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Beautiful the Nature is! - Albatross

China

중국 티베트-라오스-인도 7 "간체와 시가체"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2. 8. 3. 01:11

 

티벳 행기 07

 

-간체, 시가체-

 

 

<양주오용추오 호수에서 간체, 시가체로>

 

 

 

 

양주오양추오 호수를 끼고 도는 길은 대호수와 대평원을 돌고 도는 평화로운 길이다. 동서의 길이가 130키로가 되는 이 호수를 따라가면 호숫가에서 풀을 뜯는 양 떼와 소 떼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들판에서 농부들이 분주하게 일하다가 손을 흔들어 주기도 하고,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한다.  

 

 

 

 

드디어 왼쪽으로 호수를 멀리하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간체 쪽으로 향한다. 우리를 실은 버스는 갈지자를 그으면서 위로 위로 치 솟는다. 점점 고도는 올라가고 왼쪽으로 멀리 흰백의 설산이 모습을 들어냈다가 바로 사라진다. 설산 아래에는 장마 때 큰 물이 흘렀는지 제법 골이 깊게 패였다. 그러나 그곳을 흐르는 물은 쫄쫄 거리며 흘러가는 적은 양의 빙수다.  

 

 

 

 

중간 중간 보이는 설산의 모양은 다양한데,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돌을 깨는 쇠망치를 닮았다고 할까, 아니면 대봉감을 닮았다고 할까, 찔리면 피라도 날 것 같은 뾰죽한 산이었다. 아래에서 위로 치솟는 삼각뿔의 모서리도 얼마나 날카로운지 손을 대면 손에서 피가 날 것 같고, 종이를 대면 "슥싹" 소리를 내며 두 동강이가 날 것이다. 흰색 드레스를 입은 배우가 캄캄한 무대에 스포트 라이트를 받으면서 등장하듯, 석양을 받은 산의 정상이 눈부시게 빛난다. 태고적 그대로의 모습으로 순백색의 위용을 자랑하는 저 산은, 수 만년 세월동안 저렇게 고고하게 청순함을 유지해 왔을 것이다.  

 

 

 

 

 

그 지점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고개가 나타나고, 고개 오른 쪽으로 빙하가 보인다. 빙하가 있는 이 산은 "나이친캉쌍"설산. 팻말에 7191미터라고 써 있다. 내가 서 있는 지점, 즉 저 팻말이 서 있는 지점이 해발 5000미터다. 그러니까 5000미터에서 7000미터를 바라보는 셈이다.

 

 

고개에는 수 많은 타르초가 바람에 나부낀다. 버스에서 내린 지점에서 약 30미터만 올라가면 계곡의 앞 쪽과 뒤 쪽이 모두 보인다. 그러나 내가 지금 서 있는 이곳 즉 해발 약 5000미터 지점에서 30미터를 오른다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이다. 아주 천천히 호흡을 하면서 달팽이 기어가듯 죽을 힘을 다해 걸어야 한다. 

 

 

고개 정상에서 바라보는 카롤라 빙하가 눈 앞에 펼쳐진다. 눈 녹은 물이 사방에서 흘러 내린다. 그 물이 모여 웅장한 물 소리를 내며 흐른다. 바로 앞에 있는 저 산의 높이가 2000미터라는 것이 믿겨 지지가 않는다. 이런 곳에서는 한 시간면 갈 수 있다고 생각되는 곳이 실제로는 며칠이 되어도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고개에서 바라본 빙하. 손에 잡힐 것 같다.>

 

 

<고개 정상의 타르초>

 

 

<고개에서 간체 쪽으로 즉 아래 쪽으로 한 참을 걸었다.>

 

 

우리는 고개 아래 쪽으로 걷을 수 있는 데까지 걸어 보기로 했다. 왼쪽으로 눈 녹은 물이 고여 늪지대가 형성되었다. 조금 자라던 풀이 추위에 더 자라지 못하고 노란 색으로 바뀌었다. 오늘 쪽으로 카롤라 빙하를 보면서 걷는다.  다리에 힘은 이미 빠져있고, 발걸음도 힘없이 그냥 관성에 의해 터벅터벅 걷는다. 지나가는 차도 거의 없고, 찬바람만 옷깃을 스친다. 이 황량한 골짜기에 검은 새가 나타나 하늘로 치솟다가 사라진다. 무슨 먹이감이 있다고 저렇게 허공을 가로질러 나는 것일까? 그들의 기개와 용기가 가상할 뿐이다.  

