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곽영을
2005년도에 크게 히트했던 드라마에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는 연속극이 있었다. 김선아와 현빈이 주연이었던 이 드라마는 그 당시에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
"스물여덟 살의 크리스마스이브에 삼순이는 변장을 하고 호텔에 들어선다. 얼마 전부터 수상한 기미를 보여 오던 애인 민현우를 김삼순은 미행하고 있다. 설마 했는데 현우는 미모의 여자와 호텔룸으로 올라가고, 삼순은 룸서비스를 가장해 룸에 들이닥친다.
"내 이름은 곽영을"이다. 하지만 본래 내 이름은 "곽영일"이었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는 나를 "영을이"라고 불렀고, 할머니는 나를 "영얼이"라고 불렀다. 어머니는 나를 "옝일이"라고 불렀고, 친구와 선생님은 "영일이"라고 불렀다. 할아버지가 불렀던 "영을이"나 할머니가 불렀던 "영얼이"는 노인이라 입에 힘이 없어서 그렇게 부른다고 생각했고, "옝일이"는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이모음 역행동화에 의해 당연히 "영일이 →옝일이"로 되는 것으로 알았다.
초등학교 일 학년부터 6학년 졸업할 때까지 받았던 모든 개근상장, 정근상장, 가끔 받았던 우등상장, 주판 7급 자격증, 심지어 졸업장까지 모두 "곽영일"로 되어 있다. 그리고 내가 "곽영일"이라는 것을 나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고, 나는 내 이름 "곽영일"을 좋아했다.
금산 중학교에 들어가자 선생님은 호적초본을 떼어오라고 했다. 내가 직접 면사무소에 가도 되는지 선생님께 여쭈어 보니, "야, 이놈아, 내가 면사무소 직원이냐? 네가 한 번 전화해보라."라고 말씀하시고는 나를 교무실 전화기 앞으로 데려갔다. 선생님은 남일면사무소 전화번호를 주면서 전화를 걸라고 했다.
그 당시 전화는 모두 회전식 전화다. 새까만 전화기에 구멍이 숭성숭성 뚫려있고, 그 뚫린 사이로 아라비아 숫자가 괴물처럼 보였다. 나는 전화기라는 것을 처음 보았다. 손이 덜덜 떨렸다. 손가락을 전화구멍에 집어 넣고 오른 쪽으로 돌리는데, 하도 떨려서 몇 번이나 처음부터 다시 돌려야 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이빨도 떨리고 고개도 떨려서, 나무 바퀴로 된 수레가 자갈밭을 가고 있을 때, 마치 그 수레에 탄 것처럼 온 몸이 후들거렸다.
그러다가 어떻게 면사무소 직원과 전화 연결이 되었다. 나도 모르게 음성의 톤이 한 옥타브 올라가고 큰 소리가 나왔다. "거기 면사무소예요? 중학생이 가도 호적초본 떼어줘요?" 나는 나도 모르게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있었다. 교무실에 있는 다른 선생님들이 깜짝 놀라 모두 나를 쳐다보았다. "이 놈은 교실에 있을 때는 조용하더니, 전화걸 때는 용감하네. 이상한 놈일세."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1교시 수업 시작할 때 출발해서 점심 시간에야 학교로 다시 돌아왔다. 금산읍에서 약 8키로나 되는 남일면사무소까지 걸어 왕복하는데 거의 네 시간이 걸린 셈이다. 선생님은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없이, 매가 병아리 채어가듯 호적초본을 나꿔채갔다. 한 참을 바라보던 선생님은, 삐뚤어진 입을 더 심하게 삐뚤거리며 말씀하셨다. "야, 이 놈의 새끼야. 너는 네 이름도 모르고 지금까지 살았냐? 너 곽영을이잖아, 이거. 너는 오늘부터 곽영을이야, 이놈아."
그 이후로 나는 팔자에 없는 곽영을이라는 인간으로 평생을 살아야만 했다. 나는 기가 막혔다. 곽영을이라는 이름이 왜 그리 싫은지 몰랐다. 나는 마치 순한 양에 늑대의 털을 입혀 놓은 것 같았다. 그야말로 정체성을 상실하고 말았다. "나는 여기 있는데, 나는 어디있지?"라고 말하고 다녔다. 나는 지나가는 닭에 돌을 던지고, 죄없는 개를 발로 찼다.
어디 가서 내 이름을 말하면,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별 이름 다 있다는 식으로 나를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처음 소개할 때, "곽영을"입니다 하고 서로 인사한 후, 며칠 뒤에 만나면, 10명중 8명은 "곽을영씨지요."라고 말했다. 처음 몇 년은 "곽을영"이 아니라, "곽영을입니다."라고 고쳐 주었다. 그러다가 몇 년이 지나자, "곽을영씨지요?"라고 말하면 "예, 그렇습니다."라고 그냥 지나갔다.
