위로 소리 없는 바람만이 잔잔히 불고 있었다.
그때 한 아이가 어디서인가 소리를 치며 달려왔다. “와우, 막대기다!” 그 아이는 막대기를 잡고, 칼싸움을 하듯이 하늘을 향해 휘젓기도 하고, 손바닥에 올려 놓고 균형을 잡기도 하고, 심지어는 그 막대기를 물어뜯어 보거나, 콧구멍에 갖다 대고 냄새도 맡아 보았다.
잠시 후, 그 아이는 막대기 한쪽 끝을 모래에 묻어 세우고는, 주위에 모래를 쌓아 봉긋하게 만들었다. 조심스럽게 막대기 주위를 토닥거려주던 아이는 만족하다는 듯이, 헤헤 웃었다. 그리고는 다시 막대기를 모래에서 뽑아서 관찰한 후, 다시 모래에 꼽고, 그 주위에 모래를 쌓았다.
잠시 후, 아이는 그것도 지겨웠는지, 막대기를 가지고 학교 건물이 잘 보이는 운동장으로 갔다. 그는 운동장을 도화지 삼아, 학교 건물을 그리기 시작했다. 쓱-쓱, 막대기가 운동장 흙에 닿아 끌리는 소리가 자갈밭을 굴러가는 수레 바퀴처럼 크게 들렸다. 그 아이는 학교건물과 자신의 도화지를 번갈아 보며, 그럴듯한 한 폭의 그림을 완성하였다. “와우, 나는 미술 천재인가 봐!” 아이의 말 소리가 얼마나 우렁찬 지 멀리 떨어진 나에게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렸다.
잠시 후, 아이는 막대기를 발로 세계 차서 멀리 날려보냈다. 그리고는 어디인지 모르게 쏜살같이 달려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그 막대기가 그 아이에게 그렇게도 쓸모 있는 물건인 줄 처음 알았다. 나는 막대기를 이리저리 살펴보았으나, 아무런 특징이 없는, 아무 데서나 볼 수 있는 보통 막대기였다.
나는 막대기를 다시 본래 있었던 벤치에 갖다 놓았다. 다음 사람이 그 막대기를 어떻게 하나 관찰하기 위해서 였다.
잠시 후, 6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멀리서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는 피곤한지 앉을 자리를 찾는 듯했다. 드디어 그녀가 벤치에 가까이 오고 있다. 과연 저 여인은 막대를 잡고 칼 휘두르듯이 하늘을 향해 휘젓고, 모래에 묻기도 하고, 그림을 그릴까?
마침내 그 여인이 벤치에 접근하였다. 그녀는 잠시 벤치를 살피더니, 막대기를 집어서 “휙” 공중에 집어 던졌다. 그후 손바닥으로 벤치 위에 묻어 있는 모래를 쓸어 내렸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 앉아서 교정을 바라보았다.
조금 지나자 그 여인은 졸기 시작했다. 한 참을 졸던 그 여인은 벤치에서 일어났다. 하품을 하던 여인은 질질 끌듯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천천히 걸어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런 노인이, 이런 아이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말하는 것이 과연 옳기는 옳은 것이며, 어디 씨나 먹혀 들겠는가? 양자 역학이 무엇인지 아는 아이에게, “너 나중에 네 새끼 못 낳으면 양자 들여라” 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마찬가지 일 것이다.
어른과 아이는 겉 모습만 사람의 탈을 썼을 뿐, 전혀 다른 존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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