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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여행기 4(Vietnam 4)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2. 7. 29. 18:19

 

 


베트남 여행기 4(최종회)

 

 

<새벽에 산책하는 부부>

 

새벽에 일어나서 해변으로 갔다. 아직도 어두운 해변을 몇몇 쌍들이 걷고 있었다. 밤새 같이 있었을 그들이 무엇이 더 그리워 이 꼭두새벽에 바닷가를 찾았을까? 날이 밝는 것을 기다릴 수가 없어서일까? 날이 밝음을 함께 맞이하려함일까? 아니면 그들도 오늘이 마지막이라 이국의 정취를 가슴에 담아가려는 것일까? 바람은 세차게 부는데, 둘은 붉은 노을을 향해 계속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바닷가 한 쪽에서 뜨는 태양을 배경으로 몇 사람이 그물을 당기고 있었다. 그것이 그들의 생업인지, 취미인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그물을 당기기 시작한지 두 시간이 넘었다고 했다. 그물이 밖으로 나오려면 세 시간 정도는 걸린다는 것이다. "뭐라도 건지겠지"하는 희망이 그들을 저리 붙잡아 놓고 있다. 삶이라는 무게가 그들의 어깨를 짓누르는지도 모른다. 가끔 한숨을 쉬면서 끊임없이 줄을 당기고 또 당겼다. 거기에 마치 그들의 앞날이 걸린 것처럼 그들은 그렇게 바다와 그물의 줄을 응시하며 당겼다. 줄을 당긴 사람이 뒤로 가게 되면 뒷 사람이 앞으로 와서 또 당겼다. 끝없이 반복하는 그들의 이마와 콧등에 땀방울이 맺혔다. 그 땀방울에 햇빛이 반사되었다. 그들의 얼굴이 한 밤 중 별처럼 빛났다.

 

 


<아침 햇살을 배경으로 그물을 당긴다>

 

 

<그물을 당기는 모습>

 

 

그 옆에는 이미 그물을 끄집어 내어, 그물에 걸린 고기를 그물에서 떼어내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오늘따라 고기가 잡히지 않은걸까? 고기라야 피라미만한 고기였고, 가끔 낙지라고 생각되는, 기어 다니는 고기가 몇 마리 보였다. 한 여자가 낙지를 나보고 먹으라고 입으로 갖다 댔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뒤로 도망쳤다. 하마터면 카메라를 바닥에 떨어뜨릴 뻔했다. 가난이 죄인지라, 가끔 사기치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베트남인들의 인정은 우리의 시골 인심처럼 그렇게 투박하면서도 따뜻했다.

 

 

 

<그물에 걸린 낙지: 나보고 먹어 보라고--->

 

 

또 한쪽에서는 어떤 사람이 모래를 파고 그 위에 자기 바지를 덮어 놓았다. 지나가던 관광객이 호기심이 발동하여 무엇인지 열심히 들여다 보고 있었다. 약장수 바라보듯 나도 틈에 끼어 바라보니 이미 죽어 버린 메기 같은 물고기였다. 죽어 버린 물고기를 왜 그리 오래 동안 그들은 바라볼까? 베트남 젊은이는, 아마도 자기 물고기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외국인을, 자기도 신기하게 바라보는 듯했다.

 

 

 

 

이른 아침인데도 모래 사장에서 조개 목걸이나 반지 등을 파는 아줌마도 있었다. 사진을 찍으려는데 웬 수영복을 입은 여자가 엉덩이를 카메라 앞에 갔다 대는 바람에 의도하지 않게 볼륨있는 엉덩이를 찍어보는 행운도 갖게 되었다. 여자의 엉덩이가 넓적한 줄 알았는데, 사실은 뾰족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위치상 중력의 작용으로 그렇게 보였는지 모르지만, 갑자기 신비감이 생기기도 했고, 내가 성도착증 환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묘한 감정이 늙은 나이에도 드는 것을 보면, 인간의 원초적 본능은, 정말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인지도 모른다. 인간이란, 본능과 이성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가여운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냥 옆에 있는 목걸이나 조개 껍데기나 즐겨라. 그것이 정녕 너에게 궁극적인 이로움을 갖다 줄지니.

