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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다이센 산행기 2 (Daisen Japan 2)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2. 7. 30. 11:33

 

 

<도토리켄의 사카이미나토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요나고를 지나 다이센으로 갔다.>

 

<다이센 주차장에서 내려, 너도밤나무 군락지를 거쳐 정상에 올랐다가 내려올 때는 약간 방향을 바꾸어 대선사 절쪽으로 내려왔다.>

 

 

일본 다이센 등산기 2

 

 

2009년 8월 2일 오전 7시 경, 우리 배는 일본 도토리현 사카이미나토항에 접근하고 있었다. 오른 쪽으로 가파른 녹색의 산에는 안개가 몰려왔다 몰려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 산의 정상 부근에는 흰 탑이 있어서 그곳이 관상대이거나 군 시설 중의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 되었다. 배의 왼쪽에서는 노동자 몇 명이 우리 배의 접항을 도와주려고 기다리고 있었고, 바다 위에서는 일요일이라 그런지 낚싯배 몇 척이 한가롭게 떠 있었다. 배의 오른 쪽 산 아래에 마을이 눈에 띄었는데, 우리 시골과 큰 차이는 없어 보였으나 좀더 촘촘하게 붙어있고 붉은 기와집이 많이 섞여있는 것이 한국과는 좀 차이가 있는 듯이 보였다.

 

 

배는 서서히 큰 다리가 있는 쪽으로 접근하더니 드디어 부두에 배의 옆구리를 대기 시작했다. 배의 자체 힘으로도 접항하려고 노력했지만 배에서 던져 준 로프를 육지에서 끌어 당겨 배를 육지에 붙이는 모습이 신기했다. 이런 접항은 거의 20-30분간이나 계속되었다.

 

 

<8월 2일 아침, 배가 사카이미나토 항으로 접근하고 있다. 일본인들이 낚시질을 한다.>

 

 

<사카이미나토항 오른 쪽에 있는 산이 안개에 덮여있다. 신비스러운 느낌을 준다.>

 

 

<사카이미나토항에 있는 다리>

 

 

 

배에서 내린 시각이 8시 반경이고 버스를 탄 것이 9시 경이었으므로 입국 심사를 받는데 서서 기다린 시간이 무려 30분이나 된다. 항상 입국자들로 붐비는 공항과는 달리, 배가 한 척 오면 수백 명이 몰려왔다가, 그 일이 끝나면 아무 할 일도 없는 것이 이런 항구에서 일하는 외무부 공무원인 듯 했다. 몇 번이나 시 당국을 찾아가 빨리 수속을 밟아 줄 것을 요청했다하나 기다리는 시간은 한 없이 긴 듯했다.

 

 

내 차례가 돌아와 외무부 직원에게 가니 모자를 벗으라고 하고, 지문을 찍으라고 했다. 얼굴을 살펴보더니 도장을 찍어주고 가라고 했다. 조금 걸어 나오니 세관원이 내 허리에 있는 가방을 끌러 내려 놓으라고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니홍고 데끼마스까?(일본어 가능합니까?)"라고 물었다. "스꼬시 데끼마스(조금 가능하다)"라고 했더니, 초급 일본어 회화 시간에 배운, "고레와 난데스까?(이것은 무엇입니까?)"등 묻기 시작했고, 나는 "고레와 카메라 데스, 고레와 렌즈데스. 와따시노 슈미와 샤싱오 도루노데스까라(제 취미는 사진 찍는 것이니까요.)"등으로 그 동안 배운 일본어를 좀 연습했다.

 

 

9시에 버스는 출발했다. 일본의 시골은 우리의 시골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모든 것이 깨끗하다는 것이 첫 인상이었다. 거리도 집도 자동차도 깨긋하다! 내 친구도, "야, 일본 참 깨끗하다."를 연발하고 있었다. 버스는 요나고(美子)라는 안내판을 여러 번 지나더니 드디어 10시 20분경 다이센 주차장에 도착했다.

