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Beautiful the Nature is! - Albatross

China

중국 티베트-라오스-인도 8 "띵르"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2. 8. 3. 01:16

 

 

 

티벳 여행기 08

 

-올드 팅리: 띵르(定日: 정일)-

 

 

 

 

 

2011년 10월 2일 11시 올드 팅리로 출발했다. 318번 국도를 타고 달린다. 이 길은 네팔까지 연결되었고 우정공로(友情公路)라고도 한다. 시가체가 해발 3900미터, 우리의 목적지인 팅리는 4250미터다. 모든 회원들이 고도 적응은 끝났기에 고산증으로 고생하는 사람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티벳의 다른 지방과 마찬가지로 어디를 가나 산은 검게 벌거 벗었고, 강이 있는 근처에 약간의 풀이 자랄 뿐이다. 서양인으로 보이는 오토바이 부대가 굉음을 내면서 지나간다. 그때 "모두 내리라"라는 소리가 들린다. 검문소가 있기 때문이다.

 

 

티벳 여행을 하려면 미리 티벳 여행사에 허가를 의뢰하여 허가증을 받은 후 반드시 가이드와 함께 여행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티벳 여행의 필수 조건은 1)허가증 획득, 2)가이드 고용이다. 라사만 다녀오는 사람은 몰래 몰래 이런 절차를 밟지 않는 사람이 있지만, 일단 라사를 벗어나면 요소요소에 경찰이 배치되어 허가증을 검사한다. 허가증은 여행자가 아닌, 여행사 직원이 가지고 다닌다. 여행자는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여권을 보여주고 허가증에 적혀있는 이름과 대조를 한 후 통과시킨다. 따라서 티빗 여행을 다닐 때는 총을 든 군인이나, 공안 등을 보고 "쫄게" 되어 있고, 아무리 좋은 구경이라도 "뭐, 이런 데가 있어?"라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이렇게 멋진 세계의 지붕을 사람들이 많이 찾지 못하는 것도 다 이런 이유가 있어서 그럴 것이다.

 

 

<검사하는 곳 옆에 있는 표석: 이 근처의 도시인 라쯔(拉孜)에서 샹하이(上海) 인민 광장까지 5000키로가 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허가증 검사소의 사진도 찍으려고 하였으나 무장 군인들이 무서워 찍을 수가 없었다. 그저 변두리만 찍는다.>

 

 

<띵르까지 가려면 큰 고개를 두 번 넘어야 하는데, 첫 번째 고개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광경>

 

 

라쯔 시내를 벗어나서 한참 달리면 해발 5080미터인 두 번째 고개에 도착한다. 자동차 몇 대가 정차하고 있었는데, 중국인 한 그룹이 갑자기 공중에 뛰어오르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이것도 무슨 유행이라고 이러한 공중 부양은 요원의 불길처럼 퍼져, 공중으로 뛰어오르지 않는 자가 바보 취급당하는 처량한 신세가 된다.

 

 

 

숭어 뛰니 망둥어도 뛴다라고 할까, 넷북 뛰니 주변기기도 뛴다고 할까, 전세 값 뛰니 월세도 뛴다고 할까, 좌우지간 너도 뛰고 나도 뛰고, 모든 사람들이 제주도 앞 바다 백갈치 떼 날뛰듯이 창공으로 뛰어오르더라. 급기야 어떤 사람은 버스 지붕으로 올라가더니 "와자자" 하면서 하늘로 치솟는데 공중으로 올랐다가 내려오는 시간이 영겁인 듯이 여겨지더라. 어떤 이는 스파이더 맨을 보았다고도 하고, 어떤 이는 바다 속에서 헤엄치는 유령을 보았다고도 하더라. 그러자 어떤 이가 실성을 했는지 티벳 경전이 적혀있는 종이 뭉치를 한  없이 공중에 뿌려대니, 휘몰아 치는 바람에 눈이 오는지 우박이 오는지 분간이 되지 않더라. 이에 도취된 사람들은 세상 다 살았다는 듯 기리기리 날뛰며 괴성을 지르니 제 정신인 사람은 그 모습이 애틋하고 안타까워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하겠더라. 1919년 3. 1 만세 정신을 이어받은 대한 민족의 후손은 어디가도 티가 팍팍 나더라.

 

 

 

 

 

 

 

 

드디어 띵르시앤(定日县:정일현) 간판이 보였다. 여기에 내려서 입장권을 구입해야 한다. 조그만 마을에 호텔이 몇 개 있었고, 나머지는 무슨 서부 영화 세트장 같았다. 앉아있는 사람이나 서 있는 사람 모두 겨울 복장을 하고 있었다. 깨끗함이란 잘 사는 사람들의 사치다. 춥고 배고픈 사람에게는 깨끗함이란 그저 일상의 친구일 뿐이다. 정말 세상에 먹고 사는 일만큼 중요하고 위대한 일은 없다. 나머지는 다 사치다!

