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여행기 4
—2박 3일 치트완 국립공원—
치트완 국립공원을 향해 카트만두를 출발한 것은 2011년 10월 10일 아침 7시 20분이었다. 카트만두는 사람 살기 힘든 곳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곳을 떠난다는 생각에 자꾸 고개가 뒤로 향한다. 싸우고 이혼하면서도 전 배우자를 한 번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일까? 하여튼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여러 번 뒤를 돌아 보았다.
한 시간 이상을 달려야 겨우 카트만두 분지를 탈출한다. 치트완으로 가는 길은 산 길이었다. 옆으로 강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또 얼마 있으면 다시 나타난다. 중간에 자동차 사고 현장이 나오기도 하고, 비포장으로 인해 먼지를 뒤집어 쓴 민가의 지붕이 보였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주위에 아무런 건물도 없이 논을 마른 흙으로 메운 곳이 바로 치트완 버스 정류장이었다. 시계를 보니 오후 1시 30분이었다. 우리를 태우고 갈 허름한 지프차가 한 모퉁이에서 졸고 있었다. 날이 얼마나 더운지 이러다가 더위 먹고 지쳐서 생병이 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삐그덕 거리는 차를 타고 약 20분 달린다. 국립공원하면, 그곳으로 향하는 가로수 길이 쭉 뻗어 있고, 입구에는 큰 대문이 있어서 입장료를 받고 통과하면 갖가지 멋있는 나무와 동물이 보이는 것이라는 나의 선입견은 여지없지 무너지고 말았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조그만 강가의 허름한 리조트였다. 우리를 제외하고는 손님은 거의 없는 듯이 보였고 더위를 피할 장소가 있기는 있어도 엄청나게 더웠다. 우리가 묵은 Jungle Sunset Camp라는 곳은 이름만 거창하지 실제로는 그렇게 낭만적이지도 않았고, 혼을 빼앗아갈 만큼 아름답지도 않았다. 그곳의 가장 큰 장점은 한가한 집이라는 것이다.
안내 책자에 보면 치트완은 1984년에 세계 유적으로 지정되었으며, 43종의 포유류, 543종의 새, 67종의 나비, 그리고 45종 이상의 양서류와 파충류가 있다고 자랑하고 있다. 매년 세계에서 수 많은 사람이 방문하는 아시아에서 가장 풍부하고 장엄한 양생동물의 서식지라고 표현되어 있다.
조그만 강에는 코끼리 몇 마리가 목욕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것은 별로 구경할 것이 없었다. 근처에 원주민들이 사는 곳이 있다고 하여 안내를 받아 따라 나갔다. 민간인 몇 사람이 사는 마을이었다. 온몸이 끈으로 묶인 돼지가 잠을 자고 있었고,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 아주머니 몇 명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 옆에 논에는 아직도 뜨거운 태양이 마지막으로 자신을 불사르고 있을 뿐, 특이한 것은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좀 특이한 것이 있다면 거대한 코끼리가 좁은 골목을 지나갈 때는 귓가가 서늘하도록 찬 바람이 일기도 했으며, 길거리에서 목각을 만들거나 할 일 없는 아이들이 알 수 없는 놀이에 빠져 정신 없이 놀고 있었다.
해가 질 무렵 강가를 거닐다가 코뿔소를 본 것이 그날의 중요한 일이라면 중요한 일일 것이다. 코뿔소가 사람을 공격할 때는 시속 40키로로 돌진하니 주의해야 한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멀리서 바라본 코뿔소의 궁뎅이가 얼마나 넓적하고 큰지 모르겠다. 그러나 코뿔소를 보는 것보다 코뿔소를 피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관중의 무리가 더 구경거리인 것 같다.
해질 무렵 강가로 사람들이 나와 맥주를 마시거나 사진을 찍고 있었다. 뉘엇뉘엇 지는 태양이 평원의 숲 너머로 지자 어디에서인지 이름 모를 새들이 하늘을 가로 질러 날기 시작했다. 붉은 해가 저녁놀을 만들어 찬란하게 하늘을 수 놓고 살찐 닭을 장작불에 굽는 연기가 하늘로 오르고, 구수한 냄새가 코끝을 살랑거렸다. 뜨거운 태양을 피해 숨어 있던 젊은이들이 나와 맥주를 마시며 노을에 되비친 상대방의 붉은 얼굴을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바라보고 있었다.
