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Beautiful the Nature is! - Albat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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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다이센 산행기 1 (Daisen Japan 1)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2. 7. 30. 11:15

 

<일본 도토리현에 있는 다이센>

 

일본 다이센(大山) 등산기

 

 

2009년 8월 1일 아침 7시 30분. 잠실역에 도착하니 검은 등산복을 입은 한 남자가 나를 맞이한다. "곽영을입니다."라는 나의 말에, "손수철입니다."로 응답한다. 그 동안 준비과정에서 몇 번 문자 메세지가 오갔지만 처음으로 보는 이번 등산 대장이다. "손 대장"이라. 갑자기 그러면 "발 대장"은 누구인가 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더 이상 쓸데 없는 말장난을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면서,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는 이미 대부분의 등산 회원이 타고 있어서 빈 자리가 거의 없었다.  

 

 

오늘 오후 6시에 동해시에서 일본으로 출발하기로 되어 있는 배를 타기 위해서는 이렇게 일찍 출발할 필요가 없지만, 기왕에 빌린 버스를 활용하여 태백의 야생화 군락지를 구경한다고 했다. 나는 이번에는 정말로 야생화를 찍나보다하고 16-80미리(F3.5-4.5) 칼 짜이즈 렌즈 이외에, 100미리 매크로 렌즈(F2.8 Macro)를 예비로 준비해갔다. 그리고 예비 배터리를 2개 준비했고, 메모리 칩도 약 20기가나 가져갔다. 다시 말해 사진 찍을 만반의 준비가 갖추어진 셈이다.

 

 

마침 8월 1일부터 연휴가 시작되어서 혹시라도 차량이 밀릴지 몰라,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를 이용하여 간다고 했다. 7시 40분쯤 출발한 버스는 신나게 막힘없이 달렸다. 이렇게 잘 뚫린 길을 괜히 걱정을 했나보다. 내 눈 앞에는 다시 태백산의 자연 야생화 군락지가 아른거렸다. 마치 어렸을 때 자운영 밭에서 뒹글던 그런 상상을 하기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이게 웬 일인가? 몇 분도 못 가서 차는 막히기 시작했고, 설마설마하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조금가면 풀리겠지 하던 희망이 서서히 꼬리를 감추어 가고 있었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먹기로 했던 아침 밥은, 하는 수 없이 엉금엉금 기어가는 버스에서 먹을 도리밖에 없었다. 몇 사람이 앞에서 플라스틱 접시에 밥과 반찬을 담아 주면, 그것을 뒤쪽으로 전달하는 식이었다. 많은 반찬은 아니었으나 더운 밥이어서 그런지 대단히 맛이 있었다. 내 옆에 있던 친구는 "나는 국이 있어야 먹는데."를 연발했다. "정신 차려 이 사람아, 지금 시국이 어느 때인데 국을 찾나. 주는대로 아무 것이나 막 먹어." 손 대장도 아닌 내가 발 대장 노릇하며 친구에게 쓴 소리를 해댔다. 그러나 정말로 국이 있어야 먹는지 그의 목구멍에서 "끼륵, 끼륵"하는 소리를 들을 때는 내가 너무했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식사가 끝나고서도 버스는 여전히 달팽이 속도로 달렸다. 차라리 지렁이 속도라고 해야겠다. 아니 굼벵이 속도라고 해야할까?  추석이나 설에 고속도로 막히는 것보다 더 막히는 것 같았다. 밥을 먹고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은 무엇을 할까 고심을 했는지, 갑자기 각자 자기 소개를 하라고 했다. 그것도 자리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와서 마이크를 잡고 하라고 한다. 그런데 소개하는 것은 좋으나, 왜 하필이면 나부터 시키는 것일까? 학교에 다닐 때도 이런 것이 싫어서 항상 뒷좌석에 앉았었는데. 오늘은 키큰 순서대로 시키는 것일까? 별 생각을 다 하면서 마이크를 잡고, 아무 말이나 되는대로 떠들다가 자리로 돌아왔다. 퇴임을 한 이후로, 직장이 무엇이냐라고 물을 때가 가장 난감했었다. 퇴임했다고 하면, 왜 그리 젊은 나이에 퇴임했냐고 묻게 되고, 그러면 또 겉은 젊어 보일지 모르지만 속은 쭈구렁 망탱이 늙은이가 이미 되었다고 말하고, 뭐 이렇게 말이 이어져 가는 것이 흔히 있는 일이다.  

