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Beautiful the Nature is! - Albatross

China

중국 티베트-라오스-인도 11 "아, 삶의 무게여"(라오스 1)

Albatross(곽영을/郭泳乙) 2012. 8. 3. 01:39

 

 

 

 

네팔 여행기 1  

—중국 "장무"에서 네팔의 "카트만두"로—

 

 

"아, 삶의 무게여!"

 

 

<중국 장무에서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로의 경로>

 

 

2011년 10월 6일 목요일, 무사히 중국과 네팔의 국경선을 넘은 우리는, 네팔 비자를 받기 위해 무거운 짐을 지고 앞 사람의 뒤꿈치만 보면서 묵묵히 걸었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지 한 참을 걸어가도 아무도 우리를 제지하는 사람이 없다. 일반적으로 외국인이 자국으로 들어오면, 일렬로 세워서 여권이나 비자 검사를 하고 들여 보낸다. 그러나 여기서는 들어오라는 사람도 없고, 나가라는 사람도 없다. 부처님 말씀이던가? "오는 사람 막지 말고, 가는 사람 잡지 말라. (去者不追 來者不拒:거자불추 내자불거)". 아무도 이래라 저래라 하는 사람은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 없다. 자기가 자기 앞날 신세 생각해서 비자를 받든지 말든지 해야 한다.

 

 

앞 사람을 따라서 들어간 네팔의 이민국은 무슨 일일 노무자 채용 사무소 같았다. 보통 교실의 반의 반만 한 방에 여행객이 득시글 거렸다. 안내자도 없고, 안내문도 없고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따라서 서류를 작성하고 제출하고 비자를 받아야 한다. 서류를 작성했어도 먼저 손을 내미는 놈이 임자요, 그 놈을 밀치고 먼저 나서면 그만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여러 사람의 비자 서류를 갖고 있으면 그 뒤에 있는 사람은 다른 줄에 있는 사람이 빠져 나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열만 팍팍 받는 도리밖에 없다. 아니나 다를까 이런 무질서의 세계에 익숙하지 않은 한 서양인이 분을 참지 못하고 꽥 소리를 지른다. 하지만 이런 데서는 소리친 놈만 바보요 푼수지 아무도 그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관습을 따르는 법, 이제 나도 네팔의 관습을 빨리 배워 익숙해져야 한다.

 

 

간신히 비자를 받고 버스를 탔다. 중국에서 이미 예약해 놓은 버스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전세 버스 안 에는 운전수 이외에도 세 사람이 더 있었다. 한 사람은 안내자였는데, 나머지 젊은 청년 두 명은 무엇하러 거기에 왔는지 몰랐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젊은이 한 명은 카트만두 시내에서 내렸고, 또 한 명은 허드렛 일을 도와주며 팁을 요구했다. 이런 곳은 인건비가 싸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났다.

 

 

 

 

어제까지만 해도 티벳의 추위에 떨던 우리는 어느새 더위를 걱정해야 했다. 한 시간을 채 못 가서, 티벳이 그립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다. 해발 4000미터의 티벳에서 해발 1400미터의 카트만두로 가야 한다. 초록색 산이 마치 오월의 산처럼 싱그럽다. 산에 드문드문 박혀있는 허름한 양철집이 가난의 상징이라기보다는 낭만의 풍경으로 다가온다. 길옆에 늘어선 집들의 초록색 대문과 그 앞에 널려있는 빨래, 그리고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화분이 "여기가 네팔입니다"라고 말한다.

 

 

계속 버스는 아래로 내빼고 내뺀다. 자동차 길이 계곡 중턱에 위치해 있었다. 아래로는 계곡물이 여름 장마처럼 흘렀고, 깎아지른듯한 산은 초록색 향취를 풍기며 하늘로 치솟아 오른다. 어느 계곡에 다다르니, 번지 점프를 한다는 팻말이 나타나고, 춘향이가 생각나는 그네도 보인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느낀 네팔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길 양쪽으로 수 많은 트럭이 늘어서 있다는 것이다. 왜 그리도 많은 트럭이 길가에서 잠을 자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런 트럭을 피해서 두 차가 교행(交行)이라도 하려면, 운전수는 진땀을 빼며 10분 이상 속을 끓여야 했다. 트럭의 바퀴는 수십년을 써 먹었는지 모르지만, 모두 맨들매들 닳아서 맨땅에서도 미끄러지기 쉽게 되어 있다.

