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여행기 6 —"3박 4일 푼힐 트레킹 Part I— "나야풀"에서 "고래파니"까지
<포카라의 여행사 앞에 있는 안나푸르나 트레킹 코스 지도: 라운딩코스(한 바퀴 도는 코스)는 거의 1 개월이 걸리고, 베이스캠프까지는 약 7박 8일이 걸린다고 한다. 우리가 다녀온 것은 위 지도의 노란 색으로 된 푼힐 코스로 3박 4일이 걸렸다.>
<한국인이 제작한 트레킹 코스>
<"나야풀"에서 "고레파니"까지 상세 지도>
<포카라의 서울 뚝배기: 트레킹 시작점인 "나야풀"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10월 14일, 서울 뚝배기로 네팔 사람 몇 명이 모여들었다. 봉고차 운전수와 우리를 안내할 가이드, 그리고 우리의 짐을 지고 갈 포터 3명 등 모두 5 명이었다. 포터가 식당 의자에 앉자, 주인은 먼지를 털면서 의자에 앉지 말고 저쪽에 가서 앉으라고 말했다. 순간 차별 대우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씁쓸한 미소가 내 입가를 스쳤다. 우리의 가이드는 50살 정도로 보였고, 짐을 지고 갈 포터(짐꾼)는 20대 초반의 젊은이로 보였다.
아침 8시에 출발한 봉고차는 포카라 시내를 빠져나가 꼬불꼬불한 산길로 접어들었다. 자동차는 산 위로 굉음을 내며 달리고 있었다. 멀리 사람들이 사는 집이 보이고 가까이에 조그만 가게가 자주 눈에 띄었다. 개울이 나타났다 풀밭이 나타나고, 그러자 다시 민가가 나타났다.
<나야풀에 도착하여 트레킹 준비를 한다.>
트레킹 시작점인 "나야풀"에 도착한 것은 9:30분. 하루 종일 뜨거운 태양을 등지고 걸을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고 짐을 정리했다. 무거운 것은 포터에게 맡기고 물, 수건, 간식, 그리고 지팡이만 배낭에 넣고 출발했다.
처음에는 조그만 동네가 나타났는데, 그 사이를 빠져 나가며 시골 풍경을 보게 된다. 아이들이 길거리에서 뛰어 놀고 있고, 사람들은 장사하느라 바쁘며, 그 사이를 트레킹하는 사람들이 마치 시골 장날 장에 가는 것처럼 무리 지어 지나간다. 허름한 양철 지붕에 아침 햇살이 표범의 등에 난 털처럼 얼룩덜룩한 무늬를 만들어 내는 것이 네팔스럽다.
"비레타니"에서 왼쪽으로 꺾어 든다. 오른쪽은 바로 우리가 돌아 내려올 "간드룩"으로 가는 길이다. 오늘 우리가 트레킹하는 목적은 푼힐 전망대에서 안나푸르나 설산을 바라 보는 것이다. 하지만 올라가면서 겪을 즐거움에 발걸음이 가볍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올라가다가 문득 구름을 뚫고 하늘에 치솟아 있는 칼날 처럼 뾰족한 설산을 만난다. 아, 저런 설산을 가까이에서 본다면 그 위압감은 대단할 것이며, 서울 뚝배기 사장 말대로 눈물이 날 것도 같았다. 그런 것을 보기 위해 이런 고생을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고생 끝에 낙이 온다"라는 말은 우리를 앞서간 사람들이 다 겪고 느꼈던 것이 아니겠느냐? 잠깐 사이 장엄한 설산은 눈앞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논에서는 벼가 자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나라 시골 밭에서 가끔 보이는 것 같은 지장 비슷한 곡물이 자라고 있었다. 조그만 개울을 따라 평지에 만들어진 논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이 곡물은 수확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것 같았다. 어떻게 수확하여 어떻게 먹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눈에 띄는 것은 모두 이 한 종류의 곡식이었다.
길은 길에 연하여 있듯, 숙박업소는 몇 백미터 떨어져서 계속 이어져 있었다.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된 게스트 하우스부터 덩그러니 건물만 놓여진 게스트 하우스까지 수 없이 숙박업소가 자리잡고 있었다. 하룻밤 묵고 가라는 주인의 눈짓이 가련하다 못해 애처롭기 그지 없다.