 

 

<다이센 주차장 옆에 있는 잔디밭: 이름 모를 꽃으로 덮여 있다.>

 

 

다이센 주차장에서 가이드가 시간의 촉박함을 강조했다. 1700 미터가 되는 이 산은 현재 주차장의 위치가 해발 약 700미터에 있으므로 실제로 우리가 등반할 높이는 약 1000 미터가 된다. 내려와서 대형마트에도 다녀와야 하고, 온천에 들린 후 배를 타려면 적어도 3시 반까지는 다시 버스를 타야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10시반에 시작하여 3시반에 다시 주차장에 도착해야 하니, 5시간만에 1000미터의 산을 올라갔다가 내려와야 한다. 중간에 쉬는 시간 점심 먹는 시간을 빼면 실제로 3~4시간에 1000미터의 산을 주파해야 한다.  

 

 

이렇게 번갯불에 콩구워먹듯이 사람을 혹사시키는 것이 본래 산악회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내가 선택한 것이니 어쩔 수 없었다. 더구나 대부분의 등산대원들이 젊은이이고, 나처럼 60대인 사람들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또 젊은이들에게 부담이 되거나 뒤쳐지는 것이 싫어서, 나는 선두 그룹에 섞여 가이드를 바짝 따라가기로 했다.

 

 

<다이센이라는 표지석: 주차장 근처에 있다.>

 

 

 

 

다이센 아삐루(appeal: 다이센에 오르는 사람에게 호소함)
다이센의 자연은 모두의 자랑
다이센의 역사는 모두의 보물
자연을 더럽히지 말고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에서 배우고
이 멋진 다이센을
언제까지나 자손에게 물려줍시다.
(필자 번역)
 

 

 

조금 지나니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했다. 안개도 몰려왔다 순식간에 사라졌다. 길 바닥은 돌덩어리로 가득 했고, 경사가 심해서 가파른 길의 연속이었다. 소나무는 아니지만 소나무 종류로 보이는 아름드리 나무가 길 양쪽으로 즐비했으며, 그 아래 키가 작은 관목이 펼쳐져 있었으나, 억수로 퍼붓는 비와 안개, 그리고 뒤쳐지지 말아야한다는 강박관념으로 구경다운 구경 제대로 하지 못하고 오로지 앞 사람의 엉덩이만 보면서 죽기 살기로 걸었다.

 

<등산입구에서 300 미터 지점. 앞으로 2.5키로 남아있다고 되어 있다. 엄청난 소나기와 안개로 등산하기 대단히 힘들었다.>

 



 

 

비가 너무 와서 사진 다운 사진도 찍을 수가 없었다. 여행기를 쓰려면 중간중간 기록을 남겨야 하는데,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카메라를 꺼낼 수가 없었다. 중간에 한 번 잠깐 쉬면서 다른 사람을 찍어 준 것 뿐이다.

 

 

어떤 사람은 아예 비를 맞으면서 그냥 가기도 했다. 판초 우의를 입으면 덥기만 합니다. "어차피 내려와서 옷을 갈아 입을 바에는, 우의를 입을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그들은 말했다. 그들의 말이 맞을지는 모르지만, 한국에서 어럽게 가져온 우의를 두고 비를 맞으며 갈 필요는 없었다. 더구나 목숨과도 같은 카메라가 젖으면 낭패가 아닌가?  

 

 

<육합목 대피소: 안에 들어가 보니 일본 여자 한 명과 아이 한 명이 있었다.>

 

 

하여튼 젖먹는 힘을 다하여 도착한 곳이 6합목 대피소다. 그때 시각이 12시 50분이다. 여기서 포기를 하든지, 푹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비는 부슬부슬 내렸다. 맑은 날씨 같았으면 아래로 펼쳐진 바닷가를 볼 수 있겠지만, 지금은 전방 50 미터 이상을 볼 수 없는 안개낀 날씨다.