 

 

 

 

 

 

얼마를 가서 점심 식사를 하러 식당에 들어갔다. 네팔의 메뉴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우리는 가장 전형적인 음식은 "달밭(dal bhat)"을 시켜 먹기로 했다. 달밭이라! 어떤 음식인지 모르지만 이렇게도 멋있는 이름이 있을까? 옛날 시골에서 여름 밤에 멍석에 누워 하늘을 보면 하늘은 그야말로 "별밭"이었다. 마당 옆에는 "텃밭"이 있었고, 그 한 쪽에 "꽃밭"이 있었다. 그런데 바로 네팔에서 "달밭"을 먹는다!

 

 

<달밭(dal bhat): 밥과 나머지 재료가 함께 나오고 손으로 먹는다>

 

 

두근 거리는 심정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나온 달밭은 먹기 힘든 음식이었다. 밥을 제외하고는 먹기가 역겨웠다. 색깔이며, 향이며, 모양 모두가 나에게 맞지 않았다. 김에 싸서 밥만 몇숟갈 뜨고 숟가락을 내려 놓았다. 다른 탁자에서는 네팔 사람들이 이 반찬 저 반찬을 섞어서 손으로 오몰조몰 섞더니, 그 손으로 먹고 있었다. 우리가 상추쌈을 손으로 싸먹으나 그들이 손으로 비벼 먹으나 뭐 그게 그것이겠지만, 새로운 식사 문화에 적응하기는 말처럼 쉽지 않았다.

 

 

아래 층에 가보니 초등학교 2-3학년 쯤 될듯한 꼬마들이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사방에 널부러진 음식과 그릇, 벽에 아무렇게나 뿌려진 페인트, 그 아래 지저분하게 놓여진 각종 컵, 꿈에라도 나오면 기겁을 할듯한 그런 장면이 내 앞에 펼쳐져 있었다. 한 꼬마가 나를 보더니 씩 웃었다. 나도 그를 보고 씩 웃었다. 그 조그만 손으로 비누를 묻혀서 그릇을 닦고 있는 아이를 보고 아무런 생각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동 노동 착취"니 뭐니 그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다만 앞으로 네팔과 인도에서 닥칠 수 많은 상상을 초월하는 장면에 만반의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마침 네팔의 다샤인 축제 기간이어서 전통복을 입은 사람들이 많았고, 여기저기서 이마에 빨간 물감을 바르고 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으며, 어머니 또는 아주머니로 보이는 사람이 꼬마에게 무슨 말을 하면서 우리나라의 세뱃돈 비슷한 돈을 주는 것이 흥미로웠다.

 

 

<한 꼬마가 다샤인 축제일을 맞아 곱게 차려입고 포즈를 취한다.>

 

 

 

 

버스 위에 앉아서 가는 사람들을 보니 여기가 정말 네팔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위에서 장시간 가면 얼마나 뜨거울까, 사고나 나면 어떻게 할까, 버스 위에 탄 사람과 버스 안에 탄 사람은 요금이 같을까, 여자들은 어떻게 버스 위로 올라갈까 등등 궁금함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어떻든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멋있어 보였다.

 

 

여행자 거리로 알려진 카트만두의 타멜 지역에 도착한 것은 해가 뉘엿뉘엿할 때였다. 축제 기간이어서 대부분의 상점들이 문을 닫았지만, 문을 연 일부 상점은 사람들로 붐볐다. 상점 주인이 우리를 보면 "중국 사람이냐?"라고 묻는 것으로 보아 이곳에 중국 사람이 많이 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미리 예약을 하고 간 것이 아니기에 모든 사람이 한 곳에서 여관을 잡는 것은 불가능했다. 내가 잡은 허름한 여관에는 무슨 사람이 그리도 많은지 마치 시골의 잔치집을 방불케 했다.

 

 

 

 


 

 

 

다음 날 아침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양을 잡는 사람을 목격하게 되었다. 놀라운 것이 두 가지가 있었는데, 1)양의 몸이 눈처럼 희다는 사실, 2)양의 몸에서 나온 내장의 양(量)이 양(羊) 자체보다 더 많아 보인다는 사실이다. 머리를 잘라 끓는 물에 휙 집어 던지고, 목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연신 씻겨내는 그의 직업적 무감각함을, 흥미롭게 그러나 조금은 무서운 마음을 갖고 구경한다.    

 

 


 

<카트만두 중심가>

 

 

처음 방문한 곳이 두바 광장이다. 옛날에 왕의 즉위식이 거행된 장소로 알려진 이곳은, 타멜에서 도보로 갈 수 있다.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통해서 갈 수 있는데, 가면서 수십번은 물어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마치 서울의 남대문 시장 같다. 각종 물건을 집채처럼 쟁여놓고 하나라도 더 팔려는 장사꾼의 외침이 귓가를 스쳐 멀리 메아리쳤다.