저녁이 되어 타루 문화 행사장으로 안내 되었다. 몇몇 프로그램이 있었으나 가장 두드러진 프로그램은 막대기를 들고 싸우는 젊은이들의 공연이었다. 몇 명씩 또는 개인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질서 정연하게 치고 받는 막대 싸움은 대단한 구경거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래 네팔의 전사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해서 지금도 다른 나라로 많은 용병이 진출하고 있다고 한다. 나라가 잘 살지 못하니, 젊은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용병이나 관광 안내 그리고 농업 등이 전부라고 한다. 국가의 대부분의 수입이 관광에서 온다고 하니 무엇이든지 관광자원으로 개발하는 것이 이 나라 지도자들이 해야 하는 일인 것이다.
다음 날 새벽 강가를 따라 산책을 했다. 어슴프레하게 안개 낀 강은 아무 말 없이 물거품만 내면서 흘러가고 있었다. 강가는 리조트로 연결되어 있었으며, 풀 위에 맺혀진 이슬이 운동화를 적셨다.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일하러 가는 농부가 보이기도하고 아침부터 나와서 잡담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거울을 보고 면도를 하는 사람도 보이고 무엇인가를 눈이 빠지게 바라보는 사람들도 보였다. 아이들은 어디서 나왔는지 슬리퍼를 신고 이리 번쩍 저리 번쩍 방방 뛰었으며, 가끔가다 지나가는 경운기나 등치큰 코끼리가 거리를 지나가고 있었다.
<식당에 아침 햇살이 비친다.>
오전에 할 일은 코끼를 타는 일이었다. 나는 본래 말이나 당나귀 노새 등을 타는 것이 싫다. 엉덩이에 살이 없어서인지 엉덩이가 심히 아플 뿐만 아니라 흔들거리는 느낌도 썩 좋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런 것을 타는 순간 걱정이 태산 같고, 땅바닥으로 호박덩어리 떨어지듯 떨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기 일쑤다. 이번에 코끼로도 타지 않으려고 하였으나 얼떨결에 4인 1조가 되어 타게 되었는데 숲을 헤치며 돌아디는 느낌이 썩 좋지 않았다. 더구나 이상한 벌레에 쏘여 피부병이 걸려서 그 후 3개월 동안 고생을 직사하게 한 후 이제 겨우 그 병에서 해방되게 되었다. 이 피부병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아 언제 글 다운 글 한 번 써보고 이 세상을 하직할 것이다.
오후에는 배를 타고 강을 따라 내려갔다. 넓고 길죽한 쪽배를 타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배의 앞 뒤에서 젊은이 두 사람이 노를 저어 아래로 내려간다. 소리를 내면 동물이 도망간다고 끽소리도 내지 못하게 하는데, 그들이 가리키는 쪽을 보면 동물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여 헷갈리기 일쑤다.
배에서 내려 가이드를 따라 걸어간다. 구경할 동물이 달아나니 떠들지 말라고 몇 번이나 당부한다. 큰 막대기를 땅에 짚다가, 하늘에 휘젓다가, 양손으로 돌리다가 못하는 짓이 없이 방정맞게 행동하는 가이드는 아무 것도 구경할 것도 없는 벌판을 앞서 걸어가면서, 초등학생 욱박지르는 선생님처럼 이래라 저래라 말도 많다.
드디어 늪지대에서 코뿔소 한 마리 만났다. 코뿔소는 연못 가에서 풀을 뜯어 먹고 있었다. 한참 후에 코뿔소가 조금 움직였다. 가이드는 우리보고 안전대 위로 빨리 올라가라고 말했다. 안전대는 동물을 피하기 위해 지어 놓은 2층으로 된 집이다. 그러나 안전대는 올라가지 못하게 입구를 열쇠로 잠그어 놓았다. 불안과 공포에 숨죽이고 있는데, 코뿔소는 올 생각도 공격할 생각도 하지 않고 우적우적 풀만 뜯어 먹었다.