 

 

 

 

고개에서 조금 내려오면 좀더 빙하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아늑한 광장이 있다. 그 앞에는 갖가지 물건을 파는 노천 가게가 있다. 팔 물건이 놓여있는 목판 위로 차가운 가을 햇빛이 강렬하게 내리 비친다. 심술궂은 바람이 목판 위에 놀다가 사라지자, 두 꼬마가 깡충깡충 뛰어 왔다. 한 여인이 내미는 갑작스런 선물에 어안이 벙벙하다.

 

 

그 목판 아래 구공탄 장사를 했어도 십 년을 했을, 시커먼 피부의 원주민이 장기를 두고 있다. 장기를 두는 두 사람의 눈빛이 독수리의 눈빛보다도 날카롭다. 자신의 생사가 걸려있는 듯, 눈이 빠져라 장기판을 응시하는 그들의 머리 위로 따가운 가을 빛이 말한다. "너희들 나를 무시하는 거여. 끝까지 나 하고 한 판 붙어 보자는 거지."  하지만 그들은 미동도 하지 않고 장기판을 주시한다.

 

 

<중간에 내려 마지막 설산을 본다.>

 

 

 

 

한참을 가면 또 하나의 호수가 나타난다. 물에 광물질이 녹아 있어 쪽빛을 띠는 것은 얌주오용추오 호수나 마찬가지다. 수력 발전용 인공호수다.

 

 

 

 

 

자동차는 이제 누런 들판을 달린다. 여기저기 놓여있는 들판 위의 짚단이 어렸을 때 보았던 강변 자갈처럼 깔려있다.  마지막 저녁 빛이 대지를 황혼으로 물들이고, 듬성듬성 보이는 농부들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이제 하루를 마감할 때가 되었음을 알린다. 간체의 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칠흑같이 어두운 밤, 바로 2011년 9월 30일 밤 8시였다.

 

 


간체

 

 

 

 

 

창을 타고 비스듬히 들어온 아침 햇살이, 간체 호텔의 식탁 위에 화려한 빛을 뿌린다. 춥고 음산한 외부와는 달리 밝고 화사한 분위기다. 먼 이국 땅에서 잠시 나마 이런 분위기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은 작아보이지만 큰 행복이다.    

 

 

<간체 시내: 경운기 뒤에 소를 매어달고 간다. 소가 저항을 했다가는 코가 찢어져 떨어져 나간다.>

 

 

간체의 풍경은 60년대 후반 또는 70년대 초의 한국과 많이 닮았다. 자동차가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경운기를 타고 돌아다녔다. 사람들은 따뜻한 양지 쪽에 웅크리고 앉아 자기들이 탈 경운기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여인네들은 검고 투박한 치마가 대부분이다. 먹고 사는 것이 너무 힘들다.  

 

 

 

 

간체의 최고의 구경거리는 바이쥐스(白居寺: 백거사)라는 절이다. 로운리 플래니트의 설명은 이렇다. "백거사는 1418년 건립되었으며 한 때 시짱 불교의 서로 다른 세 종파의 15개 사원을 포함하기도 했다. 중앙 법당에는 훌륭한 벽화와 여러 상들을 볼 수 있으며 분위기가 매우 경건하다. 대법당 왼쪽에는 시짱에서 가장 큰 사리탑이자 빛나는 흰 바탕 위에 금빛으로 마무리된 스완타의 모습이 보인다. 15세기 이 지역을 다스리던 군주가 세운 이 9층짜리 탑의 광경은 라싸의 푸타라궁과 함께 잊을 수 없는 경험으로 다가 올 것이다. 이 스완타를 이루는 법당은 108개로 되어 있다."