 

  

열대의 햇볕은 대단했다. 몇 분을 태양 아래서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런 이글거리는 태양 속에서 유럽인들은 땀을 펄펄 흘리며 선글라스를 끼고 선탠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잠을 자든지 아니면 독서를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맥주는 계속 마셔댔다. 어디를 뻘뻘거리고 돌아다니기 보다는 허리가 부러져라하고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나는 솔직히 그들이 불쌍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약한 피부를 온전히 보전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저 지독한 더위 속에서 뙤약볕을 쏘여야 하다니. 그들은 흰 피부에 진절머리가 날지도 모른다. 저다지도 허약한 피부를 우리 나라 사람 중 많은 사람이 부러워할 것이다. 남이 갖고 있는 것을 부러워할 게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즐겨야 할 것이다. 그런 말이 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모든 가질 수는 없지만,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좋아할 수는 있다." 내가 나인 것을 진정 기쁨으로 맞이해야 할 것이다.

 

 

  

<바닥에 그려진 나무 잎 그림자>

 

 

나는 Sunny Beach Resort가 얼마나 큰지, 그리고 얼마나 아름다운지 두루두루 살펴보았다. 큰 수영장이  두 개나 되었고, 잘 가꾸어진 열대 식물이 윤기있게 자신을 뽐내며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야자수의 그림자가 잔잔한 잔디 위에 자신의 그림자를 드리워, 마치 초록의 손수건에 회색의 수를 놓은 듯이 보였다. 나무 아래 붉은 꽃잎이 떨어져 나무 그림자와 절묘한 대조를 이루었다. 참새보다도 조금 작은 새가 나무와 나무 가지 사이로 날고 있었고, 할 일 없는 개들은 나무 밑에서 하염없이 졸고 있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빨갛고 흰 꽃들이 하늘로 목을 내밀고, 바람에 흔들리며 자신의 매력을 마음껏 발산하고 있었다. <헛소리: 이 단락을 쓰면서 수능 영어 문제의 글의 분위기를 묻는 문제를 해석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수능 문제의 답은 peaceful이다. 영어 선생님이나 이해할 듯--->

 

  

 

<잔디와 꽃과 그림자>

 

 

만나면 이별이라고 하지만 정말 며칠 더 있다가 가고 싶었다.  멀리 보이는 저 어촌에서 생선회도 한 접시 먹고 싶었고, 붉은 노을이 질 때, 빨간 모래 언덕에서 태양에 반사하는 또는 태양이 만드는 긴 그림자를 품고 있는 모래 언덕을 사진에 담고도 싶었다. 모래 언덕의 능선을 걸어가는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역광에 담고 싶은 마음 또한 간절했다.

그러나 내가 타고 가야할 버스는 정시에 왔다. 버스에 타고 보니 참 낭패였다. 모두 좌석이 다 한 자리만 차지하고 옆자리만 비워둔 상태다. 우리 나라도 버스 타는 순서는 모든 좌석을 한 사람씩 앉고, 그 다음에 바로 그 옆을 채우는 순서가 아닌가? 아내와 같이 앉을 수가 없어서, 한 참을 둘이 서서 갔다. 그러나 해결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Excuse me, can I sit here?"하니 그는 어정쩡한 표정과 어정쩡한 태도와 어정쩡한 느낌으로 자기 옆에 놓아 둔 가방을 천근만근 쇠뭉치를 들 듯이 치웠다. 그 순간 내가 죽을 죄를 지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놈이 이렇게 많은 빈자리를 두고 왜 하필 내 옆에 앉지?" 아마 그는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게 인간의 심리인가 보다.

 

<버스타고 오다가 중간에 정차한 곳의 간장통>

 

 

한 휴게소에서 베트남 간장 냄새가 진동한다. 아마 생선으로 담는 간장인 것 같다. 소금이 간장 독에 가득 들어 있다.