 

 

조금을 쉬어도 편히 쉬자고 말하면서 내 친구는 대피소 안으로 들어갔다. 등산로에서 10 미터 정도 떨어진 대피소까지 걸어갈 힘이 없어서 나는 그냥 길옆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안에 들어가 있던 친구가 밖으로 나오더니, 들어오라고 나에게 큰 소리로 자꾸 외쳤댔다. "꼼짝하기도 싫은데, 들어가기는 왜 들어가." 라고생각하며 나는 손가락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런데 또 큰 소리로 그쪽으로 오라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들어가니 좁은 공간에 일본 여자 한 명과 그의 딸로 보이는 어린이가 있었다. "자, 일본말 한 번 해봐."가 내 친구의 말이다. 일본말 시켜보려고 마치 암내난 암캐 따라다니듯 들락거리며 그렇게 나를 불렀나 보다. 일본말을 해보니 말이 통하기도 하고 통하지 않기도 했지만, 의사소통다운 대화는 잘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사람 죽게 생겼는데, 무슨 일본말은 일본말인가?

 

 

<비가 그치고 안개 사이로 야생화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다.>

 

 

10분 이상을 쉬다가 다시 고생길에 접어 들었다. 바닥은 계속 큰 돌 투성이고, 경사는 가파랐으나 비는 완전히 멈추었다. 하지만 안개는 계속 우리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꼬리를 감춘 안개 뒤로 아름다운 들꽃이 모습을 나타냈다. 관목으로 우거진 산을 보지 못하고, 계속 안개만을 봐야 한다는 것이 서글픈 일이기는 하나, 본래 고산지대라는 것이 안개낀 날이 많은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계속 올라가면서 내려오는 일본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가족끼리도 오고, 젊은이들끼리 또는 연인끼리 내려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일본말을 연습하려고 하였으나 연습할 말은 그저 "오하요, 고자이마스(안녕하십니까?)"뿐이었다. 일본인들은 항상 먼저 인사말을 했는데, 그때마다 나도 인사말을 되풀이 말해 주었다. 가끔 "니혼진데스까?(일본인입니까?)"라고 물었는데, 나중에 어떤 책을 읽어 보니, 그 말은 좀 실례되는 말이고, "니혼노  가따 데스까?(일본 분입니까?)"라고 물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길이 험해서, 책에 나와 있는 표현인 "아부나이 데스까라 기오쯔게데 구다사이(위험하니까 조심해 주세요.)"를 몇 번 사용해봤는데, 그 말을 들은 일본인은 모두 큰 소리로 웃었다. "그놈 어울리지도 않는 말을 하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얼마 정도 가면 정상이 나오는지 일본인에게 물어 보려고 했다. 그러나 정상이라는 일본어를 몰라서 물을 수가 없었다. 단어 하나를 모르는 것이 때로는 결정적으로 의사 소통에 방해가 되는구나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래서 한 젊은이를 만나 하는 수 없이 "산쥿뿐 구라이 가까리 마스까?(30분 정도 걸립니까?)"라고 그냥 말하고 말았다. 그랬더니, "10분 정도 올라가시면 편한 길이 나옵니다."라고 능숙한 한국어로 대답했다. 우리는 모두 "와,"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등산하면서 알게 된 것은 많은 일본인이 "안녕하세요."정도의 한국어는 알고 있고, 더러는 한국어를 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한류의 바람이 무섭기는 무서운 모양이다.

 

 

 

 

8합목에 도착했다. 우리 팀의 맨 후미로 쳐진 우리는 4명 정도였다. 우의를 배낭에 넣고, 전열을 가다듬고 다시 위쪽으로 향했다. 왼쪽을 보니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있고 오른 쪽으로 넓은 평지가 펼쳐진다. 안개는 계속 몰려왔다 몰려갔다.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어느 순간에 또 안개가 몰려왔다. 도대체 정신을 차릴 수 없는 날씨다.  

 

 

<왼쪽으로 낭떠러지가 보인다.>

 

 

<8합목 근처부터는 판자로 만든 길이 계속되는데 자연을 보호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등산객 여러분께
지금부터 나무로 된 길이 길게 계속되니
매우 주의하여 통행해 주십시오.
더욱이 나무 길의 주변은 고산식물의 군락지이니
절대로 들어가지 말아 주십시오.