 

 

버스에 탄 사람이 자기 소개를 다 했는데도 여전히 차는 쉬고 가고를 반복한다.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지만 여기가 "양성"이다라고 누군가가 소리쳤다. 양성이라면 안성을 경유하여 가는 것이다. 양성이라고 하니까 양성평등이 생각난다. 처음에는남녀평등이라고 하다가, 이 말을 들은 여자들이, "남녀평등이 아니라 여남평등이라고 해야한다."라고 하니까 그러면 아에 양성평등으로 해 버리자고 하여 양성평등이 된 것이다. 양성평등이건 양성반응이건 버스는 달릴 줄을 모르고 아스팔트 위에 쩍 달라 붙어 있다.  

 

 

 

<같이 등산간 아가씨들이 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화장실을 가야한다는 몇 사람의 성화에 버스는 10시쯤 중간의 어떤 휴게소에 도착했다. 휴게소는 밀려드는 차량으로 혼잡했는데, 더구나 여자 화장실은 남자 화장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불결하기 짝이 없는 이 화장실에서 잠깐 쉰 후, 버스는 다시 출발한다.

 

 

그런데 같이 가기로 되어 있는 두 사람이 다른 고속버스를 타고 9시에 출발한다고 했다. 그 두 사람은 어디쯤 가는지 궁금했나보다. 핸드폰으로 연락을 해보니, 고속도로건 국도건 막히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그들이 궁금하듯이 그쪽도 우리가 궁금했을 것이다. 얼마나 핸드폰을 많이 사용했던지, 아마 연락비만도 만원은 나왔을 것이다. 나중에 알고보니 고속도로로 가던 버스도 기사가 알고 있는 샛길로 빠져 국도를 이용했었다.

  

 

기대했던 태백산의 야생화 촬영은 물건너 갔구나라는 생각을 하니, 내일 소풍을 간다고 했는데 비가 와서 가지 못한다는 말을 들은 초등학생의 심정과 똑 같았다. 좀 과장하면  여러 아들 중 하나가 물에 빠져 죽은 아비의 심정과 같았다고나 할까? 무엇인가 신체의 일부가 뚝 떨어져 나간 느낌이었다. 하여간 졸며 깨며, 가며 쉬다가 도착한 것이 제천 휴게소였다. 그때가 2시이니, 서울에서 제천까지 무려 6시간이 걸린 셈이다. 그곳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하였으나 사람들이 붐벼서 오랫 동안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동해항에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걱정에 점심도 먹지 못하고, 버스에서 간단한 주념부리와 아침에 먹다 남은 밥으로 점심을 때웠다.

 

 

제천에서 좀 달리던 버스는 또 느림보로 가기 시작했다. 태백산 야생화는커녕, 이제는 사람들 얼굴에 배의 출항 시간에도 도착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한 사람이 "못 가면 말어. 그 돈으로 밤새도록 동해에서 술 파티나 벌이면서 실컷 먹고 마시고 내일 돌아가자고. 인생에 이런 경우는 만들려고 해도 없을 터이니, 될대로 되라고 내비려 둬."라고 말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의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속으로 "좋다. 다이센은 다음에라도 갈 수 있지만 정말 이런 경험은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정말로 못가는 일이 현실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어느 날 에디슨이 운영하는 큰 공장에 불이 났었다. 모두다 울고 불고 난리법석을 피우는데, 에디슨이 아들을 불러 놓고 말했다. "얘야, 와서 여기서 불구경해라. 공장은 다시 세우면 되지만, 이런 불구경은 일생에 다시 할 수 없는 것이란다."

 

 

제천을 조금 지나면서부터는 완전히 교통 체증이 풀렸다. 마침내 버스는 제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4시 반까지는 도착을 해야했는데, 버스가 동해항에 도착한 것은 약 4시 20분 경이었다. 무려 9시간 걸려서 서울에서 동해항까지 온 셈이다.