 

 

올 때나 갈 때나 나는 잠을 자지 않고 몇 시간이고 바깥을 바라보았다. 끊임없이 길가에 지어진 집들 사이로, 그물 침대를 매달아 놓고, 장사하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차를 타고 가다가 지친 운전수나 승객이 먹을 것을 사서 그물 침대에 앉아 먹으라는 것이다. 하지만 손님이라고는 단 한 사람도 구경하지 못하고, 빈 그물 침대만 바람에 흔들거렸다.  

 

 

조금 더 가니 한 스님이 3보 1배를 하는 것 같아 자세히 보니, 여기는 1보 1배였다. 저러다가는 하루 다 가봐야 500미터 가기도 힘들게 생겼다. 무엇을 위해서 저러는지 모르겠지만, 누가 시켜서 하랴. 이유야 어떻든 자신의 선택일 것이다. 어떻게 보면, 내가 자주 다니는 등산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본인이 선택해서 고생하는 것이 아닌가? 결과야 어떻든, 좋든 나쁘든, 자신이 선택해서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자신이 선택하여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 대부분은 자신도 모르게 맡겨진 운명에 의해 살아가는 사람이 대부분 아닌가? 그런데 놀라운 것 중의 하나는, 우리 주위에는 자신이 선택할 수 있음에도 주어진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사실은, 그런 삶도 그가 선택한 것이므로 선택은 선택이다!  

 

 

 

<일보 일배하는 스님>

 

 

목적지인 호치민에 도착하니 이미 밤이었다. 공원에서 여자들이 카세트를 틀어놓고 체조를 하고 있었다. 여전히 사이공의 밤은 할 일 없는 사람과, 할 일 있는 사람, 그리고 할 일 있어 보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로 복닥거렸다. 수시로 자동차의 경적소리가 밤 공기를 뚫고 하늘로 솟구쳐 나갔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베트남에 와서 해봐야 할 것 중, 해보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안마를 받지 않았다. 걸어오면서 한 아가씨가 우리를 잡고 안마를 권유했다. 요금은 60분에 15,000원(10달러)이었다. 관광을 따라 다니면서 4-5만원 주고 했던 생각이 났다. 자리에 누우니 조그만 여자 둘이 들어왔다. 그렇게 조그만 여자가 힘이 어디서 나서 그렇게 세게 주물러 대는지 혀를 내둘렀다. 천천히 강약을 조절하여 정말 마사지를 잘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잠이 들었다. 깨워서 시계를 보니 정확하게 60분이 지났다.

 

 

젊은 주인이 오더니 종이 쪽지를 건네 주었다. Massage 표시 밑에  Excellent 3달러, very good 2달러, good 1 달러의 팁 표시가 있었다. 습관적으로 1달러만 주려고 하다가 하는 수 없이 2달러를 주고 very good 에 동그라미 쳤다. 그런데 마사지 아가씨에게 돈을 주어야 하는데, 왜 주인이 받아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기분이 좀 나빴지만, 자기들 나름의 규칙일거라고 생각하고 그냥 그러려니 했다.   

 

 


다음 날 일찍 근처 시장에 갔다. 지난 번에 갔었던 빈 탄 시장 보다는 규모가 작은 타이 빈 시장이다. 온갖 군상의 사람들과 물건으로 범벅이 된 그런 동네다. 처음에는 막무가내로 사진을 찍다가 나중에는 좀 미안한 생각이 들어 안찍는 척 하면서 대충 찍었다. 나중에 보니, 역시 대충 찍은 것은 대충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갖가지 물건을 파는 노점상. 특히 생고기가 눈길을 끈다.>

 

 

큰 거리는 여전히 오토바이로 붐볐으며,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달걀 등을 운반하는 여자들이 보였다. 베트남 전쟁 때 많은 사람이 죽어서, 오늘 날 베트남에는 거의 대부분이 젊은이들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어디를 가나 베트남은 젊은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젊은이로 북적거리며 활력이 넘치는 거리 거기가 바로 베트남이다.  

 

 

 

<베트남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밖을 보니, 구름과 안에서 비친 전등불이 조합으로 나타났다.>

 

 


 

이제 끝맺음 해야겠다.  