 

 

 

 

 

두바 광장의 중심부로 들어가면 전통식 네팔 건물이 늘어서 있다. 돌 계단 사방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거나 건물을 스케치 하는 사람들이 더러 보이지만, 대부분은 관광객 또는 장사꾼으로 보이는 사람들이다. 날이 너무 더워서 이틀 전에 있었던 티벳 생각이 또 나는 것은 어쩔수 없는 나약한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참을성 없는 인간 본성의 변덕스러움에 헛 웃음만 나올 뿐이다.

 

 

 

 

 

한 가지 놀라운 것은 광장 가운데에 있는 비둘기 떼다. 건물 지붕과 하늘, 그리고 그 아래 누워있는 검은 소의 등에까지 온통 비둘기 떼다. 넋놓고 바라보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바가지에 먹이를 가지고 와서 사방에 뿌리니, 그야말로 비둘기 소굴이라고 할만큼 온 천지가 비둘기 밭으로 변했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한 아저씨가 비스켓 주머니를 들고 다니면서 길거리에 있는 소에게 비스켓을 주는 것이었다. 소는 날름날름 받아 먹기도 하고, 땅에 떨어진 것을 주워먹기도 했다. 소는 응당 산과 들에 있는 풀을 먹고 사는 동물이거늘, 비스켓을 먹고 사는 소가 행복한지 불행한지 쉽게 판단이 서지 않았다. 하기야 인간도 옛날에는 곡식이나 채소만 먹다가 잔칫날이나 돼야 고기 한 점 먹어 보았으나 이제는 노상 고기에다, 피자, 햄버거, 치즈 등을 먹어대니, 아마도 소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인간 니들 웃기고 자빠졌네. 인간 니들 처음에는 초식 동물이다가 잡식으로 변하고, 이제 육식 동물로 변했어. 영양 과다에다 영양 불균형으로 너희들 종말이 멀지 않았어! 얼 빠지고 쓸개 빠진 것들."

 

 

 

 


 

오후에 찾아간 파슈파티나스! 인도의 갠지스 강에서나 볼 수 있으르리고 생각했던 화장 장면을 바로 눈 앞 10미터 아래에서 보게 되었다. 폭 약 10미터 정도의 강가에 화장터가 있었다. 여기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그저 먼데서 희미하게 이 장면을 목결할 수 있으리라고 짐작했지만, 예상 밖으로 바로 옆에서 이런 장면을 볼 수 있는 것에 내 스스로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강가에 사방 약 3미터 정도의 단이 놓여져 있고, 그 위로 몇 사람의 상여꾼에 의해 시체가 운반되어 왔다. 흰천을 아래에 깔고 노란 천으로 덮힌채 바로 이 화장터로 옮겨온 시체는, 한 쪽 손이 밖으로 들어나 있었고, 얼굴과 발의 윤관이 선명하게 보였다.

 

 

 

 

시체를 메고 들어온 몇 명의 상여꾼이 몇 바퀴 돌더니 시체를 단에 안치했다. 무슨 말을 몇 마디 하더니, 상주로 보이는 흰 와이셔츠를 입은 젊은이가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 동안 참았던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그는 와이셔츠를 벗어 버리더니 흐르는 눈물을 자기 팔뚝으로 대충 닦고는 또 엉엉 울기 시작했다. 불이 잘 붙지 않으니, 상여꾼 중의 한 명이 양초의 원료로 보이는 흰 반 죽을 시체 사방에 집어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시체에 입혀져 있던 흰 옷을 벗겨 물 위에 휙 집어 던졌다.

 

 

 

 

 

상주는 상여꾼에 의해 밖으로 인도되어 나오고 흰 연기가 올라오며 푸석푸석 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뜨거운 콩밭에 태양이 작열할 때 나오는 뚝뚝거리는 소리를 내며, 시체는 서서히 화염으로 휩싸여 갔다. 시체를 덮은 짚에서 나오는 연기가 바람에 날려 사방으로 퍼져 나가 강을 타고 흘러갔다.

 

 

 

 

 

어느 순간 시체의 팔뚝이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다! 시체가 살아 있다는 것인가? 연소와 시체의 물리적 관계에서 일어난 일이겠지만, 나는 시체는 살아서 움직인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마지막 가는 길에 뜨거움이라도 면해 보고자 하는 사자(死者)의 필사의 노력이리라. 살았을 때, 잘 살건 못 살건 고생 하지 않은 자가 어디 있으리요. 그렇게 고생하다가 저렇게 가는 것이 인간이라는 동물 아닌가? 죽어서 땅에 묻히건, 독수리의 밥이 되건, 불에 태워지건, 죽은 자는 그렇게 몸을 맡긴채 말없이, 인간의 손에 의해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이승과 저승의 문턱을 넘어 잿더미로 변해간다.  

