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 제 6부
남산 목장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좋은 빛이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어제 밤 별이 무더기로 쏟아져 내려 잠을 잘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찬란한 빛이 몽고빠오를 비추고 있었다. 눈을 들어보니 저 멀리 산 꼭대기를 붉게 물들이더니 아래로 아래로 내려와 빛은 순식간에 산 전체를 물들였다.
카메라를 들고 근처를 거의 한 시간 가량 서성거렸다. 옆에서 비스듬히 비추는 태양은 산을 푸근한 고향의 정든 산골로 만들더니, 이내 여인의 풍성한 엉덩이로 만들었다.
한 사나이가 말을 타고 가다가 멈추고 먼 곳을 바라본다. 자신의 뒤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말은 "앞으로 가자"하고 사나이는 무엇인가 미련이 남은 듯 좀처럼 눈을 떼지 못한다.
몇 그루 야생화가 태양빛을 받고 있다. 뜨는 태양은 언제나 자연에게 자신을 뽐내지. 꽃잎에 맺힌 이슬 방울에 태양이 녹아 있었다. 태양은, 초롱초롱한 이슬을 붉고 희게 만들더니 결국 그 속에서 생을 마감하듯 폭발한다. 그래, 이런 것을 자연의 조화라고 하는 거야. 이런 것이 신비야.
파르라니 한 줄기 연기가 피어 오른다. 연기는 하늘로 솟더니 다시 옆으로 퍼져 두둥실 떠간다. "파르라니 오른 연기,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럽다."(조지훈의 "승무" 변용). 양떼는 풀 숲에 숨어 모습 찾기 힘들고, 저 멀리 낮게 깔린 몽고빠오가 단아하게 뿌려져 있다.
사람들은 말을 타고 간다고 했다. 말을 타고 폭포로 간단다. 배낭을 모두 앞으로 걸치고 간다. 왜? 뒤에는 마부가 타야 하니까. 이른 아침에 말을 타는 것은 청승맞기까지 하다. 괜히 말에게 미안하고 자신이 부끄럽기까지 하다. 말을 걷게 하고 너도 걸어라. 그것이 이 아침에 어울릴 것 같다.
결국 모두 말을 타고 갔다. 나는 말을 두 번째 타본다. 운남성에서 타본 것은 채 10분이 안 되었다. 오늘은 왕복 한 시간 반이나 탄다. 내 엉덩이 뼈와 말의 등뼈가 부딪쳤다. 나도 아프지만 말 못하는 말은 또 얼마나 아플까? 아무리 엉덩이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도 말뼈와 내 뼈를 피하게 할 수는 없었다. 내 다시는 말을 타지 않을 것이다, 내 엉덩이에 살이 토실토실 찔 때까지는.
드디어 남산 목장의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몇 사람은 말을 타고 오르고 나머지는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오른다. 푸른 하늘에 구름이 둥실 떠간다. 구름이 초록 목장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말을 탄 사람들의 손에 뭔가가 들려있다. 자세히 보니, 눈을 비비고 다시 보니-----"맥주". 아이구, 이 세상에 맥주가 어울리지 않는 곳은 정말 "맥주 집"밖에 없으리라.
이 풍경에 무슨 말이 필요하리. 지금부터는 말(馬 and/or 言)이 필요 없는 날이다. 간단한 어구로 여행기를 대신한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지금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지만 바람이 불고 사랑은 가고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
산에는 풀만 있는 것이 아니었네. 어렸을 때 무 밭에 가본 적이 있었네. 누가 여기에 저리도 잔잔한 노란 꽃을 뿌려 놓았을까?
<저 멀리 천산의 博格达(박격달: 보거다)봉이 보인다. 해발 5445미터로 현 지점에서 100키로 이상 떨어져 있는데도 눈으로 덮인 정상이 선명하게 보인다.>
(석양의 결투인가?)
(아이구, 어제 넘어진 사람 또 넘어지네. 이것은 일사부재리가 아닌 일사양재리 법칙이라고 한다.)
(버스 안에서 본 바깥 들꽃)
우루무치로 돌아오는 길 양쪽으로 끝없이 들꽃이 피어 있었다. 흰 꽃이다 싶더니 노란 꽃으로, 다시 흰 꽃으로 변했다. 사람 키보다도 더 큰 풀밭에 강낭콩보다도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더니 한줄기 바람으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오늘 본 산과 나무와 들 꽃은 내가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시원하고, 가장 놀랍고,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내 앞으로 우루무치를 100번은 더 와야 한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 남산 목장 일대를 걸어 보고 싶은 욕망에서다. 우리가 걸은 것은 고개 하나와 반만을 걸었을 뿐이다.
*남산목장: 우루무치 남쪽에 있는 산으로 여름에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곳을 말한다. 주로 카자흐스탄 사람들이 운영하고 있다. 보통 5월에 왔다가 추위를 피해 10월에 다시 내려간다. 우루무치의 3대 관광명소(천산 천지, 박물관, 남산목장) 중의 하나이다. 버스 타고 와서 아래에서 있다가 그냥 가면 안 된다. 반드시 트레킹을 해야한다. 설악산에 와서 비선대만 보고 가느냐, 아니면 천불동 계곡을 거쳐 소청봉 대청봉을 걷느냐의 차이와 같다.
(2010년 8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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