자연을 소중히
자신의 쓰레기는 자신이 가져오세요.
(필자 번역)

 

 

<나무 판자로 된 길이 계속된다: 사실 여기서부터 볼 만한 경치다.>

 

정상 부근의 평지부터는 길에 나무 판자를 깔아 놓았다. 야생화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하니 그들의 자연 사랑은 대단하다고 해야겠다. 안개에 싸인 정상 부근은 대단히 아름다웠다. 어떤 의미에서는 안개가 전혀 없는 것 보다는 오히려 더 아름답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단지 멀리 보인다는 바다와 그 주위가 보이지 않으니 그것이 좀 섭섭할 따름이다.

 

 

안개 속으로 뻗어 있는 나뭇 길은 지난 겨울 소백산에 갔을 때 눈 속으로 나 있는 그 길처럼 그야말로 마치 한 폭의 그림과 같았다. 야생화로 뒤덮인 들판, 그 사이 중간중간 나타나는 관목, 희미하게 나 있는 길 위로 말없이 걷는 등산객, 누가 그림을 그린다한들 이보다 더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가 있겠는가?

 

 

<정상 바로 아래에 작은 건물이 있다. 대피소다.>

 

 

정상 바로 아래에는 대피소가 있다. 바로 그 대피소에 도착한 것이 오후 1시 40분경이다. 우리 팀 중 빠른 사람은 식사를 마치고 하산하고 있었고, 일부는 점심을 먹고 있었다. 나와 내 친구는 대피소 모퉁이로 가서, 버스에서 나누어 준 도시락을 먹었다. 거의 한국식 도시락과 비슷했으나 일본 반찬 몇 가지가 더 들어 있었고, 음식의 양은 좀 많다 싶을 정도였다.

 

 

밥을 거의 다 먹을 무렵, 반짝 햇빛이 비쳤다. 빨리 도시락을 정리해 배낭에 넣고 정상 표석으로 올라가는 단 1-2분 사이에 또 해가 사라졌다. 아이구를 연발하는 순간 또 안개가 몰려왔다. 표석 너머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낭떠러지였고, 왼쪽으로는 출입이 금지된 산이 또 하나가 있었다. 가지 말라면 더 가보려는 것이 한국인 아닌가? 금지선을 넘어서 가는 사람, 이미 올라가 정상에 있는 사람이 더러 눈에 띄었다. 사실 거기에서 발이라도 삐끗한다면 뼈도 추리지 못할 그런 절벽이 있는 산이다. 그러나 죽은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으니, 사고는 없기는 없었나 보다.

 

 

<다이센 정상: "다이센 죠죠"라고 읽는다고 한다. 아무리 피곤해도 정상에서는 웃어야 한다.>

 

 

<멀리 보이는 것이 실제 정상인 듯 하나 위험하여 출입금지 구역이다. 하지만 몇몇 사람은 표지판을 무시하고 거기까지 갔다 온다.>

 

 

 

다른 보통 산과 마찬가지로, 정상은 표지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나도 웃음을 머금고 사진 둬 방 찍었다. 그 옆에는 일본 젊은이들이 모여서 무엇인가를 논의하고 있었다.

 

 

정상에서 절벽이 있는 쪽은 심한 안개가 끼어 있었는데, 안개 사이로 보이는 절벽은 두려움을 자아낼 정도의 깊이와 경사였다. 우리가 올라온 쪽으로는 200-300미터가 들꽃으로 수 놓아져 있었고, 그 너머는 안개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다. 만약 이 곳에서 2-3시간만 더 있었더라면 정말 멋있는 사진을 찍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내려 오는 동안에 태양이 안개를 뚫고 간간이 보였기 때문이다. 항상 "빨리, 빨리"만을 외쳐대는 것이 산악회의 등산 방식이어서 다시는 이런 산악회를 따라가지 않는다고 결심을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 모든 것을 다 잊고, 또 따라가는 것이 인간인가 보다. 그것은 마치 아이 하나를 낳은 여자가 고통이 너무 심하여 다시는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결심해 놓고 또 아기를 낳거나, 군대가서 혹독한 고통을 당한 남자가 그 고통을 아름다운 추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지도 모른다.