1. 본래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 보다 누구와 가느냐가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사람의 취향에 따라 각자가 다를 것이다. 혼자도 다녀보고, 친구와도 다니고, 그리고 아내와도 다녀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의 경우는 혼자 다니는 것이 가장 적성에 맞는 것 같다.  

 

2. 해외에 가기 전에 약간은 불안하고, 경계심이 생기지만, 막상 가보면 생각 이상으로 쉽게 모든 일이 잘 풀리게 되어 있다. 걱정하지 말고 떠나면 된다. 오늘 어떤 책을 읽는데 이런 말이 있었다. "여행을 갈까 말까 망설여질 때, 무조건 떠나라. 하지만 어떤 물건을 살까 말까 망설여질 때, 무조건 사지 말아라. 이것이 후회를 줄이는 방법이다." 또한 준비를 너무 안 해도 문제이겠지만, 너무 많이 준비를 해도 상당히 많은 부분은 결국 폐기처분된다. 대부분의 정보는 몇 년 된 것이고, 객관적이라기 보다는 주관적인 정보가 너무 많다. 하지만 생존에 필수적인 정보는 꼭 알고 떠나야 할 것이다.

 

3. 리멤버라는 여행사에서 놀러 온 어떤 한국 사람이 나에게 한 말이 있다. 제발 여행과 극기 훈련을 구별하라는 것이다. 한국 사람은 모두 중무장한 극기 훈련 학생과 같다는 것이다. 될 수 있으면 하나라도 더 보려고 그런다고 하는데, 어차피 세상은 다 볼 수 없으니, 보는대로 보라는 것이다. 어디 가서 있을 만큼 느긋하게 있다가, 다른 곳으로 느긋하게 가서, 때가 되면 한국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그는 한국에 있는 어떤 대학의 영어과를 나왔다고 하면서 Salley garden이라는 노래 가사를 예로 들었다. "그녀는 내게 언덕 위에 풀이 자라듯이 인생을 여유롭게 살라 했지만, 그때 나는 젊고 어리석었던 탓에 지금은 눈물로 가득하다네." <참고: 여기를 클릭하면 나의 홈페이지에 있는 salley garden을 들어볼 수 있다.> 일상생활은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여행할 때만은 느긋하게 인생을 즐겨야 한다고 내게 말한 것이 오래 동안 기억에 남았다.   

 

4. 나는 이번에 돈 문제를 많이 생각했다. 홍콩에서 창문이 없어 곰팡이 냄새나는 방에서 잠을 자면서, 특히 돈이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했다. 증권투자에서 하루 아침에 수백만원, 또는 수천만원을 날리면서, 팁을 1달러만 줄 것을 2달러 주게 되어서 기분이 상했던 생각도 했다. 우리는 10만원 꾼 돈을 갚지 않는다고, 사람을 죽이고 몇 억이나 되는 자기 재산은 공중에 날린 채 수십 년 감옥 살이 하는 사람에 관한 뉴스도 가끔 본다. 국밥을 먹고 싶지만 그 놈의 돈이 아까워 국수를 먹으면서, 자식에게 억대의 재산을 남겨주는 사람도 있다. 여행을 하면서 적절히 속아주고, 적절히 바가지를 쓰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봤자 큰 돈 아니다. 내 평생 몇 십만원만 속아 주면, 정말 즐거운 인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5. 좀더 현지인 속으로 파고들어야 했다. 유럽인들이 있는 곳에 머물 것이 아니라, 베트남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현지인들과 같이 돌아다니고, 먹고, 마시고, 이야기를 했어야 했다. 더럽거나, 붐비거나, 부대끼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았어야 했다. 좀더 많은 현지인을 관찰하고, 그들과 교류하고, 함께 살아야 했다. 관광 명소에 혈안이 될 필요가 없었다. 정말 관광 명소를 보려면, 그것을 전문가가 찍은 비디오를 보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좀더 사람 중심으로 갔었어야 했다. 이번 경험은 필리핀 경험과는 다른 무엇을 나에게 선사했다. 다음 여행에 많이 참고하려 한다.

 

(끝)

 


<2009년 3월 10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