가이드를 따라 코끼리가 쇠줄에 묶여 있는 코끼리 사육장으로 갔다. 코끼리 몇 마리가 어슬렁 거리고 있었다. 자연상태에 있는 코끼리를 보는 것이 목적일 텐데, 묶여 있는 코끼리를 보니, 여기가 코끼리 훈련장인지, 코끼리 전시장인지 알 수가 없었다. "뭐가 이리 볼 것이 없어?" 한 사람이 말한다. "국립 공원이 뭐 이리 시시해." 또 한 사람이 대답한다.
강을 건너야 우리가 묵는 리조트가 나오는데, 건널 사람은 많고 조그만 배 하나만 있어서 모두들 어찌할 바를 몰라 하고 있었다. 그러자 한 사람이 바지를 걷어 올리고 걸어서 건너기 시작했다. 그 아래에서는 물소들이 목욕을 하고 있었다. 물이 깊어 허리까지 올라오는 곳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혹시라도 물소의 습격을 받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다른 사람은 건너는데 나는 왜 못 건너나? 나도 바지를 최대한도로 걷어 올리고 용감하게 강 속으로 발을 내 디뎠다. 바닥은 자갈과 모래로 되어 있었고, 어떤 곳은 묽은 진흙인지 물소의 똥인지 알 수 없는 곳도 있어서 툭하면 물컹거리면서 발이 빠졌다. 그러나 내 다리가 길어서인지 내가 건너온 곳이 얕은 곳인지는 모르지만 물은 무릎에도 미치지 못하고 너무 시시하게 강을 건너게 되었다. 그 순간 나를 바라본 사람이 있었다면 아마 나는 그들의 웃음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저녁이 되어 치트완의 술집에나 한 번 가보자고 누군가가 제안했다. 세 명이 2층으로 된 술집에 들어갔다. 맥주를 몇병 시켜 놓고 먹는데 저쪽에서 여자 2명 남자 한 명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남자는 아이를 돌보고 있었다. 합석을 제안하여 같이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어떤 아일랜드 처녀가 네팔로 트레킹을 오게되었다. 트레킹의 가이드는 잘 생긴 네팔 남자였다. 젊은 남녀가 만나면 전기가 오가는 법, 그들은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결혼할 것을 결심한다. 자기 딸이 남편감이라고 하여 데리고 들어오는 신부의 어머니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곱게곱게 키워놨더니 네팔의 가이드와 결혼한다니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죽이네 살리네 하면서 끝까지 말렸지만, 우리가 흔히 연애소설에서 보듯이, 두 사람은 결국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까지 낳게 되었다.
지금 우리와 합석하여 아이를 보고 있는 남자가 바로 이야기의 남자 주인공 네팔가이드였고, 그 앞에 있는 여자가 아일랜드 여인이었다. 그의 아내 옆에 앉아있는 사람은 아내의 아일랜드 친구로서 아일랜드에서 네팔로 구경온 여자였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10시가 되었다. 술집은 10시에 문을 닫는다고 했다. 아이를 보던 남자는 자기가 술을 사오겠다고 했다. 수퍼에서 술을 사면 비싸니 자기가 친구에게 가서 술을 사오겠다고 했다. 쇠사슬로 쳐진 담을 넘은 뒤, 친구를 만나 사와야 한다고 사뭇 비장한 어조로 말했다.
얼마 후 그는 얼굴에 만면의 웃음을 지으면서 나타났다. 아니나 다를까 손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철조망을 뚫고 가다 손을 다친 것이다. 우리는 술병을 들고 우리가 묶고 있는 리조트의 강가로 나갔다. 강가에는 대청 마루로 된 널직한 휴게실이 있었다. 그날 밤 우리는 밤 12시가 넘도록 거기에서 술을 마셨다. 나는 남자에게 아일랜드에서 현재 하는 일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택시 운전수를 한다고 말했다. 여자는 무슨 일을 하는지 물었다. 여자는 회사에 다닌다고 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물었다.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이 행복한지 물었다. 둘은 이구동성으로 행복하다고 말했다.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저 멀리 초롱초롱 별이 빛났다. 여행을 하다보면 소설에 나올 법한 이야기 거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가끔 만난다. 그리고 그들과 맥주 한 잔을 나누면서 이야기로 하룻밤을 보내기도 한다. 구경은 여행의 중요한 부분이지만, 일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아마도 한 잔의 맥주와 이런 만남과 이야기가 어우러져 여행의 큰 부분이 되는지도 모른다.
(2012년 2월 3일 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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