 

 

 

 

<수백 미터가 이런 길이다.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이런 사진을 약 50장 정도 찍었다.>

 

 

<판자로 된 길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판자로 된 길 옆은 야생화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정상 부근의 야생화 군락지>

 

 

또 다시 빨리 서둘러야, 오라는 시간에 댈 수 있을 것이다. 억만근이나 되는 몸을 이끌고 하산을 시작한다. 여전히 안개가 온 산을 덮고 있고, 가랑비는 오락가락 한다. 이제 나와 내 친구 이외에는 우리 팀은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어느 정도 내려오니 한 여인이 넘어져 팔이 부러졌는지 문제가 생긴 듯했다. "기러기 투어"라는 명찰을 목에 건 것으로 보아 같은 배를 탄 사람일 것이다. 산이 가파르고 돌이 많아서 두 손을 사용하여 내려와야 하는데, 한 팔을 다쳐서 어이할 것인가? 더구나 어린애와 함께 온 것으로 보이는데, 당사자가 아닌 내가 걱정이 태산같다. 그녀의 얼굴에 두려움의 흔적이 역력하다. 지나가는 한 남자가 손수건으로 팔을 묶어서 목에 끈으로 매어 준다.

 

 

 

 

한참을 내려오니 두 일본 여자가 내려가고 있었다. 이후는 계속 이 아가씨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내려왔다. 한 아가씨는 좀 한국말을 했다. 알고보니 그녀의 형부가 한국인으로 청주에 산다고 했다. 그래서 청주에 와 본 적이 있다는 것이다. 말은 자연스러웠으나 어휘가 부족하고, 발음이 좀 서툴렀다. 일본인의 입장으로는 한국어 자체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발음이 너무 어렵다고 하다. 일본어에는 없는 발음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 처녀들 덕분에 나도 피곤함을 어느 정도 잊고, 일본말을 연습할 수 있게 되었다.

 

 

 

<청주에 형부가 산다는 일본 아가씨. 내려 오면서 내내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산하여 다이센의 끝 자락에 오면 큰 절이 하나가 있다. 절에 기도하는 사람이 더러 눈에 띄고, 노동자로 보이는 사람이 마루에 앉아 있기도 하다. 반가운 것은 나무로 된 홈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인데, 물맛이 끝내준다. 조금 쉬다가 시간이 이미 3시 반이 된 것을 보고 다시 걸음을 재촉하여 평지와 다름없는 길을 걸어 내려온다.

 

 

 

 

<절 바로 아래 돌부처에 이상한 옷을 입힌 것이 인상적이다.>

 

 

다시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것이 3시 50분이다. 이제 다시 버스를 타고 대형 마트로 향한다. 시간이 없으니 온천에서 목욕이나 하자고 하는 사람도 있고, 대형 마트에 꼭 들려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왜냐하면, 마트에서 물건을 사오려고 목록과 돈을 준비해온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30분간 대형 마트에서 머물기로 했다.

 

 

이 대형 마트는 내가 본 것 중 가장 큰 마트였다. 식품을 비롯하여 의류, 전자 제품 등 온갖 것이 갖추어져 있었는데, 들어가서 조금 구경하니 벌써 30분이 지나서 다시 버스로 돌아와야 했다. 여기서도 충분히 시간만 주어진다면 꼭 필요한 물건을 많이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전자 제품에 관심이 많이 갔으나, 단체 여행의 비애라고나 할까?, 그냥 돌아갈 도리밖에 없었다.

