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발 청도행 선상의 불꽃놀이>
<여행도>
제 2부 가노라 인천항아, 다시 보자 칭다오야
"퉁 따 쿵, 꿍 따르르르"
어디선가 콩 볶는 소리가 나더니 사람들이 데모대처럼 배 밖으로 나갔다. 검은 하늘로 공작새의 날개보다도 화려하고, 강낭콩 빛보다도 찬란한 불꽃이 사방에 튀고 뻗쳐서 퍼져 나갔다. 어떤 불은 터지면서 올라갔고, 어떤 불은 올라가면 터지고 또 터지다가 마침내 한 줄기 연기가 되었다.
몰려든 사람들은 대부분이 중국인이었고, 그 속에 한국인이 듬성듬성 박혀있었다. 디스크 자키는 가만히 있지 말고, 제발 춤 좀 춰 달라고 통사정조로 간청했다. 한국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인들은 "저 놈이 무슨 말을 저리 씨부려 쌌노."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두운 밤에 윙크해보았자 상대방은 모른다는 것을 아마 그는 간과한 듯 했다. 중국인이건 말건 계속 한국말을 해대던 그 디스크 자키는 하는 수 없이 입에 거품을 품고 자기가 노래하고, 자기가 춤추다가 사래가 걸려 기침을 해댔다.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것이 안스러웠던지 몇 사람이 그의 호소에 응하려고 하였으나, 온기를 되살리기에는 택도 없이 분위기가 썰렁했다. 마치 10년은 불을 굶은 시골 아궁이 냉방처럼 소름이 끼치다 못해, 그 소름이 분위기를 잡아먹고 있었다. 2010년 7월 24일 인천발 청도행 선상에서 벌어진 일이다.
인천을 떠날 때부터 한 연인이 자주 내 눈에 띄었다. 그들이 중국인인지 한국인인지 나는 모른다. 아니 알 필요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 말은 안 해도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것, 너와 함께 있는 것 자체가 행복이고, 네가 있는 곳이 바로 천국이라고 느낀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자주 눈에 띈 연인들>
사랑은 위대하다. 사랑은 태양이다. 걷잡을 수 없는 폭발력을 지닌 사랑은 수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도 만들었지만, 또 그 힘으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끊었다. 위대한 사랑의 힘을 생각하며, 나에게는 이제 하나의 추억이 되어 버린, 내 주위를 맴돌다 사라져 갔던 몇몇 여인들이 한 순간 생각났다 사라졌다.
어떤 사람이 말했다. "젊은이는 미래에 살고, 노인은 과거에 산다"고. 노인의 문턱에 들어선 내가 솔직히 말하면, 젊은이가 미래에 살듯, 노인도 미래에 산다. 나이를 먹었다는 것, 머리가 희어지진다는 것 그것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사무엘 울만이 말했다. "젊음은 종종 20세의 청년이 아닌, 60세의 노인에게서 더 느껴질 수도 있다. 아무도 세월의 흐름만으로는 늙지 않는다. 우리는 이상을 버림으로써 늙어간다". 나는 "우리는 이상을 버림으로써 늙어간다"를 "우리는 호기심을 버림으로써 늙어간다."로 바꾸고 싶다. 나는 지적 호기심, 미지에 대한 호기심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가지고 있는 듯하다. 아마 나는 이 호기심 때문에 결국 제 명대로 못 살고 죽을 것이다. 아니, 그것이 내 명일 것이다.
새벽이 되었다. 일출을 촬영하러 다시 배 밖으로 나갔다. 하늘은 모두 검은 구름으로 덮여 있는데, 해가 뜨는 극히 일부분만이 구름이 벗겨져 있었다. "붉은 기운이 치솟더니 하늘에 쟁반 같은 것이 수레바퀴처럼 물 속으로 치밀어 올라 붙으며, 처음 붉어 겉을 비추던 것이 다시 모여, 소 혀처럼 물 속에 풍덩 빠지는 듯 했다. ('동명일기'의 일 부분을 바꿔 사용)". 출렁거리던 검은 바닷물 사이로 쑥쑥, 태양은 힘차게 솟고 있었다. 처음에는 하늘을, 다음에는 바다를 붉게 만들더니, 이 장관을 보는 모든 사람의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급기야 갈매기도, 그리고 갈매기와 갈매기 사이를 지나는 바람까지도 붉은 물감으로 쓱쓱 문질러 나갔다. 이 모든 것이 단 2분 동안에 발생한 일이다.
<칭다오 5.4광장 주변의 잔디밭>
7월 24일 저녁 인천을 출발한 페리호는 다음 날 아침 칭다오에 도착했다. 칭다오(청도)라! 6개월전 내가 한 달 동안 중국어 연수를 받던 곳이 아니더냐? 낯익은 칭다오가 아닌 왜 그런지 서먹서먹한 칭다오였다. 낯선 곳을 처음 갔을 때 느끼는 심정, 즉 기대감, 흥분, 어색함이 물밀 듯이 나를 감싸고 돌았다.
택시를 탔다. "똥 하이 일루, 후이두 삔관(东海一路,汇都宾馆)"이라고 말하는 내가, 군대 가죽 구두를 신고 우주에서 온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택시에서는 계속 중국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택시 운전수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어떻게라도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여 돈을 벌어보려는 부리부리한 운전수의 눈이, 백미러에 보였다 말았다 했다. 중국어를 연습해보려던 나도 입을 꽉 다물고 말았다.
