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 여행기 09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 1박 2일 여행-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로 가는 길>
<여행기를 이해하기 위한 개념도: 전체 인원 12명을 두 팀으로 나누었다. 도보팀 4명, 버스로 가는 팀 8명이었다. (1) 도보 팀은 계곡을 거쳐 샛길로 갔다. 중간 계곡에서 텐트를 치고 1박했다. (2)버스 팀은 산 길을 돌아서 갔다. 중간에 조그만 게스트 하우스에서 숙박했다. 두 팀은 산 중턱에 위치한 마을에서 만나
함께 버스를 타고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까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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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로 가는 길은 황량함 그 자체였다. 황야의 무법자 촬영지로 최고의 장소다. 허리에 권총을 찬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긴 담배 입에 물고 말타고 나타날 것만 같다. 모래 벌판 위에 있는 산 정상에 한 줄로 늘어선 바윗돌이 고대 중세의 성처럼 보인다.
농사짓는 주민들의 모습이 차창 너머로 보인다. 들판에 떨어지는 해발 4000미터의 햇볕이 따깝다. 순간 산에는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한 폭의 동양화다. 계곡과 산 등성이에 안개 눈이 몰려왔다 사라지면 그 뒤를 이어 또 다른 눈발이 그 자리를 차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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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길을 막는 것은 한 떼의 소다. 자동차가 소떼에 막혀 꼼짝 달싹도 못하게 되었다. 맨 앞에 가는 후줄그레한 옷 차림의 주인은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소떼를 한 쪽으로 몰지만, 좀처럼 소들은 말을 듣지 않는다. 글자 그대로 소귀에 경 읽기다.
맨 뒤에 꼬마가 울상을 지으며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아버지의 소몰이를 돕는다. 한 손에 째찍을 들고, 머리에는 끈을 매어 가방을 등에 매고, 청바지에 잠바를 걸쳤다. 날이 추우니 붉은 색 스웨터를 받쳐 입었다. 왜 오늘따라 이 놈의 소들은 주인의 말도 듣지 않고, 저 아이의 애만 태우는지 모르겠다. 역시 저 아이의 표정을 글로 표현하는 것도 죽었다가 다시 깨어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소를 잘못 몰았다가는 이따가 아버지 한테 맞아 죽는데...나 어떡해."라고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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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오른 쪽으로 꺾어 들어가면 이런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갈지자 길이 또 나타난다. 멋 곳의 구름에 압도 되기도 하고, 구름과 함께 산길을 가기도 한다. 내가 구름에게 물었다. "하루 종일 여기서 이렇게 떠 있으면 심심하지 않아?" 구름이 대답한다. "야, 너 미쳤어! 저 산과 저 호수가 내 친구다. 가끔 산새와 바람이 노래를 불러주지. 네가 뭘 알아?
아이구 미친 족제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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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정상에 몇 가지 판매대가 있다. 날이 추워서 오래 있을 수가 없다. 날이 좋으면 설산이 장관을 이룬다고 하는데, 구름 때문에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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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묵은 여관 겸 식당. 이 건물의 2층에서 숙박했다.>
<숙박소 근처의 길거리. 황량하기 그지 없다.>
<아이들이 학교에 간다.>
또 다시 검문소를 만난다. 그 주위에 장사꾼과 아이들이 있었는데, 공안이 두려워 감히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검문소를 벗어난 지점에서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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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민들이 단체로 모여서 일을 하고, 함께 식사를 하고 있다.>
<길에서 만난 자전거 여행자들. 자전거 여행자들은 대부분 독일 사람들이었다.>
도보로 오는 팀을 기다리기 위해 산 중턱에 있는 어떤 마을에 도착했다.(처음에 나온 지도 참조). 이 마을은 좀 먼 곳에서 보면 무슨 거대한 사찰 같기도 하고, 무슨 성채 같기도 하고, 대단히 부유한 마을 같기도 하다. 그러나 가까이 가서 보니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그 모습이 추레하기 짝이 없다. 이들이
입은 옷은 낡고 더럽고 초라하고 꾀죄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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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도 나의 마음을 가장 무겁게 했던 아이는 바로 아래에 나온 여자 아이와 그 동생이다. 처음에 이 여자 아이가 동생으로 보이는 아이를 업고 오는데, 무슨 허깨배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차림은 말할 것도 없고, 오래 동안 굶어 얼굴 가죽이 들떠서 붓고 누렇게 되는 병인 부황에 걸려있었다. 여자 아이는 무슨 말을 하려니 말이 나오지 않는 듯 했다. 저런 아이가 세상에 다 있구나!