 

 

<백거사에서 가장 유명한 스완타(十万塔: 십만탑)>

 

 

<절 내부의 상>

 

 

 

 

 

 

<스완타 근처의 두 여인>

 

 

백거사 주위의 코라를 돌았다. 절도 절이려니와 주위의 풍경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백거사 탐방 코스>

 

 

 

 

우선 처음에 보이는 집이 눈길을 끌었다. 이 사진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이 풍경을 보고 나는 상상해본다. "소똥을 벽에 발라서 말리는 구나. 말린 소똥은 마당에 쌓아두거나 담 위에 올려 쌓아 두는 구나. 약 4000미터의 고도이어서 산에 나무가 없어서 땔감으로 쓰려고 그러겠지.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소똥을 잘 말려 두어야 할거야. 이곳에서는 소와 말을 함께 키우나 보네. 이런 환경에서 화분에 꽃도 키우네. 저 많은 꽃을 키우려면 고생이 많을거야. 창은 우리처럼 남쪽으로 향했네. 집에 비해 창문이 너무 커. 아마 창문을 크게 만들어 햇빛을 최대한도로 많이 받아들이려고 그러나 봐. 소와 말이 살이 찌지 않은 것은 먹을 풀이 많지 않아서 일거야. 짐승들의 털이 까칠까칠하고 얼굴 모양도 좀 이상하네. 역시 사람이나 짐승이나 잘 먹어야 반지르하게 윤이 흐르지."  

 

 

 

 

 

<소의 얼굴이 좀 이상하고 털이 까칠하다.>

 

 

 

 

강아지 한 마리가 소만 따라 다녔다. 그러더니 소가 먹이를 먹자 물끄러미 바라본다. 시험삼아 소가 먹는 음식이 들어 있는 통의 위치를 좀 바꿔 놓아 보았다. 강아지는 또 따라가서 물끄러미 소를 쳐다 보았다. 주인이 강아지를 쫓아냈다. 잠시 후 강아지는 다시 그 자리로 와서 또 소를 응시한다.  어린 강아지의 소에 대한 눈물겨운 짝사랑일까?

 

 

 

 

아주머니가 통에 물을 담아 나오더니, 통에 든 물로 소의 젖꼭지를 대충 씼었다. 그러더니 바로 그 통에다가 젖을 짜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좀 나오다가 얼마 안 가서 젖이 나오지 않았다. 아주머니는 더욱 힘차게 손놀림을 했지만, 젖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아주머니는 빈통을 바라보더니, 한숨을 쉬면서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한 참을 가다보니 우리가 타고 왔던 버스가 보였다. 그러고 보니 기사 아저씨의 고향이 바로 이 곳 간체였다고 말한 것이 기억났다. 들어가 보려고 대문 앞에 섰다. 송아지만한 개가, 비록 묶여 있다고는 하나 앞발을 하늘로 들어 올리고 날 뛰며 잡아먹을 듯이 나를 쳐다보며 짖어 댔다. 한참을 서 있으니 한 아가씨가 와서 무슨 이야기를 하더니 들어갔다. 이러다가 개의 끈이 끊어져 내가 개밥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나는 슬금슬금 꽁무늬를 빼고 가는 길을 재촉했다. 나중에 이 사실을 기사에게 말했다.기사는 이렇게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조금 있다가 나갔더니 안 계셨습니다. 우리 집에 들어 와서 차나 한 잔 하고 갔으면 좋았을 것을......"

 

 

 

 

 

어디에서 먼지가 뿌옇게 날렸다. 다가가서 보니 여자는 삽으로 곡식을 퍼서 남자가 들고 있는 체에다가 부었다. 남자가 이 체를 흔들면 그의 오른 쪽에 있는 풍구에서 바람이나와 곡식 껍데기가 겨울 눈보라처럼 사방에 흩어졌다. 곡식 껍질과 먼지가 태양에 역광으로 비쳐 겨울 안개처럼 일대를 뿌옇게 만들어 놓았다.