 

 

곧 수속을 밟고 배에 오르기 시작한 것은 4시 40분경이다. 비행기 탈 때만큼 엄하지는 않았지만 여권검사와 배낭 엑스레이 검사는 철저했다. 세관을 지난 후, 곧 배에 올랐다. 다행스럽게도 고속버스로 온 두 사람도 출항 시간에 맞추어 도착했다. 마치 오늘 하루가 긴 지옥을 빠져 나오는 사투처럼 느껴졌다.  

 

 

<동해항>

 

 

<동해항 대합실에서 승선권을 나누어주고 있다.>

 

 

<승선하기 전 포즈를 잡는 금산 향우회 산악회원들>

 

 

전에 인천항에서 배를 타고 제주도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 배는 국제선이라 그런지, 인천항에서 제주도 갈 때 탄 배보다는 크기는 좀 작은 것 같지만 시설은 더 잘 되어 있었다. 깨끗하고 깔끔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하기야 이 배가 정기 노선을 출범시킨지 우리가 네 번째 손님이라니 깨끗한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배의 내부>

 

 

<갑판에 올라서: 아직 동해항을 출발하지 않았다.>

 

 

갑판에 올라 사방을 둘러본다. 아름다운 동해시가 멀리 보이고 가깝게는 동해항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과 분주히 드나드는 각종 배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배가 출발하기도 전에 갑판 한 쪽에는 이미 먹자판이 벌어졌다. 한 무리의 등산객이 돗자리를 깔아놓고 술판을 벌인 것이다. 언제 구입했는지 소주와 생선회가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잠시 사진을 찍고 다시 실내로 들어왔다.

 

 

 

이미 우리 팀도 한 시도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는 듯 곧 고스톱 판을 벌였다.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이것을 내라, 저것을 내라, 똥을 먹어라, 고도리를 했었어야지" 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사람들은 화투판에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내가 이 여행에 참가한 것은 우연한 일이었다. 어느 날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었다. 금산향우 산악회에서 일본에 있는 다이센 산행을 가는데, 같이 가자는 것이다. 동해에서 배를 타고 일본 도토리현에 있는 사카이미나토항에 내려서 다이센에 갔다오는 코스라고 했다. 요금은 상당히 저렴한 20만원이다. 인천항에서 제주도 갈 때와 똑 같이 배에서만 2박을 하니, 선박료 이외에는 돈이라는 것이 별로 들 일이 없는 여행이다. 게다가 국내가 아니므로 새로운 기분과 새로운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번 여행에 참가한 것이다.

 

 

  

출발한 배는 오른 쪽으로 동해안을 따라 서서히 어두워지는 바다를 뚫고 달렸다. 점점 멀어져가는 동해안을 보면서, 저녁 바람을 맞으며 배는 망망 대해를 달린다.

 

 

오늘 이 배에는 등산 몇 팀이 탄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트레킹 클럽"이라는 여행사를 통해서 가고 있고, 눈에 띄는 것이 "기러기 투어"라는 명찰을 단 사람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그 팀은 우리보다 회원수가 더 많은 것 같았다. 또 만난 사람 중에는 "리무진 클럽"이라는 산행 모임에서 온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모든 것은 우리와 똑 같았으나 서울에서 동해까지 오는데 편안하게 리무진버스를 타고 오는 것이 우리와 달랐다. 돈은 좀 더 들더라도 편안하게 리무진을 타고 다니면 편할테니, 좋은 여행방법 중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한다>

 

 

갑판을 오르내리기도 하고, 고스톱을 구경하기도 하는데, 식사하라는 방송이 들린다. 약 450명이 같은 배를 타고 가기 때문에, 식사하고 배에 오르고 내리는데, 철저히 질서를 지킨다. 즉 자기가 속한 팀이 방송으로 불려져야 행동이 가능하다. 우리 팀은 어디를 가나 대체로 뒷부분에 이름이 불려졌다.