 

 

 

 

 

 

본격적으로 올드 띵르로 가는 기가 막힌 도로가 나타난다. 오늘 쪽으로 광활한 들판이 있고 그 너머에는 달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산이 끊임없이 나타난다. 산 모양은 칼날처럼 날카롭기도 하고, 사막처럼 펑퍼짐하기도 하고, 경주에 있는 왕의 묘처럼 삿갓 같기도 하다.

 

 

들판을 바람처럼 가르며 달리는 버스는 곳곳에 나타나는 장애물에 애를 먹기도 한다. 양떼가 나타나 길을 막기도 하고, 모래 바람이 일어나 시야를 가리기도 한다. 무섭게 달리는 오토바이에 급정거를 해야 하기도 하고, 갑자기 나타나는 반대편 차량에 가슴을 쓸어 내려야 한다.  

 

 

 

 

 

<우리가 묵은 게스트 하우스>

 

 

드디어 목적지인 올드 띵르의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한 것은 오후 6시 반, 해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각이었다. 게스트 하우스는 조그만 방이 일렬로 다닥다닥 붙어 있었는데, 시골치고는 그럭저럭 잘 만한 집이었다. 마당 가운데 우물이 있었는데, 게스트 하우스 투숙객뿐만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물통을 들고 와서 물을 길러 갔다.  소가 햇볕을 쪼이고 있었고, 빨래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동네 아이들이 구경거리가 나타났다는 듯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아직도 해가 많이 남아 있어 거리로 나오니 여기는 개들의 천국이다. 주인도 없는 듯이 보이는 온갖 개들이 떼지어 다니면서 사람 무서운 줄 몰랐다. 날씨가 싸늘해서 인지 목도리를 두르고 두꺼운 잠바를 입은 사람이 자주 눈에 띄었다.

 

 

 

 

<왼쪽에 뾰족한 산이 에베레스트 산이다.>

 

 

해는 서산에 가까이 왔고 하늘은 맑았다. 강물은 서서히 흐르고 그 너머 들판이 펼쳐져 있다. 그 너머  띠를 이루는 설산이 햇빛을 받아 희미하게 빛난다. 직선거리 약 150키로 정도인데, 그저 3-4키로 떨어져 있는 것 같다. "저 산이 에베레스트 산이다, 저기 왼쪽에 있는 산" 누군가의 괴성에 모두 그쪽을 바라본다. 히말라야 산맥 중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 산이라! 에베레스트 산은 네팔에 있는데 왜 여기서 보이는 걸까?

 

 

사실 에베레스트 산은 중국과 네팔의 국경에 있으니까 중국이건 네팔이건 어디를 가도 볼 수 있는 산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주로 네팔에 가서 에베레스트 산을 보았기에 우리 머리 속에 그렇게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네팔과 국경을 이루는 곳에 위치한 에베레스트 산을 중국인들은 주무랑마(珠穆朗玛)라고 부른다. 해발 8844미터다. 내가 서 있는 이곳이 4200미터이니, 약 4000미터를 올려다 보는 셈이다.

 

 

 

 

나는 시골에 살면서 "할 말 없으면 날 잡아 먹어라고 한다더니"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싸울 때 대꾸할 말이 없으면 사용하는 말이다. 이 광경에 압도되어서일까, 한 사람이 외친다. "할 말이 없으니 차라리 날 죽여라." "한 폭의 그림 같다"라는 말도 이를 묘사할 수 없다. 이런 날을 대비해서 시를 공부했었어야 했다. 길게 드리워진 나의 그림자가 알 것이고, 석양을 받아 흘러가는 강물이 이 풍경의 아름다움을 알 것이다.

 

 

 

 

 

아이들이 막대기를 들고 들판을 헤맸다. 장난꾸러기로 보이는 아이들이 카메라 앞에 서더니 장대처럼 무뚝뚝해 졌다. 나는 장대로 무술 시범을 보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처음에는 장난으로 슬슬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신이 났는지 적극적으로 달려들었다. 더 이상 구경만 했다가는 사고가 날 것 같아 간신히 싸움을 말렸다. 그들은 가지 않고 내 주위를 머뭇거렸다. 돈을 달라는 것인가? 돈을 조금 주었더니 씩 웃으면서 바람처럼 사라졌다.

 

 

<뒤쪽에 보이는 마을은 우리가 묵은 게스트 하우스에서 약 10분 정도 떨어져 있는 마을이다.>

 

 

 

 

저물어 가는데 들판에서는 타작이 한창이었다. 동네 사람이 다 모였는지 수 많은 사람이 곡식을 털고, 자루에 넣고, 마차에 싣거나 등에 지고 가고 있었다. 한 꼬마 여자 아이가 있었는데 자기 키보다도 큰 자루를 어깨에 메고 가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10미터를 못 가서 내려 놓고, 다시 지고, 또 이런 동작을 반복하였다. 이곳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굳세고 튼튼하고 강건하게 자란다.  