 

 

신기하다. 나는 여태까지 내 글에서 "체"라는 명사를 사용한 적이 없다. "간체에서 체질하는 것을 보니 체증이 생긴다. 간체는 간을 체질한다는 뜻인가? 그렇다면 시가체는 담배를 체질하는 것이냐? 주체할 수 없이 "체"로 끝나는 말이 내 뇌하수체를 떠돌아 시체말로 나를 변사체로 만들고 있다, 지금, 도대체 내가 쓰는 이 글자는 무슨체의 글자지? 맑은 고딕체야." 갑자기 내가 미쳤나 보다. 한 글자는 다른 글자를 부르고  그 글자는 또 다른 글자를 부르네! 나는 자주 이런 병에 빠진다!  "체, 지가 무슨 체게바라인 체하네."

 

 

 

 

다시 백거사 앞으로 왔다. 전사자 영웅탑이 서 있다. 19세기 영국군이 여기를 침략하자 주민들은 군대를 조직하여 침략군에 대항했다. 결과는 전원이 영국군에게 몰살당했다. 그들은 죽었으나 그들의 투쟁 정신은 여기 간체 사람들에게 대대로 전해지고 있다.  

 

 

 

<점심 때 맛있게 먹었던 국수. 뚝배기에 자기가 원하는 음식을 골고루 담아서 여자에게 건네 주면, 여자는 이것을 끓여서 갖다 준다. 최근 들어 가장 맛있게 먹은 음식 중의 하나다. 뚝배기가 너무 작은 것이 불만이라면 불만이다.

 


 

시가체

 

 

<자전거 동상에 아이가 앉아 동상을 바라본다. 그 앞에 앉아 있는 여자 아이의 얼굴이 심상찮다.>

 

 

티벳(시짱)의 면적은 우리 남한의 약 11배, 인구는 약 300만명이다. 시가체는 여기 티벳에서 라사 다음으로 큰 도시다. 3900미터에 위치해 있고, 인구 8만이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는 부산이다. 부산의 인구는 약 350만명이다. 인구 밀도를 생각해 보라. 티벳은 대부분이 황무지로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다.

 

 

<시가체의 최고의 사원 "짜서룬뿌쓰 사원">

 

 

로운리 플래닛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 이 절은 시짱 문화의 거대 여섯 거루파 승가대학 중 하나다. 1447년 총카파 조카가 지은 이 사원은 작은 마을 하나 정도의 크기로 둘러보는데 반나절 또는 그 이상이 걸린다. 미륵전에는 세계에서 가장 넓게 금박을 입힌 27미터 짜리 거대한 미륵불이 있다. 또한 이 사원은 4대 및 10대 판첸라마의 화려한 무덤으로 유명하다. 4대 판첸라마의 무덤에는 85키로의 금과 보석이 사용되었다."

 

 

총카파, 판첸 라마, 거루파 뭐 이런 단어가 나오면 이제는 머리가 아프다. 웬만한 불당은 다 들어가 보았으나 그 불당이 다 그 불당이어서 비교할 수가 없었다. 이곳이 이번 여행 중 우리가 방문한 마지막 사원이다.  

 

 

 

 

나는 사찰 내부의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골목에 관심이 많았다. 석양이 한 쪽 벽을 비추면, 그 벽은 반대쪽 벽에 반사되어 응달을 훤히 밝혔다. 마치 반사판을 사용하여 사진을 찍는 느낌이었다. 여기에서 골목 사진을 정말 많이 찍었다. 위 사진의 왼쪽 벽을 보면, 반대편 벽의 빛을 받아 응달 같지 않다. 이런 빛이 있는 사진이 나는 좋다.

 

 

 

 

 

 

 

<사찰 밖으로 나와 걷던 중 찍은 사진. 나의 그림자가 보인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시내를 돌아 다녔다. 교인들이 불 속에 무엇을 던지면서 돌고 있다.>

 

 

<이른 아침 시장에 사람들이 모였다.>

 

  

<양을 잡아 내장을 빼서 걸어두고 있다. 조금 으시시 하다>

 

(2011년 12월 1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