 

 

식당에 들어가니 교실 2개 정도되는 넓이에 열 다섯 개 정도의 큰 테이블이 놓여져 있다. 부페식 식당으로 한국인이 배식을 하고, 그릇을 치우는 것은 필리핀 소녀 두 명이 담당하고 있었다. 밥과 북어국 그리고 돼지고기와 장아찌를 비롯한 몇 가지 반찬이 딸려 나왔다. 국제선이라고는 하지만 말만 국제선이지, 실제로는 한국 배나 마찬가지였다. 외국인 승객을 단 한 사람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식사도 한국식, 사용되는 언어도 한국식, 실내 시설도 한국인의 취향에 맞게 꾸며져  있었다.

 

 

<저녁 식사>

 

 

드디어 우리에게도 기다리고 기다리던 술판이 벌어졌다. 하기야 한국인의 입장으로는 먹는 즐거움이 없으면, 아무리 다른 즐거움이 커도, 그 즐거움은 진정한 즐거움이 아니다. 세계 어디를 가봐도 한국인처럼 먹는 것을 즐기는 민족도 드물리라. 시골에 가면 맨 "오리집, 불고기집, 닭백숙, 도토리 묵, 해장국---" 그 이름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도 푸짐한 먹거리가 있다.

 

 

이미 배를 타고 가면서, 그리고 오면서 먹을 생선회 값으로 3만원을 따로 지불했으니, 지금부터는 실컷 먹기만하면 되었다. 저녁 식사를 한지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술이 들어갈 자리는 따로 있는 듯, "배를 타고 가는 나의 배속으로" 사정없이 참이슬과 광어회가 들어갔다.

 

 

금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도대체가 금산 사람들은 왜 이리 많이 술을 마시는지 모르겠다. 인삼 약발을 받아서 그런지 몰라도, 금산 사람치고 술 못먹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다. 내일 등산을 못하면 못하는 것이지, 뭐 먹던 술을 그만둘 수 없다는, 먹고 죽은 귀신은 때갈도 좋다는, 그런 마음 자세인 듯 했다. 술잔은 남녀불문, 노소불문으로 돌아갔다.

 

<동해안에서 가져온 회를 안주로 술잔이 돌아가기 시작한다.>

 

 

나는 도무지 안 되겠다 싶어 중간에 친구와 둘이 살며시 빠져 갑판으로 향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내일 등산을 못할 판이었다. 올라가다 보니 맥주를 파는 곳이 보였다. 사람들은 많지 않았으나 옹기종기 모여 맥주를 마시는 모습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술을 피해온 우리는 이 맥주집만은 지나칠 수 없었다. 참새 방앗간이라고나할까? 들어가서 또 마셨다.

 

 

맥주를 마시고, 술이 깰 것을 기대하며 갑판에 올라갔다. 캄캄한 바다 위를 고래등 같은 배가 달리고 있었다. 넓은 갑판에 장식된 네온사인이 빛을 바꾸어가며 번쩍거렸다. 동해의 여름 밤바람은 상상 이상으로 차가왔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고개를 돌려 보니, 멀리 수평선에 오징어 배의 불빛이 일렬로 정돈 되어 빛났다. 몇몇 애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벤치에 앉아 먼 육지를 바라보며 밤바람을 쐬고 있었다. 혼자서 팔짱을 끼고 이리저리 걷고 있는 사람도 보였다. 육지에 두고온 애인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이런 배를 타고 타국에 가보는 자신의 행운을 감사하게 여기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갑판의 네온사인>

 

 

<멀리 오징어 배의 불빛이 보인다.>

 

 

 

배를 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혹시 여기가 타이타닉이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사로 잡힌다. 저기 배의 한 모퉁이에 디카프리오와 그의 애인이 팔을 벌리고 하늘을 나는 것 같은 환상에 사로 잡힌다. 여자만이 분위기에 약한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이라면, 더구나 술이 거나하게 취한 사람이라면, 이제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이어도 좋다는 그런 심상에 젖게 마련이리라.

 

 

<나도 좀 취했다. 아니 상당히 취했다.>

 

 

저 빛이 달빛인가, 배의 등불인가?
배는 검은 파도를 헤쳐가는 한 마리 돌고래다.
온몸을 감고 돌아가는 바닷바람에 머리카락 날리운다.
이 밤이 지나면, 나타날 낯선 땅을 그리며-----

 

 

 

 

 

 

 

 

 

 

 

 

 

 

 

 

 

 


(2009년 9월 5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