 

 

 

 

<대문이 열려 있어 들어가 찍은 어떤 농가의 사진. 어디를 가나 소똥은 널려있다. 담벽에, 담 위에 그리고 지붕 위에 메주 덩어리처럼 쟁여져 있다.>

 

 

 

 

"가난"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우리는 "아프리카"를 생각한다. 이 동네 아이들의 옷, 얼굴, 팔, 피부, 표정을 보라. 여기 티벳이 바로 이런 곳이다. 비록 가난하고, 보살핌을 받지 못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스스로 잘 자란다. 나는 이런 사진을 볼 때마다, 내가 인생에서 잘 선택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사진이라는 생각을 갖는다. 이런 사진 없이 말로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식당 겸 공동 숙소. 이곳에서 식사를 하기도 하고 벽을 따라 놓여있는 긴 의자에 누워 잠도 잔다.>

 

 

 

서서 머리를 빗는 처녀가 게스트 하우스 사장이다. 이 집을 빌려서 운영해 본다고 했다. 앉아있는 아주머니는 처녀의 어머니, 그 옆에 있는 꼬마는 사장의 동생. 옆에 수첩이 있어서 무엇인지 보았더니, 군청에서 발행한 일종의 증명서였다. 식구의 이름과 생년월일, 그리고 언제 신체 검사를 받았는지, 언제 전입하여 들어 왔는지 날짜가 기록되어 있었다.

 

 

 

 

다음 날 새벽, 사진을 찍으로 컴컴한 길을 더듬더듬 달팽이 걷듯이 걸었다. 내의를 입고 파카를 걸쳤음에도 몸이 으시시 떨렸다. 이 새벽에 오토바이를 타고 어딘가를 가는 사람의 불빛으로 거리는 밝았다가 다시 어두워졌다.

 

 

히말라야 산맥이 보이는 지점에 도착했다. 하늘은 구름으로 덮혀 있었다. 날이 서서히 밝아지자 붉고 흰 산이 조그만 연못에 비쳐 대칭을 이루었다. 서양화에서 보았던 어떤 유명한 화가의 그림과 참으로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인지 오리가 나타나 고요한 작은 연못에 파문이 일었다. 하나 둘씩 들판으로 나가는 농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남자 아이 하나와 여자 아이 하나가 책을 들고 길에서 서성거렸다. 여자 아이는 중국어 책을, 남자 아이는 영어 책을 가지고 있었다. 이른 새벽에 왜 나왔는지 물었다. 그들은 낭독하러 나왔다고 했다. 중국에서는 낭독을 많이 시키기에 이렇게 새벽에 길에 나와 낭독을 하는 것이다. 남자아이의 영어 발음과 억양은 엉망이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큰 소리로 읽었다.

 

 

나는 여자 아이에게 앞으로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물었다. 아이는 대답이 없었다. 잠시 후 나는 이런 질문을 한 것을 후회했다. 지금까지 아이가 보아왔던 많은 사람들이 공부를 했건 안 했건, 결국은 저렇게 농사지으며 가난하게 살았을 것이다. 그가 그런 것을 보고 무슨 할 말이 있을까? 나는 말해 주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잘 하게 되면, 시험을 보아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너는 학교 선생님도 될 수 있고, 경찰관도 될 수 있고, 비행기 승무원도 될 수 있다. 아니, 돈을 많이 벌어 내가 여기에 오듯 한국에도 올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희망을 갖고 자신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아이의 눈이 휘둥그래지며  놀라는 것 같았다. 나는 내가 부정확하지만 이런 말을 중국어로 할 수 있음에 스스로 놀랐다. 큰 소리로 낭독하며 사라지는 그들을 보며 웬지 모를 뿌듯함이 가슴에 벅차 올라왔다. 여행은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다. 여행 중 많은 경험과, 생각과, 실험을 한다.   

 

 

 

 

 

 

우리 팀은 모두 12명다. 10명은 카페 회원이고 2 명은 카페 운영진이었다. 12명 중 4명은 1박 2일 동안 산길을 걸어 에베레스트 산 근처로 가기로 되어 있고, 나머지 8명은 버스를 타고 먼길을 돌아 에베레스트 산 근처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조그만 마차에 먹을 물건과 텐트를 싣고 4명이 먼저 떠난다. 장행식(壯行式: 멀리 떠나는 사람에게 앞날을 축복하기 위해 베푸는 식)을 해주어야 한다고 누군가가 큰 소리를 질렀다. 게스트 하우스 마당에 양쪽으로 도열하여 떠나는 사람에게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부라보, 부라보" 박수 소리가 고요한 게스트 하우스에 울려 퍼진다.

 

 

해가 중천에 떠올랐을 시각, 나를 포함한 8명도 비록 트레킹에 대한 미련은 있었지만 경쾌하게 버스에 올랐다. 에베레스트 산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원대한 꿈을 꾸면서 ...........

 


 

(2011년 12월 2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