사실 시간만 많다면, 하루에 2-3시간 걷고 게스트 하우스에서 머물고 저녁에 맥주나 마시고 그 다음 날 또 그렇게 해서, 3박 4일이 아니라 9박 10일 정도 잡아 세월아 네월아 돌아다닌다면 그것이 바로 신선놀음이리라. 본래 할 일 없는 놈이 더 바쁘게 산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 한국 사람은 정해진 시간에 하나라도 더 많이 본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다닌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마음 가짐은, 하나라도 덜 보고 한가한 시간을 더 많이 갖는 것일 지도 모른다. 하나 더 보아서 뭘 하겠다는 것인지 가소롭기까지 하다.
<아이들이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중간에 쉬면서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당나귀인지 노새인지 말 새끼인지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오늘의 목적지에 가려면, 마지막으로 끝없는 갈지자(之)로 올라가는 길이 나온다. 중국 리장의 호도협 트레킹할 때 28밴드를 올라 가는 것과 거의 흡사한 경험이다. 온몸에 땀을 뒤집어 쓰고 "이러다가 내가 죽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들 때, 겨우 도착한 곳이 바로 울레리 게스트하우스 촌이다.
이렇게 높은 곳에 어떻게 물이 나오며,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사는지 궁금하다. 지나온 길 바라보니 안개에 휩싸인 골짜기는 꼬리가 보이지 않는다. 시계를 보니 오후 5시, 아마 7시간 정도 걸은 것 같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산을 바라보니 구름 사이로 안나푸르나가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그러던 중 서서히 밤이 되고 지붕 위로 달이 모습을 들어냈다. 지구상 달이 뜨지 않는 곳은 없나보다. 이효석의 표현대로 "소금을 뿌린 듯한" 계곡에 찬 바람만 몰아친다. 술 한잔 먹지 않았지만 피로에 취해 세상 모르고 일찍 잠에 들었다.
새벽에 일어나 게스트 하우스 뒤에 있는 산으로 올라갔다. 풀잎에 맺힌 이슬이 신발과 바지 가랑이를 적신다. 아직도 젊었다는 것일까? 어제의 피로가 말끔하게 사라졌다.
아니, 여기가 지상 낙원일까? 한 동안 보지 못했던 꽃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저 멀리 설산을 내려다 보며 아침 햇살 듬뿍 받는 이 꽃밭은 그야말로 한폭의 그림과 같은 대자연의 심심포니였다. 베토벤의 "운명"이 울려퍼지듯 온몸이 싸늘한 전율이 감돌았다. 세상에 이런 곳도 있었구나! 하지만 저 아래 길을 지나는 나그네들은 대부분 이곳을 놓치고 그냥 스쳐 지나가리라. 마치 인생이라는 것이 안개속을 가르며 자취도 남기지 않고 바람처럼 지나는 것처럼.
<동네 주민이 젖을 짠다.>
<동네를 한 바퀴 도는데 어떤 아이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아침 식사>
<한 외국인이 자루에서 선물을 꺼내 아이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고 있다.>
밥을 먹었으면 밥값을 해야한다. 밥값이라는 것이 바로 걷는 것이다. "오늘도 걷는다만은 정처 없는 이 발길. 지나온 자죽마다 눈물 고였다." 걷는 것이 힘들 때마다 나오는 노래가 바로 이 노래다. 한국이라면 모르겠는데 네팔에서 이런 노래가 나오니 내 팔자도 개팔자가 됐나 보다.
조금 걸으니 아름다운 게스트 하우스가 또 나타난다. 흰색과 파랑색으로 알맞게 조화를 이루어 페이트칠 된 이 게스트 하우스에 옥수수가 주렁주렁 매달렸다. 그 아래에서 아주머니가 검은 머리를 곱게 빗더니 두 손으로 능숙하게 따 내려가기 시작한다. 꼬마들이 지나가는 사람에게 꽃 한 송이를 내민다. 꽃 한 송이를 건네 주자마자 어딘가로 쏜살같이 가더니 또 다른 꽃 송이를 들고와 다른 사람에게 꽃 송이를 건넨다.