 

 

<다시 주차장으로 왔다.>

 

  

 

<우리나라의 홈플러스와 비슷한 대형 매점. JUSCO라는 간판이 보인다.>

 

 

온몸이 이미 땀과 비로 범벅이 되었다가 마른 상태이므로 목욕은 꼭 해야했다. 대단히 큰 목욕탕은 이미 일본인들로 붐볐다. 아무런 준비도 없는 나는 안내원이 준 백엔짜리 동전으로 신발과 옷을 집어 넣고 덜렁덜렁 따라 들어갔다. 그런데 사람들로 붐비는 욕탕 내에는 비누도 없고, 수건도 없었다. 한국에는 비누나 수건이 다 있을 뿐만 아니라, 혹시 없다하더라도 약간의 돈을 주면 수건과 비누를 주는데, 여기는 각자가 알아서 하는 수밖에 없다. 몸이 적셔진 나는 걱정이 앞서면서도 옆에 일본인이 목욕하는 것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는 한 보따리의 샴프, 린스, 수건, 면도기 등을 가져와서 열심히 씻고 있었다. 빌려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혹시 실례가 될지 몰라서다. 하는 수 없이 약 10분간 맨 물만 뿌리고 손으로 몸을 문질렀다. 그리고 같은 팀 중 수건을 가져온 사람의 수건을 빌려 물기를 제거하고 밖으로 나왔다. 내 생애 가장 빠른 목욕 시간이다. 보통은 30분 정도 걸리는데, 오늘은 신기록이다. 단지 10분!

 

 

 

목욕탕에서 너무 일찍 나와서 할 일이 없었다.  카메라를 들고 그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곧 선거가 있다는 벽보가 눈에 띄었다. 큰 사거리로 나가니 불자동차 비슷한 것이 소리를 내고 가기도 했고, 몇 명의 여자들이 자전거를 타고 가기도 했다. 거리는 대체로 한산하다는 느낌이었고, 바로 옆에 미장원이 있어서 유리 안으로 보니 손님이 한 사람도 없었다.

 


<다시 사카이미나토 항구에 돌아왔다. 대합실의 지도가 거꾸로 놓여져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다시 사카이미나토 항구로 돌아와 수속을 밟았다. 벽에 걸려있는 지도가 거꾸로 걸려있는 것이 이채로웠다. 대합실에는 일본인 안내원 한 명과 서양인으로 보이는 여자 관광 안내원이 있었다. 나는 일본 안내원에게 여기서 오사카까지 버스로 가면 얼마나 걸리는지, 요금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싶었다. 왜냐하면 오사카, 교토, 고베 등을 돌면서 구경하고 사진을 찍으려는 계획을 전부터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과는 일본말이 잘 통했다. 오사카까지 5~6시간 걸리고, 요금도 5~6만원 한다는 것이다. 다음에라도 이곳으로 배를 타고 와서 나머지 구경 못한 곳을 구경하고, 다시 오사카로 가서 내가 의도한 대로 구경한다면 좋은 관광코스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6시 50분에 한국으로 향하는 DBS CRUISE FERRY에 올랐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일본에 올 때 다른 곳에서 잤던 사람의 일부가 우리가 묵었던 방으로 내려왔기 때문이다. 결국 게르만 민족의 대 이동을 방불케하는 자리 이동과 다툼이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큰 소리가 나게 되고, 실무 담당자가 불려오고, 필리핀 노동자 3-4명이 자리를 다시 배치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러자 입이 있는 사람은 모두들 한 마디씩했다. 이것을 저쪽으로 옮기고, 저것을 이쪽으로 옮겨라. 여자는 이쪽에서 자고, 남자는 저쪽에서 자라. 아니,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고 우리끼리 알아서 자겠다. 그러다가 고성이 나오고 또 이를 말리느라 다른 고성이 나왔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더니, 아무리 사공이 많아도 배는 바다로만 달렸다. 결국 이런 소동은 일본에서 사온 생선회와 정종, 그리고 한국에서 사 가져갔다가 꼬불쳐 놓은 참이슬이 나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지고 말았다.

 

 

동해에서 샀던 회보다는, 일본에서 산 회가 확실히 더 맛이 있었다. 회가 좀 모자란 듯 했다. 손 대장은 회 시장에 있는 회를 모조리 다 사왔기에 더 사오려고 해도 더 사올 수가 없다고 했다. 하여튼 위대한 업적을 이룬 대원들은 일본에 갈 때보다도 더 열심히 마셔댔다. 드디어 혀가 꼬부라지고, 간혹 큰 말 소리가 들리고, 뭐가 뭔지 모르는 상태가 되었을 때, 술 파티도 끝났다.