후이두 호텔의 사람들은 6 개월 전의 그 사람들이었다. "하우지우 부찌엔러(오랜만입니다.)" 프론트 데스크의 안내양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나도 똑 같은 말로 대답했다. 그리고 나서 나는 우선 1월에 나의 가정교사였던 칭다오 대학생 쥔치앙에게 전화를 걸어 두 시간 뒤에 만날 수 있는지 물었다. 그는 기쁜 마음으로 오겠다고 대답했다.
호텔 근처에 한국 식당이 있었다. 이 집은 6개월 전에 내가 몇 번 들렸던 집이다. 나는 쥔치앙에게 나의 아내를 소개시켰다. 6개월 전보다 그는 한층 어른스러워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나에게 선물을 내밀었다. 땅콩 한 봉지와 생선 뼈를 튀겨 말린 바삭거리는 식품이었다. 나도 한국에서 준비해간 남성용 화장품을 그에게 건네 주었다. 그는 그것이 비싸지 않는지, 그것을 받아도 되는지 몇 번이나 물었다. 그가 학생이고, 그의 아버지가 선생님임을 알고 있는 나는 그에게 약간의 돈이 들어있는 봉투도 건네 주었으나, 그는 돈은 끝내 받지 않았다.
<칭다오 해변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있다.>
점심을 먹고 샹그릴라 호텔 커피숍에서 커피를 한 잔 마셨다. 셋 이서 커피 한 잔, 차 한 잔, 그리고 우유 한 잔 마시는데 한국 돈 약 2만원이 나왔다. 쥔치앙은 값이 비싼 것을 보고 눈이 휘둥그래졌다. 차가 떨어질만 하면 종업원이 계속 물을 부어 넣어 주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넉 잔의 차를 마시게 되었다.
호텔에서 나와 해변을 걸었다. 해변에는 중국 각지에서 몰려든 관광객이 들끓었다. 겨울에는 사람을 구경할 수 없을 정도로 한산한 해변이었다. 하늘에는 사방에 연이 날고 있었고, 건물이 높은지, 아니면 구름이 낮은지 몰라도 건물의 윗부분은 구름이 차지하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천막성에 들렸다. 지난 겨울에 갔었던 곳으로 높은 하늘에 덮개를 만들어 일년 내내 비가 들이치지 않게 만든 먹자 골목이다. 내가 그곳을 들렀던 진짜 이유는 사실 다른 데 있었다. 칭다오 맥주 박물관 근처에 있는 술집에서 "원장"이라는 술을 먹어보고 싶어서 였다. 1월 달 그곳에서 먹은 술맛을 내내 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날 먹어본 원장의 맛은 달랐다. 씁쓸하고 맹맹했다. "아야, 술은 계절과 분위기를 타는구나." 그날 새삼 느꼈다.
<천막성의 하늘>
<천막성 거리에서 연주를 한다>
<원장을 파는 술집들>
저녁이 되니 피로가 몰려왔다. 하지만 잠을 자기 전에 한 가지 정리해 두어야 할 일이 생각났다. 패키지처럼 좀 편한 여행은 아내와 몇 번 다녀 본 적이 있지만, 이번처럼 배낭여행을 아내와 떠난 것은 처음이었다. 힘든 여행을 하다보면 알게 모르게 짜증이 나고 신경질을 부릴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부부가 여행을 하다가 싸웠다는 이야기를 부지기수로 들었고, 심지어는 여행을 한 후 이혼했다는 말도 있어서 내심 불안하기도 하고 초조하기도 했다.
사실 배낭여행을 가자고 내가 아내에게 말했을 때, "그런 힘든 여행은 싫으니, 당신 혼자 다녀오시오. 나는 편안한 여행이나 가겠소"라고 말하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게 웬 날벼락이냐? 아내는 기다렸다는 듯이 "Yes." 한 마디로 간단히 1심 법원에서 사건을 종결하고 망치 세 번 치고 말았다. "아이구야, 웬 일이라냐?" 나의 웃는 얼굴 이면에 간 떨어지는 소리와 심장 멎는 소리가 따귀를 잘못 맞아 귓방망이 얻어 맞는 소리만큼 컸다.
나는 입술을 깨물고 되새기고 되새겼다. "참아야 하느니라. 무조건 참아야 하느니라. 죽어도 참아야 하고 살아도 참아야 하느니라." 불꺼진 천장에 참을 "인"자가 도배되어 있었다. 서로의 화목을 위해, 서로의 안녕을 위해, 이혼을 당하지 않기 위해, 내 머리 속에는 오로지 한 말만이 각인되어 있었다.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
*"인내"하니까 생각이 난다. 옛날 덩달이 씨리즈에서: 선생님이 덩달이에게 "인내"를 넣어서 짧은 글을 지어오라고 했다. 덩달이가 길에서 돈을 주었다. 할머니가 덩달이에게 하는 말: "그 돈 인내."
<개를 데리고 나와 두 발로 서는 연습을 시키는 아저씨>
<칭다오 잔교>
(2010년 8월 18일 작성)
|
'Chin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장 4 "둔황에서 트루판으로" (Xinjiang 4) (0) | 2012.07.31 |
---|---|
신장 3 "칭다오에서 서안까지" (Xinjiang 3) (0) | 2012.07.31 |
신장 1 "흐르는 바람처럼" (Xinjang 1) (0) | 2012.07.31 |
칭다오에서 (In Qingdao) (0) | 2012.07.31 |
운남성 10 "석림과 구향동굴" (yunnan 10: Shilin and jiuxiang cave) (0) | 2012.07.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