얼마를 올라가니 귀여운 양의 새끼가 이리저리 뛰어 다닌다. 건네주는 풀잎을 나블나블 먹다가 다시 뛰고 그러다가 다시 먹고 또 딸딸 뛰어서 저쪽으로 간다. 이어서 다른 놈이 또 와서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나를 다시 바라본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라고 시인 이장희는 노래했다. "먼 빈 공간을 응시하는 새끼 염소의 눈에 술집 여인의 애수가 흐르도다"라고 말한다면 미친 놈이라고 소문이 자자하겠지. 사실은 "허공을 응시하는 새끼 염소의 눈에 요염한 스트립 걸의 섹쉬함이 흐르도다"가 먼저 떠올랐던 표현이다.
얼마나 빨리 걸었는지 모르지만, 목적지인 "고래고기 파니"인지 "고레파니"에 도착한 것은 낮 12시 반이었다. 언덕 위에 위치한 우리의 게스트 하우스 Super View Lodge는 그야말로 최고의 조망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뿔사, 최고의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면 무엇하나? 구름에 가려 안나푸르나는 전혀 보이지 않으니 끈 떨어진 갓이요, 캄캄한 밤에 애인 바라보기라. 땅을 구른들 소용없는 일이요, 통곡을 한들 누가 거들떠 보기나 할 것인가?
<우리 일행 7명이 묵은 Super View Lodge">
그날 밤, 어차피 베린 몸, 저녁이나 그냥 "썌려 먹어보자"는 말이 이구동성으로 나왔다. 그렇지, 눈이 즐겁지 않으면 입이라도 즐거워야지. 더구나 우리의 저녁 값을 지불할 KC도 없으니 얼씨구 잘 되었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이 네팔산 토종 닭이었다. 저 닭을 "썌려 잡으라"고 누가 말했다. 그리고서는 우리의 가이드 나칼에게 말했다. "아무 것도 넣지 말고 쌀과 마늘만 넣어라. 쌀은 조금 넣고 마늘은 당신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10배는 더 넣어라."
얼마 뒤에 가이드가 김이 뚜껑 사이로 풍풍 솟아 오르는 들통을 들고 들어왔다. 모두들 내용물이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해 하면서 뚜껑을 열었다. 튀밥튄 후 뻥 튀기 기계에서 나오는 듯한 수증기와 마늘 냄새가 코를 지나 귀를 통해 나왔다. 모두들 "와"하고 소리치니 식당에서 국수나 스파게티 등을 먹고 있던 20여명의 서양 사람들이 모두 "쫙" 우리를 응시한다.
누가 더 많이 먹나 감시해가며 먹어대는 닭백숙이 진정 이런 맛이었더냐? 그때 불쑥 가이드가 네팔 토종 동동주를 들고 나타났다. 동쪽에서 뺨맞고 서쪽에서 화풀이한다고, 설산 구경은 못하지만 하여튼 그날 진시황이 부럽지 않게 먹고 마셔댔다. 함포고복(含哺鼓腹)은 이럴 때 쓰는 말이렸다. 그러고 보니 안나푸루나가 보이지 않아도 좋았고, 피곤해도 좋았고, 내일 내려가지 않아도 좋았다. 단지 미안한 것이 있다면 눈물을 머금고 식대를 내야할 KC뿐이었다. "인도에 갈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 카트만두에 있을 KC, 우리 썌려 먹는다고 너무 욕하지 말어. 우리도 이런 일이 발생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으니! 먼 훗날 고래파니에서 고래고기나 먹어보더라고. 그것도 안 되면 부산 자갈치 시장 자갈밭에서 고래파니 생각하며 고래고기 한 점 먹어 보든지..... "
<그날 저녁 10초만 볼 수 있었던 안나 푸르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모습>
(2012년 2월 5일 작성)
|
|
'Chin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국 티베트-라오스-인도 18 "룸비니 그리고 인도로 출국" (라오스 8) (0) | 2012.08.03 |
---|---|
중국 티베트-라오스-인도 17 "푼힐 트레킹 part 2" (라오스 7) (0) | 2012.08.03 |
중국 티베트-라오스-인도 15 "치트완에서 포카라로" (라오스 5) (0) | 2012.08.03 |
중국 티베트-라오스-인도 14 "치트완 국립공원"(라오스 4) (0) | 2012.08.03 |
중국 티베트-라오스-인도 13 "나모부다 트레킹" (라오스 3) (0) | 2012.08.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