 

 

제 2막으로 그 옆에서는 곧장 고스톱 파티가 벌어졌다. 나는 피곤하기도 하거니와 내일 새벽에 일출이라도 촬영할 생각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알게 된 일이지만, 고스톱은 12시가 넘게 계속되었다 한다. 일부 손님이 불을 끄라고 소리를 지르자, 어디 다른 곳으로 가서 또 했다고 하니, 이보다도 더한 임향한 일편단심을 어디에서 볼 수 있겠는가?

 

 

<잔뜩 낀 구름 사이,  단 한 군데만 맑은 하늘이다.>

 

 

8월 3일 새벽 4시 50분에 갑판에 올라갔다. 바람이 차서 다시 내려와 판초를 입고 갑판에 갔다. 갑판에는 이미 몇 사람이 나와서 일출을 기다리고 있었다. 갑판의 모퉁이에서 바람을 피하며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 5시 20분경 드디어 일출이 시작되었다. 하늘 전체는 구름으로 뒤 덮여 있었으나 딱 한 군데만 맑아, 그 틈으로 일출을 볼 수 있었다.

 

 

출렁이는 바닷물에 해는 나올까말가 망설이는 듯 했다. 그러다가 동명일기에 나오는 듯 마치 여물을 먹는, 아니면 물을 먹는 소의 혀처럼 날름 거리더니 순식간에 태양이 쑥 물 위로 올라왔다. 그러더니 쑥쑥쑥 올라가더니 "어, 어, 어"하는 사이에 다시 구름 위로 사라지고 말았다. 실제로 해를 바라 본 시간은 약 10분 정도나 되는 지 모르겠다. 하여튼 그 짧은 순간에 사진을 찍기도 많이 찍었다.

 

 

<그 좁은 공간을 비집고 해가 떠 오른다.>

 

 

 날이 밝았다. 배는 빠른 속도로 동해로 향했다. 배의 양쪽으로 수 많은 해파리 떼가 보였다. 저렇게 많은 해파리가 있으니, 다른 물고기가 살 수 없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중국집에서 먹는 해파리와는 달리 여기 바다에 떠 있는 해파리는 바다에는 해로운 일만 할 뿐, 사람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를 없애는 방법이 아직까지도 없다는 것이 문제다.  

 

 

 

<드디어 동해항에 도착했다.>

 

 

8월 3일 아침 8시반, 아름다운 동해항이 보인다. 멀리 보이는 것이 두타산일 것이다. 오늘 다시 두타산에 들러서 쌍폭포를 보고 오후에 서울로 간다고 한다. 배에서 내리는 대원들은 언제 다이센을 오르고, 언제 그 많은 술을 마셨냐는 듯이 생생한 모습이다.

 

 

그저께와 어제의 일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간다. 그리고 바로 어제의 일이지만 아주 오래 된 일처럼 뇌리에 아롱거린다. 그 짦은 시간에 그 많은 경험을 하다니! 어떤 사람에게는 일 년 동안이나 해야할 일을 단 이틀에 다 해치웠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힘든 등산과 하산의 고통이 다시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추억이라는 마약에 약한 인간의 본 모습을 보여주는 지도 모른다.  

 

 

이제 이 등산대원들은 두타산에서 또 막걸리에 파전을 들며, 새로운 하루를 자축할 것이다. 그리고 흥에 겨워 서울로 가는 버스를 파티장으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인생이란 시작도 끝도 보이지 않는 곡예사의 줄타기와 같다. 장대 하나에 몸을 맡기고 스릴과 서스펜스를 즐기면서 위험과 고통과 싸우며 또 그것을 즐기는 것이 곡예사이다. 나도 모든 고통을 다 잊고 다시 두타산에 올라 다른 대원들과 함께 막걸리에 파전을 즐길 것이다. 그리고 성취와 술에 취하여 온 천하를 다 얻은 양 큰 소리로 외칠 것이다. "오라, 미래여. 가자, 희망이여. 즐기자, 인생이여!"

 

 


(2009년 9월 8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