무슨 삶이 이렇게 불공평한가? 저렇게 살면서도 하느님에게 "감사합니다"라고 말해야 하는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어 보면 결국은 "도덕적인 삶이 정의로운 삶이다"고 말한다. 도덕적인 삶이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특히 경제적 정의란 무엇인가? 저 아이들이 목에 두르고 있는 목걸이를 잘 보라. 끝까지 따라내려가 보면 바로 숟가락이 매달려 있다. 숟가락을 목에
차고 다니는 아이들, 숟가락이 바로 목구멍이요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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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자비로운 것이 인간이면서도 가장 무자비한 것이 또 인간이다. 나는 중국 정치 지도자들에게 화가 났다. 자기들이 티벳트를 침략하여 중국으로 편입했으면 기본적으로 먹는 것만이라도 보장을 해 줘야 하지 않을까? 이미 많은 티벳인들이 중국화 되었다. 중국인의 90%를 차지하는 한족도 티벳의 독립이나 티벳이 잘 사는 것에 큰 관심을 보이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이들 한족도 티벳에들어가 티벳을 돈벌이로 이용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서울의 롯데 백화점에 중국인들이 오면 수천만원어치를 현찰로 사가지고 간다고 한다. 중국의 부패가 심하다는 것은 알 사람은 다 알고 있다. 그저 돈 없고, 힘 없고, 빽 없는 티벳 사람들이 불쌍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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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뒤의 서낭당으로 보이는 곳: 쇠뿔이 널부러져 있다.>
<한 집에 가 보니 다 합쳐야 보리 반 가마니도 나오지 않을 보리를 털고 있었다.>
<아주머니가 보여준 집>
<집의 내부>
할머니가 내 손을 잡고 들어간 집은 2층 집이었다. 전쟁이 끝난 폐허처럼 널부러진 옷가지며, 그릇들이 질서 없이 나뒹굴고 있었다. 전에 말했듯, 깨끗함은 이들에게는 사치지!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 느끼고, 그냥 나는 떠나면 되지만, 이들에 대한 생각은 오랫 동안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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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행 중 한 사람이 소형 사진 프린터를 가지고 갔었다. 거기에 있는 한 아이의 사진을 찍어 즉석에서 뽑아 주었다. 그것을 본 아이들은 쌍무지개를 보고 실성한 아이처럼 환성을 지르며 팔짝팔짝 뛰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아이가 찍어 달라고 했다.이번에는 사진을 받은 아이가 자기 집에 들어가 할머니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할머니는 손자를 데리고 나왔다. 어떤 할머니는 머리 단장을 하고 아마 설날에나
입을 새옷을 입고 수줍게 나왔다. 모르면 몰라도 아마 동네 사람들의 80%는 나오지 않았나 싶다. 굶든지 말든지 아이들의 얼굴에는 밝은 웃음이 다시 살아났고, 그들에게 웃음을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인생에서 몇 번 겪지 못할 희열을 느꼈다. 마을 사람들과 우리가 함께 단체 사진을 찍어 마지막 기념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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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우리가 마을에서 약 2시간을 보내는 사이에 도보 트레킹팀이 마을에 도착했다. 군인간 오라버니 3년만에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버선발로 뛰어가는 처녀 뱃사공처럼, 모두들 뛰어나가 이들 네 명의 전사를 맞이했다. 서로 부등켜 안고 재회의 기쁨을 나누니 길바닥의 자갈도 춤을 추고 지나가는 바람도 콧노래를 했다. 옆에 있는 원주민도 덩달아 기뻐하니 아이들에 대한 불쌍함도 잊고 우리 모두 하나가 되어
덩실덩실 춤을 춘다.
이제 마을을 떠나야 할 시간이다. 그 짧은 동안에 정이 들었다고 훌적거리는 아이들이 보인다. 손을 흔들며 아쉬워 한다. 보내는 이도 떠나는 이도 모두 마음이 텅 빈 듯 했다. 그래도 그들에게 기념으로 주었던 사진 덕분에 조금이나마 마음이 푸근해진 것은 천만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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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푸쓰 사원>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 바로 아래에 있는 사찰이 롱푸쓰다. 해가 얼마 남지 않았고 바람이 차서 감히 들어갈 생각을 못했다. 이 사찰 근처에 몇 군데 숙박소가 있었으나 대부분 이미 손님으로 가득 차 있고, 남은 것도 너무 돈을 많이 달라고 해서, 차를 몰고 종점 주차장까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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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산, 그림 한 가운데 높이 있는 산>
주차장에서 바라보니 바로 에베레스트 산이 보였다. 바로 눈앞에 있는 에베레스트산. 그런데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80키로나 떨어져 있다고 한다. 사람 죽일 일이다. 바로 저기인데 80키로를 가야한다니! 걸어간다면 3일은 걸릴 거리다! 앞에 보이는 조그만 산이 있고 에베레스트 산은 뒤쪽에 구름에 가리어 보였다가 사라졌다 했다.
에베레스트 산 과연 장엄하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양 옆으로 산이 우뚝 솟아 있다. 나의 양쪽에 있는 산의 꼭대기는 흰눈으로 덮여 있고 중턱 이하는 바위와 돌 그리고 모래 뿐이다. 말하자면 여름에 파도를 타는 사람들이 물의 동굴을 뚫고 들어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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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산을 중국인들은 위 표지판에 나와있듯 "초모랑마봉"이라고 부른다. 현 위치에서 80키로 떨어져 있고 해발 8844.43미터라고 표시되어 있다. 여기까지가 관광객이 갈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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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바라 본 에베레스트. 손에 잡힐 듯하다. 구름이 낀 어제 저녁보다 좀 멋이 없는 것 같다.>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먹을 것이라고는 곡식 한 톨도 없는 이 계곡에 어디서 인지 새 한 마리가 날아왔다. 이리 훨, 저리 훨, 검은 땅 바닥에 그림자 드리우며 한 참을 머물다 시야에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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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
<텐트 내부>
주차장에 있는 텐트를 빌렸다. 그날 밤 계곡물이 얼어붙을 정도로 기온이 뚝 떨어졌다. 땔감이 없는지 여자 주인은 종이 몇 장 태우고 소똥 가루 조금 넣어 태워주고 그것으로 끝이 났다. 밤새도록 얼마나 떨었는지 모른다. 자다가 몇 번이나 깼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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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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