 

 

 

 

 

개울 맞은 편에서는 구경꾼이 앉아서 카메라를 들고 이 장면을 바라보고 있다. 아무도 말하지 않고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는다. 그저 일상적인 일을 바라보는 양, 그렇게 반대쪽에서 일어나는 일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강에서는 아이들 몇 명이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시체를 덮었던 옷을 집어던진 바로 그 물이다. 타고 남은 재가 뿌려진 그 물이다. 그것이 그 아이들 물놀이와 무슨 상관이랴. 어제도 그랬고, 오늘 그렇고 내일도 또 그런 것일뿐, 아무 것도 이상할 것이 없고, 아무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이 나서, 살다가 죽고, 그리고 이렇게 불태워지는 것은, 매일 경험하는 그들의 일상일뿐이다. 마치 우리가 아침에 출근하여 일을 하고 저녁에 돌아와 잠을 자는 일이 그렇듯이 말이다.

 

 

 

 

 

<화장장 근처에 이상한 복장의 노인이 돌아다녔다.>

 

 

 

 

다리를 중심으로 강 상류에서도 화장이 진행되고 있었다. 사방에 원숭이 떼가 날 뛴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무슨 잔치가 벌어진 듯이 이리저리 분주하다. 새끼는 어미 등에 올라, 마치 오토바이를 탄 애인을 잡고 달리듯 바짝 달아 붙어 달린다.

 

 

 

 

 

상류에서 거행되 장례식은 높은 계급하는 람의 장례식이라고 한다. 살아서도 떵떵 거리며 살더니 죽어서도 브라만 계급의 의식은 품위를 유지하나 보다. 좀더 엄숙해 보인다. 의식도 좀더 신경 쓰인 듯 하다. 우선 발목을 강물에 씻기더니, 시체를 메고 몇 바퀴 돈다. 이어서 장례 집도자가 경전을 읽고, 짚에 물을 흠뻑 뿌려 시체 위에 올려 놓는다. 이것을 지켜보는 가족 여인들이 박수를 치면서 울어댄다. 나는 전에는 박수는 기분 좋을 때만 치는 줄 알았었다. 타지 않던 물에 젖은 짚은 이제 본격적으로 타닥타닥 타기 시작한다.

 

 

 

 

 

 

 

장례사의 옷과 몸에 묻은 붉은 물감이 석양에 비쳐 그 색이 더욱 또렷하다. 천당으로 보내려는 노력으로 보이기도 하고, 사람을 죽인 후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대는 살인자의 모습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 순간 문득 생각이 났다. 궁정동에서 박대통령을 살해하고 허겁지겁 방을 나서는 김재규가 저런 모습이었을까? 옆에서 노래를 하다가 갑자기 "빵" 하는 권총 소리와 더불어 공중으로 뿜어대는 핏줄기를 바라본 심수봉의 충격은 어떠했을까? 그 짧은 순간에 영화에서 보았던 모든 피 튀기는 죽음의 장면이 허공을 가르며 지나가고 있었다.

 

 

 

 


 

 

 

그날 저녁, 온몸이 나른해지면서 모든 것이 허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맛도 없었다. 4층에 있는 나의 여관 방 베란다에 의자를 갖다 놓고 앉았다. 맞은 편 초록 건물이 더욱 짙은 초록으로 보였다. 하늘에는 거대한 뭉게구름이 치솟고 있었다. 그 주위로 새 몇 마리가 이리 훨, 저리 훨 날고 있었다.

 

 

 

 

지붕에 앉아 내일을 걱정하는 새도 있었지만, 하늘을 훨훨 나는 새도 있었다. 그 옆에는 지는 노을을 배경으로 흰 달이 떠, 대지를 밝힐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래, 폭풍우 속에서도 맑은 물은 흐르고, 진흙 속에서도 꽃은 피는 것이지. 저 달이 밝아오면 또 별이 빛날거야. 오늘 달밭을 먹지 않았나. 오늘 밤, 저 달을 바라보며 "달밭"을 먹으며 별밭을 생각하리.  

 

 

내 벗이 몇인고 하니 수석과 송죽이라
동산에 달이 뜨니 그 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섯
밖에 또 더하여 무엇 하리
<윤선도>

 

 

 

 

(2012년 1월 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