시골 사람들은 지금도 내 이름이 곽영일이라고 알고 있다. 한 번은 시골에 갔었는데, 이 사람 저 사람이 "어, 영일이, 텔레비전에도 나오고 라디오에도 나온다면서..... 출세했네."라고 말했다. "아니, 그럴리가요?" 나중에 알고 보니, 곽영일이라는 키가 좀 작고 통통한 사람이 영어 강사로 방송에 나오고 있었다. 시골 사람들이 그를 나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한 번은 심철수라는 친구로부터 금산에서 전화가 왔다. " 아침마다 네가 하는 라디오 방송 잘 듣고 있다. 너 발음 좋던데, 언제 그렇게 배웠냐?"라고 말했다. 나는 곽영을과 곽영일의 피맺힌 역사를 반복해서 설명해야 했다.
내가 개포고등학교 있을 때 진로의 날이 있었다. 마침 내가 담당이서 외부 강사를 초청했는데, 진짜 곽영일씨를 불러오기로 했다. 전화를 해보니 그는 다른 사람보다 강사료를 더 달라고 했다. 그래도 재미있는 사람이어서 돈을 조금 더 주고 학교에 불러왔다.
선생님들은 그 사람이 나의 동생이냐고 귀가 아프게 물어보았다. 아이들도 따라 다니며 내가 동생인지 형인지 훈련받은 개 옷자락 물고 늘어지듯 물어댔다. 하다하다가 나중에는 "그래, 저 사람이 내 동생이다."라고 말해 버렸다.
과연 영어 강사 곽영일은 재담꾼이었다. 그가 이야기 한 것 중에 이런 말이 기억에 남는다.
한국의 태권도 선수들이 미국에 시합하러 갔다.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중, 반쯤 먹었을 때 웨이터가 와서 물었다. 웨이터: You done?(유단? = 다 먹었냐?)
내가 내 이름에 자신을 갖게 된 것은 어떤 여선생님이 하는 말을 듣고서부터다. "곽영을 선생님 이름은 너무 멋집니다. 발음하기에도 좋고, 아주 특이하고, 선생님 모습과 잘 어울립니다. 곽영을도 좋고, 곽을영도 좋고 다 좋습니다. 이름 지으신 분이 선견지명이 있으신 분인가봐요. 이름은 누가 지어 주셨습니까?"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럴 듯 했다. 발음을 해보니 그날따라 혀도 잘 굴러갔다. 내 이름은 정말 멋지다. 10명 중 9명은 "과경을"이라고 발음하고 1명 정도는 "광영을"이라고 발음한다. 얼마나 멋진 이름인가? 대단한 이름이다.
그 다음 내 이름이 특이한가? 나는 우선 서울 전화번호부에서 곽영을이 있는지 찾아 보았으나 그런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인터넷 <다음>, <네이버>, <구글>, <야후>에 "곽영을"을 쳐 넣고 엔터를 눌러보았으나, 나 이외에 나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정말 기막힌 이름이다.
그런데 한참을 찾아보니, "그는 곽영을 감옥에 가두었다."라는 문장이 있어서 깜짝 놀랐다. 곽영을이라는 사람이 또 있기는 있구나. 그런데 다시 자세히 읽어보니, 이 문장에서 이름은"곽영"이고 "을"은 조사였다. 즉, 「"곽영을"이 아니라, "곽영"이라는 사람을 감옥에 가두었다」는 뜻이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역시 나는 특이한 존재임에 틀림없다."고 의기양양해 했다.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구나! 과연 이 세상에 나 하나밖에 없구나! 나는 희열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내 이름은 우리 할아버지가 지어주셨다고 했다. 그리고 면사무소에 곽영을이라고 신고하고, 내 이름이 곽영을이라고 식구들에게 말했다. 하지만 다른 식구들은 "영일"이라고 알아들었다. 왜냐하면 "영을"이라는 것은 상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나중에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면사무소 직원도 대충 보고 곽영일이라고 적어서 학교에 명단을 넘겼고, 선생님도 그냥 곽영일이라고 받아 출석부에 적었기에 13년 동안 곽영일로 살았던 것이다.
내 이름은 한자로 泳乙이라고 쓴다. 헤엄칠 "영", 새"을"이다. 즉 "헤엄치는 새"이다. 나는 백조나 갈매기처럼 물 위에 떠서 수영을 하면서 한 평생을 사는 새다. 항상 물 위에서 수영을 하다가, 심심하면 육지에 올라가 잠깐 쉬고, 다시 바다로 돌아와 수영하는 새다.
키가 6척(약 180cm)이나 되었던 우리 할아버지 덕분에 나는 키가 6척이 넘는다. 그리고 떠도는 구름이 되고, 흐르는 물이 되어 마치 물새(泳乙)처럼 내가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것은, 우리 할아버지가 나의 이름을 잘 지어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九月山峰(구월산봉) 昨年九月過九月(작년구월과구월) (작년 구월에 구월산 지났고)
(2009년 6월 29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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